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기르는 세 가지 과정

[글쓰기 에세이] 글을 낳고 기르며 살아갑니다

by 하트온

나는 어릴 때 그림을 참 좋아했다. 그림 그리기도, 그림 보기도 다 좋았다. 그림 그리기를 좋아해서, 친구와 만나도 함께 그림 그리며 놀았고, 그림 보기를 좋아해서 어른들, 언니 오빠들에게 그림을 그려달라 요구도 많이 했고, 집에 있던 인상파 화가 전집도 마르고 닳도록 들춰보곤 했다.


조금 커서는 미술학원에 다니기 시작했는데, 미술에 재능이 있다며 예고나 미대 진학을 권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만, 나는 매일 화실에 가서 선생님이 세팅해 놓은 정물이나, 풍경 인물 사진을 보고 그림을 그리는 시간이 마냥 좋았다. 그림 하나를 완성하기 위해 몰입하는 그 시간에서 나는 인생 최초로 '행복감'을 발견했던 것 같다.


나의 그림 그리기는 중고등 학교에 진학하면서 자연스럽게 글쓰기로 이어졌다. 내가 '글쓰기'를 한다고 자각하며 글을 쓴 건 아니었지만, 늘 친구 누군가와 편지를 주고받았다. 그 편지 쓰기 행위는 끊임없는 스케치와 색칠, 다듬기 작업, 글쓰기 습작이었으며, 내 마음을 전할 편지 한 통을 완성하는 데 몰입하는 그 시간은 맑은 눈 제정신으로 살아가기 힘들었던 최루탄 연기 자욱한 고등학교 생활 속에서 내 마음에 조금이나마 약 발라 주는 힐링이었다.


이후 교육학 대학원에서 '읽기 교육'을 공부하다가, 취학 전 아동의 그림 그리기가 이후 글쓰기 능력으로 연결된다는 내용을 접하고 깜짝 놀란 적이 있다.


사실 글쓰기는 그림 그리기와 너무나 많은 면에서 공통점이 있다. 둘 다 처음에 표현하고 싶은 것을 대충 그려 전체적인 구도를 잡아주어야 하고 (스케치), 기본 스케치를 바탕으로 디테일을 채워 넣어 완성해야 한다 (색칠하기). 그런 후에 자신의 작품을 멀리서 보았다 가까이서 보았다 관점을 달리해가며 꼼꼼히 관찰하며 완성도를 높이는 작업 (보정하고 다듬기)까지 정성껏 해 주어야 좋은 작품이 탄생한다. 이 세 가지 과정을 글쓰기에 대입하여 좀 더 자세히 설명해 보겠다.



스케치


그림을 시작하기 위해 가장 먼저 시작해야 하는 일이 전체 구도를 잡는 기본 스케치인 것처럼, 글도 기본 스케치가 필요한데, 이 '글 스케치'를 글쓰기 전문 용어로 '초안작성'이라고 한다. 세계적인 인기과 성공을 누리는 미국 호러물 작가 스티븐 킹이 말했듯이,

첫 번째 초안은 항상 쓰레기다.


아무리 유명 작가가 쓴 초안이라 해도, 초안은 너무 엉망진창 부족한 점이 많아 결코 그대로 작품이라 부를 수 없다.


그럼에도 나는 이 초안 쓰기가 결정하는 것들이 있고, 재능 있는 작가는 보다 괜찮은 초안을 쓸 거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거칠고 대충 하는 스케치라도, 잘 될 그림 스케치는 구도가 뛰어난 것처럼, 글도 잘 될 글의 초안은 문장 문법이나 어휘 수준이 엉망일지언정, 전체적인 디자인이 균형감과 통일성과 변화를 조화롭게 갖추고 매끄러운 기승전결 흐름이 잘 정리되어 있다.


디자인이 잘된 집이, 살면 살수록 편리하고 쾌적한 것처럼, 디자인이 잘된 글은, 쓰면 쓸수록 문장을 수정하고 필요한 곳에 살을 채워 나가는 과정에서 그림이 점점 아름답게 살아나는 걸 느끼며 작가 자신이 느끼는 보람과 재미가 어마어마하게 커진다. 이 글 쓰는 즐거움이 커야 끝없이 글을 계속 공들여 손보도록 끌고 갈 수 있다. 반면, 디자인이 잘못된 경우, 살을 붙여 가며 글의 본모습이 선명해질수록 글이 지루해지고, 글을 이어가야 할 작가 자신이 의욕을 잃고 도저히 졸려서 쓸 수 없는 지경이 되어, 글을 중도 포기할 수밖에 없게 된다. 그동안 노력한 게 아까워도, 처음부터 스케치가 잘못된 글은 과감히 포기하고, 새로 시작하는 게 낫다는 생각이다.



