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예민한 행복
예민한 무엇
첫 번째 수식어는 정해졌어요. 우리의 삶은 '예민한' 무엇이 확실합니다. '건조한' 피부라는 걸 일단 받아들이고 건강한 피부관리를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처럼, 나의 성정 앞에 '예민한'이라는 수식어가 들어가는 것을 일단은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저는 이것을 받아들이지 않고 너무 오래 버텼습니다. 스스로와 남을 속이는 일에 너무나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썼어요. 털털하고 부담 없이 보이려고 옷차림과 장신구까지 섬세함과는 거리가 먼 내 취향을 속이는 선택을 해왔습니다. 내가 여성인 것에 수치심을 느끼는 왜곡된 성역할 정체성이 함께 작용하여, '남자답게' 보이려는 노력을 오래 했어요. 물론 이런 헛수고의 결과는 정서적 고통과 혼란을 불러왔을 뿐입니다.
오랜 방황 끝에, 저는 저 자신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하였습니다. 드디어 그럴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한 것입니다.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대로 보는 것. 진실한 태도, 진실한 시선을 지키고 살아가는 것이 가장 속 편하고 떳떳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물론 아직 포장하고 척하는 태도의 습관이 조금은 남아 있어, 때때로 가식을 부리는 실수를 할 때가 있습니다만, 전보다는 훨씬 진실된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있는 그대로의 나에 대해 많이 편안해졌습니다.
예민한 게 좋다
나 그대로의 모습에 대해 조금 편안해졌다고 해서 일이 끝난 것이 아닙니다. 지금까지 나를 지배하던 자신을 비하하고 수치스러워하는 사고는 아직 그대로 남아, 다시 전복할 기회를 노리고 있습니다. 그것들과 싸워야 합니다. 이 싸움은 누가 더 파워풀한 스토리로 자신을 설득시키는가 하는 스토리 싸움이에요.
내가 써야 할 스토리는, 나의 성정을 긍정적으로 그리는 일입니다. '예민한'나의 성정에 더 긍정적인 의미를 부여해야만 합니다. 그 작업을 위해, 나의 예민한 성정이 만들어 가는 장점들을 샅샅이 파헤쳐 찾아내야 합니다. 나는 감수성이 뛰어나서 예술 작품에 깃든 감정과 정신을 잘 이해할 수도 있고, 보다 섬세한 감정을 잘 표현할 수도 있어. 세상을 관찰하고 글로 그려나가는 일에 있어서도 나의 예민하고 섬세한 성정은 큰 도움이 된다구. 자극을 힘들어하는 만큼, 타인에게 부정적인 감정을 일으키는 자극을 주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배려해. 세계 평화를 우리만큼 원하는 족속은 없을 걸. 인간관계가 부드럽고 평화롭게 이어지도록 최선을 다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바로 우리잖아. 감각이 발달해서 남이 못 보고 못 알아채는 것을 발견해 공헌을 하는 일도 많지. 뛰어난 음악가들은 귀가 예민한 사람들이고, 뛰어난 작가들은 언어에 예민한 사람들이야.
나를, 내 성향을 좋게 해석해 주는 일을 해 줄 사람은 따로 없습니다. 나 자신밖에 없어요.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이야기를 잘 듣고 쉽게 믿습니다. 하지만 남이 해 주는 이야기를 듣고 믿는 것 만으로는 우리의 한계를 극복하고 나아가는데 한계가 있습니다. 지금까지 해 본 적이 없는 일, 나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일, 새로운 나를 만들어 가는 일, 나아가 삶을 바꾸고 세상을 향한 나의 태도를 바꾸는 일, 타인을 향한 시선까지 바꾸어 타인과의 관계를 사랑으로 끌어올리는 일을 해 내기 위해 해 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내가 나를 위한 새로운 이야기를 쓰는 일부터 시작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나의 모든 경험과 시련, 나의 특징과 성향,... 이 모든 나를 이루는 것들과 나와 관련된 것들을 함부로 대하면 안 될 소중한 것으로 여기고, 멋지고 아름다운 의미를 부여해 주는 일, 긍정적인 이야기로 해석해 내는 일. 이것이야말로, 이 세상에 태어난 나의 삶에 대한 내가 이루어야 할 진정한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이 일을 제대로 잘 해낸 후에 따라오는 큰 보상이 있습니다. 나의 어떤 경험, 어떤 면에 대해서도 귀한 의미를 부여하고, 좋게 해석하는 사고 습관이 잡힌 사람은 그 역량의 확장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 따뜻하게 돌보는 시선은, 자신의 주변 사람들과, 자신이 속한 작은 세상을 넘어 널리 널리 뻗어갑니다. 무엇을 보아도 누굴 만나도 위대한 사랑의 이야기로 완성해 낼 수 있는 사람, 사랑의 선순환을 기꺼이 시작하는 사람, 바로 사랑의 능력이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 됩니다.
진짜 중요한 건
중요한 건 '예민한' 그다음에 오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스스로를 '예민한 유리' 정도로 생각한다면, 나 자신은 조금만 자극을 받아도 와장창 깨져버리는 유리 멘털로 살아갈 수밖에 없게 됩니다. 내가 그렇게 이야기를 정하고, 그렇게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나의 능력이 '예민한 최첨단 신소재' 정도라고 이야기를 다르게 써 보면 어떨까요? 예민한 감각으로 실내 공기와 실외 공기의 차이, 기온과 체온 차이를 잘 감지하여 온도를 스스로 조정하는 능력이 있으며, 삶을 편리하게 하는 특징을 다 갖춘 내구성 탁월한 신소재. 저는 이왕 '예민'을 달고 살아가는 운명이라면, 센서 기능이 뛰어난 초강력 초첨단 신재료가 되겠습니다. 결코 나를 잘 깨지고 잘 무너지는 구시대 한물간 재료로 내버려 두고 싶지 않아요. 점점 강화시키고 보완하고 단단하게 만들어 세상 어떤 난관과 시련도 두렵지 않은 최강 재료로 빚어가고 싶어요.
이미 나는 그런 단단하고 유용한 '최첨단 신물질' 같은 존재라는 믿음을 가지고 시작하면 어떨까요, 거기서 시작해서 나의 예민함을 이 지구를 구하고 인류를 고통으로부터 구해내는 데 꼭 필요한 정말 중요한 능력으로 드라마틱한 전개를 펼치는 신나는 미래소설을 써 나가면 어떨까요. 내가 보통 사람들과 달라서 소외감이 들 정도라면, 나를 초능력자 영웅 주인공으로 그려보면 어떨까요. 내가 있어 모든 일이 더 잘 돌아갈 수 있고, 세상 중요하고 긍정적인 역할을 하는 존재가 되는 상황. 이 스토리 또한 남이 그저 만들어 주지 않을 거라, 내가 주도해서 만들어 나가야만 해요. 내가 나를 그렇게 중요한 존재라 믿고. 과감히 추진해야만 이루어질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예민한 다음에 무슨 말을 붙여갈지, 나의 삶을 어떤 스토리로 만들어 갈지는 철저히 나의 선택입니다. 아직 정해진 바가 없습니다.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하시겠습니까.
대문 이미지 출처: Pixabay (by D5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