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손끝에 글을 잉태하도록

[글쓰기 에세이] 글을 낳고 기르며 살아갑니다

by 하트온

결코 떼놓을 수 없는 읽기와 쓰기의 관계


엔지니어링 연구원에서 커리어를 바꾸고 교육 대학원에서 학위 과정(MATESOL)을 하면서, 읽기 교육, 글쓰기 교육 (Reading & Writing Education)에 관심이 많았던 나는 관련 대학원 수업을 많이 선택해서 들었는데, 어느 교재에 대략 아래와 같은 내용이 적혀있었던 것을 기억한다.


읽기는 누군가 쓴 것을 읽는 것이고, 글쓰기는 읽히기 위해서 쓰는 것으로 읽기와 글쓰기는 따로 뗄 수 없는 한 몸 같은 상관관계를 가진다. 그러한 속성을 생각할 때, 글쓰기와 읽기를 따로 떼어 각각 지도하기보다, 두 가지 교육과정을 함께 접목 연결시키는 통합교육이 가장 효과적...


그전까지 읽기와 쓰기를 따로 떼어 생각하는 학습 방식에 익숙했던 나는, 이 내용을 읽고 새삼 충격을 받았다. 읽기와 쓰기의 그 밀접한 관계에 대해 나는 그제야 충분히 확실히 깨달았던 것이다. 결국은 누가 '쓴' 것을 '읽는다'. 쓰기가 없으면 읽기가 불가능하며, 읽는 사람이 없으면 쓰는 의미가 없다. 독자가 없으면 작가가 존재할 수 없고, 작가가 없으면 독자가 있을 수 없다. 작가와 독자는 '원인과 결과'처럼 결코 떨어질 수 없이 공존하는, 공존해야만 하는 관계다.


이 충격적인 깨달음은, 내가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영어 지도, 글쓰기 지도 방식에 큰 영향을 미쳤고, 내가 글을 쓰는 이유와 방식, 내 '글 세계' 안에서 독자의 의미에도 결정적인 영향이 되었다.



독자, 작가의 손 끝에 글을 잉태하게 하는 사람


작가에겐 독자가 꼭 필요하다. 프로 작가들만 독자 팬덤을 누릴 자격이 있다고 주장할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아마추어 입장이라도 독자 없이 글을 쓸 수 없다. 독자 없이 글을 쓰는 일은 구체적인 대상 없이 연애편지를 쓰는 일만큼이나 막막한 일이다. 독자와 함께 소통하며 글을 쓸 수 있기 위해, 나는 일기장이나 원고지 대신, 브런치 스토리 플랫폼을 선택했다.


내 글이 나에게 내가 낳은 자식 같은 존재라면, 독자는 내 자식 같은 글에 씨앗과 영양분을 제공하는 아버지 같은 존재다. 아버지 없이 자식이 태어날 수 없는 것처럼, 독자 없이 글이 태어날 수 없다. 글의 속성이 '읽히기 위해 쓰인 것'이라는 사실을 생각하면, 내 글을 읽는 독자를 내 글에서 결코 제삼자, 남으로 배제할 수 없다. 작가가 훌륭한 글을 잉태하기 위해서는 훌륭한 독자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아무에게 보여주지 않는 개인 일기장에 기록하는 글이라 해도, 독자가 없는 것은 아니다. '나 자신'이라는 독자 한 사람이 거기에 있다. '나'라는 독자와 비밀리에 개인적인 소통이 그 무엇보다 절실한 상황이라면, '나'만 독자로 둔 일기글에 치중해야 할 수도 있다. 나도 어느 정도 내면이 회복되고, 세상을 보는 나의 관점에 자신감이 생기기 전까지는 10여 년 정도 일기만 썼었다. '나'에게만 공개할 수 있는 글을 써야 했고, '나만' 나를 이해하고 받아주는 '독자'가 될 수 있었던 길고 고독한 터널 같은 시간이었다. 이 과정이 의미가 있으려면, '나 한 사람'이 믿을만한 '훌륭한 독자'로서 우뚝 서야 할 필요가 있다. 언제나 내 글을 읽어 주고, 글에 담긴 마음을 봐주고 알아주고 응원해 주고 믿어주고 일당백으로 든든한 독자 역할을 해 줄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제대로 된 독자가 없는 내 안의 작가는 점점 글을 쓸 힘을 잃고 포기하기에 이를 수밖에 없다.


