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만든 것, 내가 만든 것

내 마음을 여행 중입니다

by 하트온


술을 싫어한다. 술에 취해 휘청이는 모습도, 술기운을 빌려 소리 높이는 것도 다 싫다. 길 가의 술집들도 싫었고, 여기저기서 틈만 나면 벌어지는 술자리들도 다 싫었다. 내가 초능력이 있다면 세상의 술을 다 말려버리고 싶었다. 술 만드는 사람, 술 파는 사람들을 다 없애고 싶었다. 싹 다.


싫어하면 싫어할수록 더욱 치고 들어오는 이상한 세상에선, 내가 가장 싫어하는 술은 내 삶 구석구석 비집고 들어와 있었다. 어른들의 흉내를 미리 내 보고 싶은 방치된 아이들의 세계에도. 새로 들어오는 신입에게 환영식이라는 명목을 내세워, 자신이 가진 권력을 휘두르고 서열을 알려주고 싶은 각종 성인 집단에도. 혼자가 불안해서 함께 모여 있을 구실이 필요한 청춘들의 젊음에도. 혼자 조용히 알아서 감정을 처리할 다른 도리가 없는 노인들의 벽장 한구석에도. 세상 어디에도 술이 깃들어 있지 않은 곳을 찾지 못했다.


그중에서도 나는 할머니와 아빠가 마시는 술이 가장 싫었다. 술이 그들을 평소와 전혀 다른 모습으로 일그러뜨렸기 때문이다. 나는 평소 멀쩡한 사람이 술을 먹고 이상한 사람이 되는 것이라 생각했다. 술에 취한 아빠는 안하무인의 시비꾼이 되었고, 소주 한 병을 마신 할머니는 자신이 불쌍해서 엉엉 우는 울보가 되었다. 나는 그 시비꾼과 울보가 싫었고, 술이 만들어내는 그것들을 나쁜 마녀의 주문이라고 생각했다.


지금에 와서 깨닫는 것은 어쩌면, 술이 그들에게 숨 쉬는 구멍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평소에 완벽한-완벽해 보이고 싶어서 애쓰는 - 가면을 쓰느라 너무 힘든 사람들이 가끔 자신을 풀어주기 위해서 숨을 쉬기 위해서 가면을 내려놓듯 술을 마시는 게 아니었을까. 술 마시고 하는 행동과 말은 쉽게 용서하는 사회니까, 그냥 맨 정신에 하면 이상한 사람 취급받으니까, 뭐든 마음이 하고 싶은 건 술 마시고 하자 이런 게 아니었을까.



술이 깨부수는 그림을 이어 붙이느라


술 취한 사람들을 술 취하지 않은 사람, 특히 어린이나 약자가 겪는 것은 고역이다. 공포의 감정이 심장박동을 통제할 수 없게, 손을 덜덜 떨게 만든다. 집 안에서 그런 일이 일어나면 그들은 갈 곳이 없어진다. 한 바탕 술 폭풍이 불고 지나간 후에는, 치우고, 깨진 곳을 이어 붙이고 다시 완전한 가정의 그림으로 되돌려 놓기 바쁘다. 태풍이 지나가고, 태풍의 몰아쳤던 밤의 공포를 되새기기보다, 다시 맑아진 하늘을 보며 일상을 살아가기 바쁜 것처럼 우린 모두 금방 술 취한 아빠를 본 기억을 망각했다. 우리 모두가 함께 그렇게 믿으면, 술 폭풍은 우리 삶에 '존재하지 않는 것'이 되었다.


행복하지 않은 화목하지 않은 군림하고 공포에 떠는 이상한 집안..., 마음에는 의구심의 구멍이 뻥뻥 뚫리지만, 그것을 결코 드러내지 않는다. 정서 불안정한 집에서 크는 아이는, 마음속 구멍을 잠깐잠깐 푹 채워주며 설레게 하는 좋은 것들을 집 밖에서 발견한다. 칭찬과 인정. 선생님들이 관심을 보여주고 예쁘다고 해주고 웃어주는 것이 너무 좋다. 숨이 쉬어진다. 그 시선에 목숨을 걸기 시작한다. 뭐든 죽기 살기로 열심히 하려는 의지가 솟아난다.


공부 잘하는 모범생. 뭐든 열심히 하는 성실하고 미래가 촉망되는 아이. 착하고 온순한 아이,... 이 가면들이 얼마나 마음을 안정되게 하는지!


