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르고스 란티모스와 여백

더 랍스터, 킬링 디어, 더 페이버릿

by 돌고래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은 해석을 위한 빈 공간을 관람객에게 남겨두는 방식으로 작품을 연출한다. 명확한 답변을 내놓지 않는 그의 이야기를 보았을 때 관객은 사건 뒤에 있는 배경에 대해, 인물의 이전과 이후에 대해 의문을 가지며 이야기에 더욱 빠져들게 된다.


영화 내용이 포함되어 있으니 스포일러를 피하실 분들은 읽지 않으시길 권합니다.


그의 작품은 모두 닫힌 시스템 상에서 발생하는 일을 다룬다. <더 랍스터>(2015)는 45일 안에 사랑을 찾지 못하면 정해둔 동물로 변하게 되는 호텔에 갇히는 세계에서 일어나는 이야기이다. <킬링 디어>(2017)는 의사 스티븐의 수술 후 죽은 환자의 아들, 마틴이 가족 옆에 다가오면서 연쇄적으로 일어나는 기이한 사건을 다룬다. 스티븐의 가족은 마틴으로부터 벗어나려고 하지만, 그의 저주 아래 발이 묶인다. <더 페이버릿>(2018)은 궁전에서 벌어지는 앤 여왕과 사라, 애비게일 세 사람의 치정극을 보여준다. 제한된 공간에서 발생하는 이야기를 다루면서도, 시스템의 특성에 대한 직접적인 설명은 관객이 상상할 몫으로 남겨둔다. 왜 호텔이 생겨났는지 소개하지 않으며, 어떻게 마틴이 저주를 만들어내는지 설명하지 않는다.


킬링디어.jpg <킬링 디어> - 첫 번째 기이한 사건의 발생
더페이버릿.jpg <더 페이버릿> - 어안 렌즈로 촬영한 궁전의 복도

대신 감독은 영화 전체적으로 드러나는 분위기를 통해 이야기를 받아들이게 만든다. 우선 작품을 편안하게 관람할 수 없도록 만든다. 관객에게 주어지는 정보인 시각과 청각 모두 낯선 환경에 처하도록 만들어 기이한 세계관을 수용하도록 한다. 시종일관 거슬리는 효과음과 더불어, 익숙하지 않은 각도로 보여주는 화면으로 스스로를 구분 짓는다. 독특한 촬영 방식은 시각적 불편함에 더해 공간의 의미를 보여주기도 한다. <더 페이버릿>에서는 궁전의 복도를 오가는 장면에서 어안 렌즈로 굽어 보이게 촬영하여 내면이 뒤틀린 인물들이 경쟁하는 전장으로서의 궁전을 표현한다. <킬링 디어>에서는 화면 속 배우의 시선보다 아주 높거나 아주 낮은 쪽에서 CCTV처럼 인물들을 관찰하듯 촬영하여 불행을 안기는 마틴의 시점이 다른 등장인물보다 위에 있어 스티븐의 가족이 그에게서 벗어날 수 없음을 보여준다.


마틴.jpg <킬링 디어> - 자신의 저주를 설명하는 마틴

또한 배우의 얼굴에서 감정을 지운다. 요르고스 란티모스 영화의 배우들은 말투나 소리의 크기가 동일하다. 표정과 개개인의 특성이 제거되어, 모든 배우가 동일한 톤으로 연기하여 대화를 구성한다. 감정이 제거된 얼굴에 남은 여백은, 고스란히 이야기와 관객의 생각으로 채워진다. 이는 정말로 감정이 결여된 인물을 다룰 때에나, 주변과 대비되는 감정이 풍부한 인물을 다룰 때에도 효과적이다. <킬링 디어>의 마틴이나 <더 랍스터>의 비정한 여인은 다른 인물들과 같은 톤으로 대사를 내뱉지만 그 내용은 더욱 차갑고 잔혹하다. 반대로 <더 페이버릿>의 앤 여왕은 공허하거나 경박하게 웃는 다른 인물들과 달리 진실로 슬퍼하고, 분노하고, 기뻐하는 인물이다. 이는 사라와의 감정적 교류가 차단되어 일방적으로 마음을 표현하는 상황과 그 틈으로 애비게일이 친근하게 다가온 모습을 보여준다. <더 랍스터>에서 비정한 여인의 모습을 흉내 내던 데이비드가 흉내를 멈추게 된 장면에서도,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는 인물의 표정을 효과적으로 담아낸다.


