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사색을 지켜주는 자유 마당

[에세이] 자기 마음 집

by 하트온

자유로운 사색


버지니아 울프는 여성 작가에게 매년 주어지는 500파운드가 '자유로운 사색'을 가능케 한다 했다. 자유로운 사색을 한다는 의미는 무엇일까. 5000만 원 정도가 매년, 500만 원 정도가 매달 통장에 입금되는 상상을 해 보자. 그 돈이 있으면, 내 마음이, 내면이 자유로울 수 있을까.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내 온 신경을 누구에게 빼앗기지도 않고 오로지 나의 세계에 집중하며 살 수 있을까.


불확실한 미래를 대비하는 재산 축적에 대한 강박, 두려움에 빠지지만 않는다면, 작고 검소한 공간과 단출한 살림살이와 식생활에 만족한다면, 내가 읽고 싶은 것을 읽고, 내가 알고 싶은 것을 배우고 성장하며, 나아가 창조하고 예술 표현하는 삶까지도 가능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진정 돈을 초월할 수 있다면, 적어도 돈이 되는 공부를 하고 돈이 되는 작품을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은 없을 것이다.


돈이 빠진 자아실현, 돈을 만들지 않는 성공이란게 말이 되는 걸까. 내 마음 가는 길에만 집중하는 삶을 살아도 괜찮은 걸까. 돈이 되지 않아도 상관없는 배움, 돈을 만들지 않아도 상관없는 성장을 상상해본다. 너무나 생소한 개념이 아닌가. 생각해보면, 한 번도 그럴 수 있었던 적이 없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평범하게 태어난 수많은 한국인은 어릴 때부터 돈이 될 공부를 하고, 돈 버는 실력 키우기를 너무나 당연하게 요구받는다. 돈이 밥이고 생명이고 나를 지키는 안전이기 때문이다. 부모의 교육 목표 자체가 '적어도 자기 밥벌이는 하는 인간'이었던 역사가 길고도 깊다. 그래서 우리 모두는 비슷한 목표를 가지고 비슷한 교육을 받았고, 그 결과 비슷한 사고를 하며 비슷한 것들을 추구하며 비슷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되었다.


보편적 상식에서 벗어나는 생각은 어디서도 환영받지 못한다. 항상 주변 눈치를 살피며 적절하게 분위기를 맞추고 자신의 세계로 빠져들어 딴생각을 하지 않는 기민한 사람, 빠르게 상황을 통찰하는 눈치 빠른 사람을 이상적 대한민국형 사회성을 갖춘 인간으로 본다. 사회가 원하는 이 유형은 사회 구성원들의 성장 방향을 결정하는 모범이자 기준이 되어 일괄적으로 형태를 잡고 주물 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우리가 모여 만든 우리 사회가 나는 몹시 답답하게 느껴지곤 했다. 개성이 튀어나온 정이 되고 개인주의가 바로 이기주의가 되는 몰개성의 집단. 나는 때때로 우리 사회 전체가 개인의 자유로운 사색을 금하고 있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일반에서 달라지는 순간, '4차원', '튀는', '유별난'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붙어 트랙을 이탈하고 있다는 경고를 하다가, 선을 넘어가는 순간 바로 '낙오자'라는 이름표를 달도록 디자인된 사회처럼 느껴졌다.


과연, 충분한 돈이 자유로운 사색의 문을 열어줄까. 적어도 우리 사회에선 아닐 거라 생각한다. 돈이 있어도 해결되지 않는 사고의 방해가 있다. 무엇이 나의 자유로운 사색을 방해하는가. 방해의 중심에 바로 나 자신이 있다. 결국은 내가 바로, 자유로운 사색을 허락하지 않는, 반드시 뚫어내야 할 최후의 보루, 최후의 문지기, 감시자다. 이 사회는 내가 나에게 자유를 허락하지 않도록 철저히 훈련시켜 놓았다.



