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차 미니멀리스트의 위엄

[에세이] 미니멀리스트의 사생활

by 하트온

10년 전의 나는 2살 5살 바기 꼬꼬마들의 엄마였다. 아이들이 태어나고부터, 집이 작아지기 시작했다. 집의 실제 크기가 작아졌다는 의미가 아니라, 끝없이 자라나는 아이들의 다양하게 달라지는 필요가 집을 물건으로 채우고 사람 사는 공간을 급속도로 먹어 들어가기 시작한 것이다.


나는 정리 시스템이 필요했다. 아이들이 보다 어릴 때의 추억이 아른한 물건들을 비워낸다는 건 생각도 못했던 때의 나는, 예쁜 상자를 사서 분류 정리하는 일이 최선이라고 생각했었기에 색색의 예쁜 컨테이너를 사서 물건을 분류해 넣고 이름표를 붙였다. 강아지처럼 활달한 남자아이들을 돌보며 틈나는 대로 집안 구석구석 물건을 파악하고 분류하고 컨테이너별로 정리하는데, 꼬박 서너 달의 시간이 걸렸던 것 같다. 전문가가 보기에 제대로 된 정리는 아니었겠지만, 집안에 있는 물건은 다 들춰 파악했고, 여기서부터 시작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1년이 지나도 전혀 열어보지 않는 컨테이너들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추억의 물건들이 소중하다고 버릴 생각은 하지도 못했었는데, 막상 1년 넘게 한 번도 열어본 적조차 없었다는 걸 깨달으니, 없어도 상관이 없는 물건임이 입증되었다는 깨달음이 왔다. 전혀 열어보지 않는 컨테이너들을 추려서, 쓰레기와 도네이션 할 물건을 나누어 처분을 하기 시작했다. 엄마 역할만 하기에도 바빴던 시기였던지라, 하루에 컨테이너 한 개 볼 수 있을까 말까 에너지가 부족하긴 했지만, 집 공간을 넓혀간다는 나름의 의미와 재미가 있어, 느려도 쉼 없이 꾸준히 작업을 이어나갔다.


어느 순간, 집에 필요 없는 물건은 다 다른 주인을 찾아가고 꼭 필요한 물건들만 남았다. 공간이 열리기 시작하고 집이 숨을 쉴 것 같았다. 컨테이너 없이 집의 붙박이장 창고 공간만으로 모든 물건을 충분히 수용하고도 남았다. 생겨난 건 공간만이 아니었다. 수납공간이 넉넉하니, 욱여넣고 정리하는데 써야 했던 시간이 더 이상 들지 않고 청소 시간이 단축되어, 시간도 훨씬 많이 생겨났다. 아이들도 점점 크면서 손이 가는 일이 줄어들고, 여러 가지 면에서 내 삶은 여유로워졌다.


지금 바로 여기 이 시점에서, 나는 내 안에 확립된 어떤 조절 능력 같은 것을 느끼고 있다. 나의 욕망이랄까 욕구랄까. 정확히 뭐라 부를지 모르겠지만, 암튼 내가 누릴 수 있는 혹은 누리고 싶은 물건에 대한 기대치를 스스로가 조절하고 있는 것을 느낀다.


한때는 뭐든 가장 신상 제일 고급을 가져야 직성이 풀렸다. 그리고 그런 인간 본성을 아는 기업 마케팅의 세계는 내면의 욕망을 끝없이 부채질한다. 가령, 스마트폰을 예로 들자면, 항상 해마다 더 신형이 나오고, 가장 값비싼 버전이 있고, 내는 돈만큼 누릴 게 많은 신박하고 기술찬 앱들이 널려있다. 사실 스마트폰만 그런 것이 아니라, 집도 그렇고, 차도 그렇고, 옷과 신발, 가방, 여행, 취미생활, 부엌살림, 가전... 사람 눈에 띄는 모든 것이 그런 상황이다. 늘 신상이 나오고, 유행하는 것이 있으며, 사람들이 알아주는 것이 있고, 이 세상은 사람의 욕망을 끝없이 부추기고 다니며 멈추는 일이 없다.


내 욕망이 더 이상 세상에 끌려다니지 않는 나, 그렇지 않은지 오래되어도 한참 오래된 태연한 나 자신을 발견하고 있다는 것이다. 더 이상 내가 최고급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도 최신상을 빨리 손에 넣어야 한다는 강박도 사라지고 없다. 최고급이 아니어도, 그 십 분의 일, 이십 분의 일 가격의 물건 정도여도 충분히 잘 만든 품질의 가치를 알아보는 눈이 생겼고, 이 정도 품질만으로도 충분하다는 만족에 이를 줄 알게 되었다. 최신상이 아니어도, 내가 필요한 기능은 다 있고, 내구성 튼튼한 품질을 알아보는 눈이 발달해 있다.


욕망이 끝없이 끌려 올라가게 두지 않고, 어느 중간 즈음에서 멈추고 만족하는 능력이 생긴 것이다. 어디로 향하고 어디서 만족하고 선택해야 할지, 내 삶 내 상황과 균형을 맞추며 그 방향과 속도를 조절하고 결정할 줄 아는 사람이 된 것이다. 나는 이것이 미니멀 라이프 10년 차의 위엄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것은 보다 편안하게 행복하게 스스로를 이끌어 갈 줄 알게 된 사람의 위엄이다. 더 이상은 세상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의 중심을 단단히 잡고 흔들리지 않는 자의 위엄이다.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며, 진짜 성공은 바로 옆사람도 눈치챌 수 없는 숨은 비밀인지 모른다. 나는 세상 사람들이 알아줄만한 아무 대단한 것을 가지지 못했고, '객관적, 보편적'으론 모든 면에서 어중간하고 뒤처져 있지만, 내가 주도하여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게끔 통제하는 힘, 내 삶의 균형을 내가 맞추어 가는 조절의 힘이 바깥세상이 아닌 내 손안에 있다. 아무것도 이룬 것이 없는 것 같지만, 보이지 않는 10년의 길을 꾸준히 걸어왔다. 보여주기 식의 미니멀리즘을 추구한 것이 아니라, 특별한 것 자랑할 것 하나 없지만, 내 안에 '미니멀'의 힘이 가득 차올라 있다. 더 이상 부족함 없이 모든 것이 만족 이상으로 넘쳐흐르는 축복 잔치 라이프를 매일 누리는 사람, 아무 가진 것 없으면서 늘 뿌듯하고 든든한 사람이 여기 있다. 이 모든 것이 다소 모자라도 괜찮은 삶, 미니멀 라이프를 살면서 얻은 호사다.



대문 이미지 출처: Pixabay (by GoldenViolin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