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미니멀리스트의 사생활
양자역학보다 어려운 인간관계
지금까지 들어본 수업 중에서 가장 어려웠던 과목을 꼽으라면, 고체물리학 - 양자역학의 태동과 함께 시작된 학문 -이 단연 최고봉이었다. 그럼에도 간혹 이해를 하는 천재들이 있었으므로, 그들을 열심히 찾아다니며 배우고 달달 외우는 성의를 보여 겨우 재수강의 늪을 피하고 학위를 향한 험준한 산을 넘어갈 수 있었다. 앞으로 다시는 고체물리학 근처엔 얼씬도 말아야겠다는 교훈도 얻어 챙겼던 덕분에 나는 이후 그 과목과 먼 거리를 유지하며 살아나갈 수 있었다.
문제는 인생이야 말로 고체물리학보다 더한 난제가 한가득인 돌밭이라는 현실이다. 학을 뗐던 고체물리학의 난해한 향이 텃밭에 뿌린 거름 냄새처럼 인생길 전체에 진동을 한다. 그중에서도 가장 어려운 영역은 인간관계다. 인간관계가 어떤 학문 영역보다 더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어디 물어볼 데도 없고, 천재가 풀어놓은 예상 문제 답안도 없으니, 나이를 아무리 먹어도 혼자서 밀림을 헤매고 다니는 원시인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느낌에 좌절감 패배감이 끝도 없이 파도를 친다. 인간관계에 대해 위대한 사상가 전문 심리학자의 조언을 들어도, 그런가 싶기도 하다가 막상 현실 문제를 만나면 다시 혼란이라는 뻘밭에 빠져 허우적대기 일쑤다.
신이 인간에게 내린 몇 안 되는 구체적인 명령 중 하나가 '이웃을 사랑하라'임에도 불구, 이웃, 지인이라는 관계는 공중 외줄 타기처럼 얼마나 불안정하고 위태로운가. 사랑해야 하는데 도저히 사랑의 감정이 생기지 않는 딜레마 속에서 인간은 인생 잘못 살고 있다는 느낌, 정말 아닌 인간들과 재수 없게 엮였다는 실패감에 끝없이 시달리며 평생을 살아간다.
나이를 먹을수록 새로운 사람에게 다가가기는 더 어렵다. 이미 주변에 쌓여있는 인맥이 많으니, 나와 안 맞는 사람일 가능성이 50%나 되는 새로운 사람을 알아갈 노력을 굳이 하기가 귀찮다. 마음을 열고 시간과 에너지를 쏟으며 다가가도, 결국 적이 되고 마는 관계를 양성할 가능성이 언제나 있고, 그 가능성이 조금만 실현되어도 너무 아픈 경험이 되기에 미리 포기하고 만다. 인간관계에 수없이 데인 입장에서, 이젠 민낯으로 마음을 열고 만나는 친구가 아닌, 가면을 쓰고 진심을 숨긴 채 상대하는 지인을 만들게 될 뿐이라는 걸 이미 알고 있다. 선명한 호감이 자리잡지 못하면, 찝찝한 감정을 품고 불편한 관계로 발전하기 쉬운 지인이라는 어중간한 관계의 단점을 충분히 알고 있으니, 굳이 또 한 명의 지인을 만들기 위해 나서지는 않게 되는 것이다.
지구촌 여기저기서 끝없이 전쟁이 발발하고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는 게, 사람들이 각종 상황에서 쉽게 갈등으로 치닫는 게 결국은 근본적으로 '관계 문제'를 지혜롭게 풀지 못하는 탓이 아닐까. 전 세계 전 인류가 돈으로도 힘으로도, 어떤 위대한 지도자의 영민한 지혜로도, 역사라는 시간을 쏟아붓고도 끝내 해결하지 못하고 골머리를 싸고 있는 오랜 숙제 그 근본을 따지고 들면 '관계 문제'에서 시작하는 게 아닐까. 우리는 어떻게 해야, 이 복잡하고 어렵고 예민한 관계 문제의 해답을 얻을 수 있을까. 어떤 관계에 집중하며 어떤 노력을 해 나가야 하는 걸까.
사람의 장점을 크게 볼 줄 아는가
어떤 사람들과도 즐겁게 잘 어울리는 어느 친척 어른이 나에게 오래전에 해 주신 - 아직도 잊히지 않는 - 말씀이 있다.
행복하게 살아가려면, 주변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맺을 줄 알아야 하고, 주변 사람과 좋은 관계를 맺고 살려면, 각 사람의 장점을 크게 볼 줄 알아야 한다.
나는 아직도 그 말의 비밀을 풀지 못했다. 나는 그 사람의 단점 - 나를 힘들게 하는 - 을 덮어주고 장점을 크게 봐주기가 힘들다. 그동안 그 사람의 단점 때문에 스트레스에 시달린 게 억울한 기분이 들고, 그 사람을 내 위에 놓는 것 같은 위협감이 들고, 그 사람의 단점을 가려주고, 그 사람의 장점을 부각해 주는 게 그 사람이 자기 단점도 모르고 기고만장하게 굴까 봐 영 찝찝하다. 사과도 제대로 하지 않은 학폭 가해자와 진정한 우정을 맺어라는 요구처럼 느껴질 정도로 부담스럽다. 아마, 수많은 사람들이 비슷하게 생각하고 있어서, 타인을 칭찬하고 좋은 평가를 주는 일에 인색한 것인지 모른다.
이런 내 사고와 감정의 흐름에 나는 확신이 없다. 이렇게 생각하고 느끼며 살아온 시간들이 나를 행복과 평화로 이끌어 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나를 의심해 보기로 한다. 혹시 나는 '그 사람의 장점을 크게 봐주기'를 할 줄 모르는 게 아닐까. 아예 그 길로 가는 첫걸음도 못 뗀 게 아닐까?
