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자기 마음 집
천박한 공간이었던
최근 제인 오스틴과 브론테 자매들, 그리고 찰스 디킨스로 이어지는 19세기 영국 소설을 연달아 읽으면서 확실히 결론 내릴 수 있었던 한 가지는 부엌이 영국 사회에서도 오랫동안 천박한 공간이었다는 것이다. 요리는 온갖 날 것 그대로의 거친 식재료를 다루는 천한 일이어서 하녀들이나, 하녀를 둘 형편이 안 되는 가난한 사람들의 몫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에서는 여자 주인공과 자매들의 어머니가 '딸들에게 요리를 시키지 않을 정도의 형편은 되는 집안'이라고 잘 보여야 할 사윗감 후보에게 은근히 집안 형편 수준을 알리는 장면이 나오고, 찰스 디킨스의 <위대한 유산>에서는 처음으로 미스 해비셤과 그녀의 양딸 에스텔러가 사는 귀족 저택을 다녀온 후, 계급 서열 간극을 심하게 느낀 주인공 핍이 절망에 빠져 '저들은 부엌 같은 천박한 공간에는 절대 들어가지 않을 거야'라고 부엌에 앉아 있는 자신을 비참해하는 장면이 나온다.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에서도, 부엌일과 상차림을 도맡아 해주는 하녀를 두고 살던 귀족 아가씨가 부엌에 들어가 직접 일해야 하는 상황에 처해 몹시 난감해하고 비참해하는 장면이 나온다.
어렸을 때 온몸으로 느꼈던, 남자들이 부엌 출입을 해서는 안된다 하셨던 할머니의 고집스러운 신념을 - 이 신념은 한 번씩, 죄 많은 전생이 여자로 태어나 벌을 받는 거라며 서러운 눈물로 터져 나오기도 했다. - 기억한다. 대가족이 살았던 우리 집에서 아빠나 삼촌들이 부엌에 출입하는 일을 본 적이 없었다. 물 한 잔도, 라면 한 그릇도 스스로 차리기보다 가족 중 만만한 여자 식구 누군가에게 시켜서 시중을 받았다. 제사나 명절에 많은 사람이 모일 때도, 남자들은 음식과 술을 나누며 거실을 차지하고 점잖은 행색으로 다리를 뻗고 앉아 있었던 반면, 여자들은 부엌에서 기름 연기를 실컷 뒤집어쓴 채 종종거리며, 뻐근하게 아파오는 요통을 견디고 있을 뿐이었다.
하루 종일 쉼 없이 하얗게 질린 얼굴로 부엌에 서 있던 엄마의 모습, 음식을 타박하고 싶은 심통들이 막말과 잔소리, 날아다니는 밥상의 역동적인 물리현상으로 표현되는 공포 학대의 공간, 이 기억이 내겐 오랫동안 트라우마로 남아 있었다. 이런 무서운 부엌에 갇히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 인생 목표였고, 그래서 나는 목숨을 건 사람처럼 열심히 공부했고, 남자들 사회에서 그들의 일원처럼 살아갈 수 있게 해 줄 것 같았던 공대에 진학했었다.
부엌을 다시 짓기
부엌은 오래도록 내 머릿속에서 소름 끼치는 천박한 공간이었다. 지금은 아무도 부엌을 천박한 공간이라 여기지 않을뿐더러, 나처럼 부엌을 무서워하는 사람을 본 적도 없다. 요즘 미디어가 보여주는 현대의 부엌 문화는 남녀를 구분하지 않는다. 온 가족이 모이는 거실과 긴밀하게 연결된 열린 부엌 스타일이 대유행이며, 부엌은 어느새 우리 생활공간의 가장 중요한 구심점이 되어 있다. 부엌을 잘 꾸미고 갖추고 요리를 잘하는 것이 능력이 된 세상이며, 아무도 부엌에 들어가는 것을 부끄럽게도 서럽게도 생각하지 않는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내 내면이 붙들고 있는 어린 시절의 부엌을 부수고, 다시 지어야겠구나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내 머릿속의 부엌은 깨뜨릴 필요가 있는 허상임을 깨달았다. 진짜 부엌은 여자들만 억지로 들어가는 닫힌 공간이 아니며, 눈물과 두려움이 가득 차오르는 상처도 아니다. 긴장할 필요도 없고, 걱정할 필요도 없다. 내가 주인이 되어 편안하게 쓸 수 있는 편리하고 유용한 공간이다.
