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자기 마음 집
가난하다는 건
버지니아 울프 작가에게 삶은 깊은 산골짜기다. 대단한 지위와 학식과 명성을 지닌 아버지의 후광으로 인한 태산 같은 지적 교류와 양분의 골짜기 사이로 바닥을 알 수 없는 결핍의 강이 흐른다. 가족은 부자인데, 그녀는 늘 가난했다는 기억을 가지고 있다. 남자 형제들은 모두 이튼 스쿨에 옥스퍼드 캠브리지 최고 학벌인데, 그녀는 여자라는 이유로 그 학교들의 캠퍼스 잔디밭조차 마음대로 밟을 수 없었다.
물론 남이 보면 대단한 집 딸이고, 옥스브리지가 아니라도 남들은 꿈도 꿀 수 없는 집안의 명성과 그에 따르는 혜택이 발밑에 깔려있었다. 하지만 울프 작가는 견디기 힘든 고통 속에 있었다. 그녀가 한창 예민할 나이인 13세에 어머니가 병에 걸려 돌아가셨을 때 시작된 불운은, 이후, 도미노 현상처럼 그녀의 내면을 더욱 무너뜨리는 나쁜 일들을 차례로 일으켰다. 아내를 잃은 아버지가 자신의 슬픔을 이기지 못해 아이들을 방치했으며, 그 틈을 타 10살 이상 차이 나는 이복 오빠가 어머니를 잃고 힘들어하는 여동생들을 챙겨준답시고 함께 시간을 보낸 것이 상습적인 성학대로 이어진다. 울프가 어머니 대신 믿고 의지하던 큰 언니 스텔라 마저 세상을 떠나고, 울프의 나이 22세에 아버지까지 잃는다. 울프는 내면을 지탱할 힘이 다 빠져나가고 살아갈 의지마저 꺾여버리는 정신 붕괴 상황에 이른다.
성차별이 난폭하게 그어대는 칼날에, 결핍 가득한 가정환경이라는 장애물에 쉼 없이 상처 입었던 울프는, 그 모든 고통의 원인이 여성이기 때문에 처하게 되는 '가난'이라고 결론 내린다. 어머니는 8명의 아이들 양육을 떠맡고 자신의 몸을 제대로 돌 볼 여유가 없는 가난 때문에 돌아가신 것이고, 그녀가 이복 오빠에게 그런 학대를 당한 것도 자신을 지켜줄 안전한 집이 없는 가난 때문이었다. 부잣집 안주인이어도 자신을 돌볼 시간이 없으면 가난한 존재고, 대궐 같은 집에 살아도 나를 지킬 방이 없는 여성은 가난이라는 고통을 벗어날 수 없다. 울프는 '여성은 가난하다'라고 단언하고야 만다.
가난을 벗어난다는 건
어느 날 밤, 여성에게 투표권을 주는 법안이 통과된 시간에, 울프는 고모가 남긴 유산으로 울프가 죽을 때까지 매년 오백 파운드의 돈을 받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녀는 '투표권과 돈, 그 둘 중에서 돈이 한없이 더 소중하게 보였다'라고 고백한다. 그전까지 그녀는 여러 신문사에 잡다한 일을 구걸하여 온갖 주제의 기사를 쓰고, 노인에게 책을 읽어주는 일을 하거나, 봉투에 주소 써 주는 일, 조화 만들기, 유치원에서 아이들에게 알파벳 가르치는 일을 하며 먹고살았다. 그녀가 졸지에 부자가 되기 전, 1918년 이전에는 울프가 찾을 수 있었던, 여성에게 허용되는 일들이 그 정도밖에 없었다. 먹고사는 일이 너무나 가혹했고 너무나 힘들었다고 울프 작가는 호소한다. 그랬던 만큼, 고모가 남긴 거대한 유산은 울프 작가의 내면 깊숙이까지 거대한 변화를 일으켰다.
