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예민한 행복
'타인 지옥'을 허락하고 있는 것
인간은 모두 각자의 내면세계가 있고, 자기 나름대로의 주관적 관점을 가집니다. 서로의 다양한 관점을 존중하고 인정하면 평화롭게 살아갈 수 있을 것만 같아요. 하지만 세상은 결코 그렇게 돌아가지 않는 것 같습니다. 보다 힘 있는 사람의 관점이 더 약하고 더 어린 사람의 내면을 억압하고 재단하며, 집단이 하나의 보편적 관점이라는 힘을 이루어 칼날처럼 휘두르는 것을 봅니다. 개성 있는 개인의 관점들을 숨겨야만 무난하고 평범하고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을 것처럼 느껴집니다. 개인의 소신을 드러내면, 모난 정이 되고, 예민한 이상한 성격이 되고 말기에, 모두가 타인의 관점 속에 스며들고, 집단 전체의 관점을 내재화시켜 스스로를 억압하고 통제하기에 이르러 버립니다. 이것이 바로 20세기를 대표하는 프랑스의 실존주의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 (1905-1980)가 명명한 '타인이 지옥'이 되는 순간입니다. 그는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습니다.
타인은 지옥이다 (L'enfer, c'est les autres, Hell is Other People)
이것은 사르트르가 1944년 발표한 <출구 없는 방 (No Exit)>이라는 희곡의 유명한 대사로, 희곡의 내용은 세 명의 등장인물이 한 방에 갇히게 되면서 일어나는 이야기입니다.
사르트르는 인간이 너무 악해서 인간과 아예 상종하지 말고 혼자 살아야 한다는 결론을 내려는 뜻은 아니었습니다. 그가 세 사람이 물리적으로 한 공간에 있게 되는 희곡 설정을 통해 보여주고자 했던 바는, 사람이 서로의 가까이에서 오랜 시간을 함께 하는 존재가 되면, 한 공간에서 서로의 가까이 존재한다는 물리적인 차원을 넘어서서 서로가 서로의 관점에, 판단에 갇혀 버린다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극 중 한 인물이 결국 "타인은 지옥이다"라고 외치게 된 것은, 주변 사람들의 시선에서 도망치는 것이 불가능한 피눈물의 고통을 호소한 것이었습니다. 사르트르는 이 극을 통해 타인의 잣대가 내 내면으로 들어와 나를 대상화하여 스스로를 재단하는 잣대가 되어버리는 고통을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타인은 지옥이다", 이 말은 항상 많은 오해를 받아왔다. 타인과의 관계는 항상 독이 있고, 언제나 지옥 같은 관계가 될 뿐이라는 의미로 오해받았다. 하지만 나의 진짜 뜻은 그것과 완전히 다르다. 어떤 사람과의 관계가 꼬이고 망가지면 그 사람은 나에게 지옥이 될 수밖에 없다. (중략) 왜냐 하면 우리는 우리 자신에 대해 생각할 때, 우리 자신을 알려고 할 때, (중략) 우리는 우리에 대해 다른 사람들이 가진 지식을 사용한다. 타인이 나를 판단하는 잣대- 판단 기준-을 가지고 내가 나 스스로를 판단한다 (Hell is other people" has always been misunderstood. It has been thought that what I meant by that was that our relations with other people are always poisoned, that they are invariably hellish relations. But what I really mean is something totally different. I mean that if relations with someone else are twisted, vitiated, then that other person can only be hell. Why? Because … when we think about ourselves, when we try to know ourselves … we use the knowledge of us which other people already have. We judge ourselves with the means other people have and have given us for judging ourselves.)"
- 1965년의 어느 강연에서 사르트르가 이 문장의 진짜 의미에 대해 해명한 내용 -
남의 기준을 토대로 내가 나를 부족하다 여기고 못마땅해하는 자체가 지옥이 되는 것입니다. 남들의 판단과 평가, 그들이 기준으로 삼는 판단 잣대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자체가 내 마음의 지옥을 부지런히 건설하는 것입니다. 타인의 관점과 생각이 나를 억압하고 통제하여 점점 더 크고 견딜 수 없는 고통에 이르도록, 내가 내 마음 안에 '지옥 건설권'을 허락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타인이 지옥이 되지 않게
모든 문제의 근원은 내 마음을 지키지 못한 것에 있습니다. 나를 예민하다고, 거슬려하는 남의 관점이, 판단 기준이 나의 내면을 치고 들어 오는 것을 허락한 것이 잘못입니다. 남의 생각에 의존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의존하지 말아야 합니다. 내 생각, 내 소신, 나에게 맞는 나 스스로의 판단 기준을 단단히 가지는 순간, 지옥 건설은 더 이상 용납되지 않는 법입니다. 내 마음이라는 땅의 소유권이 분명 해지는 순간, 남이 들어와 지옥을 건설할 명분도 힘도 없어집니다.
