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엔진의 쓸모

[에세이] 예민한 행복

by 하트온

커다란 엔진


큰 감정은 기계로 치면 대형 엔진에 해당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작은 엔진들 사이에서 큰 엔진은 눈에 띄고, 시끄럽고, 왜 저렇게 쓸데없이 커? 오버하는 듯 느껴질 수 있겠지만, 큰 엔진이 꼭 들어가야 하는 대형 트럭, 버스와 같은 큰 운송차량이 분명 있습니다. 같은 시간에 더 많은 것을 실어 날라야 하는 대형 엔진의 필요가 분명히 있어요. 한 번만 그 도움을 받고 유익함을 맛보면, '쓸데없이' 같은 말은 결코 입에 올릴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런 이유로 저는, 왜 나는 다른 사람과 다를까를 고민하기보다, 나는 어디에 필요한 사람일까를 고민하는 것이 더 합당하다고 생각합니다. 나만 할 수 있는 유익한 일, 내가 도움이 되는 일을 찾아 나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비단 '예민한' 사람만의 고민은 아닐 것입니다. 이 세상 모든 사람 각각이 나름의 방식으로 다 독특하고 다르기에, 각자가 세상에 유익한 존재가 되는 길도 다 다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능력도 '양날의 검'과 같습니다. 내가 맛에 예민한 미식가라면 그 능력을 주변 사람들이 만들어 주는 음식을 타박하고 비판하는데 발휘할 수도 있고, 내가 훌륭한 요리사가 되는데 쓸 수도 있습니다. 내가 잽싼 손기술을 가졌다면, 악랄한 소매치기가 될 수도 있지만, 뛰어난 마술사가 될 수도 있어요. 감정이 쓸데없이 복잡하고 예민해서 주변 사람 피곤하게 하는 비조직형 인간으로 낙인찍힐 수도 있지만, 감정을 섬세하게 공감하고 분석하고 다룰 줄 아는 감정 전문가, 혹은 그런 풍부한 감정들을 수려한 예술로 승화시키는 세계적인 예술가가 될 수도 있습니다.


내가 가진 기술과 재능이 나 자신과 타인을 아프게 하는 길이 아닌, 유익을 끼치는 길로 방향을 잡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럴 때에만 나에게 세상에게 조롱과 원망의 대상이 아닌 깊은 감사와 존경의 대상이 되고, 내 삶이 의미 있고 당당하게 됩니다. 그럴 수 있어야만 내가 나 스스로를 인정하고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게 됩니다.



뭣이 중헌디


사람들은 말합니다. 어떤 성격이 좋고, 어떤 기술이 있어야 하며, 어떤 대학을 나와 어떤 직장을 다니는 것이 좋은 것이라고 비교하고 평가하고 결론들을 내립니다. 많은 영역, 많은 대상에 관해 서열이 저절로 만들어집니다.


세상이 과연 그럴까요? 서열대로 유익한 거 맞나요? 제 눈에는 서열이 있다고 하는 모든 것이 평등하게만 보입니다. 모든 것이 공평하게 양날의 검을 가졌고, 각자 자신에게 주어진 검을 어떤 쪽으로 휘두르는지가 중요할 뿐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저의 능력이 저의 성향이 서열 어디에 속하는지에 관심을 잃은 지 오래입니다. 누군가에게는 엔지니어 커리어의 실패자로 보일 수도 있고, 미국 촌구석에서 한국 주류에도 미국 주류에도 아무 영향력 없이 사는 낙오자로 보일 수도 있습니다. 한 때는 제 눈에도 저 자신이 그렇게 보였던 적이 있어서, 그렇게 판단되고 계산될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어느 날 내면 깊숙이 대변혁이 일어났던 제 눈에는 더 이상 세상이 그런 식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제 눈에는 언제나 그날그날 제 앞에 주어진 '양날의 검' 한 자루가 있을 뿐입니다. 오늘 그 검을 잘못 휘두른다고 인생이 완전히 망하는 것도 아닙니다. 오늘 실수해서 인생이 무너지는 것 같아도, 내일이 되면 내일의 새로운 검이 또 주어진다는 것을 수많은 경험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언제 어떤 검이 주어져도, 종류에 상관없이 내 마음이 그 검을 어떤 방향으로 휘두를지가 관건일 뿐입니다. 옳은 방향으로 휘두르는 법을 한 번만 감 잡으면, 더 많은 날들에 검을 잘 쓸 수 있게 됩니다. 옳은 방향으로 검을 휘두른 날들이 쌓여가면, 내 삶은 점점 밝은 길로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합니다.


검을 지혜롭게 잘 휘두를 수 있는 사람이라는 믿음이 스스로에 대해 굳게 자리잡기 시작하면서, 저는 더 이상 저에게 주어지는 검의 종류를 상관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높은 서열의 검이건 낮은 것이건, 서열보다 중요한 것은 방향이라는 걸 잘 알고 있고, 방향을 잘 잡을 수 있게 된 것만으로 저는 충분하다는 깊은 성취감을 느끼고 있기 때문입니다. 방향을 잘 잡는 사람은 어떤 자리에 있어도 어떤 검이 주어져도 옳은 방향으로 휘두를 것이라는 믿음이 저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남들이 우러러 볼만한 고귀한 검을 쥐고서도 방향을 잡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음을 절감했던 절망의 경험이 제 안에 아직도 살아 교훈이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두려워 말고 담대하게


내가 가진 것이 무엇이건 유익한 방향으로 쓸 길이 분명히 있습니다. 금방 아기를 낳아, 할 수 있는 일이 아기 키우기 밖에 없던 시절에도 아기를 한 인격체로 보고 잘 키우는 일에 최선을 다할 것인가, 아무것도 모르는 영혼을 함부로 대하며 내 감정의 쓰레기통으로 삼을 것인가 선택이 있었습니다. 내가 초보 교사가 되어 남의 아이와 마주 앉아 있을 때도, 내가 이 아이를 돕는데 이 아이의 필요를 파악하는데 사랑의 마음으로 온 정성을 다 할 것인가, 대충 학습지나 시키고 시간만 때울 것인가 선택이 있었습니다.


두려움, 걱정, 불안에 빠져있으면 사람은 옳은 선택을 하기가 힘이 듭니다. 감정의 먹구름들이 시야를 가려 큰 그림을 볼 수 있는 능력이 없어지고, 작은 감정의 폭풍우에 휘둘려 눈앞의 이익에만 현혹되거나, 본심과 다른 후회할 실수를 저질러 버리기 쉽습니다. 내 마음이 담대하고 건강할 때, 더 맑은 눈으로, 더 넓게 보고, 더 멀리 보고, 더 안목 있는 선택을 할 수 있습니다.


예민하다는 말이 약하다는 말의 동의어는 아닙니다. 예민한 칼을 옳은 방향으로 강하게 휘두를 기회는 얼마든지 있어요. 스스로를 '유달리 예리한 검'이라 여기건, '대형 엔진'이라 여기건, 남다른 내 성향을 나 자신과 세상을 위한 유익한 일에 쓸 방도를 찾아내기만 하면, 나는 행복하고 당당하게 살아갈 나의 길을 찾아낸 것입니다. 어디에 어떤 상황에 처해 있건 방향만 잘 잡아내면 됩니다. 그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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