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에세이] 글을 낳고 기르며 살아갑니다
톨스토이가 진정성을 말하다
예술에 대한 톨스토이의 견해를 보여주는 1898년 논문 <예술이란 무엇인가 (What is Art?)>에서 그는 작품이 작가의 진짜 개인적 감정을 표현하는 일, 즉 진정성 있는 글을 쓰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 강한 의견을 주장한다.
예술 작품이 이해하기 쉬울수록, 그 작품은 더 개인적이며, 더 사적이며, 더 따뜻하며, 더 진정성이 있다. (The higher a work of art ranks in this scale of comprehension, the more individual, the more personal, the warmer, the more sincere, it is.)
톨스토이는 이해하기 쉬운 작품이 좋은 작품이라 여겼다. 평생 진정한 예술의 본질과 역할이 무엇일까를 고민했던 톨스토이는, '누구에게나 이해되고 다가가기 쉬운 예술'이 좋은 예술이며, 예술이 하는 역할 자체가 '서로 감정을 나누고 인간이 화합하게 돕는 도구'라고 결론 내렸다. 논문에서 그는 부자 귀족들의 타락한 구미와 요구에 맞추어 돈이 되는 작품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예술자체가 타락하고 변질되어 사회에 사람에게 하등 이롭지 않은 '감정을 조작하는 가짜 예술'이 판을 치고 있다는 비평도 서슴지 않는다.
그런 만큼, 톨스토이는 예술가에게 가장 중요한 자질 중 하나로, 자신만의 독창적인 감정을 가질 것과, 그 감정을 표현하고 나누고 공감받고 공감하고 싶다는 내적인 욕구를 가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예술은 한 사람이 다른 사람(들)과 같은 감정을 공유하고자 할 때, 그 감정을 밖으로 조금씩 표현하기 시작할 때 시작된다. (Art begins when one person, with the object of joining another or others to himself in one and the same feeling, expresses that feeling by certain external indications).
그러한 점에서, 톨스토이는 동시대 프랑스 작가 빅토르 위고, 영국 작가 찰스 디킨스, 러시아 작가 도스토예프스키 세 작가를 작가 자신의 독창적인 진짜 감정을 성실하게 나누며 ”사람들 간의 화합“과 ”인간들 간의 형제애“를 도모한 가장 모범적인 현대 예술가로 꼽고 매우 긍정적인 평가를 하고 있다:
특히 톨스토이는 <레미제라블>을 집필한 빅토르 위고를 가장 위대한 작가로 평가했는데, 그 시대 다른 프랑스 작가들이 예술이랍시고 내놓는 아름답기만 한 '가짜 예술'과 비교했을 때, 위고야 말고 억압받고 고통받고 억울하게 죽음 당하는 이들의 고통에 뜨거운 '진짜' 감정을 가진 진정성 있는 작가라는 점을 높이 샀다. 또한 톨스토이 자신이 인생 중년기에 자신에게 ”엄청난" 영향을 준 유일한 소설, '진짜' 감정을 공유하고 위로받을 수 있었던 작품으로 <레미제라블> 소설을 귀하게 여기고 있었다. 톨스토이가 <레미제라블>로 위로받던 때가, <전쟁과 평화>와 <안나 카레니나>를 집필하고 있던 시기였다는 걸 생각할 때, 톨스토이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이 두 작품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작가 작품으로 빅토르 위고의 <레미제라블>을 간과해선 안될 것이다.
진정성이 있다는 의미
공대에 처음 입학해서, 모두가 공학 공부의 어려움을 절감하면서 서로에게 물었던 질문들을 기억한다. "쉽게 사는 길도 많은데 너는 왜 힘들게 이 어려운 공부를 하니?" "왜 공학을 선택했어?" 미국에서 박사과정을 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왜 이렇게까지 어려운 걸 공부해야 할까? 이게 과연 나중에 쓸모가 있을까?""왜 주말에도 우리는 이러고 있어야 할까?" 어쩌면 이 질문을 했던 우리들 모두 내 안의 '공부하는 이유'를 찾기 힘들어, 타인의 '공부 의도'를 끝없이 확인하려 했었던 건지 모른다.
나중에 큰 집 사고 벤츠 몰고 다니려고 다 이 어려운 학문 학위 과정 자진해서 하는 거 아냐? 솔직히 말해 다들 바라는 거 그런 거 아냐?
역시 자본주의 물질주의 나라답게 미국 친구들은 별 고민도 없이 이렇게 당당히 대답했다. 하지만 그 대답을 듣던 순간, 나는 무척 슬퍼졌다. 그 늦은 오후 시간 그 연구실에 내려앉던 어두운 그림자 같은 회색 공기가 내 마음에 매캐한 연기처럼 스며들어와 나를 숨쉬기 힘들게 했다.