남의 부엌과 비교할 필요도 남을 따라 할 필요도 없다. 내가 필요로 하는 도구와 식재료만 잘 구비하고, 내가 좋아하고, 만들고 싶은 음식을 만들 수 있기만 하면 된다. 나는 가족들과 동등한 입장에서 함께 부엌일을 하고, 내 가족 내 손님에게 음식을 차려준다. 대단한 요리가 아니라도, 즐거운 감정이 부엌 공기를 메우고 있다면, 소박한 밥상도 괜찮다. 소박한 음식은 오히려 부담 없고 소화가 잘 되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가장 중요하고 따뜻한 공간
내가 내 속을 뒤집어엎어 가며 부엌을 다시 짓는 이유는, '먹일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기 때문이다. 부엌을 쓸 줄 알아야, 나를 먹이고 나의 사람들도 먹일 수가 있다. 먹일 줄 아는 사람이 되는 것은 '하녀'가 되는 것도 아니고 '천박하고 낮은 존재'가 되는 것도 아니다. 먹이는 것은 생명과 치유를 주는 고결한 행위다. 의사가 하는 일과 비교해서도 결코 못한 일이 아니다. 누군가 좋은 식재료를 써서 정성으로 음식을 해서 사람을 살리겠다는 마음으로 음식을 공급하고 있다면, 그 사람은 (혹은 그 식당은) 생명과 치유를 위한 양분을 만들고 공급하는, 종합 병원 못지않게 사회에 꼭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부엌일은 나에게 자괴감과 공포감을 일으키는 괴로운 과정이었지만, 나는 꾸역꾸역 견디며 나를 '먹일 줄 아는 사람'으로 훈련시켰다. 나에게는 그것이 시간이 지나도 변치 않는 진짜 훌륭한 가치였고, 그 가치를 실천하고 싶은 욕구를 끊임없이 강하게 느꼈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겐 요리가 재미로 자연스럽고 쉽게 익히는 과정이었을지 모르겠지만, 나에게는 한 겨울에 얼음을 깨고 입수하는 것 같은, 정신적 신체적 한계를 뛰어넘는 모종의 극기 훈련이었다.
나는 결코 우리 어머니 세대가 습득한 음식 수준에 도달하지는 못하였지만, 나는 내가 이를 수 있는 최고치까지는 이르렀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는 부엌에 들어가도 설사 복통이 일어나지 않으며, 검은 천막 같은 어두운 그림자가 공간의 색감을 지배하지도 않는다. 불이 무섭지 않으며, 어떻게 무엇을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암담하고 음울한 감정에 잠식되지도 않는다. 꽤 가벼운 마음으로 밥을 안치고 생선을 굽고 국을 끓이고 전을 부칠 수 있다. 볶음밥을 꽤 맛있게 만들 수 있으며, 파스타 떡볶이 같은 별식도 편안하게 조리할 수 있다.
오늘 먹을 음식을 온 가족이 함께 의논하고 장보고 정리하는 시간, 맛난 음식 냄새가 아이들을 부르는 초저녁의 따스한 공기, 아이들이 허겁지겁 수저를 분주히 움직이는 달그락 소리를 즐길 수 있게 되었다. 모두 부엌을 중심으로 쌓여가는 추억이다. 부엌이 모든 중요한 순간의 중심이고, 피와 살을 공급하는 중요한 임무 센터다. 나는 내 안의 부엌을 다시 지은 후부터, 이 특별한 공간과 시스템의 총책임자로서 정체성을 확고히 지키며 부엌에 발을 단단하고 안정적으로 붙이고 설 수 있게 되었다. 몹시 재건하기 어려웠던 공간을 이루어낸 뿌듯함을 느낀다.
대문 이미지 출처: Pixabay ( by loginueve_ilustr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