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에세이] 글을 낳고 기르며 살아갑니다
알을 품는 엄마 오리
어느 일요일, 즐겨 찾는 서점에 가기 위해 다운타운에 나갔다가, 서점 건너편 인도와 차도 사이 큰 화단 위에 오리 한 마리가 꼼짝도 않고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 사람들이 곁에 와서 사진을 찍고, 아이들이 다가와도 오리는 피하려는 기색 없이 꼿꼿이 앉아 있기만 했다. 시간이 지나도 같은 자세로 앉아 있길래, 가까이 가서 보니, 오리는 알을 품고 있는 중이었다. 오리는 사람과 차의 행렬이 끝없이 이어지는 도심 한가운데서, 화분 위가 가장 안전하다 판단하고 거기서 알을 낳아 품기로 한 현명한 엄마 오리였다.
알 속의 새끼 오리가 충분히 성장해 스스로 알을 깨고 나올 때까지 알을 품는 과정이, 아기를 배에 넣고 품는 인간 엄마 못지않은 고행길 같았다. 배에 새끼를 배지 않은 몸이 아무리 가볍다 해도, 새끼가 있는 곳을 떠나지 못하고 계속 머물러 따뜻한 품을 내어주고 지켜야 할 엄마 오리 의무는 사라지지 않는다. 여러 마리 새끼가 다 알을 깨고 나오기를 지켰다가, 모두를 돌보고 야생 속에서 살아남고 살아갈 수 있도록 책임지고 가르쳐야 하는 의무도 오리는 결코 저버리지 않는다.
글을 품는다는 의미
오리가 알을 낳아 품는 것처럼, 글을 쓰고 품는 시간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사실 예전에는 이 '품는 시간'의 가치를 잘 몰랐다. 금방 떠오른 생각을 글로 써서 그날그날 바로 넘겼다. 글뿐만이 아니었다. 누군가에게 하는 말도 떠오른 생각을 바로 내뱉기 일쑤였다. 시간을 두고 내 글과 말을 천천히 거듭 돌아보는 인내심과 차분함을 갖추지 못했었다.
어떤 순간부터, 그렇게 바로바로 내뱉는 글이나 말이 많이 성급하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익지 않은 글이나 말은 익지 않은 과일처럼 타인의 마음에 쓰고 떫은 뒷맛을 남기기 일쑤인 것 같았다. 입장을 바꿔, 내 마음에 불쾌한 뒷맛을 남기는 모든 말이나 행동들도, 거르지 않고 터져 나온 실언이 많다는 것을 보게 되었다.
글을 쓸 때 순간 떠오르는 느낌, 감정, 생각을 표현하고 바로 발행하기보다, 잠시 기다려 보는 시간을 가지기 시작했다. 그랬더니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내가 애초에 생각했던 글이 살아나 변화하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그 변화는 마치 알속 생명체가 성장 변신하는 것과 비슷했다. 시간을 두고 생각할수록 글과 말은 이렇게 저렇게 처음과 다르게 변화해 갔다. 이렇게 속에 품고 고치지 않고 내보냈으면 어쩔 뻔했나, 정말 후회했겠다는 생각이 밀려왔다.
후회를 최소화하고 싶다는 열망이, 충분히 자란 생명체가 스스로 알을 깨고 나올 때까지 글을 품고 있는다. 하루가 지나고 글을 열어보고 손을 본다. 그다음 날도 일어나 글을 열어 손 본다. 글을 열 때, 이제 더 이상 보지 않아도 되겠다, 완성되었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 한, 계속 품고 글이 좀 더 성장하기를 기다린다. 글이 다음 글을 쭉쭉 써 나가고, 글 전체가 자연스럽고 매끄럽게 읽힐 때까지 기다린다.
충분히 품었던 글일수록
충분히 품었다 내 보내는 글일수록 글쓴이 마음이 편하다. 자기 요리를 찾는 고객에게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준비한 요리를 내놓을 때 셰프 마음이 편한 것처럼, 독자들에게 최선을 다한 요리를 대접했다는 마음이 평화를 준다. 그렇다고 내가 독자들 입맛을 모조리 속속들이 정확히 알게 되었다는 뜻은 아니다. 아직 더 배워가야 하고, 내 독자들을 파악하는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다만, 지금의 나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했기에 내 품으로 품을 수 있을 만큼 충분히 품었다 글을 내놓았기에 마음만은 편하다는 뜻이다.
물론 어떤 온도로 얼마나 적절히 오래 품을 수 있는가, 글 품는 시간의 질과 양 또한 작가들마다 다를 거라고 생각한다. 최근 연구 결과에 의하면,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모나리자>를 품고 수정했던 시간은 14-16여 년 정도로 추정된다고 한다. 심히 오래 품었던 작품 예로 괴테가 쓴 <파우스트>도 빼놓을 수 없다. 청년기에 쓰기 시작했던 글을 60년간 품고 다듬어 인생 마지막에 내놓은 작품, 18-19 두 세기에 걸쳐 쓴 작품이 바로 <파우스트>였다. 두 사람, 두 작품 모두 세계를 열광시키는 대예술가, 걸작품으로 이름을 떨쳤다.
내내 품고 정성을 들여 거듭 수정한 작품일수록, 내 삶을 내 마음을 넉넉히 담고 또 계속 추가할수록, 작품이 더 깊어지고 더 묵직한 울림을 지니게 되는 것은 당연한 결과가 아닐까. 글을 써서 내가 계획했던 것보다 조금 더 품고 다듬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그 시간은 정말 가치가 있고 꼭 필요하다. 내 독자들은 그렇게 정성 들인 깊은 맛이 나는 작품을 먹어볼 자격이 있는 사람들이고, 나는 그런 잘 달여낸 진한 작품을 쓸 역량이 있는 작가니까. 내 가능성을 충분히 키워 드러낼 길, '글을 품는 시간'을 나 스스로 만들고 열어줄 수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