그 순간 내가 슬퍼졌던 이유는, 미국 친구들의 속물근성을 확인해서도 아니었고, 많은 사람이 그렇고 그런 목적으로 살아간다는 사실에 실망한 것도 아니었다. 한국에서는 '신소재 신기술 개발로 국가 경제를 일으켜야' 한다는 어느 대통령의 호소가 불러일으킨 '애국심'이라도 있었는데, 미국으로 이주해서 공부하고 일하던 나에게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원하는 집과 차를 마련하는 수단으로 공부하겠다는 현실적인 목표조차도 전혀 수긍할 수 없을 만큼, 공학 연구에 대한 내 감정은 텅텅 비어 있었다.
대학 때도 대학원 때도, 왜 공부하냐는 질문에 내가 속시원히 남에게도 나에게도 대답해 줄 수 없었던 것은, 내 안에 그 일에 대한 진정성이 결여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고 이제는 말할 수 있다.
공대 입학을 같이 했던 동기 중에, 1년 반쯤 대학을 같이 다니다가, 갑작스럽게 그만두고 6개월 재수해서 의대에 들어간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는 떠나기 전에 친하게 지내던 동기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내 동생이 뇌종양 판정을 받았어. 나는 의학 공부를 열심히 해서 내 착한 여동생을 꼭 살릴 거야. 그리고 앞으로 내 동생 같은 아이들을 살려주는데 내 일생을 바칠 거야.
그 친구의 마지막 말이 내 마음에 오래오래 남았다. 나는 오래도록 이 친구의 결정에 대해 생각했었다. 그때 그 친구의 결정이 무슨 의미였는지 나는 한참 후에 깨닫기 시작했다. 동생이 받은 뇌종양 판정, 그 개인적인 일이 그에게 불러일으킨 사적인 감정이 의학을 그의 사명으로 만들었다는 것. 그가 느끼는 그 사명감이 곧 의학 공부에 대한 그의 진정성, 진짜 마음이었음을 깨닫기에 이르렀다. 자기 일에 마음이 함께 하고 있는 사람은, 자신이 왜 공부하는지, 왜 그 길을 선택했는지 고민하지 않는다는 것도 깨달았다. 진심은 사람을 열정적으로 행동하게 할 뿐, 의구심을 가지고 머뭇거리며 남은 뭘 하는지 왜 하는지 살피게 하지 않는다.
내 삶은 내내 남들 눈에 '번듯하게' 보이기 위해 '번듯한' 곳에 지원하고 합격하는 과정에 익숙했고, 그런 이름값이 대단한 '명문'만 찾아다녔고, 덕분에 '진심 없이' 시작한 일이 산으로 가는 경험을 수없이 하였다. 가짜 마음 가지곤 진짜 열매를 맺을 수 없었고, 늘 실패감에 시달려야 했다.
나는 이 모든 경험을 통해, 각 사람의 내면 깊숙한 우물에 고여있는 진짜 감정, 그 원천 원동력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되었다. 이후 아무도 가르쳐 준 적 없는, 유년 시절 내내 억눌리기만 했던 내 안의 '진심'을 찾아다니는데, 나의 길을 찾아 걸어가는 일에 수십 년의 시간을 할애해야 했다. 나는 이 지난 과정이 결코 시간 낭비가 아닌 가치 있는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마침내 내 안의 '감정 우물'을 찾아냈기 때문이다.
내가 깨닫게 된 일에 대한 사명감, 진정성이라는 건 그리 거창한 것이 아니다. 마침내 자신이 원했던 대로 훌륭한 의사가 된 그 친구의 초심이 향하던 곳, '내 동생을 살리고 동생과 같은 아픈 아이들을 살리고 싶은 감정' 그것이 그의 '지극히 개인적이고 사적이고 따뜻한 진정한 감정'이자, 제대로 원하는 일을 해 내는데 꼭 필요한 진정성이었다. 그 진정성이야 말로 인간이 평생에 걸쳐 찾아내야만 하는 일생일대의 사명이었다.
내가 마침내 발견한 진짜 내 감정은 내 안의 내면 아이를 이해하고 돕고자 하는 길에 고여 있었고, 나 같은 결핍과 왜곡된 가치 혼돈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돕고 싶어 하는 마음으로 불어나 있었다. 내 안의 감정이 그 일을 이루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도구로 '글쓰기'를 지목했다. 내 안의 뜨거운 감정이 내 손에 펜을 쥐어주고 뜨거운 글을 흘러나오게 이끌기 시작했다.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오랫동안 아무 보상이 없다 해도 이 '글쓰기'라는 도구를 내려놓지 않고 계속 글을 써 나가게 만들었다.
내 안의 강한 감정이 결정한 일은 반드시 이루어지며, 이 강한 감정만이 어떤 힘든 과정도 뚫고 나아갈 수 있다는 걸 점점 분명하게 깨달아 가고 있다. 이 진짜 감정을 만나지 못했더라면 나는 결코 글쓰기를 할 수 없었을 거라 생각한다. 타인과 감정을 교감하고 공감하는 예술의 본질 글쓰기를 추구한다면, 반드시 내 안의 '진짜 감정', '진정성'부터 찾아야 한다. 그 '사적인' 감정을 담아야 내 글이 제 역할을 다 하는 의미 있는 진짜 예술로 타인에게 다가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