자신이 필요한 것을 꽉꽉 채워주는 돈이 생긴 덕분에, 그 시절 자신의 내면을 갉아먹던 그 모든 두려움과 쓰라린 고통들이 모두 가난 때문이었구나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돈 때문에 하고 싶지 않은 일을 억지로 하고, 되고 싶지 않은 노예 역할을 하며 감정 노동에 혹사당하며, 자신에게 중요한 재능이 자신의 영혼과 더불어 소멸되는 느낌을 느껴야만 했다고. 그래서 고정 수입이란 사람의 기질까지도 바꿀 수 있는 것이라는 것을 깨달으며 스스로 놀랐다고 고백한다.
유산을 받고, 세상의 어떤 힘도 자신에게서 오백 파운드, 즉 음식과 집과 옷을 뺏어갈 수 없다는 안정감이 생기는 순간, 인생은 더 이상 고행길이 아니며, 아무도 미워할 필요가 없게 된다고 울프 작가는 말한다. 자신을 해치는 사람이 없어졌기 때문에. 또한 더 이상은 남자에게 아부하지 않아도 되는데, 그 이유는 남자에게 뭘 얻으려고 할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라고 기술하고 있다.
제인 오스틴의 소설에 등장하는 여자들이 돈 많은 귀족 남자들을 대할 때, 얼마나 예쁘게 보이려고 교양 있게 말하고 행동하려고 노력하는지 문득 떠오른다. 교육 목표는 자기 계발도 자아실현도 아닌, 부잣집 도련님의 눈에 들 수 있을 만한 여성이 되기 위한 것이다. 동양 여성들의 남성 앞에서 애교 가득한 말투와 몸짓도 떠오른다. 그 모든 것이 남성에게 받을 것이 있을 때, 의존해야 하는 일이 있을 때 목표를 달성하고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처세다. 필요한 것을 뺏기지 않고 가지려는 치열한 싸움이다. 가난한 사람은 자신의 물주 마음에 들기 위해 온 힘과 온 마음을 쓰며 살아가야만 한다.
울프에게 오백 파운드는 모든 장애물과 방해물을 제거해주는, 자유로운 사색을 보장하는 자유였다. 다시 말해, 가난을 벗어난다는 건 내가 내 마음의 주인이 되는 일이며, 거침없는 생각과 표현으로 창작 활동의 길이 열린다는 의미였다. 울프 작가가 느꼈던 가장 큰 폭, 가장 빠른 속도로 찾아온 변화는, 유산 상속을 받고부터 인류의 다른 절반 - 남성-을 대하는 스스로의 태도가 완전히 새롭게 달라진 것이었다. 자신이 그 누구보다 힘이 세고, 언제나 필요 이상으로 돈이 넘쳐, 아가씨의 교양 따위는 밥 말아 삼켜 버리고 마음 내키는 대로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즐겁게 살아가는 삐삐 롱스타킹을 생각해 보라. 그것이 어느 누구에게도 아쉬운 말을 해야 할 필요가 없는 사람의 삶, 다 가진 자의 여유다. 그 쾌활한 자유를 울프도 가질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그 자유를 준, 고모가 남긴 유산이, 그 어떤 다른 가치와 업적보다 소중했던 것이다.
울프 작가는 유산을 받고서, 두려움과 쓰라림에서, 연민과 관용으로, 한 두 해가 지나 연민과 관용이 '사물을 있는 그대로 생각하는 자유'로 가는 해방감을 느꼈다고 기술하고 있다. 결국은 내가 내 마음이 어떻게 느끼는 가가 중요한 것이라고. 작가는 자신의 마음을, 내면을, 자신 있는 그대로를 수용하고 사랑하는 길로 나아갔던 것 같다. 울프 작가의 표현으로는 '고모님의 유산은 내게 하늘을 가린 베일을 벗겨주었고, 밀턴이 내게 영원히 숭배하라고 권한 크고 위풍당당한 신사의 모습 대신 탁 트인 하늘을 보여주었다'라고 고모로부터의 유산이 스스로의 내면에 끼친 영향을 묘사하고 있다.
