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민하다는 말에 대해서

[에세이] 예민한 행복

by 하트온

예민하다는 말...



저는 사실 예민하다는 말을 쓰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이 말은 저에게 정확하지 않은 둔탁하고 두리뭉실한 말로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넌 피부가 안 좋아' 같은 말이 주는 느낌이에요. 피부란 게 속병이 피부 발진으로 올라오는 경우가 많아서, 정말 그 이유를 캐보면 알레르기부터 대상포진까지 피부 질환의 종류와 이유가 무궁무진할 텐데, 그런 원인들을 다 무시하고, '안 좋은 피부' 이 말 하나로 다 뭉뚱그리는 게 저는 참 배려 없고 가혹한 언어적 사고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그리곤 아무 책임이 없습니다. 그냥 안 좋은 건 안 좋은 거지, 그 말을 더 이상 따지고 들 이유가 없다고 생각들 하죠. 더 자세한 이유를 따져 들고 설명하려 드는 사람이 쓸데없이 '예민한' 사람이 되고 맙니다.


예민하다는 말도 그래요. 예민하다는 건, 외부 자극에 민감하다는 건데, 외부 자극에 민감해지는 이유는, 살면서 겪어 본 것만도 수 십 가지 종류가 있고,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상황과 체질과 이유를 생각하면, 그 모든 것에 대해 예민하다는 표현 하나만 존재한다는 것은 말 그대로 말이 안 됩니다.


하지만, 우리 감각을 민감하게 만드는, 혹은 민감해야만 하는 각각의 다양한 원인과 상황에 대해선 아무도 크게 관심을 두지 않는 것 같아요. 아까의 피부병 예처럼, 예민한 성격은 그냥 까칠하고 안 좋은 성격인 거지, 더 따질만한 주제가 아니라고 문화 전체가 간주해 버리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어쨌거나, 문화가 이 부분에 대해 아직 세밀한 관심을 두지 않는 이유로, 저에게 주어진 단어는 '예민하다' 뿐이기에, 울며 겨자 먹기로 저도 이 글에서 이 단어를 사용할 수밖에 없어요. 어느 정도는 보편적 언어문화를 따라야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글이 될 테니까요.



예민한 사람의 감정 에너지


저는 저만의 복잡 다양한 이유로, 예민한 성정을 항상 동반하고 살아온 편인 것 같습니다. 어릴 땐 몸이 너무 약해서 그랬고, 사춘기엔 사춘기라서, 20대엔 사람들 시선에 말에 쉽게 휘청대는 약하디 약한 멘털이었던 것 같고요. 30대엔 산후 우울증이 저를 힘들게 했고, 그나마 40대가 되어 좀 느긋한 아줌마 강심장의 혜택을 받나 싶었더니, 그것도 잠시, 갱년기 초읽기 호르몬 분비가 시작되는지, 어릴 때 느꼈던 익숙한 감정의 예리하고 비릿한 맛이 물밀듯 밀려오네요.


저의 예민함의 모습은 주로 '긴장'의 형태로 옵니다. 쉽게 '긴장'하는 이 느낌은, 마치 내 정서를 안정적으로 유지시키는 엔진 연료가 떨어지고 있다는 신호처럼 느껴집니다. 빨간 불이 들어오고, 삐뽀삐뽀 내 안에 비상사태가 벌어진 상황 같아요. 위험한 상태입니다. 무언가를 해야 해요. 도움이 필요합니다. 이대로 가면 감정이 힘들어집니다.


이럴 때 내가 나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 건지 누가 어릴 때부터 잘 설명해 주고 가르쳐 주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가르침을 받을 수 있는 곳이 없었기에, 혼자서 깨지고 부딪쳐 가며, 수없이 울고 화내고 후회할 행동을 하는 실수 연발의 경험 속에서 스스로를 관찰하고 실험하며 배워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오랜 시간 스스로를 들여다보는 과정에서 저는 이런 의문을 품게 되었습니다. 예민하다는 건, 감정에너지 배터리 용량이 상대적으로 적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배터리 용량이 적다고 나쁜 배터리라고 스스로를 남과 비교 비하하고 속상해할 일이 아니라, 에너지를 과도하게 뺏기지 않을 방법 충전을 자주 할 방도를 찾고, 비상시를 위한 보조 배터리를 준비해야 할 일이 아닐까.


