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쉼, 나의 방

[에세이] 자기 마음 집

by 하트온

쉴 곳 없는 처지


인간의 삶에 쉼은 그 어떤 무엇보다 중요하다. 집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 쉴 곳 보장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쉼은 달리 말해 '에너지 충전'이다. 매일의 충전 없이는, 사람은 잘 자랄 수도, 건강을 유지할 수도 없다.


제대로 된 쉴 곳이란 무엇일까 질문을 던지고 보니, 샬롯 브론테의 소설 <제인 에어>가 떠오른다. 아기 때 친부모를 잃고 외삼촌 집에서 양육되었던 제인은 미움과 차별의 몽둥이로 심신을 두드려 맞으며 컸다. 그녀가 10살이 되고 더 이상 억울한 분노를 견디지 못해 내면의 감정을 쏟아내기 시작하자, 시조카를 더 이상 조금도 감당하고 싶지 않은 외숙모는 엄격하기로 소문난 기숙학교로 보내버린다. 18살까지 8년을 불편하고, 배고프고, 열악한 환경에서 가장 좋아하던 친구가 죽어가는 것까지 보아야 했으면서도, 제인은 강한 의지로 꿋꿋이 버티고 열심히 교육받아, 마지막 2년은 교사로서 근무하였다.


돈을 받고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사로 입장도 달라지고, 어느 정도의 자유도 얻게 되었지만, 그녀는 더 이상의 자극도 설렘도 없는 지루한 환경을 더 이상 견딜 수 없어, 그곳에서 벗어나기를 갈망한다. 하지만 넋 놓고 맘 편히 쉴 수 있는 자유를 한 번도 가져본 적이 없었던 그녀의 영혼은 감히 완전한 자유, 충만한 즐거움을 바랄 수 없다. 주제에 새로운 자극이 풍부한 삶을 감히 바라기가 두렵다. 그저 주인을 바꾸는 '새로운 종속'을 바라는데 그칠 수밖에 없다. 그녀는 새로운 사람들이 있는 가정에서 가정교사일을 해 보겠다고 결심한다. 광고를 내고 연락을 받고 찾아간 곳이 바로 남자 주인공이 사는 로체스터 영지의 저택이었다. 로체스터의 옛 애인이 로체스터의 아이라고 주장해서 떠맡아 키우게 된 아델이라는 여자 아이의 교육을 제인이 맡게 된 것이다.


제인과 로체스터는 사랑에 빠지고 결혼까지 결심하지만, 로체스터의 기막힌 사연 - 미치광이 부인이 살아 있다는 사실 - 때문에, 결혼이 성사되지 못하고 제인은 어느 새벽 아무도 몰래 그 저택을 떠난다. 거의 빈손으로 떠나 낯선 마을에서 거지 신세가 되어 굶주리며 헤매던 제인은, 우연히 리버스 가문 세 남매의 집으로 찾아가 도움을 받게 된다. 친절하고 배려 깊은 이 사람들 덕분에 상처 입고 지친 심신을 회복해 낸다.


하지만, 그들이 아무리 편하게 해주는 너그러운 사람들이라 해도, 남은 남이니 내 집처럼 편하게 쉴 수만은 없다. 알고 보니 최근 그들의 부친이 돌아가시고 형편이 어렵게 되어, 자매 두 사람은 가정교사를 하러 런던으로 떠나야 하는 참이었다. 제인은 회복되자마자 리버스 자매들의 오빠이자 마을 목사인 존의 주선으로 그 마을에서 농민들의 자녀를 가르치는 일을 맡아 살아가게 된다. 어느 날 제인은 자신이 외조부로부터 2만 파운드의 막대한 재산을 상속받았다는 사실과, 리버스 가문 자제들이 자신의 사촌들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2만 파운드면 평생을 누릴 거 다 누리며 필요한 대로 사람도 부리며 위세 등등하게 살 수 있는 돈이다. 하지만, 제인은 사람들 - 사촌들 - 을 얻는 것에 더 가치를 두고, 그들과 함께 각자 5000 파운드씩 나누어 갖는다. 불편한 2만 파운드보다 목숨을 구해준 은혜도 갚고 관계를 더욱 돈독히 하는 5000 파운드 재산이 훨씬 더 값어치 있고 기분 좋게 느껴진다.


