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돌고래 Sep 19. 2022

리 언크리치와 졸업

몬스터 주식회사, 토이 스토리 3, 코코

영화의 의미는 관람하는 이와 함께 구성된다. 처음 만난 사람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한 적이 없는지에 따라 <500일의 썸머>가 주는 감상이 다르고, 그릇되게 내뱉은 말을 되돌리고 싶은 적이 없었는지에 따라 <이터널 선샤인>이 주는 감상이 다르다. 애니메이션 영화의 경우, 관객에게 주는 의미는 연령에 따라 크게 나뉜다.


그림으로 자유롭게 표현된 꿈과 같은 이야기는 아이의 시각으로 보면 지금 자신이 꿈꾸고 상상하는 세계의 연장이지만, 어른의 시각으로는 이미 지난 과거에 꿈꿨었던 세계이다. 새롭고 신기한 공간을 초롱초롱하게 바라보던 아이의 관람과 달리, 화면 속 세계를 한 발짝 떨어져 바라보기에 그 안에 담긴 이야기를 진부하게 바라보기도 한다. 하지만 픽사 영화의 경우 아이에게 주는 환상과 어른에게 되새겨주는 추억 모두를 놓치지 않는다. 그중에서도 리 언크리치 감독의 <몬스터 주식회사>(2001), <토이 스토리 3>(2010), <코코>(2017) 세 편의 이야기는 추억과 환상의 세계를 다루되, 이로부터 졸업하는 인물들을 보여준다.


영화 내용이 포함되어 있으니 스포일러를 피하실 분들은 읽지 않으시길 권합니다.


<몬스터 주식회사> - 부를 보고 무서워하는 무서운 괴물 설리

세 이야기는 모두 낯선 세상으로 넘어간 인물로 인해 벌어지는 소동을 다루고 있다. <몬스터 주식회사>에서는 겁 없는 꼬마 아이 부가 자신을 놀라게 하러 온 괴물 설리와 마이크를 쫓아 몬스터 주식회사가 있는 괴물들의 세계로 들어온다. <토이 스토리 3>에서 앤디의 장난감들은 오랜 시간 함께 놀았던 앤디의 성장으로 자신들과 놀아줄 새로운 아이들이 있는 곳으로 향한다. <코코>의 미구엘은 음악에 대한 사랑을 통제하는 가족들에게 인정받고자 유물 기타를 잘못 건드렸다가 사후 세계로 넘어간다. 흥미로운 소동을 거쳐 원래의 세계로 돌아가는 지점에서, 인물들은 그간 정이 들었던 공간과 이별하게 된다.

<몬스터 주식회사> - Kitty has to go

갓 익숙해진 곳으로부터의 이별은 필요하지만 원하는 일은 아니기에, 조금은 스스로를 재촉하면서 서둘러 이루어진다. 괴물들의 세계에서 꼭 붙어서 오랜 시간을 보낸 뒤, 부를 둘러싼 여러 소동들이 해결되고 설리가 악덕 사장 대신 몬스터 주식회사의 새로운 사장이 된다. 문제가 해결된 것은 즐겁지만, 부는 원래 속한 집으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 설리는 거대한 자신을 귀엽게 불러주던 애칭인 Kitty로서, 배움과 추억을 안겨준 부가 푹 잘 수 있게 떠난다. <코코>의 미구엘 역시 사후 세계에서 증조할아버지 헥터, 증조할머니 이멜다를 비롯한 여러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며 가까워지지만, 주어진 시간이 끝나면 영원히 사후 세계에 머물게 되기에 갑작스럽게 돌아온다. 처음으로 조건 없이 자신을 응원해주는 조상들을 뒤로하고, 코코는 유물 기타를 처음 집어 든 곳에서 깨어난다.

<토이 스토리 3> - He'll be there for you, no matter what.

<토이 스토리 3>의 이별은 속한 세계가 달라지는 다른 두 이야기에 비해 쉽게 되돌릴 수 있지만, 동시에 서로의 상황을 이해하기에 완전히 넘어서야 하는 이별이다. 앤디는 <토이 스토리>에서 우디와 꼭 붙어있던 시절에서 한참 지나 곧 대학에 갈 나이가 된다. 자연스레 우디를 비롯한 장난감들은 앤디의 손보다는 박스 깊숙이 박혀 있는 경우가 늘고, 약간의 실수와 오해가 섞여 보육원에서 고생을 하게 된다. 장난감들은 힘들게 앤디의 집으로 돌아오려고 노력하고, 앤디 역시 사라진 장난감들을 찾고 기뻐하지만 성장한 어른과 장난감은 더는 어울리지 못했다. 그래서 우디는 앤디에게 자신과 앞으로 재밌게 놀아줄 보니에게 보내달라는 메모를 남기고, 앤디 역시 그 말에 따라 장난감들을 더 사랑해줄 수 있는 보니에게 추억이 담긴 장난감을 건네준다.


<토이 스토리 3> - 마지막으로 우디와 노는 앤디

졸업이 이전 단계의 종결이지만 이전 단계와의 단절을 의미하지는 않듯, 인물과 가졌던 추억은 기억이 남아있고, 또 서로가 원한다면 다시 이어진다. 설리와 부는 닫힌 문을 뒤로한 그 순간에도 서로를 그리워했기 때문에 머지않아 다시 만난다. 부를 놓고 회사로 돌아온 설리의 슬픈 표정을 본 마이크는 부에게로 향하는 문을 새로 열어 둘을 이어준다. 반면 앤디의 경우에는 마지막으로 보니와 함께 장난감과 즐겁게 놀며 가장 좋은 기억으로 추억을 마무리한다. 자연스레 소원해진 이전의 상황을 생각한다면, 다시 억지로 만나는 것 대신 좋은 기억 속에 영원히 남는다고도 할 수 있다.

<코코> - Remember me

기억되어야 서로에게 잊히지 않기에, 미구엘은 다른 사람들에게서 사라져 가는 헥터에 대한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 노력한다. 헥터는 가정을 버리고 음악을 쫓아 사라진 것으로 알려져 있어, 다른 모든 음악과 함께 집안에서 금지되어 있었다. 헥터가 사라진 지도 수십 년이 지나 이제 할머니가 된 코코는 아빠 헥터에 대한 기억이 있었지만, 모두의 금기가 되었으며 헥터의 사라짐으로 받은 상처도 있었기에 억지로 그 기억을 억누르고 있었다. 하지만 사후 세계에서 돌아온 손자 미구엘이 아빠가 가장 즐겨 들려주던 노래를 들려주자, 함께 노래를 부르며 억지로 막아놓았던 기억을 풀어놓는다. 오랫동안 그 의미를 알지 못한 채 불렀던 노래가 마침내 코코에 의해 불리는 순간, 헥터와 코코, 그리고 다른 가족들은 영원토록 함께 할 수 있게 된다.


<코코> - 헥터와 이멜다 부부와 함께 있는 미구엘

추억과 환상을 넘어 다음 단계로 이어지기 전에, 이전 것을 끊어내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리고 영화 속 인물들처럼 그렇게 끊어진 기억을 아직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그랬던 이전의 지점들을 떠올리며 함께 눈물을 흘리게 된다. 그대로 즐겁게 이어지는 부와 설리처럼은 아니더라도, 마지막에 한 화면에 모인 코코와 미구엘의 대가족처럼 추억으로부터 졸업하면서도 추억이 이어지길 희망해본다.

작가의 이전글 프랭크 다라본트과 구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