여성은 왜 가난한가
고모의 유산으로 삶의 여유를 얻고 맑은 눈으로 세상을 볼 수 있게 된 울프 작가는 마침내 '왜 여성은 가난한가'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질문에 답을 찾기 위해 나름의 탐구를 시작한다. 그녀는 그 질문에 대한 답, 진짜 본질을 꿰뚫어 보여 주는 진실을 찾고 싶었다.
울프는 도서관을 방문하고, 수많은 남성들이 여성에 관해 쓴 책들과 마주한다. 남성 작가들의 수없이 다양한 의견들이 난무한 가운데, 울프 작가는 여성을 정신적 도덕적 신체적 열등한 존재로 어쩌면 영혼조차 없는 미개의 존재로 보는 시선과 마주한다. 울프는 그런 시선을 가진 존재의 분노에 찬 좁은 마음을 느낀다. 그것이 울프 작가를 분노하게 한다. 여성에 관해 남성들이 쓴 책을 읽는 것은 시간 낭비라는 결론을 내린다. 대신 울프 작가는 남성들이 여성들에 대해 가진 분노의 본질을 파악하고자 한다.
분노는 권력을 따라다니는 뻔뻔스러운 유령이 아닐까. 어쩌면 그들이 여성의 열등함을 지나치게 강조할 때 진짜 관심사는 여성의 열등함이 아니라 자신의 우월함이고, 그것이 진귀한 보석이라 다소 격하게 강조하면서 보호하고 있는 것이다.
작가는 남성이든 여성이든 삶은 힘들고 어렵고 끊임없이 이어지는 투쟁으로 거인과도 같은 용기와 힘을 요구한다는 말로 이어간다. 그리고 누구나 자신에 대한 믿음이 필요하다고 자신감이 없으면 요람에 누운 아기와 마찬가지라고 주장한다.
가장 빨리 자신감과 우월감을 가질 수 있는 방법은 다른 사람이 자기보다 열등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라고 한다. 재산 신분 오뚝 선 콧날 무엇이든 상관없이 내가 남보다 더 우월한 존재라고 느끼는 데 도움이 되면 인간은 무엇이건 우월감을 느끼기 위한 연료로 쓴다. 정복과 지배를 목표로 하는 사람들에게는 인류의 절반이 자신보다 열등하다고 느끼는 일이 몹시 중요하다고 울프 작가는 설명한다.
그것이 여성차별의 인종 차별의 근본 원인이 아니었을까. 자신에 대한 자신감 믿음을 침해당하면 이들은 화를 낸다. 그래서 여성에 대한 혐오, 타인종에 대한 혐오가 이들 마음에 자리 잡고 어떤 비열한 방법이건 이 분노를 표출하는 것에 일말의 망설임도 없게 된 것이 아니었을까.
남성을 더 우월한 존재로 느끼게 해 주는 여성의 역할이 너무나 중요했기에, 범인을 뛰어넘는 초인 역할을 해야 했던 나폴레옹이나 무솔리니 같은 이들이 여성의 열등함을 그토록 강조했던 것일지 모른다고 울프 작가는 말한다. 철학자 니체가 그토록 여성을 경멸하는 글을 썼던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여성이 열등하지 않다면 남성은 초인으로까지 자아를 확대할 재간이 없다고 울프 작가는 주장한다. 여성이 동등한 수준의 인간이고, 그들이 말하는 진실을 인정하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남성은 오그라들고 삶을 감당할 힘이 줄어들어버릴 거라고 말이다. 그런 바람 빠진 자아상으로는 미개인을 교화하는 성직자도 될 수 없고, 법을 만들거나 판결을 내리는 존재가 될 수도 없고 책을 쓰고 연설을 하는 존재도 될 수 없다고까지 밀어붙인다.
