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자기 마음 집
따뜻한 위로가 필요할 때
19세기 탁월한 영국 여성 작가, 샬롯 브론테와 에밀리 브론테 자매는 참 기구한 운명을 살았다. 아주 어린 나이에 어머니와 위로 언니 둘을 잃고, 에밀리 브론테는 30을 갓 넘긴 나이에 결핵병으로 요절했으며, 샬롯 브론테는 결국 여섯 형제자매들을 다 잃고 아버지와 둘이 몇 년을 더 살아가다 37세에 아버지가 우려하는 늦은 결혼을 하고, 38세에 임신한 채 죽음을 맞는다. 아버지를 제외한 집안 식구들이 모두 몸이 몹시 약했던 편이었다고 전해진다.
몸이 약한 사람은 추위와 피로감에 취약하다. 브론테 자매들은 뜨거운 열기에 심신을 의지할 수 있는 벽난로를 매우 좋아하고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을까. 자신의 방을 따로 쓸 수 없는 가난한 환경에 벽난로가 있는 거실 한 구석에서 남몰래- 브론테 자매들은 글을 쓰고 있다는 것을 서로에게 들키고 고백하며 알게 되었다고 한다- 상상의 세계를 펼치며 글을 쓰는 일이 그들이 가장 즐거워했던 일이 아니었을까.
샬롯의 <제인 에어>와 에밀리의 <폭풍의 언덕> 두 작품 다 어딘지 기괴하고 춥고 서늘하고 축축한 비밀스러운 고립의 기운이 감돈다. 그리고 누군가는 미쳐있거나 다치고 병들고 죽는다. 그들의 소설 속에서 그런 인간의 모든 고통스러운 경험과 대조를 이루며 사람을 위로하는 것은 따뜻한 온기다. 지치고 언 몸을 녹이고 다시 일어날 기운을 주는 것은 활활 타는 벽난로와 따끈한 죽이다.
내 마음의 거실
모든 인생에 춥고 힘든 겨울이 있다. 모든 마음이 싸늘하게 쓰리고 아플 때가 있다. 춥고 힘들 때, 지치고 절망할 때, 풀썩 그 앞에 쓰러져 따뜻한 위로를 바랄 수 있는 벽난로가 있는 거실을 내 마음에도 짓고 싶다.
벽난로는 간간이 타닥타닥 소리를 내며 활활 불을 태울 것이다. 벽난로는 책이 가득 꽂힌 선반으로 둘러싸여 있을 것이다. 선반 위의 책들은 내가 여러 번 읽었던 책들, 좋아하는 책들과, 당장 펼쳐 읽고 싶은 흥미로운 명작들, 꼭 읽어야 할 통찰력 충만한 책들로 이루어졌다. 활활 타오르는 불은 생명이고 희망처럼 느껴진다. 그 앞에서 책을 펼치고 읽을 때, 좋아하는 작가의 이야기를 들을 때는 마치 모든 안온함을 손에 쥔 것처럼 위로받는다.
벽난로 앞에는 포근한 재질의 양탄자가 깔려있고, 푹신한 쿠션이 유혹하는 소파와 의자들이 놓여있다. 작은 테이블에는 누가 정성으로 차린 향기로운 차와 입맛 돋우는 영양 가득 간식이 있다. 보드라운 털을 가진 고양이가 살금살금 소리 소문 없이 다가와 내 무릎을 차지하고 안기면, 따뜻한 온기가 배로 더해져 마음은 그림 속 호수처럼 고요해지고 급기야 졸리기 시작할 것이다.
내 마음 안에 이런 위로의 공간, 젖은 몸을 말릴 열기가 있다면, 밖에 바람이 불어도 눈보라가 몰아쳐도 희망이 있다. 다시 뽀송뽀송하게 기분이 산뜻해질 기회가 있다.
거실의 단점을 극복하는 법
거실은 공용 공간이기에 때로 소란스럽고, 누가 들어오고 나가고 문이 열릴 때마다 비바람이 들이친다. 늘 무슨 일인가 일어나고, 움직이고 생활하는 역동적인 공간이다. 이것은 마치, 아침에 일어나 밤에 조용히 잠들기 전까지의 우리 마음과 같다. 날이 밝고 하루 일과가 시작되는 순간부터, 학교에서, 일터에서 우리 마음은 수많은 사람들이 드나들며 소란을 떨고, 때론 마음을 차갑게 적시거나, 얼음장같이 얼려버리기도 한다.
