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에세이] 글을 낳고 기르며 살아갑니다
글을 쓰고 싶지만 글을 쓸 수 없는 시간
돈 버는 실력이 중요한 이 시대를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글을 쓸 시간이 없다. 젊은 날부터 글만이 내 길이다라고 굳게 정하고 걸어가는 사람도 있을 수 있겠지만, 그건 정말 소수일 거라 생각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글만 쓰고 있기가 너무 불안하다. 글을 써서 돈 벌 방법이 당장 생기는 것도 아니고, 권위 있는 공모전이나 브런치 출판 프로젝트 같은 대회에서 입상하고 작가로서 입지를 만드는 일은 하늘의 별따기만큼이나 아득해 보인다. 글쓰기를 본격적으로 하려면, 공부하고 배울 것도 많아 보여 감히 엄두가 나지 않는다. 뜬구름 잡는 글쓰기는 잠시 뒷전으로 미루어 놓고, 일단은 돈벌이가 될만한 기술 학문을 익혀 놓아야겠다는 마음이 급해진다. 당장 생계가 급할수록 더욱 그렇다.
일단 취직만 하면, 생활은 보다 윤택해지고 글을 쓸 시간이 좀 더 나겠지 싶지만, 하루 종일 사람과 일에 치이는 직장 생활은 사람 진을 쏙 빼놓고, 빨리 결혼하고 아이도 낳고 키워야 할 것 같다는 인생의 또 다른 숙제가 압박해 온다. 겨우 결혼까지 성공하고 하면, 이건 뭐 미국식 표현으로 '투 쓰리 잡'을 뛰는 상황이 된다. 신경 써야 할 가족 친지의 범위는 일차원에서 사차원으로 이동한 듯 복잡 방대해지고. 책임의 무게는 허리가 휘도록 증가한다.
글은 더 이상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것만 같다. 작가가 되는 게 꿈이었지 하고 추억 속 한 구석 어딘가에만 겨우 숨이 붙어 있다. 언젠가 글을 쓰고 싶었는데. 나는 소설가 되는 것이 꿈이었는데. 꿈이란 것이 뭉게뭉게 피어올랐다가 바람의 입김에 흩어지는 연기처럼 사라져 간다.
어느 날 글이 펜을 쥐는 날이 온다
어떻게 하고 싶은 일만 하고 살겠냐며 자포자기하는 심정도 되었다가, 한 번 사는 인생 해 보고 싶은 거 한 번 시도나 해보자 용기가 불끈 솟았다가 잡히지 않는 마음이 쓰다 말다 하는 일기장 속에서 진자 운동을 반복하던 어느 날, 누군가는 불룩하게 차오른 내면의 감정 봇물을 더 이상 참을 수 없어진다.
불화산이 터져 뜨거운 용암이 넘쳐흐르는 기세로, 내면 감정이 펜을 쥐고 미친 듯이 써 내려간다. 문체가 어떻니 단어 선택이 어떻니 그런 걸 생각할 겨를도 없다. 내면을 정확하게 표현해 주는 단어이기만 하다면 물불 가릴 처지가 아니다. 어떤 단어든 끌어와서 가슴을 태우는 이 뜨거운 감정을 종이 위에 쏟아부어야만 내가 살 수 있겠다.
마침내 내 글이 태어났다. 한 번 물꼬가 트인 글줄기는 쉼 없이 흐른다. 어떤 글을 쓸까 고민할 필요도 없다. 내가 하고 싶은 말들이 발산하고 싶은 대로 그대로 받아 적으며 써 내려가기만 하면 된다. 이것이 고민도 없고 미화를 위한 궁싯거림도 없는, 내 안 깊은 곳 감정 우물이 생긴 모양 그대로 토해놓은 나의 글, 나만의 글이다.
