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민한 일상을 지키는 규칙

[에세이] 예민한 행복

by 하트온

감정 관리 규칙


저는 예민한 구석이 분명 있으면서도, 상처받기 두려워 몸을 사리는 쪽은 아닙니다. 밖에 나가 사람 만나고 여러 가지 일에 도전하는 일도 즐기는 편입니다. 성격 테스트 같은 걸 하면 언제나 중간 정도의 점수가 나와요. 내향성도 외향성도 아닌, 모든 면에서 딱 중간쯤 되는 그런 성향이라는 결과를 받아보곤 합니다. 아마도 그런 반반의 성향은, 제 안에 서로 상충하는 여러 종류의 욕구가 존재한다는 의미인 것 같아요. 파티는 가고 싶은데, 너무 많은 자극은 부담스럽고, 밖에 나가서 쏘다니고는 싶은데, 한두 시간마다 중간중간 조용한 실내에서 쉬고 싶어 집니다.



외향적 욕구들은 있지만, 갖가지 자극에 취약하여 에너지 방전이 쉽게 일어난다는 것을 깨닫고, 제가 저 자신을 위해 세운 규칙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약속이나 모임은 하루에 한 건 이상 만들지 않는다.


2. 일하는 날은 어떤 다른 이벤트를 만들지도 참여하지도 않는다.


3. 어떤 모임도 2시간 이상을 넘기지 않는다.


4. 먼 곳에서 오는 친척 친구 방문으로 2시간 이상 넘겨 함께 있어야 할 경우는, 중간중간 반드시 혼자 쉬는 시간을 확보한다.


5. 전화보다는 생각하고 소화하고 배려할 시간을 충분히 확보할 수 있는 문자나 이메일로 대화를 한다.


6. 에너지가 너무 낮은 상태라는 느낌이 들면, 충전이 끝날 때까지 아무와도 대화하지 않는다.



이 규칙을 철저하게 지키는 느낌은, 마치 저 자신을 로봇이나 휴머노이드라고 여기고, 사용 규칙을 잘 따라 관리 잘하고 오래 잘 쓰려고 노력하는 느낌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쉬는 시간 확보 요령


위 규칙 중 4번의, 여러 사람들과 함께 있는 중에 쉬는 시간을 확보하는 방식에 대해 조금 더 자세한 설명을 드릴까 합니다.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고 있는 상황에서, 조용한 휴식을 취하는 방법으로 여러 가지가 가능하겠지만, 제가 가장 흔하게 쓰는 방법은 미술관이나 서점에 가서 서로 각자 흩어져 노는 기회를 가지는 것입니다.


서점이나 미술관이 저에게는 잠시 조용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의미도 있지만, 저에게 그 이상의 역할도 해 줍니다. 좋아하는 그림이나 책을 앞에 두면, 그 속의 이야기 안으로 금방 빠져들 수 있어요. 이러한 예술 몰입 활동은 저를 급속도로 릴랙스 시키고, 순식간에 꽤 상당한 양의 에너지를 충전해 줍니다. 원래 스토리 예술이라는 것이 그런 힘이 있는 것 같아요. 그 옛날의 신화나 설화들도 사람이 믿고 힘을 낼 수 있는 이야기를 대대로 전파한 것이었다고 하잖아요. 글과 그림으로 전해지는 스토리는 영혼에 탄탄한 힘을 실어주는 능력이 있는 것 같아요. 오늘도 살아갈 힘을 주는 스토리를 떠올릴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저는 예술의 참된 목적이 아닐까 생각이 들곤 합니다.


어딜 가도 저의 여행 코스는 미술관과 서점을 끼고 있어요. 그것이 불가능할 때는, 책을 들고 동네 도서관이나 커피 파는 카페라도 찾아갑니다. 그래서 가는 곳마다, 그곳의 미술관, 서점, 도서관을 둘러보고, 카페에서 책을 읽으며 스토리 충전을 받습니다. 동시에 그런 곳들은 저에게 그 지역의 분위기를 은근하고 온화한 방식으로 전해줍니다. 편안한 마음으로, 나라마다 주마다 동네마다 사람들의 문화가 조금씩 달라 생기는 그 미묘한 차이들을 느끼고 깨닫는 것이, 흥미롭고 의미 있는 저만의 취미활동이 되고 있습니다.


어떤 거리에서 어떤 상황을 맞닥뜨릴지 모르니, 여행길에 꼭 챙기는 것이 있어요. 바로 제가 즐겁게 거듭 읽는 책입니다. 저는 좋아하는 책을 반복해서 읽는 습관이 있는데, 행복감을 주는 스토리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예민한 감각이 주는 고통스러운 감정에서 가장 빨리 빠져나오는 길임을 아주 어릴 때부터 알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빨강 머리 앤, 소공녀, 톰 소여의 모험,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 여러 종류의 난관에 처한 아동들이 재치 있게 어려움을 이겨내고 행복을 찾아가는 책들을 거의 매일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밥 먹을 때도, 앉아서도 누워서도 밖에 나가서도 책을 들고 다니며 읽고, 제발 책 좀 그만 읽으라고 부모님이 닦달하시던 기억이 납니다. 결혼해서도 여기저기 책을 쌓아놓고 시도 때도 없이 읽었던 덕분에, 시어머니가 책 읽는 며느리 바란 적 없다고까지 한 소리 하시게 만들었죠. 다행히 책을 좋아하는 남편이 저의 독서 욕구를 충분히 이해하고 배려해주는 덕분에, 저는 언제 어디서건 책을 펼치고 빠져들 자유를 얻게 되었습니다. 아이들 키우기 전에도 우리 두 사람은 늘 서점 데이트를 했고, 아이들이 어느 정도 큰 이후로는 가족 모두가 매주말 서점에 가서 놀아요. 책은 저에게 일상을 지키는 충전기입니다.


사람마다 감정을 지키고 충전하기 위해 필요한 규칙과 충전기가 다를 거라 생각합니다. 저의 글이, 당신에게 나만의 유용한 감정 충전기는 뭘까, 감정 에너지를 보호하기 위해 어떤 규칙을 세워야 할까, 생각해 보고 찾아 마련하는데 영감을 드렸기를 바랍니다. 나의 감정 상태를 잘 지키고 건강한 행복으로 이끌기 위해, 누구나 꾸준하고 세심한 관리가 필요합니다.




대문 이미지 출처: Pixabay (by Elf-Moond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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