재산을 나누자마자, 제인은 가정교사로 일하는 사촌 자매들을 고향으로 돌아오게 하고, 그들과 같은 집에서 함께 살아가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이제 드디어 나의 진정한 집이 생긴 것 같아 행복하기만 했던 시간들이 점점 무거운 부담이 되어가기 시작한다. 사촌 오빠 존이 제인에게 특별한 관심을 갖고 교육시키는 것도 부담스러웠는데, 급기야는 결혼을 제안한 것이다. 제인을 사랑해서가 아니라, 제인이 의지가 굳고 선하고 희생적인 사람이라 함께 아시아 선교를 떠나기에 적당한 인물이라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결혼으로 묶여 떠나는 선교가 하나님의 뜻이라며 끈질기게 설득하는 존의 강압으로 혼란의 파도를 타고 떠내려갈 위기에 처한 제인은, 어떤 목소리를 듣는다. 바로 제인이 사랑하고 잊지 못하는 로체스터의 목소리다. 마침내 그녀는 로체스터를 찾아 떠난다.


로체스터의 저택을 찾아갔지만, 불타 무너져 내린 집터만을 발견한다. 제인은 마을 사람을 통해 그의 미치광이 부인이 화재를 일으키고 건물에서 뛰어내려 사망하였다는 소식을 들었다. 또한 로체스터가 그 화재로 실명하고 팔 하나를 절단해야 했으며, 어느 농가로 이사 갔다는 말도 듣는다. 제인은 로체스터를 찾아가 만난다. 그리고 깨닫는다. 그곳이 어디건 로체스터가 있는 곳, 서로를 위해 무엇을 주어도 아깝지 않은 사랑이 있는 곳이 자신의 진정한 집이라는 사실을. 두 사람이 아이들을 낳고 함께 그곳에서 살아가는 것으로 이야기는 끝난다.


이야기를 쭉 읽으면서 내내 불편하고 안타까웠는데, 원인은 바로 제인이 제대로 쉴 곳이 없다는 고아 처지 때문이었다. 부모가 일찍 돌아가시면서, 나를 지킬 수 있는 공간도 사라져 버리고 가난이 찰싹 들러붙었다. 그녀를 재워주고 먹여줄 곳, 일거리를 줄 곳을 찾아 종종거리며 전전할 수밖에 없다.


꾸역꾸역 노력해서 살아남아야만 했던 제인에게 재산이 생기니, 당당한 자유가 왔다. 그녀는 이제 자신의 운명을 선택하고 움직일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녀는 자신을 사랑하고 자신이 사랑했던 그 관계가 얼마나 소중한 것이었는지를 깨닫고, 그 관계 속에 거하는 것이 제대로 안식할 수 있는 진정한 집이라는 것을 마침내 알게 되었다.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선택하고 가족을 만들고 자신이 필요한 대로 집을 가꾸어 가는 제인의 행복한 모습을 보고서야, 내내 졸이던 내 마음도 마침내 안심하였다.



나의 쉴 곳


제대로 된 쉴 곳이 필요하다는 것을 어렸을 땐 이해하지 못했다. 내 방을 갖고 싶긴 했으나, 나 자신이 어떤 방을 원하는지,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 알지 못했다. 한 번도 염두의 우선순위에 든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특히나 학력을 가장 중요하게 여겼던 학창 시절엔 방 같은 건 가장 뒷전일 수밖에 없었다. 내 한 몸 누일 수 있으면 된다고 생각하고 가장 싼 방을 찾았다. 그나마 여자들이 우글거리는 입구가 환하고 깨끗한 느낌이 드는 하숙집을 찾아 안전을 도모하는 것으로 최선을 다했다고 자족했다.


