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을 여행 중입니다
세상이 왜 이래?
사람들이 싫었다. 모두가 이상했다. 왜 저런 사람들만 내 주변에 있는 거지? 무례하고 함부로 구는 사람들만 생기는 거지? 나는 정말이지 내 주변 사람들이 다 이상하다고 느껴졌고, 내가 살아가는 이 세상이 개차반 투성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것은 누가 만든 것이 아닌, 내가 만든 세상이었다. 물론 내 부모의 영향이 컸지만, 결국은 책임이 오롯이 나에게 맡겨진, 그 결과를 나 혼자 짊어져야 하는 나만의 세상이었다. 나의 세상이 질서도 없고, 보안도 없고, 제대로 갖추지 못한 게 많았기 때문에, 타인이 내 세상에 들어오는 순간, 쉽게 무례한 침입자 역할을 하도록 만든 것이었다. 나의 세상이 그런 악순환이 이어지게끔 유도하는 환경이었다. 마음대로 치고 들어가서 차지하고 싶은 미성숙한 진상들 - 자신들을 받아주는 세상을 찾기 힘든 존재들 - 의 먹잇감이 될만한, 법질서가 구축되지 않은 무법지대 황무지였다. 좋은 사람들도 왔다가 어쩔 줄 몰라 혼란을 느끼고 뒷걸음질 치게 되는 왠지 음산하고 으스스한 그런 폐허였다.
나의 세상을 허물고 다시 짓다
폐허의 세상에서 꿈을 꾸었다. 나도 밝고 건강하고 좋은 세상을 만들고 싶었다. 원래 있던 것들을 허물고, 처음부터 하나하나 기반과 뼈대부터 다시 잡았다. 단단한 벽을 세우고, 문을 만들고, 내가 안전함을 느낄 수 있는 튼튼한 집을 다시 지었다. 집 안에는 누가 오는지 밖이 훤히 내다보이는 시원한 통창이 있고, 집을 잘 지킬 수 있게 보안 시스템도 꼼꼼하게 마련했다. 손님이 갑자기 왔을 때, 주인인 내가 준비될 때까지 기다리게 하는 응접실을 만들고, 상대가 쾌적한 기분을 느낄 수 있게 잘 대접하는 매너도 갖추고, 서로 거리를 지키면서도 편하게 왕래할 수 있지만, 일이 틀어지면 접어 정리할 수 있는 이동식 다리도 만들었다.
이제 나의 세상은 밝고 따뜻하고 안락하다. 질서가 있고 규율이 있다. 보안 체계가 있고 일을 처리하는 시스템이 있다. 가까운 사람들이 와서 쉬어갈 수 있는 게스트 하우스가 있고, 함께 즐길 수 있는 문화 시설이 있다. 배움이 있고 성장이 있는, 내가 허락하는 누구에게나 안전한 안식처가 될 수 있는 곳이 되었다.
나의 세상과 너의 세상
이 세상이란 건 사실, 내가 인식하는 나의 세상과, 내 마음이 인식하는 타인의 세상이 있을 뿐인 것이 아닐까. 나의 세상과 타인의 세상이 어떻게 조화하고 왕래할 수 있느냐에 따라 서로가 문을 열기도 하고 닫기도 한다. 나는 나의 세상을 아름답고 매력적인 곳으로 잘 가꾸어 갈 책임이 있고, 타인은 그 자신의 세상에 대한 권리와 책임을 가질 것이다. 또한 나에게는 어떤 종류의 세상을 만들어 가는 사람들과 교류하고 왕래할 것인지를 결정할 권한도 있다. 물론 타인도 그 권한을 가지고 있다. 타인도 나도 주변에 다가오는 세상을 받아들일 권리도, 혹은 거부할 권리도 다 가지고 있다.
자신의 세상을 보호하고 지키기 위해 가까이 둘 타인의 세상을 까다롭게 고르고 고를 권리와 의무가 있는 만큼, 나와 타인의 세상이 만나 연합하는 일은 드넓은 우주에서 행성이 충돌한 기적과 다름없는 일이 아닐까. 오랫동안 서로가 서로에게 너무나 좋은 영향이 되고, 유익한 교류가 일어난다면 그것만큼 아름답고 신나고 재미있고 든든한 일이 또 있을까. 내 세상 주변에 건강하고 멋지고 풍요롭고 좋은 세상들을 연결시켜 놓는 것은, 강한 연합 국가를 이루고 서로 편하게 왕래하는 것만큼이나 삶을 풍성하고 편리하게 안전하게 만드는 일이다.
