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스트 무비, 혹은 케이퍼 무비는 영화의 재미를 극대화한 장르이다. 크게 한탕하기 위해 뭉친 여러 캐릭터들이 복잡한 계획에 참여하며 벌어지는 일들을 보여주는 영화로, 대표적으로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의 오션스 시리즈가 있다. 대부분의 하이스트 무비는 너무 많은 등장인물들로 서사가 혼잡해지고, 도구적으로 사용되고 버리는 캐릭터가 많아 아쉬움을 남긴다. 그와 달리 모든 캐릭터들의 매력을 살려 영화를 거듭 다시 보게 만드는 감독이 최동훈 감독이다.
최동훈 감독의 영화 속 캐릭터들은 살아 있다. 그의 영화를 보면서 긴장감과 재미를 느끼게 되는 것은 쫄깃한 편집과 곡절 많은 서사에 더불어, 많으면서도 독특한 캐릭터들이 여러 상황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은, 대사를 통해 생동감을 얻는다. 인물들은 직업에 맞는 저렴하면서 정감 있는 단어를 사용해 도둑이나 타짜다운 대화를 이룬다. <타짜> 촬영 전 스태프가 함께 고스톱을 치며 대사를 고쳤다는 일화처럼, 그 상황과 분위기에 어울리게 만들어진 대사로 관객을 즐겁게 한다.
대사가 가지는 힘을 보여주는 예는 비중이 적은 조연에서 찾아볼 수 있다. 할당되는 시간이 적지만, 주인공과의 짧은 대화에서 그 내용과 태도로 캐릭터를 구체화한다. <범죄의 재구성>의 휘발류는 다른 사람들의 뒷담화 속에 먼저 언급되며, 첫 모임에서도 함께 먹을 술을 사들고 사과하며 늦게 등장한다. <타짜>에서 너구리는 자신보다 한참 어린 정마담에게 반말로 명령을 듣고 이에 복종한다. 작업을 위해 꼭 필요하지만 동료들에게 무시당하는 위치라는 특성을 부여하면서, 이를 부가적인 장면과 설명 대신 다른 인물과의 대사를 통해 자연스레 보여주었다. 대사의 힘은 영화 전체적으로도 발휘되는데, 특히 <범죄의 재구성>(2004), <타짜>(2006), <도둑들>(2012)에서 많은 명대사와 함께 훌륭하고 재미있는 영화를 만들었다.
영화 내용이 포함되어 있으니 스포일러를 피하실 분들은 읽지 않으시길 권합니다.
<범죄의 재구성> - 청진기 대보니까 진단이 딱 나온다. 시츄에이션이 좋아대사는 캐릭터를 각인시킨다. 인물들은 서로 비슷한 감성의 언어를 사용하면서도, 각자 특징적인 말투와 내용으로 한 마디 대사라도 관객의 뇌리에 남긴다. 머릿속에 맴도는 대사는 특징적인 이름과 함께 등장인물이 많음에도 그들을 구분 짓는다. <타짜>의 곽철용이 뒤늦게 화재가 되며 유명해진 것도, 짧은 등장에도 "젊은 친구, 신사답게 행동해." 등으로 품격 있는 깡패 두목의 캐릭터를 각인시켰기 때문이다.
<범죄의 재구성>에서 김 선생은 최창혁이 세워 온 한국은행 강도 계획에 대해 "청진기 대보니까 진단이 딱 나온다. 시츄에이션이 좋아."라고 한다. 계획안으로 가부를 판단할 정도로 범죄에 통달했으며 다른 구성원들이 다 그에게 진단 결과를 물어보는 것에서 그가 리더의 위치에 있음을 보여준다. 얼매는 병원 신세를 진 상태에서 형사들과 대치하며 자신의 수많은 부상을 강조하는 대사들이, 얼매를 추궁하는 이 형사는 얼매의 변명들을 묵살하며 내뱉는 욕설이 인상적이다.
<타짜> - 이거이 니 정주영이고, 이병철이야<타짜>에서는 표현이 더욱 과격해지고, 디테일해진다. 평경장은 화투를 가르치며 "이거이 니 정주영이고, 이병철이야!"라고 선언한다. 같은 배우가 연기한 김 선생과 마찬가지로 판에 통달한 인물임을 보여주면서도, 직접적인 대상을 지칭하여 재미를 더했다. "이대 나온 여자"라는 정마담은 <범죄의 재구성>의 구로동 샤론 스톤보다 고고하고 결단력 있는 예쁜 칼을, "죽으려면 대통령 불알을 못 만지냐"는 고광렬은 저속하면서도 모두를 조롱하는 말들로 고니의 시끄럽지만 유쾌한 조력자를 만들었다. 널리 알려진 마지막 대결에서의 대화는 앞의 장면들로 쌓인 캐릭터들의 조화로 모든 대사가 기억에 남는다.