나를 돌볼 줄 몰랐다. 나를 잘 먹일 줄도 몰랐고, 나를 잘 재줄 줄도 몰랐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내내 나를 잘 배려할 준비가 안된 가족 혹은 룸메이트와 방을 공유했었고, 나에게 방은 그저 밤에 잠깐 눈 붙이고 아침 동트자마자 벗어나고 싶은 동굴 같았다.


낮동안은 학교에서 도서관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취직하고 독방을 처음 썼을 때도, 야근을 도맡아 하며 실험실에서 시간을 보내다 밤늦게야 내 방으로 들어갔다. 내방이라는 공간에서 할 수 있는 것, 해야 하는 것, 그 공간에서 누리고 성취할 수 있는 것들을 알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방을 제대로 치우고 청소하는 일도 없었고, 침구 관리를 하는 일도 없이, 정말 말 그대로 '잠만 자는 방'으로 썼다. 가꾸고 관리할 줄 모르는 삶의 결과는 심신의 문제들로 드러날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다. 내 온 시간을 들여 앞만 보고 달리는 데도, 열심히 일만 하는데도, 쉽게 파도에 휩쓸리는 모래성만 쌓고 있는 느낌이 점점 크게 밀려왔다. 나는 두려웠고, 답답했고, 외로웠다. 내가 무엇을 위해 이렇게 살고 있는지 혼란스러워졌다.


결혼이라는 탈출구로 달아났다. 아이들을 낳아 키우면서 나는, 어느 날 문득, 장난감 그림책으로 발 디딜 틈 없는 공간에 갇혀 있는 '가난한' 자신을 발견했다. 신기하게도 아이들을 돌보며 아이들에게 무엇이 필요할까를 끊임없이 생각하는 연습을 한 것이, 나에게 필요한 것을 찾아내는 훈련이 되었다. 나는 내내 내게 필요한 것들을 상상했고, 생각 속에서 내가 필요한 것들을 더듬어 찾아보기 시작했다. 나를 위한 무엇을 생각하는 것이 쉽지 않을 때는 나 자신을 내가 키우는 귀한 무남독녀라고 상상하였다. 우리 딸이 필요한 게 뭘까 생각할 수 있는 엄마 근육이 솟아올라, 훨씬 나를 잘 도와줄 수 있었다.



마침내 나를 위한 방


나의 쉴 곳은 어떻게 만들어져야 할까. 나의 방에 무엇이 있으면 좋을까. 가장 중요한 건 서로를 사랑하고 존중하고 아끼고 돌보는 가족. 그런 사람들과 함께 사는 집. 내가 졸리면 언제나 편하게 잠을 잘 수 있는 방. 보송한 이불과 적당하게 편안한 매트리스와 베개. 그리고 여름에는 너무 덥지 않게, 겨울에는 춥지 않게 온도 조절 장치도 필요하다. 오랜 경험으로 나는 깨끗하고 따뜻하고 편안한 침구와 쾌적한 환경을 잘 갖추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게 되었다. 그리하여 사람이 편안한 밤을 보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기분 좋게 아늑한 방에서 내 몸에 따뜻한 이불을 덮어주는 일, 편안한 침구에 몸을 누이는 일은 마음으로 곧장 이어진다. 적당한 두께 딱 맞는 길이의 폭신한 이불을 덮고 있으면, 마음까지 구름 위를 거니는 듯 포근해져 온다. 나를 위해 내 몸을 쾌적한 상태로 보호하고 있다는 사실이 내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 몸과 마음이 제대로 쉴 수 있는 상태가 된다.