반면, 내 주변에 위험하고 무질서한 세상을 연결시켜 놓는다면, 그것은 밤에도 편히 잠을 이루기 힘든 위험하고 고통스러운 삶의 덫을 쳐 놓는 것과 같다. 그러니, 사람을 볼 때, 그 사람의 성격이나 외모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어떤 세상을 꿈꾸고 만들어 가는 사람인지를 꼭 보아야 하지 않을까. 결국은 나를 둘러싼 내 주변 세상이 나의 세상과 마주하는 내 세상의 일부를 이루게 되고, 그것이 내 삶의 질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먼저 나의 세상부터 짓고 손을 내밀자
내 세상이 허물어진 폐허 상태라면, 타인의 세상과 연결해도 좋은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타인이 들어와 내게 나쁜 사람이 되는 것은 시간문제다. 또한 내 무질서한 세상은 타인에게 위험하고 불안정한 요소로 작용할 뿐, 내가 타인에게 좋은 주변 세상이 될 수도 없다. 튼튼하게 안락하게 잘 세워진 세상들 앞에 주눅이 든다고, 나처럼 무너진 세상을 찾아다니며 연결하는 일은 내 삶, 내 세계를 구제할 길 없는 엉망진창의 수렁으로 잡아 끄는 행동이다.
내가 고등학교 때 가까이했던 친구들을 생각해 보면, 모두가 불안한 세상 속에 있었다. 아버지가 술을 마시면 무서운 사람이 되거나, 아버지가 어머니를 상습 구타하거나, 아버지가 어머니의 정절을 의심해서 일상적으로 흉기를 휘두르거나, 아버지가 바람이 나서 가족을 버리고 떠나버렸거나, 아버지가 어머니를 완전히 무시하고 외면하거나... 그 친구들은 모두 나처럼 부모가 깨고 지나간 자리를 최선을 다해 기워 붙이고 사는 완벽주의자 모범생들이었다. 겉으로는 반듯하고 멀쩡해 보였지만, 각자의 세상은 애써 눌러온 불만과 분노로 가득한 불길이었다. 그때 알았던 대부분 친구들과 연락이 끊어졌고 애써 연락을 이으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우리는 서로의 세계를 가까이하려다 싸우고 데고 길을 잃고 상처 투성이가 되었다. 서로를 믿고 관계를 유지할 수 없겠다고 확실히 느꼈다. 서로가 서로에게 안전한 세상이 아니라는 것에 눈을 떠버렸다. 모든 세상이 SNS로 몹시 가까워졌지만, 우리들은 상처와 울분으로 점철되었던 시기를 기억나게 하는 서로의 세상을 굳이 찾지 않는다.
다른 세상과 연결을 시도하기 전에, 내 세상을 잘 세우고 보수하는 과정이 우선이어야 했다. 아마도, 그 친구들도 나처럼 자신들의 세상을 다시 세워나갔으리라. 지금은 사랑하는 주변 사람들과 함께 아름답고 안전한 세상을 가꾸고 누리며 살아가고 있을 것이라 믿고, 꼭 그리하기를 바란다. 만나지 않아도 언제나 마음으로 응원하고 있다.
나의 내면 세상이 무너져 있다고 느낀다면, 다른 무너진 세상이 아무리 동질감으로 매혹해도 가까이 두지 말기 바란다. 저 사람의 상태는 나보다 못하니까 내가 도와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면 그건 정말 어리석은 착각이다. 그런 상태에서는 내가 타인을 결코 도울 수 없다. 서로의 인생을 구원하는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 오히려, 이질감이 들어도, 단단하게 잘 지어진 세상 가까이에 머무르려고 애써야 한다. 굳건하게 잘 지은 세상들 앞에 주눅을 느끼기보다, 그들이 쌓아 올린 노력의 과정을 꿰뚫어 보고 잘 배워내야 한다. 모든 튼튼하고 아름다운 성장 뒤에는 약한 곳에서 한 걸음 한 걸음 강한 성장으로 나아간 오랜 인내의 과정이 있다. 그것을 보고 배워낼 수 있어야 한다. 내 세상을 강하고 안전하게 잘 세워가려고 노력하면서, 좋은 세상을 지어놓고 잘 보수 관리하는 사람들에게 손을 내밀어 보라. 기꺼이 당신의 손을 잡고 함께 교류하기를 원할 것이다. 당신의 성장을 응원할 것이다. 서로에게 좋은 영향을 주는 세상들의 연합, 좋은 관계를 만들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마침내, 행복하고 평화로운 당신의 세상이 완성될 것이다.
대문 사진 출처: Pixabay (by Helmut_Kroi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