자유로울 수 있는가


나는 왜 나의 자유를 금하도록 훈련되었는가. 가족의 생계를 위해 누군가를 위해 헌신하고 일하는 존재가 되어야 했기 때문이다. 내가 누군가의 돈을 받으며 일하고 생활해야 하는 환경에선, 내 온 마음과 온 뜻을 다해 그 누군가의 일에 충실하게 매달려야 한다. 내 자유로운 생각에 집중하고 사색할 여유란 없다. 나는 종속되어 있고, 나의 노동은 남의 것이지 내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종속된 삶에 길들여진 우리는 자유가 주어져도 자유를 누릴 수 없다. 쉬는 시간, 퇴근 후, 휴가 동안 우리가 누리는 것은 자유가 아니라, 억압당하고 스트레스받았던 내면을 쉬고 어르는 행위에 불과하다. 이리저리 맞고 치여 부어오른 내면을 겨우 가라앉히고 계속 이어지는 종속된 삶을 견딜 준비를 하는 것만도 벅차다. 시간을 마음대로 자유롭게 쓸 수 있는 기회가 와도, 남이 설계한 향락 서비스에 의존해서 정신줄 놓고 흥청거리는데 시간을 쏟아부을 줄 알 뿐, 진짜 오래 지속되는 자유가 오는 것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어떻게 내면을 자유롭게 풀어 줄 수 있는지 모른다. 어떻게 내 삶을 주도할 수 있는지 모른다. 사실 우리는 한 번도 경험해 본 적 없는 자유로운 사색이 무엇인지 알 도리가 없다. 우리는 사회가 정해놓은 트랙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스스로 자유를 금하고 억누르는 훈련이 철저하게 되어 있는 사람들이다.


100년 전 영국 사회를 통찰했던 버지니아 울프는, 남성에 비해 여성의 삶이 상대적으로 너무나 가난하고 사고에 방해가 훨씬 많아, 여성 시인이 태어날 수 없는 환경이라는 말을 했다. 100여 년이 흘러 현대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내 눈엔, 많은 경우 남자도 여자도 자유로운 사색을 하며 살아가기는 힘들어 보인다. 내면을 치고 들어오는 방해를 걷어내고, 자신만의 독특한 목소리를 자유롭게 들려주는 예술가로 성장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돈이 되는 글을 쓰는 베스트셀러 인기 작가는 있어도, 두려움과 눈치 강박 없이 자유로운 작가는 찾아보기 힘들다.



자유 연습


내 안의 어린 예술가를 위해, 자유 연습이 필요하다. 오롯이 자신에게 집중해도 되는 자유 시간이 주어질 때, 조금도 낭비하지 않고 내 안의 시인이 자유롭게 사색하는 것을 돕기 위해서는, 어느 누구도 뚫고 들어오기 어렵게 단단히 지어진 성벽 안에 자유로운 마당을 갖추어야 한다.


나는 나의 역할을 바꾸기로 한다. 지금까지 자유로운 생각을 막아온 문지기 자리를 버리고, 내가 자유로울 수 있는 마당을 만들고 타인의 시선, 타인의 기준, 타인의 침입으로부터 나를 지켜주는 문지기가 되기로 마음먹는다. 생각해보면 나는 한 번도 나를 나의 성을 지켜주는 내가 되었던 적이 없다. 그래서 나는 내 포지션을 반드시 바꾸어 놓겠다고 마음먹는다. 새로운 임무를 감당할 훈련이 아직 부족하고, 어색하기 짝이 없지만, 매일 조금씩 스스로를 단련하고 하나씩 행동을 바꾸어 새로운 역할을 감당해 보기로 한다.


자유로운 나의 마당을 상상해 본다. 마당 둘레엔 내가 좋아하는 색색의 향기로운 꽃나무들이 싱싱한 생명력을 자랑하며 줄지어 심겨 있고, 큰 나무 아래 그늘엔 널찍한 테이블과 푹신하고 안락한 의자들이 놓여있다. 의자에 앉아 따뜻한 차나, 시원한 레모네이드를 마시며 좋아하는 작가의 책을 읽는다. 어떤 환한 영감이 소식을 물고온 흰비둘기처럼 내 심장에 내려 앉으면, 흰 종이를 펼치고 검은 글씨를 다다다 써내려가기도 한다. 멀리서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 마음을 식혀주는 이곳은, 특히 감정이 힘든 날 스스로를 추스르고 조용히 생각을 정리하기 좋다. 아무도 방해할 수 없고 아무도 함부로 들어올 수 없다. 때때로 내가 믿는 좋은 사람들을 초대해 등을 밝혀놓고 맛있는 저녁을 먹고 마시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도 하겠지만, 이곳은 결국 나의 자유를 위해 존재하는 곳이기에, 내 자유로운 삶이 가장 중요한 임무다. 눈을 감을 때마다 사색의 기회가 올 때마다, 나는 마당을 근사하고 단단하게 짓고 그 안에서 내 내면이 모든 것을 자유로이 주도하게 할 것이다.





대문 이미지 출처: Pixabay (by dandelion_tea)

이전 02화가난하지 않은 집을 짓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