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고 싶은 기억 장례식'을 준비하며
정돈된 환경, 정돈된 라이프 스타일, 정돈된 감정과 생각까지 미니멀리즘과 함께 걸어온 시간은 제 삶에 많은 유익하고 만족스러운 결과물들을 남겼습니다. 이제 저는 미래를 생각하며 새로운 미니멀리즘 프로젝트를 계획해 보려고 합니다.
얼마 전, <데이브 램지 쇼>를 듣는데, 13년간 혼신의 힘을 다해 사업을 일구어 온 37세 남자의 사연이 올라왔습니다. 그는 결혼을 했고, 곧 한 돌이 되는 아기가 있다고 했어요. 경쟁업체로부터 1.8 밀리언 달러에 사업체를 팔고, 연봉 20만 달러를 받고 3년 간 일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좋은 값에 사업체를 넘기고, 넉넉한 연봉을 받으며 3년간 일하고 나면, 풍족한 재산이 생기고, 사업과 일에 쏟던 에너지를 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데 쓸 수 있는 일생일대의 기회가 찾아온 것이었습니다. 그와 그의 내는 매우 들떠 있었어요. 그러나 청천벽력 같은 코로나 상황이 닥치고, 모든 게 무효화되었다고 합니다. 좋은 기회가 물 건너간 아쉬움이 너무 커서 그는 현재 사업에 다시 집중해서 일하기가 너무 힘들다고 호소를 했어요.
데이브 램지가 한 가지 방법을 제안합니다.
'놓친 기회 장례식'을 지내세요.
아내와 함께 그 일이 계획대로 일어났을 경우 좋은 점과 안 좋은 점을 하나하나 적어서, 그 종이를 앞에 놓고 '놓친 기회 장례식’을 지내라는 굉장히 특이한 조언을 했어요.
처음엔 이성적이고 지혜롭기로 소문난 미국 최고의 재정 전문가가 무슨 이런 귀신 씻나락 까먹을 조언을 할까 어이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 조언에 대해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그게 참 과거를 정리하기에 좋은 방법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마음에 남았습니다.
생각보다 많은 상황에서, 진지한 물리적인 의식을 행하는 것이 도움이 되는 때가 있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생일에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음식을 차려 먹고, 케이크에 초를 꽂고 노래를 부르고 소원을 빌고 불을 끄는 그 의식을 하는 것 자체가 생일을 참 생일답게 잘 보내었다는 흡족함을 가지고 그 날을 넘어가도록, 그 생일이 좋은 추억으로 남도록 도와줍니다. 생일이란 건 새로운 나이를 맞는 환영식 같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론, 한 살 더 먹으면서, 한 살 더 어렸던 나를 보내는 일종의 ‘장례식’의 의미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어쩌면 모두가 자신의 생일만큼은 먹어야 할 것 다 먹고, 물리적인 의식을 동반해서 특별하게 보내야 속이 시원한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저도 정리되지 않은 모든 과거의 기억들에 대해 ‘잊고 싶은 기억 장례식’을 치르려고 합니다.
먼저 마당에 놓고 쓸 수 있는 화로를 하나 살 거예요. 그리고
아쉬운 기억,
안타까웠던 일,
몰라서 저지른 실수,
혼자 이불 킥하는 기억,
누군가에 대한 미움 원망,
아깝게 억울하게 놓친 기회들,
한때 바랐지만 이루지 못한 꿈들,
지금까지 나를 속여온 세상의 거짓말들,
나도 모르게 내 안에 스며든 자기혐오적 생각들,
위에 열거한 모든 것들과 미처 생각나지 않아 여기에 적지 못한 모든 것들에 대한 장례식을 치를 거예요. 종이에 그 일들에 대한 간단하거나 복잡한 기록을 원하는 만큼 한 후에, 그 기록지를 불에 활활 태우면서 장례식을 치를 거예요. 물론 화로는 장례식 전용 화장터가 되게 하지는 않을 거예요. 장례식은 저만의 비밀이고, 공식적으로는 가을 겨울에 식구들이 둘러앉아 군밤이나, 군고구마, 마쉬멜로우를 구워 먹는 정겨운 가족 시간 분위기를 만들어 주는 용도가 될 거예요.
그 ‘장례식’을 생각만 해도 속이 시원해지는 것을 보면, 저에게는 장례식이 필요한 과거의 기억들이 줄을 서 있는 모양입니다. 그 줄서 있는 기억과 각종 잡념들을 하나하나 이름을 불러주면서 정성스럽게 보내 줄 거예요. 너무 잘 대접받고 떠나서, 다시는 돌아 올 미련을 갖지 않게.
떠나보낼 것을 확실히 떠나보내고 나면, 제 삶의 군더더기가 다 떨어져 나가고, 더 완전한 치유와 회복이 일어날 것 같은, 더 큰 자유가 찾아올 것 같은, 더 밝은 미래가 펼쳐질 것 같은 예감입니다. 이렇게 기대되는 장례식은 처음이라 좀 당황스럽지만, 진심 이 장례식을 즐기게 될 것같은 느낌. 설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