내 마음은 누가 세워주거나, 누구와 함께 세우는 것이 아닙니다. 홀로 서야 합니다. 혼자 있는 것이 괜찮아야 합니다. 신을 믿는 사람이라면, 모든 세상 관념과 기준들을 내려놓고, 키에르케고르가 말한 '신앞에 단독으로 존재'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럴 때에야, 세상으로부터 독립을 이루어 낼 때에야, 나의 내면에는 나를 괴롭히는 '지옥'이 아닌, 나를 행복하고 편안하게 하는 '천국'이 건설될 수 있습니다. 건강하고 올곧은 나의 내면세계, 나의 소신이 세워질 수 있습니다.
타인이 너무 강하게 자신의 기준을 내세우고 내 마음을 공격하려 든다면, 그것에 굴복하고 혼란스러워하고 고통스러워해야 할 일이 아니라, 그 사람과 내가 매우 다른 관점을 가진 다른 존재임을 알게 된 것을 기뻐하고 자랑스러워하며 상대하면 됩니다. 내가 저 사람과 동등한 존재라는 것을 항상 기억하면서 말입니다. 나와 다른 사람을 많이 만날 수록 그들과 다른 나의 소신을 더욱 분명히 볼 수 있게 되고, 그것은 나 스스로를 더 잘 알게 되는 일입니다. 타인의 관점과 부딪칠 만큼, 나의 내면세계가 강하게 잘 자라고 있다는 나의 내면 성장의 증거입니다.
관점이 다르고 싶지 않은 친밀한 관계
만약 부부관계나 부모 자식 관계 같은 아주 친밀한 관계에서 각자의 강한 기준으로 자꾸 부딪치고 관계가 어려워진다면, 각자가 되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내가 정말 상대의 관점을 존중하고 있는지. 상대의 관점으로 세상을 함께 바라봐주려고 노력한 적이 있는지. 혹시 내가 보편적 세상 기준 - 남의 관점-을 들고 와서 상대방을 위협하고 탓하고 상대의 소신을 부수고 망가뜨리려 하고 있지는 않은지.
한 몸 같은 팀을 이루는 좋은 관계를 만드는 첫 번째 조건은 '수용'입니다. 서로의 관점을 받아들이고 이해해 주는 과정이 꼭 필요합니다. 수용을 넘어 공감하고 공유하는 단계로 나아가야 단결된 팀을 결성할 수 있습니다. 관계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는 감정이고, 관점의 차이는 감정의 차이로 이어집니다. 나의 감정, 나의 관점, 나의 세계를 인정해 주지 않는 누구와도 우리는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없습니다. 배 아파 낳고 나를 키우느라 고생한 부모라 할지라도, 나를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인정해 주지 않으면 진정한 마음의 관계는 소멸되고 형식적 허울만 남게 될 뿐입니다. 그 정도로 인간은 자신의 내면세계를 이해받고 인정받는 것이 중요한 존재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가까운 관계에서도 인정과 이해를 의존하고 있어서는 안 됩니다. 관계를 잘 가꾸어 서로가 서로를 완전히 이해하고 존중 존경하는 단계로 나아가면 좋고 감사한 일이지만, 그렇게 되지 않더라도 - 그 단계까지 가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더라도 - 의존하는 마음으로 서로에게 요구해서는 안됩니다. 의존은 기대를 낳고, 이루어지지 않은 기대는 상처와 원망이 되고, 급기야는 미움과 억압과 통제, 폭력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결국은 내가 나 자신의 감정을, 내면세계를 인정해주고 충분히 이해해 주고 있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내가 홀로 서서 단단하게 성장할수록, 주변 사람들과 관계가 더욱 화목하고, 내 마음에 지옥이 아닌 천국이 세워질 가능성이 더 커집니다. '타인은 지옥이다'라는 고통의 피눈물이 담긴 말을 내뱉을 일이 없어지게 됩니다. 모든 것에서 의존을 거두고 독립을 이룰 때 우리는 진정 천국을 이루는 용기 있는 선택을 할 수 있고, 진정한 어른이라고 불릴 자격이 있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