울프 작가는 어떤 계급이나 성을 통째로 비난하려는 마음은 없다고 분명히 말한다. 가장들과 대학 교수들 - 그 시대 힘 있는 남성들-도 잘못된 교육을 받고 내면에 커다란 장애가 생긴 사람들일 뿐이라고 말한다. 그들이 돈과 권력을 받은 대가로 '간을 찢고 허파를 잡아 뜯는 독수리와 매를 가슴속에 품고 살아야 했다'라고 작가는 설명한다. 내가 더 우월한 존재여야만 힘을 낼 수 있는 마인드는, 무엇이든 내 발아래 놓고 내 것으로 소유하려는 본능이 되었고, 하나라도 더 가지려는 열망이 다른 사람의 소유를 끊임없이 탐내게 만들었다고 말한다. 그래서 전쟁을 일으키고, 무기를 만들고, 독가스를 만들어 결국 자신과 가족의 생명까지 그 욕심의 불길을 위한 재물로 다 갖다 바치게 만들었다고 말이다. 식민 제국주의의 역사, 세계 대전의 비참한 역사를 불러온 그 시대의 탐욕과 그 속에서 미쳐 돌아간 성역할 정체성을 울프는 꿰뚫어 보았다. 울프 작가는 말한다. 일 년에 오백 파운드를 갖게 되고 깨달은 것은, 사람이 일 년에 오백 파운드만 - 지금으로 치면 1년에 4-5천만 원 정도 - 있으면 자기 방 한 칸 갖고 햇볕을 받고 좋은 음식을 먹으며 충분히 살아갈 수 있는데, 그 시대의 많은 남성들은 이보다 더 많은 부와 힘을 누리기 위해 욕심부렸다고 고발한다.
더 욕심을 부리고 더 가진다 해도 결국은 남성 또한 스스로의 주인이 아닌 우월감에 복종하고 휘둘리는 노예일 뿐이지 않았을까. 겉으로 얼마의 재산을 축적하고 누렸건, 남성의 내면도 결국은 가난한 노예 상태에 머물러 있을 뿐이지 않았을까.
가난하지 않은 집을 짓자
내가 누구보다 우월한 존재임을 믿어야 하는 때는, 나머지 사람들의 생명을 하찮게 여길 필요가 있을 때다. 나폴레옹이 세상을 정복하며 내 나라 사람이 아닌 피지배자들을 죽여야 할 때, 나치 정권이 유대인들을 대량 학살할 때, 그런 상황에서 지배자가 되기로 결심한 자는 내가 그들의 생명과 재산을 마음대로 뺏어도 되는 존재라는 것을 명확히 하기 위해 내가 우월한 '초인'임을 믿어야만 한다.
울프 작가의 주장에 따르면 그것은 잘못 교육받은 잘못된 마인드, 마음이 병들어 생긴 장애다. 나는 그런 우월감이 주는 힘을 믿지도 않고 원하지도 않는다. 나는 모두의 생명이 동등하게 소중한 곳, 서로 믿고 존중하고 어울려 살아갈만한 세상에서 힘을 얻는 법을 찾고자 한다. 상대방이 소중한 만큼, 나 자신 또한 소중해지는 곳. 내가 소중한 존재라고 확신할 수 있고, 존중받는다고 느낄 수 있는 곳. 아무도 어느 누구의 주인도 노예도 갑도 을도 되지 않는 곳. 모두가 자기 마음의 주인이 되는 곳. 서로의 힘을 북돋워 주는 관계로부터 힘이 피어나는 곳. 모두가 평등하고 자유로운 곳. 자유롭기에 가난하지 않은 곳. 내 마음은 그런 창조의 사색이 일어나는, 쾌활한 삶이 거하는 집이 되고 싶다.
대문 사진 출처: Pixabay (by GregoryButl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