글 쓰는 시간을 만드는 사람
이렇게 뜨겁게 내 글을 낳는 경험을 하고 난 사람은, 자식을 낳은 사람이 진한 모성애로 끝없이 자식을 위하고 돌보듯, 글을 쓰고 돌보며 살아가는, 글을 위해 기꺼이 내 시간과 노력을 희생하겠다는 '글바보'가 된다.
이런 '글바보'를 이해할 사람은 세상에 나 하나밖에 없다. 나 자신만큼 내가 글 쓰는 걸 보는 게 즐거운 사람도 관심이 있는 사람도 없다. 내가 글쓰기에 집중하도록 도와주고 싶은 따뜻한 손길도 오직 나만 내밀어 줄 수 있다. 글을 쓸 수 있도록 책상을 만들어 주고, 시간을 만들어 주고, 물이라도 한 잔 가져다 줄 사람도 나 자신 밖에 없다. 물론 글을 안 쓴다고 실망하고 욕할 사람도 나 자신 밖에 없다. 꾸준히 글을 쓰는 사람이 될지 말지는 오직 나의 나에 의한 나만을 위한 선택이고 결정이다.
나는 글을 쓰는 사람이 되기로 했고, 나에게 글을 쓸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 주기로 했다. 가정도 있고 자녀들도 있고 직업도 따로 있는 내가 시간이 남아돌아 글을 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글 쓰는 시간을 하루의 가장 소중한 시간으로 여기고 배정할 수는 있다. 큰 시간을 할애할 수는 없다 해도, 티브이 시청 대신 글쓰기, 혹은 커피 한 잔 하는 동안 글쓰기 정도의 선택은 할 수 있다.
그런 '글바보' 선택을 하고 수년간의 시간과 여분 에너지 모두를 쏟아붓고 살아가는 나는 어느 인기 드라마 주인공처럼 메인 세포가 '작가 세포'가 된 것인지 모른다. 하지만 '작가'라는 호칭은 감히 택하기 어색하고 어렵다. 적어도 대형 공모전에 입상하거나, 베스트셀러 작품을 내서 이름을 알리고 입지를 굳히지 않으면, 직업이 전업 작가가 아니면 자신을 작가라고 불러서는 안 된다고 생각할 사람이 많다. 실제로 많은 작가지망생들이 '작가'라는 이름 앞에서 머뭇거린다. 왜냐하면, 많은 사람들의 머릿속에 작가는 의사 변호사 자격증까진 아니더라도, 자타공인할 만한 무엇을 해야 '받을 자격이 있는 이름'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도 '작가'라는 이름을 선뜻 받아들이기엔 부담스러운 측면이 있는 것이다.
글을 꾸준히 쓰다 보니, 나를 '작가'라고 불러주는 사람들도 늘어간다. 나는 나를 부르는 '작가' 이름에 붙어 따라오는 대단한 지식과 자본력, 명예에 대한 요구를 좀 털어내고자 한다. 그저 '지속적으로 쓰는 사람'이라는 의미 정도를 담아 놓고 싶다. 단, 이 이름에 대한 이미지를 다르게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나를 억지로 '작가'라고 부를 필요는 없다. 인정해 줄 필요도 없고, 인정받으려 애쓸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다. 어차피 생겨먹은 대로 살아갈 수밖에 없고, 나는 나에게 내가 생겨먹은 대로 살아갈 자유를 듬뿍 줄 예정이니 말이다.
나는 나의 길을 걸으며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내가 먹고 싶은 밥을 차려 먹고 내가 가고 싶은 데를 찾아다니듯, 내가 쓰고 싶은 글을 내 속도로 나답게 쓰며 살아가면 되지 않을까? 남다를 바 없이 열심히 먹고살아야 하는 일상 속에서, 글을 쓸 시간을 만들어 내고, 글 쓰는 일을 무엇보다 소중히 여기며, 매일 예배를 드리듯 일정 시간 글을 꾸준히 쓰고 있는 사람, 현재 인생에 글쓰기 책 쓰기가 차지하는 비중이 엄청나게 높은 사람, 그런 사람일 뿐이다 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