이왕이면, 방에 시원하게 큰 창이 하나 있어, 아침에 일어나 커튼을 걷으면 햇살이 쏟아지는 방이면 좋다. 비가 오는 날이면 빗소리가 들리고, 눈 내리는 날엔 눈 쌓인 풍경을 볼 수 있는 방. 그렇게 자연과 교감할 수 있는 방에서는 나는 더 건강해진다. 자연은 내 영혼에 끊임없이 말을 걸고 신의 뜻을 전하는 목소리다. 눈을 감고 나 혼자 있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비가 오거나 눈이 오는 것, 밖에 나무가 서 있는 것, 아침에 서서히 해가 떠오르는 것을 느낄 수 있다면, 나는 외롭지 않다. 문득 무서운 공포와 불안이 밀려오는 밤에도 나는 바로 창밖에 내 친구 자연이 끝없이 살아 숨 쉬고 운동하고 변화하고 신의 뜻대로 자신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고 있다는 걸 생각할 수 있다면, 두려움과 맞서 불면의 밤을 이기고 내일의 태양을 기다려 볼 수 있다.


밤에 잠자리에 들 때, 은은한 불빛 아래 책을 읽다가 손을 내밀어 딸깍 손가락 하나로, 깨어있는 시간을 끄고 잠자는 시간을 선택할 수 있게 해 주는 램프가 내 머리맡에 있으면 좋다. 가구는 작은 옷장과 책상 하나, 편한 의자 하나를 원한다. 장식으로는 내가 좋아하는 그림과, 내가 기대 누울 수 있는 푹신하고 큰 인형도 있으면 좋겠다. 내가 필요한 것을 다 갖춘 편리한 방은 내 마음을 언제나 설렘과 감사로 채워줄 것이다. 어떤 순간도 서늘하고 어색하고 불편한 마음이 스며들 틈이 없는 온화하고 친근한 방. 그런 낮과 밤. 시간과 공간이 만들어 주는 따뜻한 온기는 분명 내 마음을 위로하고 쉬게 할 것이다. 마음에 힘을 끝없이 공급해주는 것들, 내 마음을 달래고 붙들 수 있는 것들을 찾아내야 하고, 그것들을 내 곁에 가까이 두는 노력을 할 필요가 있다. 나는 때때로 쉼과 위로가 필요한 존재임이 분명하니까.


실제로 나의 침실에 이런 것들을 갖추고, 나는 훨씬 더 편안해졌다. 잠을 이루기 어려운 밤, 혹은 자다 새벽에 깨어 다시 잠들지 못할 때 검은 불안이 밀려올 때에도, 나는 창 밖을 떠올리거나, 램프 등을 켜서 마음을 가라앉힐 수 있다. 그 정도로 의식을 깨울 수 없을 때에도, 내 방 창을 닮은 마음의 창을 활짝 열 수 있고, 내 머리맡 램프를 닮은 마음의 등을 켜 따뜻하게 스스로의 내면을 밝혀줄 수 있다. 그럴 때 나는 내 공간을 꽉 채우고 있는 따뜻한 기운을 더 가까이 느낄 수 있다. 나를 사랑하는 존재의 마음을 더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확실히 따뜻하고 쾌적한 침실을 짓는 것은 나를 사랑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나를 편안하게 잠들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은 인생의 가장 중요한 일 중 하나다. 사람은 매일 충분히 쉬어야만, 다음 날 최대치의 에너지를 가슴 가득 충전하고 다시 피어날 수 있다. 그 에너지 없이는 일도 생각도 아무것도 제대로 할 수 없는 자연의 섭리를 무시하고, 제대로 매일 충전하지 못하더라도, 달리고 또 달리고 지식을 채우고 또 채우라고 이 사회는 강요한다. 그럴 수 없다. 배터리가 제대로 충전되지 않은 상태로 사람은 끝없이 달릴 수 없다. 그런 몸과 마음으로는 열심히 달렸어도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없다. 매일의 쉼과 충전, 여유를 꼬박꼬박 챙기는 것이 사람에게 훨씬 더 유익한 일이고 필요한 일이다. 때로 내일이 없는 것처럼 다 내려놓고 쉴 줄 아는 사람이 될 필요가 있고, 나 자신에게 안온한 휴식 공간을 꾸며 선물할 필요가 있다. 꼭 그래야 한다. 그 정도도 해 주지 않고 내 마음이 행복하기를 감히 바랄 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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