제인 오스틴이나 브론테 자매들 같은 19세기 귀족이 아닌 신분의 평민 여성 작가들은 자기만의 방을 가질 수 없었기에 거실에서 생활하며 글을 써야만 했다고 한다. 사람들과 많이 접하고 사람들을 관찰할 기회가 많았던 만큼, 소설 속 사람들 간의 대화를 맛깔스럽고 찰지게 그려 낼 수 있었으며, 다양한 신분 연령 성별 직업군의 사람들에 대한 묘사가 정확하고 치밀한 데생처럼 구체적이고 입체적이어서, 마치 진짜 사람들이 내 앞에 서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같은 생생한 느낌을 준다. 이런 묘사 능력은 200년 전의 이야기를 바로 나의 내면 안으로 끌고 들어와 감정을 일으키고, 예민한 감각으로 느끼고 경험하게 해 준다. 덕분에 그들의 이야기는 시간이 지나도 결코 무뎌지지 않는 예리한 칼날처럼 살아 어느 시대 독자와 마주하든 그 심장 한가운데를 파고든다. 길이길이 회자되고 거듭거듭 최신 문화로 재탄생하여 사람들을 감동시키고, 소중한 현대 문화의 일부로 살아간다.
나의 내면도 거실의 장점을 잘 갖추고 단점 또한 장점으로 만들어 나갈 수 있어야 한다. 내 마음에 일어나는 모든 일들, 다시 말해 내가 낮동안 이 사람 저 사람과 부딪치며 겪는 모든 일들, 이 상황 저 상황을 경험한 결과들은 내가 인간 본성을 파악하고, 나를 더 강하게 단련하여 나의 이야기를 맛깔나게 써 내려가기 위한 자원이 될 수 있다. 내가 나의 경험이 나에게 하는 역할을 정하면 된다.
나의 경우는, 언어와 문화가 다른 타국 땅에서 살아가며 외국인과의 공감과 연결에 아무런 기대나 관심이 없는 무심하거나 때론 적대적인 시선이 비바람 폭풍이 되어 창문을 두드리거나 문틈으로 들이칠 때가 많았다. 관계를 맺어보려는 노력이 상처와 소외감이라는 가뭄을 더 심화시킬 때도 있었고,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휩쓸리게 되는 홍수 재난을 당할 때도 있었다.
나는 불행한 일을 당하고 있다며 자기 연민이라는 동굴에 스스로를 가두는 대신, 그 모든 거친 경험들을 내 이야기의 소재, 내 인생의 자원으로 쓰기로 마음을 굳혔다. '나를 쳐 봐, 더 강하게 일어설 테니'라는 스타워즈 태도로 누가 배를 치려 하면, 복근을 돌처럼 단단하게 만들 기회라 여기고, 두려움을 떨치고 밖으로 나가 기꺼이 낯선 세상에 도전하였다. 나는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는 대로 새로운 경험과 일에 도전하였다. 나는 좋은 기회를 얻어 후원을 받으며 세계를 여행 중이라고 여기기에 이르렀다. 내가 한국에 살았다면, 미국에 가서 몇 년 살며 글을 써 보고 싶어 했을 거라는 걸 상기시키고, 나는 지금 미국에서 몇 년째 글 여행 중인 사람이 되었고, 때론 임금 받은 스타 배우가 되어 할리우드 영화 세팅장에서 이방인 방랑자 역할을 맡기도 했다.
헤매고 방황하고 때론 다치고 때론 추위에 덜덜 떨어도 괜찮다. 나를 따뜻하게 맞아 줄 내가 지은 거실이 있기 때문이다.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길이 화르륵 화르륵 솟아나 나를 녹여내고 살려내는 벽난로가 있기 때문이다. 잠시 기력을 잃고 축 늘어진 몸을 의지할 푹신하고 포근한 아늑한 가구와 쿠션과 양탄자가 있기 때문이다. 내 마음이 다 갖추고 위로할 준비를 하고 있어서 괜찮다.
대문 이미지 출처: Pixabay (by dandelion_te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