사람이 많은 곳에 가면 에너지 소모가 더 크게 일어나고, 방전의 위험이 더 커지는 것 같아요. 너무 많은 사람들의 시선, 소음, 번쩍거리는 불빛과, 빵빵거리는 화난 자동차, 예상치 못하게 일어나는 다양한 놀랄 일들... 너무 많고 과하고 다채로운 것들이 저를 자극하는 만큼, 저는 감정적으로 더 빨리 지치고, 힘들어집니다. 특히, 누군가를 돌봐야 하는 입장에 있게 되면 방전 속도가 훨씬 더 빨라집니다.


나 말고 다른 사람들은 다 즐겁고 멀쩡하고 편안해 보이는데 나만 왜 이럴까, 내가 모종의 정서적 장애를 앓고 있는 것은 아닐까 자꾸 스스로를 의심했습니다. 하지만 열심히 성실하게 잘 버티며 살아온 저 자신을 함부로 무시하고 비하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핑곗거리를 만드는 느낌의 무책임한 병명을 갖다 붙이기도 싫었습니다. 내가 어떤 모습이어도 어떤 장애를 안고 있다 해도, 방법을 찾아내고야 말겠다고 결심했습니다. 반드시 내가 행복하게 살아갈 방도를 찾아내겠노라고 스스로에게 약속했어요.



나의 특별한 예민함을 연구하기


저의 감정 상태를 관찰하면서 그 이유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니, 저는 누군가를 돌봐야 하는 입장에 있을 때, 저 자신을 제대로 돌보지 않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특히 부모님이나 자녀와 있을 때 말이지요. 다르게 말하자면, 저는 부모 자식 앞에서 희생하는 버릇, 과도하게 착해지려고 하는 나쁜 습관이 있는 것입니다.


나 자신이 불편해도 목이 마르고 배가 고파도 나를 돌보지 않고 내가 불편함을 감수하려고 합니다. 내가 당해주고 양보하고 말자는 심리상태가 됩니다. 결국 제가 설정한 그 '착한 모드'는 저의 감정을 쉼 없이 갉아먹고, 순식간에 지쳐 버리게 만듭니다. 제 감정은 물기란 물기는 모조리 말려버리는 태양이 쨍쨍 열기가 이글이글한 사막, 그 사막을 짐을 이고 지고 꾹 참고 걸어가는 낙타 같은 상태가 되어버리고 맙니다. 짐을 내려놓고 도망가고 싶지만, 물 한 모금이라도 마셨으면 싶지만, 그냥 꾹 참는 것 말곤 달리 방법이 없는 상태에 놓이게 됩니다.


저의 감정상태가 사막화되면 사실 주변 사람 누구에게도 좋은 일이 되지 않습니다. 제가 힘든 것 같으니까 상대도 불편해지고 눈치를 보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내가 착한 건- 나를 잘 돌보지 않고 상대에게 하나라도 더 해주자고 희생을 뒤집어쓰고 보려는 태도인 건- 나에게도 가족에게도 좋지 않다고 결론을 내렸어요. 그것은 진심으로 상대를 위하는 것이 아닌, 모종의 자기만족을 위한 과한 욕심이라는 것을 인정하기에 이르렀어요. 조금 더 나를 챙기고, 나부터 돌볼 줄 아는 사람이 되자 결심을 하고 저를 돕기 시작했어요. 저의 저용량 배터리를 잘 살펴보고 관리하기 시작했어요.


그런 노력 끝에, 저는 여러 사람과 함께 어울리거나, 집 밖에서 오래 머무는 상황에서, 가족을 돌보는 상황에서, 저의 감정에너지를 지키고 재충전하는 방법을 몇 가지 찾아냈어요. 제가 찾은 예민하지만 행복하게 사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들을 모아보았습니다. 마음이 시원해지는 즐거운 이야기로 다가갔으면 좋겠습니다.




대문 이미지 출처: Pixabay (by johnha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