인터뷰.jpg <더 랍스터> - 호텔에 들어가며 가지는 인터뷰

그리고 클래식 음악을 활용하여 환상적이고 불쾌한 분위기를 만든다. 주요한 장면마다 장면을 위해 작곡된 음악 대신 사용되는 클래식 음악은, 감상의 방식이나 배경 지식에 따라 다양하게 들릴 수 있는 서양 고전 음악의 추상성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동시에 곡에 담긴 의미와 연결되는 장면으로 영화 뒤편에 상징을 남긴다. <더 랍스터>에서는 베토벤의 현악 사중주 1번 중 제2악장(Beethoven: String Quartet No.1 in F Major, Op. 18 No. 1 - 2. Adagio affettuoso ed appassionato)을 호텔 인터뷰 장면을 시작으로 반복하여 사용한다. 해당 악장은 베토벤이 로미오와 줄리엣의 무덤 장면을 묘사할 의도로 작곡되었는데, 이룰 수 없는 사랑의 비극적 결말에 대한 음악은 사랑을 강제로 이뤄야 하는 호텔의 상황과 대비되며 사랑의 모습에 따라 잔혹한 결말로 마무리될 수도 있는 세계를 소개해준다.

<킬링 디어>는 실제 심장의 클로즈업 샷으로 시작한다. 펄떡되며 뛰는 심장이 등장하기 전 영화를 가장 먼저 채운 음악은 슈베르트의 Stabat Mater in F minor, D.383의 1악장 "Jesus Christus schwebt am Kreuze"이다. 이 곡은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를 바라보는 마리아의 고통을 다루는 곡의 서곡으로, 성극을 위해 작곡되었다. 모두를 위해 희생한 사람과 가장 가까웠던 인물이 겪는 고통을 비틀어, 영화는 가족을 위해 가족 중 한 사람을 제물로 바쳐 희생시켜야 하는 스티븐의 모습을 뒤이어 보여주며 인물이 겪을 희생과 고통을 전달한다. 그리고 장엄한 음악과 과도하게 사실적인 영상의 조합으로 조금은 불쾌하고 잔혹할 영화의 분위기를 소개한다.

토끼.jpg <더 페이버릿> - 애비게일에게 짓밟히는 불쌍한 토끼

<더 페이버릿>은 앤 여왕에게 애비게일이 머리를 붙잡히는 장면으로 마무리된다. 요르고스 란티모스는 결말에서도 여백을 남겨둔다. <더 랍스터>와 <킬링 디어>에서는 인물의 선택을 온전히 보여주지 않는 식으로 비워두지만, <더 페이버릿>에서는 인물의 진실된 모습을 뒤늦게 일부만 보여주는 식으로 여백을 남긴다. 권력을 욕심부리던 사라와 애비게일의 눈에 앤 여왕은 감정에 쉽게 휘둘리는 만만한 노파였지만, 마지막 장면에서야 권력을 쥔 여왕으로서의 모습을 보여주며 순수하고 쉽게 상처받던 모습이 가면임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배경으로 슈베르트의 마지막 피아노 소나타 21번 2악장(Schubert: Piano Sonata in B-flat Major, D.960 II. Andante sostenuto)이 흐른다. 슈베르트의 가장 유명한 피아노 소나타 중에서도 가장 어두운 분위기의 악장으로, C# 단조의 음울한 시작과 이후의 밝은 진행 중 도입부의 C# 단조 부분이 사용되었다. 공허함과 진지함을 다룬 곡에서 공허함에 대한 부분만 사용하여 권력에 다가가는 목표는 이루었지만 다시 아랫사람이자 애완동물 취급을 받게 된 애비게일의 상황을 보여준다.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의 가장 뛰어난 부분은 상징과 은유, 그리고 불편함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관람객이 여전히 관람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도록 영화를 연출한다는 점이다. 의미가 해석되지 않아도 즐겁게 감상할 수 있는 클래식 음악처럼, 상징과 은유를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영화의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영화 속 여백에 대해 관객이 상상하고 추론하며 재미를 느낄 수도 있지만, 예측할 수 없는 서사의 즐거움만으로도 흥미를 유발한다. 찝찝한 감상을 남기는 경우는 있어도 영화를 통해서 느끼는 즐거움 자체를 무시하지 않았다. 영화를 본 뒤에 생각할 부분도 많고 기괴한 장면에 놀라기도 하지만, 그의 영화를 다시 찾게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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