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만의 방에서 시작하다

[에세이] 자기 마음 집

by 하트온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


<자기만의 방>은 버지니아 울프 작가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읽어본 적이 있거나 최소 들어본 적이 있을, 1929년 첫 출간된 에세이집 제목이다. 10대 후반부터 20대 초반까지 나는 버지니아 울프 작가의 마니아 독자였고, 서점에서 보이는 그녀의 책을 모조리 사보았던 기억이 있다. 아마도 그녀의 글에서 느껴지는 불안정하고 고립된 듯 느껴지는 의식의 흐름에, 그 시대가 허용했던 보편적 성차별에 크게 몸을 떨던 그녀의 예민한 촉각에, 내 시대 내 주변이 생산하던 차별과 차이에 고통받던 내 정서가 크게 동질감을 느끼며 매료되었던 것 같다. 그녀의 책을 읽고 있으면, 이 세상에 나를 이해하는 사람이 한 사람은 존재하는구나 하는 느낌이 큰 위로로 다가왔다. 무엇보다 <자기만의 방>은 당시 나를 누르던, 가부장 문화와, 불평등, 어린 여성들이 너무도 쉽게 노출되는 성추행과 성희롱이 만연한 거대하고 위협적인 사회 앞에서, 안전하게 창조성과 지적 능력을 억압받지 않고 살아갈 지침서로 다가왔었다. 그중에서도, 여성이 작가가 되기 위한 기본 조건이 내 뇌리에 강렬한 이미지로 남았다.


A woman must have money and a room of her own if she is to write fiction. (여성이 픽션을 쓰려면 돈과 자기만의 방을 반드시 가져야 합니다.)


취직을 하고 돈을 벌기 전까지, 어린 시절부터 쭉, 늘 누군가와 방을 공유해야 했던 나는, 나만의 방이 없다는 물리적 정서적 상황이 만드는 불편함과 한계를 온몸 온 마음으로 절감하고 있었으므로, 방을 가진다는 것, 그리고 그 방에서의 생활을 유지할 경제적 능력을 가지는 것이 나의 성장과 개발, 자유와 경계선을 지키는 절대 기본 조건이라는 것이 마음에 깊게 새겨졌다.



나의 방을 가져 보았지만


나의 첫 번째 방은, 취직을 하고 혼자 썼던 하숙집 독방이었다. 그 방은 얇은 벽을 사이에 두고 낯선 타인들에 둘러싸인 다소 불안정하고 어설픈 방이긴 했으나, 처음으로 가져본 내방이라는 의미가 있었다. 하지만 그 방에서 나는 행복하지 않았다. 나는 지독하게 외로운 사람이 되어가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 뿐이었다. 그 느낌에서 벗어나기 위해 결국 나는 나의 방을 버리고 나와 가족을 만드는 길을 택했다. 그리고 다시 오랫동안 내방을 갈구했다.


견딜 수 없을 만큼 무거워진 내방을 버리고 나왔을 때의 그 순간 그 선택에 대해 나는 두고두고 생각했다. 나는 왜 나의 방을 즐겁게 누리지 못했던가. 물론 내 첫 방은 허름하기 짝이 없었고, 추웠고, 따뜻한 물도 마음대로 쓸 수 없었고, 화장실 쓰는 순서도 세탁기 쓰는 순서도 눈치를 봐야 했고, 주인이 따로 있는 내 맘대로 할 수 없는 공간, 결국 거치고 떠나야 하는 오래 머물지 말고 지나 보내야 할 공간이긴 했다.


다만 한 가지 후회가 되었던 것은 너무 일찍 포기했다는 것이었다. 더 나은 '자기만의 방'을 추구해 보지 않았던 것, 더 돈을 모아 더 좋은 방을 찾아보지도 않고 일찌감치 내방을 포기했던 나 자신의 어리석음을 곱씹고 또 곱씹었다. 내게 주어진 방의 장점들을 최대한 즐길 줄도 몰랐고, 내 방을 더 아름답게 꾸밀 줄도 몰랐고, 내가 원하는 것을 위해 꿈을 위해 계획하고 돈을 모으고 하나하나 이루어 갈 줄도 몰랐다. 나는 내 것을 잘 가꾸며 세우며 살아갈 훈육이 전혀 되어 있지 않았다. 그저 불편함에 짜증 낼 줄만 알고, 버티기 힘들어지면 도망갈 줄만 알던 철부지였다. 마음 크기가 그만큼 밖에 안 되는 불편하고 누추한 내면을 가진 사람이었던 것이다.


확실히 알게 되었다. 방을 가지는 것으로만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 나 자신이 변해야 한다는 것. 내가 만들어 가고 싶은 것을 제대로 파악하고, 그것을 매일 조금씩 꾸준히 이루어 가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것. 그러기 위해선 나 자신이 무엇이 필요한 어떤 성향의 존재인지 정확히 파악해내야 한다는 것. 나는 단순히 네 모난 방 한 칸이 있으면 되는 기계 같은 존재가 아니다. 나는 마치 어디서 어디로 흐르는지 좀처럼 파악해내기 힘든 물길처럼 복잡하고 유기적인 존재다. 어디에서 어떤 모습으로 살건, 내면이 살아 흐르는 존재라는 것은 변하지 않으며, 주변 사람들과 함께 부대끼며 이런저런 감정이 어디선가로부터 흘러오고 들끓고 파도치고 넘쳐흐른다.


이제 내게 <자기만의 방>은 물리적 의미 그 이상이다. 나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나의 감정까지 생각하는 쾌적한 공간이다. 그것은 경제적 능력만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닌, 나의 내면의 성장과 의지로 만들어 가야 하는 것임을 점점 깨닫는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나의 멘토였던 버지니아 울프 작가의 뒤를 이어, <자기만의 방>을 잇는 후속작을 쓰는 느낌으로 <자기 마음 집>이라는 제목의 에세이를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울프 작가의 글을 읽고 영향을 받았다. 또한, 자라고 나이를 먹어가면서 다른 영향들도 받았다. 세상을 헤쳐온 경험이 내게 가르쳐 준 것도 많았다. 그렇게 성장 과정을 거치는 동안 내 안에 <자기만의 방>의 의미 또한 변해갔다. 내가 필요한 <자기만의 방>의 공간적 의미와 내면적 의미, 공간과 내면 그 둘의 상호작용과 시너지에 대해 쓰고 싶어졌다.


여기서 내가 말하려는 것이 듣는 입장에서는 물리적 의미의 공간을 말하는 것인지, 내면적 정신 승리를 의미하는 것인지 헷갈리고 혼돈스럽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감정이 살아가는 내면과, 그것이 투사된 물리적 공간이 결국 통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므로, 이 혼돈의 구름을 굳이 깨끗이 걷어내어 명확히 구분하지 않고, 글이 나아가는 대로 눈에 보이지 않는 내면도 되었다가 눈에 보이는 공간도 되는 글을 써 나가려 한다. 생명이 있는 유기적인 글이 끌고 가는 대로 따라가 보려 한다.




대문 이미지 출처: Pixabay (by CDD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