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수용을 한다는 것

어른들을 위한 감정코칭 15

by 하트온

진심에서 우러나온 수용


나는 나의 늑대가 나에게 말한 '진정한 수용'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해 보고 싶어졌다. 진정한 수용이란 무언가를 받아들이면서 기꺼이 감사의 마음이 우러나는 것이라고 했다. 누가 이렇게나 기쁜 마음으로 주어진 상황을 수용할 수 있을까? 아이가 자라 청년이 되고, 청년이 중년이 되고, 중년이 노년이 되고, 살과 근육이 빠져나가는 자리에 쭈글쭈글 주름이 늘어가고 검버섯이 피어오르는 죽음에 점점 가까워지는 시한부 인생을, 모래시계가 뚝뚝 떨어지는 과정을 누가 진심으로 기꺼이 기쁨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이 진정한 수용이란 것을 거듭 생각하다가, 문득, '가난한 자에게 복이 있다'는 성경 구절을 떠올린다. 지금은 결핍 상태이지만 받을 복이 있다는 희망을 주는 말이다. 수용한다는 것은 다가올 복을 굳게 믿으며 지금의 현실을 기꺼이 받아들인다는 것일까. 기다림의 고통이 너무 가혹하지 않을까. 아니, 그 바라는 복이 너무나 대단한 것이라서 그 기다림의 과정까지 설렘과 행복감으로 가득하게 되는 되는 것일까.


가난한 자의 복은 기다림에 있을 수도 있지만, 아닐 수도 있다. 결핍의 구멍이 채워지는 순간 반작용으로, 남들은 짐작할 수도 없이 극대화된 행복감을 누리게 된다는 이야기일 수도 있다. 가령 누구에게나 일어나는 어떤 현상이 일어나고 누구나 흔히 겪는 상황이 주어질 때, 그것의 가치를 아는 사람은 남보다 더 크게 누리고 행복할 수 있다. 결핍의 고통을 겪어보고 아는 사람만이, 결핍이 채워지는 상황을 진정으로 기뻐할 수 있다.


억압으로 힘들었던 아동기를 보낸 사람은 자유롭게 자신의 뜻을 펼칠 수 있는 청년기를 감사함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가난하고 불안정한 삶으로 고통받아본 청년은 안정되고 틀이 잡힌 중년의 삶 속으로 감지덕지하며 걸어 들어갈 수 있다.


자유를 잃어 본 적이 없었다면,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것 같은 자유에 감사할 수 없고, 오염된 공기에 시달려 본 적이 없다면, 언제나 곁에 있을 것 같은 맑은 공기에 감사하지 않는다. 가난과 불안정이 불러오는 삶의 고통을 모른다면, 쳇바퀴 돌듯 안정적인 삶이 답답하고 지루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런 것처럼 우리가 현생에서 채울 수 없는 어떤 삶의 구멍을 철저히 깨닫는 순간부터 우리는 기꺼이 죽음을 감사함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 아닐까. 내 안의 어떤 빈 구멍을 느낄 때, 자꾸 채우려 하는 것이 아니라 빈 구멍 그대로 가만히 가난을 느낄 때, 다가오는 죽음을 더 기쁘게 수용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구질구질 결핍 가득한 삶을 미련 없이 흘려보내고, 다음 단계를 감사한 마음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 아닐까.


우리가 어디에 가치를 두고 있느냐에 따라, 내 삶을 무엇으로 보느냐에 따라, 죽음 앞에서 어떤 마음인가에 따라 우리는 하루하루를 행복과 설렘으로 채울 수도 있고, 낙망과 괴로움으로 채울 수도 있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나는 나의 늑대에게 몇 가지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삶은 무엇인가


나의 늑대는 대답했다.


변화하는 과정이지.


내일 당장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는 미지의 과정이면서도, 모든 것 뒤에 원인과 결과라는 자연법칙이 작용하는 과정이라는 설명을 친절히 덧붙여 주었다.


나는 깨닫는다. 인간은 인생의 결과를 알 수 없는 존재구나. 다만 원인을 쌓아갈 뿐이구나. 결과는 갑자기 겪는다. 오랜 원인이 쌓여서 일어날, 내일 아침 일어나는 결과에 대한 마음 가짐을 어떻게 먹느냐가 내일을 살아갈 내 감정을 정하게 되겠구나 결론에 이른다.


원인을 잘 쌓아간다는 건, 내일을 생각하며 오늘 일을 결정해야 한다는 뜻이 아닐까. 지금 당장 내 마음이 탐하는 대로 달콤한 케이크 한 상자를 다 먹어 버리는 것이 즐겁겠지만, 내일, 한 달 후, 일 년 후의 내 건강을 생각해서 나는 욕망을 따라가지 않는 선택을 할 때, 원인을 잘 쌓으려고 노력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많은 사람들이 건강을 위해, 성장을 위해, 성공을 위해, 자녀 교육을 위해, 주변 사람들과의 좋은 관계를 위해, 삶을 잘 마무리하고 의미 있는 죽음을 맞기 위해,... 다양한 가치관에 따라 다양한 원인을 쌓아간다.