색칠하기


기본 스케치를 바탕으로 전체적으로 색을 꼼꼼하게 칠하는 과정은, 글쓰기에 있어 초고를 재정리하며 빈틈이나 군살이 없도록 살을 적절히 붙일 데 붙이고 줄일 데 줄이며 글을 완성해 가는 과정에 해당한다.


그림도 스케치를 하고, 시간이 좀 흐를 때까지 덮어 두었다가, 거듭 객관적인 눈으로 그 스케치를 다시 보고 계속 그려갈 가치가 있는 스케치인지 판단해야 시간 낭비를 하지 않는 것처럼, 글도 초고를 쓰고, 충분한 시간 동안 덮어 두었다가, 다시 객관적인 시선을 회복하고 자신의 초고를 거듭 보는 시간을 가지며 이 초안을 고쳐갈 가치가 있는지 판단을 제대로 해야 한다. 포기할 건 과감히 포기하고, 계속 그려나갈 건 계속 온 힘 다해 그려나가야 한다.


그만큼 아무리 짧은 글이라 해도, 글 한 편을 하루 만에 완성하기는 어렵다. 나의 경우, 초고를 쓰고 며칠을 서랍에 넣어 두고 잊어버렸다가, 다시 읽어보았을 때, 버려야 했던 소설 시작 부분만 100편이 넘는다. 나는 한 번의 스케치로 구도를 훌륭하게 잘 잡을 수 있는 천재 작가도 아니고, 글쓰기에 모든 시간을 '올인' 할 수 있는 전업 작가도 아니다. 게다가 진득하게 한 작품을 위해 몇 시간이고 몰입해서 작업하기엔 체력도 약한 편이고, 뇌용량도 한꺼번에 많은 작업을 감당할 수 없는 저용량 소프트웨어인 듯하다.


그런 시간적 재능적 신체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나는 영감이 떠오를 때마다 크로키하듯 빠르게 대충 그리는 글 스케치를 자주 한다. 영감이 많이 떠오르는 날엔 하루에 10분짜리 스케치를 3-4개 정도까지 할 때도 있고, 전혀 뇌가 작동하지 않는 날에도, 매일 아침 1000 단어 쓰기를 했다는 <화씨 451> 작가 레이 브레드베리 작가가 제안한 대로 '창의력을 깨우는 자유로운 글쓰기' 연습으로 몇 문장이라도 끄적여 두려는 편이다.


덕분에 독자에게 보여주지 않는 '서랍 글'이 엄청 많은데, 시간이 날 때마다, 서랍을 열고 그중에 끌리는 크로키 하나를 꺼내 자체 검열 시간을 가진다. 스케치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쓰레기통 버튼을 눌러 처리해 버린다. 스케치가 마음에 들면, 이 위에 색을 제대로 입히는 '글 작업'을 시작한다. 초안 글 사이사이 빈틈을 메우고, 진부한 표현이나 반복이 보이면 과감히 지우고 다시 써 가며, 되도록 생생하고 신선한 표현이 되도록 색을 열심히 칠해 나간다.


앞서도 말했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한 작업을 몇 시간씩 오래 붙들고 있을 수 없으므로, 어느 정도에서 멈출 수밖에 없다. 작품 하나에 올인해서 진득한 작업을 할 수 없는 나의 한계를 극복하는 방법으로, 한 번에 여러 개의 글을 진행시키는 '트릭'을 만들었다. 여러 가지 일을 벌여놓고, 돌아가면서 조금씩 하는 방식인데, 그림 그리는 화가의 작업 스타일에 비유하자면, 여러 그림을 스케치해 두고, 한꺼번에 그 스케치들을 화실 공간 여기저기에 다 펼쳐 놓고 한 그림 그리다 피로해지면 다른 그림으로 옮겨 다니는 방식으로 그리며, 여전히 작업은 계속하지만 자주 새로운 일로 바꿔주는 것이 휴식과 환기가 되게 하는 것이다.


한 가지 글에 집중하다가 뇌가 느끼는 피로감이 커져 '글 작업'을 멈추는 경우, 전혀 다른 크로키를 열어 작업한다. 마찬가지로 최대한 객관적인 시선으로 자체 검열 시간을 가지고, 버릴지 말지를 결정한 후, 글을 이어가기로 결정한 작품에 필요한 곳 손 보고 작업이 길어져 또 피로해지면 다시 넣어두고 다른 크로키를 꺼내고,... 나의 글쓰기는 이런 과정의 연속이다. 체력이 약하고 뇌에 피로감을 빨리 느끼는 편이라면 이런 방식의 글작업을 추천한다. 이런 방식으로 나는 평균 일주일에 3-5 편의 글을 완성해서 발행할 수 있다.


독서도 이런 방식으로 여러 책을 여기저기 펼쳐 놓고 한 책을 읽다가 피로해지면, 다른 책을 읽는 것이 기분 전환 휴식이 되게 하여 긴 시간 책을 읽을 수 있는 병렬 독서를 하는 편이다.