문제는, 교사의 관심과 인정이란 것도, 모범생 착한 아이 이미지 자체도 너무나 불안정한 것이었다는 것이다. 선생님이 나를 오늘도 칭찬해 주어야 채워지는 구멍은 선생님의 심기가 조금이라도 불편한 날엔 찢어질 듯 벌어져 아프고, 100점 중에 95점 이상을 맞아야 유지되는 이미지는, 그 아래로 조금만 떨어져도 죽어 버리는 게 나을 것 같은 자괴감의 통증을 불러온다.



이기적인, 극도로 이기적인


사람들은 이기적이면 어때, 인간은 모두 이기적인 동물인데 라고들 말한다. 그건 진짜 이기적인 게 뭔지를 몰라서 하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진짜 이기적인 것이 무엇인지 알면, 누구도 결코 이기적으로 살고 싶지 않다고 말할 것이다. 이기적인 것은 자기 파괴적인 고통스러운 것이기 때문이다.


내 삶은, 남이 나를 어떻게 인식하는가에 너무 집중하고 있었다. 아니, 집중 정도가 아니라, 그것은 나 밖에 모르는, 나로만 가득한 삶이었다. 내 안에 타인을 위한 공간 따위는 없었다. 타인의 시선에서 발견하는 내 모습만이 중요했다.


나는 고등학교 때 몹시 좋아하고 따랐던 교사들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한다. 그들의 관심사도 생각도 모른다. 그들에게 많이 찾아가고 면담도 많이 했지만, 그들이 했던 말을 한 줄도 기억하지 못한다. 나는 그들이 나에 대해 어떤 생각 어떤 감정을 가지고 있는가에만 집중하고 있었을 뿐, 사람을 알아갈, 관계를 맺어갈 능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남자 친구를 여럿 사귀었었지만, 다들 1-2년을 넘기지 못하고 헤어졌었다. 그들이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상처가 있는지, 꿈이 뭔지 관심 없었다. 그들에게 내가 가장 매력적인 우상이 되어 있는 것을 보는 것이 설레고 기뻤을 뿐이었다. 그 완전한 이미지에 금이 가기 시작하면 나는 그들과 헤어졌다. 내가 그들을 버렸다.


내가 살았던 이것이, 진짜 이기적인 삶이다. 상대는 없고, 나만 있는 삶. 상대가 비집고 들어올 틈 하나 없는 인간이 이기적인 인간인 것이다. 나는 내가 만났던 그 수많은 사람들을 안 것이 아니다. 만났던 것도 아니다. 어떤 관계도 맺지 못했다. 그들 속에, 그들이 인식하고 있는 나의 이미지와만 만난 것이다. 세상은 온통 나의 거울일 뿐이었다. 나는 어디서 무엇을 해도 내 모습만 보고 있었던 것이다.


내 모습만 보이는 이기적인 세상은 외롭고, 아프다. 아무도 그 세상에 갇히고 싶지 않다. 그러니, 이기적이 되어도 괜찮아라는 말은 사실이 아니다. 내 편 들어주며 나를 잘 돌보는 것과 이기적이라는 말을 혼동하고 있는 것이다. 살아본 사랑이 증언하건대, 나만 있는 세상은 결코 좋을 게 없다. 타인과 내가 다 함께 있는 세상이 좋은 세상이다. 사람은 그런 세상에서 건강하고 행복하다.



이기적인 세상에서 빠져나와


어느 순간, 내 눈에 나 밖에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기적인 삶을 살아도 괜찮은 게 아니라는 것을 자각했다. 회한의 눈물을 흘렸고, 내가 만들어온 이 이기적인 관념의 감옥을 깨고 빠져나올 수 있기를 소원했다.


타인의 마음에 비친 내가 아닌 타인의 마음 자체 그대로를 보고 느끼고 관계 맺고 싶다. 세상에 비친 내가 아닌 세상 자체 그대로를 알아가고 싶다.


타인을 바라보는 내 눈이 얼마나 맑아졌는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중요한 건, 내가 익숙한 이기적인 세상을 등 돌리고 떠났다는 것이고, 나 자신과 타인, 세상을 보는 마음의 시력이 좋아지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다시는 되돌아가지 않을 것이고, 사는 내내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나는 나와 타인이 함께 하는 새로운 세상을 지어나갈 것이다. 그 세상은 나만 가득한 이기적이고 외로운 세상이 아닌 너와 내가 함께 손잡고 성장하는 기쁨과 사랑으로 가득한 따뜻한 세상일 것이다. 조금씩 조금씩 그 세상이 지어지고 있다. 아직 결과에 이르지도 않았지만, 나는 그 과정을 걷고 있는 것만으로도 벌써 기쁘고 행복하다.





대문 이미지 출처: Pixabay (by 198336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