하지만 원인을 잘 쌓아가다가도, 당장 내일 아침 원하지 않는 결과와 맞닥뜨릴 수 있다. 내 주변 사람들의 원인까지 내가 다 쌓아줄 수도 없고, 역사 속 죽은 사람들이 쌓아놓은 원인이나, 이 세상 사람들이 함께 쌓아야 하는 원인은 나의 통제 영역 밖이다. 가령 내가 아무리 완벽하게 원인을 잘 쌓아왔어도, 갑작스럽게 닥친 가족의 죽음이나, 하루아침에 시작된 코로나 팬데믹 상황을 피해 갈 수 없었던 것처럼 말이다.


그러니, 우리는 종종 내가 쌓지 않은 원인의 결과까지 수용해내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가족의 죽음이나, 코로나 팬데믹 같은 상황이 벌어지면 내가 일으킨 일이 아님에도 이 상황을 수용하지 않고는 내 안의 행복감을 회복해 낼 도리가 없는 것이다.



어디에 가치를 두고 살아야 할까


'완벽한 원인 쌓기로 완벽한 결과 만들기'는 우리의 목표가 될 수 없다. 대입 준비를 잘해서 서울대, 하버드를 수석으로 졸업해도, 공무원 사법고시 수석 합격을 해도, 우리의 삶은 완벽해지지 않는다. 아무리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원인들을 완벽하게 잘 쌓아도, 결과는 너무 많은 사람들의 원인들이 뭉뚱 그러져 찾아온다. 혼자 사는 세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좋은 원인 쌓기가 모든 것을 해결해 줄 거라 믿고 있다간, 원하지 않는 결과가 찾아온 순간, 원망과 분노에 사로잡히게 되기 쉽다.


원인을 잘 쌓도록 최선을 다해야 하지만, 그것에 너무 가치를 두어서도 의존해서도 안된다. 갑작스러운 변화, 원하지 않는 결과 앞에서 넘어졌다가도 용수철처럼 다시 튀어 오를 수 있는 강한 회복 탄력성이 필요하다. 그것은 믿음을 필요로 한다. 어떤 일이 내게 닥쳐도, 나는 이것을 헤치고 뛰어넘는 과정에서 성장해 내리라는 것. 내 안의 어떤 보석을 정련하고 닦아내고 있는 과정이라는 것을 믿어야 한다. 그러니, 인생이란 그냥 변화하는 과정이 아니라, 나를 단련하고 나를 변화시키는 의미 있는 과정이라고 감사히 여기고 나아가야 하는 것이다.


나의 늑대가 내 생각의 흐름이 마음에 드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설명을 덧붙여 준다.


오늘 얼마나 내가 또 성장하고 변화하게 될까 이것에 가치를 두고 기대하고 있어야만 오늘 새롭게 일어나는 변화를 기꺼이 수용하고 즐겁게 나아갈 수 있어.



미지의 흐름과 하나 되는 삶


끝없이 굽이치며 흐르는 삶은 내가 조종하고 통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나 이 전에 나의 조상들이 쌓아온 원인들과, 내가 얼굴도 모르는 수많은 사람들이 쌓은 원인들의 결과가 함께 복잡하게 얽혀 굽이치며 흐르는 혼돈의 파도에 우리는 떠밀려 다니게 될 수밖에 없다.


나 스스로 나쁜 결과를 초래하지 않도록 노력하면서, 동시에 지금까지 쌓인 나쁜 원인들을 개선하고 회복시키는 노력도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 물론, 여전히 결과는 완벽해지지 않는다. 그렇게까지 노력해도 내가 예상하지 못했던 결과는 언제나 갑자기 벌어지고 순식간에 내 목을 조르며 엄습하기도 한다.


그러니, 강하게 차분하게 마음먹어야 한다. 삶이 내 계획대로 되어야 한다고 조바심을 내기보다는, 혼돈의 파도를 언제나 예상하고, 흐름에 맡길 줄도 아는 느긋한 자세로 나아가야 한다. 흐르는 물과 하나가 되는 삶, 주어진 파도를 타고 노는 삶을 추구해야 한다. 언제나 새로운 변화가 있기를 기대하는 삶. 원하지 않는 결과를 재빨리 좋은 기회로 만들어 낼 줄 아는 창의적이고 탄력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


폭풍우와 세찬 파도를 예상하고 배를 손보며 나아가는 뱃사람처럼 철저히 준비하고 끈질기게 나아가야 한다. 미지의 바다를 기꺼이 다니며 바다가 주는 것들에 감사하는 그들처럼, 불확실한 미지의 삶 그대로를, 그 삶이 내게 주는 것들을, 나에게 미치는 영향들을 기꺼이 즐기고 아끼고 사랑하며 살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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