지금은 내 '글 세계'에 있어 '일인 셀프 독자' 시대는 끝났다. 내 마음이 회복되면서 점점 바깥을 향해 문을 열기 시작했고, 지금은 드넓은 세상을 향해 활짝 열린 내 마음이 보다 다양하고 폭넓은 독자층을 원한다. 이젠 '나'라는 독자에만 만족할 수 없다. 지금 내 글은 나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걸어온 길, 경험을 누군가에게 알리고 전하기 위해, 소통하기 위해 쓰는 의미가 훨씬 더 커졌기 때문이다.


작가에게는 독자가 보여주는 모든 반응 - '하트'든 '좋아요'든 글에 대한 피드백이건, 구독자 신청이건, - 이 모든 것이 작가에게 영감을 불어넣어 '글 생명'을 잉태시키는 활동이고, 다음 글을 이어갈 수 있게 하는 힘의 원천이다. 나는 내 독자들에게서 '글 씨앗'과 '글 기운'을 받아 온 힘 다해 내 글을 낳아 기르며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작가, 독자를 위해 고심해서 글을 낳는 사람


내가 글이랍시고 진부한 표현으로 칠갑된 어딜 가나 흔히 들을 수 있는 말을 낳아 놓는다면, 독자는 나를 결코 기억하지 못하고 스쳐 지나가 결국 잊어버릴 것이다. 독자는 자신의 마음에 날카롭게 파고들어, 내면을 울리는 메시지를 전하는 자신만의 작가를 찾는다. 아무나 마음에 받아들이지 않고, 아무에게나 관심 주지 않는다.


아무리 길에 예쁘고 잘생기고 멋진 사람이 많아도 우리가 그 모두에게 고백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독자도 모든 유명 작가라고 다 관심 작가, 최애 작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서점에 아무리 만인에게 인정받은 베스트셀러 작품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어도 내 마음에 들어오지 않는 책은 내 책, 내 작가가 아니다. 지구상 수억만 명의 사람 중에 내 사람이 고작 몇 명 밖에 없는 것처럼, 수많은 작가가 있고, 그 보다 더 많은 독자가 있지만, 나에게 의미가 되는 내 작가 내 독자는 그중 극소수 일부에 불과하다.


내 사람을 찾아야 하는 청춘들이 내 개성 내 매력을 드러내는 단장을 부지런히 하는 것처럼, 내 독자를 찾기 위해 매일 글을 단장한다. 진부한 표현들을 쳐내고, 한 번 들으면 잊히지 않을 신선한 표현들을 찾아내기 위해 고심한다. 마음에 와닿지 않을 지루하고 고루한 생각들을 솎아 내고, 불쾌감을 줄만한 표현들은 뽑아내고, 좀 더 명확하고 간결하고 재치 있게 표현하기 위해 애쓴다. 뭘 말하려는 거야 모호한 안개들은 걷어내고, 글 속에 생생하고 선명한 그림을 그려 넣기 위해 섬세하게 다듬고 거듭 수정한다.


그리고 숨풍, 글 하나를 낳는다. 독자들이 갓 태어난 '글 아이'를 보러 달려온다. 독자는 갓 태어난 '신생 글'을 가장 먼저 받아 품에 안아 들 자격이 있다. 작가의 글을 사랑한 자체가 글을 잉태시킨 영향력이다. 자신의 영향력의 결과를 보고 감동하고 감격하며 충분히 행복해할 권리가 있다.


내 배 아파 낳은 내 새끼한테 잘하고, 잘 훈육하는 좋은 아버지 역할을 하는 남편을 볼 때와 같은 흐뭇한 심정으로, 독자들이 '갓 태어난 글'을 향해 보이는 반응에 감사하고 기뻐한다. 남편이 신생아실에 달려가 아이를 바라보는 모습을 눈에 새기듯, 독자들이 달려와 시간 들여 글을 읽어주고 남겨주는 '좋아요', 정성껏 남겨주는 피드백을 하나하나 읽고 마음에 새긴다. 이 소통 과정을 통해, 이런 주제, 이런 글이 독자의 마음을 열고 다가가는구나. 이런 이야기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있구나, 독자의 필요와 뜻을 읽고 배운다. 힘들었어도, 그 많은 고심과 노력을 거쳐 '글'을 잘 낳았구나 뿌듯한 마음이 차오른다. '다음 글'을 잉태할 영감이 떠오르고 선순환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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