보정하고 다듬기


대화가들이 그림을 다 완성해 놓고, 대중 앞에 발표하기 전까지 엄청나게 정성스러운 보정작업을 거치는 것처럼, 대작가일수록 글을 다 쓰고 수정작업에 엄청난 시간을 할애한다고 한다. <위대한 개츠비>를 쓴 스콧 피츠제럴드 작가가,

쓰는 것은 10%의 영감과 90%의 노동이다.

라고 말했을 정도로, 좋은 글의 완성은 엄청난 노력, 노동을 필요로 한다.


수정 작업이란 자신만의 독특한 목소리와 스타일을 찾는 시간이라고도 할 수 있다.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가 이런 말을 했다.

우수한 작가는 다른 모든 사람과 같은 생각을 하지만 다르게 말한다.


초안이 남들과 별다른 점이 없는 보편적인 생각을 나열한 글에 불과하다면, 수정작업은 그 평범하고 진부한 생각들을 "남다른" 표현으로 바꾸어, 내 생각을 독특하게 만드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수정작업에 엄청난 공을 들여 진부한 글과 "다르게"만든 작가의 글은 그 작가다운 독특한 느낌, 남다른 시선과 사상 철학만이 흘러나오는 전무후무한 작품이 된다. 이는 마치 똑같은 다야몬드 원석을 들고 작업을 시작해도, 세계 최고 품질의 다야몬드 반지를 완성해 내는 장인은 전 세계에 몇 명 되지 않는 이치와 비슷하다. 대작가라 불리는 사람들은 남다른 '글 노동'의 질(필력)과 양(끈기)을 보유하고 있는 '글 장인'이다.


그림과 글이 모두, 탄탄한 스케치와 꼼꼼한 색칠, 장인정신 투철한 보정 과정을 거쳐야 좋은 작품을 낼 수 있는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드는 일이다. 이 전 과정에 즐거움을 도무지 느낄 수 없다면 작가 생활을 오래 할 수 없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는 글쓰기에 조급한 마음이 들 때가 많아, 초안 스케치를 좀 더 여유를 두고 관찰하는 인내심과, 아닌 글을 포기하는 과감함이 좀 부족한 편이다. 그래서 아닌 스케치를 그대로 이어가 열심히 색칠하고 보정하다 지쳐 여기서 멈춤이 발생하고, '글럼프'에 빠져드는 경우가 종종 있다. 거듭 스케치를 해도 마음에 드는 스케치가 나오지 않아 지쳐 허탈해하는 날들도 많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는 것은, 잘 빠진 스케치에 색칠을 꼼꼼히 해서 마지막 보정작업 마무리까지 한 내 글을 보는,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재미와 '가슴이 웅장해지는' 감격을 이미 맛보았기 때문이다. 내가 쓰고 충분히 만족스러운 그 감격과 기쁨, 한 번 경험했던 카타르시스의 경지에 또 가고자 내 온몸과 마음이 도전을 멈추지 않는다.


참고로, 글쓰기 세 과정을 다 마친 후에, 결코 들어서지 말아야 하는 과정이 하나 있다. 바로 그 비난받아 마땅한 과정, 반드시 금지 구역으로 정해야 하는 과정은 바로바로 '남의 작품과 비교하기'다. 이 비교하기 과정으로 나가버리면, 내 글에 훌륭한 색칠에 보정까지 잘해놓고도 자신의 작품이 싫어지고, 어떤 글도 시작할 수 없는 거대한 '글 수렁'에 빠지게 될 위험이 있다.


개인적으로, 나는 이 금단 구역에 잘못 발을 디딘 어리석은 한 걸음 때문에, 내 글을 도무지 계속 이어갈 수 없어 글을 쓰고 쓰레기통에 버리기만 했던 수년간 지속되었던 극심한 '글 우울'의 시간을 보낸 적이 있었다. 이 글 우울에서 깨끗이 빠져나오기 위해 남이 쓴 글을 하나도 읽지 않는 시간을 또 수년 보내야만 했었다.


'비교'는 내 안의 여린 작가를 좌절시킬 수 있는 매우 위험한 행동이다. 이건 엄마가 자식을 낳아 놓고 끝없이 옆집 엄친아들과 비교하며 자녀를 고통스럽게 하는 행동과 다를 바 없다. 이 몹쓸 '비교'만 확실히 피하고, 위의 세 과정, 스케치, 색칠하기, 보정하고 다듬기를 부지런히 즐겁게 반복할 수 있다면, 이는 글을 숨풍숨풍 낳고 건강하게 잘 키울 수 있는 '글 다산드라', 실한 '글 열매'를 주렁주렁 맺는 훌륭한 글의 어머니 '작가'로 성장해 가는 길을 열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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