<도둑들>은 도둑만 10명인 만큼 몇 명의 인물들이 묶여서 특징을 만든다. 펩시와 예니콜이 처음 만난 장면에서 주고받는 날 선 대화나, 짧은 시간에 로맨스를 보여주기 위한 잠파노와 예니콜, 첸과 씹던껌의 과한 애정표현을 담은 대사가 그렇다. 물론 뽀빠이의 "마누라 때린 날 장모 온다더니"나 앤드류의 "도둑놈들하고 일하려니까 불안불안하네"처럼 독백이면서도 명료하게 캐릭터를 보여주는 대사도 많다.
또한 대사에 야망이 담겨 있다. 사기꾼, 도박꾼, 도둑, 모두 건전하지 못한 직업이지만 영화에서는 자신의 목표를 위해 진취적으로 움직이는 인물로 그려진다. 그 목적도, 초반에는 금전적인 목적으로만 보이지만 더 깊고 사적인 것이었다. 어려운 상황에 모험을 걸어 금전적 이익과 사적 복수 모두 수행하는 야망 있는 삶의 방식은 대사를 통해 관객에게 직접적으로 전달된다.
<범죄의 재구성> - 사자가 굶어 죽는다고 풀 뜯어먹는 거 봤어?
<타짜> - 늑대 새끼가 어떻게 개 밑으로 들어갑니까
<도둑들> - 도둑인데, 그게 죈가?<범죄의 재구성>의 최창혁과 <타짜>의 고니는 직면한 위험보다 큰 목표를 가졌음을 상대에게 선언한다. 그 말로 인해 적이 될지라도, 맞섰을 때 이길 수 있다는 패기가 담겨 있다. <도둑들>의 마카오박이 한 대사는 영화의 분위기를 대표한다. 10명이라는 많은 팀원이 끊임없이 배신함에도 그들의 정체성이 사적 이익만 따르는 도둑이기에 자연스러운 선택이라는 점을 보여주면서, 팀원들을 모은 마카오 박은 이를 먼저 파악한 도둑답게 그 배신들을 목적을 위해 이용하겠다는 점을 암시한다.
그리고 대사는 주제를 보여준다. 소재는 다르지만 세 영화는, 그리고 하이스트 무비는 본질적으로 욕망에 대한 이야기이다. 과한 욕망으로 갈등과 원한이 발생했고, 강탈과 복수를 위해 다른 사람의 욕망을 활용한다. <타짜>와 <도둑들>에서는 다른 사람들이 벌이는 다툼에서 한 발짝 떨어져서 이를 관조적으로 보는 인물로 평경장과 펩시가 있다. 평경장은 과욕으로 많은 것을 잃는 사람들을 보았기에 "화투는 슬픈 드라마야. 아예 모르는 게 약이지."라는 말로 고니의 가르쳐 달라는 요구를 거절한다. 펩시는 타인의 욕망에 의해 큰 상처를 받은 뒤 도둑을 "비싼 거 훔쳐서 싸게 파는" 일이라고 낮춘다. 둘은 자신의 직업이 가진 욕망으로 인한 위험을 알았지만, 평경장은 그 세계로 돌아가 큰 것을 잃고 펩시는 돌아갔지만 욕망에 휩싸이지 않아 화를 피한다. 그 외 다른 등장인물들도 물질적 욕망이 이성과 의리를 넘어섰을 때 모두 피를 본다.
<범죄의 재구성> - 마지막 장면. 숨 쉬듯 자연스럽게 질서를 어긴다."지금 이 사람은 상식보다 탐욕이 크다. 탐욕스러운 사람, 세상을 모르는 사람, 세상을 너무 잘 아는 사람. 모두 다 우릴 만날 수 있다." <범죄의 재구성>의 마지막 장면에서 최창혁은 수술 대상이 되는 환자의 특징을 소개한다. 작중 발생한 사기는 모두 욕망으로 눈이 먼 사람들을 활용해 발생한다. 이는 욕망이 얼마나 쉽게 조종되며 부정적으로 활용될 수 있는지 보여준다. 작품마다 포함되어 있는 욕망에 대한 조금의 교훈은, 최동훈 감독 영화를 보았을 때 느끼는 재미와 함께 속 빈 영화를 보지 않았다는 만족감을 준다.
다른 요소와 섞어도 최동훈 감독의 영화에서 대사의 매력은 살아 있다. <암살>에서 염석진의 재판 장면이 그랬고, <전우치>에서 전우치의 허풍 섞인 등장도 그랬다. 하지만 작품 배경 상 특유의 감성을 가진 대사가 들어가기 어려웠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아쉬운 결과를 가졌다. <범죄의 재구성>의 성공 이후 한국식 하이스트 무비가 잔뜩 등장했으나 그보다 나은 것은 <타짜>와 <도둑들> 뿐이었으며, 이후에도 재미와 쾌감에서 따라갈 영화는 나오지 않고 있다. 기쁘게도 최동훈의 다음 작품인 <외계+인>은 SF 영화이면서 하이스트 무비인 것으로 알려졌다. 생동감 있는 캐릭터들과 함께, 어떤 명대사를 남기며 작품이 만들어질지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