나는 사람 눈치를 본다. 상대의 감정에 예민하다. 그래서 상대의 단점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에서 너무 참는 경향이 있다. 좋은 관계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려면, 그 사람 칭찬 위주로만 말을 해 주어서 분위기를 하하 호호로 유지해야 한다는 조바심을 느낀다. 문제는 내가 아무리 참고 착한 모드를 유지하며 노력해도, 결국은 늘상 같은 패턴으로 관계가 무너진다는 거다. 내가 묵묵히 상대의 비위를 맞출수록, 상대의 태도는 거만해지고 나를 함부로 대하기 시작한다. 이런 느낌에 예민한 나는 기분이 상하기 시작한다. 저 사람 단점도 많은데, 단점은 얘기를 못하겠어서 입을 꾹 닫았는데, 단점 고칠 노력은 하지 않고, 장점 구름 위에 붕붕 떠서 자신이 어디서나 자랑스럽고 사랑스러운 존재라고, 나를 짓밟아도 될 만큼 우월한 존재라고 믿어버리는 게 나는 기가 찬다. 애초에 장점을 말해주지 말았을 걸 싶다. 가족의 경우는 언젠가 별 것 아닌 일에 감정적으로 터져 나와 버리고, 어중간한 지인에게는 연락을 점점 피하게 된다. 매일 보는 직장동료와의 관계는 지옥으로 치닫다가 내가 직장을 옮겨가야 하는 지경에 이른다.
하지만 옮겨가도 소용없다. 어딜 가든 내 문제로 발생하는 똑같은 패턴이 반복되기 때문이다. 내 문제는 다름 아닌 '아부 근성'이다. 내가 상대의 감정에 전전긍긍하며 칭찬을 덥석 덥석 던져주고, 긍정적인 해석을 해 주려고 노력한 것은, 한 마디로 무서운 부모 밑에 자라며 발달한 '아부 근성'에 지나지 않는다. 상대의 눈치를 보며, 상대가 좋아할 만한 칭찬을 해 주는 것은 진심으로 상대의 장점을 더 크게 보는 행동이 아니다.
장점을 판단하는 중심 기준을 상대에게서 나에게로 옮겨와야 한다. 상대가 들으면 좋아할 만한 장점을 찾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감사한 마음을 주는, 내 기준으로 인정할 수 있는 장점을 찾아야 한다. 내가 그 사람 때문에 한 가지라도 좋은 영향을 받는 게 있는가를 생각해 보면 답이 나온다.
- 덕분에 나를 믿어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지 알게 되었다.
- 덕분에 사람에게 의존하지 않고 독립적으로 살아가는 힘을 가지게 되었다
- 덕분에 어떤 부모가 되어야 하는지에 대해 정말 많이 생각하고 공부하게 되었다
위에 열 거한 것은, 내가 살아오면서 장점을 찾기 힘들었던 정말 싫었던 사람 세 사람을 생각하며 찾은 감사하는 점이다. 이로써 꽤 싫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한 가지 정도는 감사할 점, 내가 장점으로 인정할만한 점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내가 진심으로 감사하면, 그 장점을 진심으로 인정해 줄 수 있다.
장점을 단점보다 크게 볼 수 있는 거리
'각 사람의 장점 발견하기'는 해결되었다. 이젠 아무리 싫은 사람에 대해서도 내가 진심으로 인정하는 장점을 발견할 수 있다. 하지만, '장점을 단점보다 크게 보기'라는 숙제가 남아 있다. 오랫동안 곰곰이 생각한 끝에 나는 이런 답을 찾았다. '거리 조절하기'가 바로 내가 찾은 답이다.
조절해야 할 '거리'는 물리적 거리일 수도 있고, 정서적 거리일 수도 있다. 위에 언급했던 정말 싫은 사람의 경우는, 물리적 거리와 정서적 거리를 매우 넓혀야 했다. 그들과 마주치지 않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들과 있었던 안 좋았던 기억을 평소에 자꾸 생각하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단점을 거의 보이지 않게 만들어야 겨우 찾은 콩알만 한 장점을 크게 볼 수 있었다.
단점이 적고, 장점이 많을수록, 혹은 단점보다 장점이 발견하기 쉬울수록, 더 자주 만나는 관계가 가능하다. 말실수는 적고 좋은 에너지를 주는 친구들, 좋은 가격에 묵묵히 좋은 서비스를 주는 단골 가게 사람들, 좋은 습관 취미를 함께 하며 서로를 응원하는 동호회 소모임 식구들,... 생각보다 수많은 다양한 사람들에 대해 장점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단, 나도 그들에게 단점보다 장점이 더 크게 느껴지는 사람이 되어주어야, 서로 장점을 크게 보는 좋은 관계가 지속될 수 있다. 어떤 계기로 단점이 장점을 이기고 들어서는 순간, 관계는 한순간에 뒤집히고, 좋았던 친구가 인연을 끊어버려야 할 악연이 되어버리기도 한다. 함께 보낸 시간이 길고 나눈 정이 깊었던 인연일수록 더 큰 악연으로 변질될 위험성이 다분하다.
단점이 크게 밀려오는 순간이 오면, 거리를 두고 한 걸음, 두 걸음 물러나면 된다. 단점이라는 파도가 내 발끝에 닿지 못할 정도의 해변가 높은 곳에 서서, 파도 위의 푸른 하늘 같은 장점을 바라보면 된다. 너무 자주 만나지 않으면서, 너무 자주 대화하지 않으면서 그 사람의 장점을 크게 보고 있으면 된다.
가족도 마찬가지다. 단점이 너무 크게 밀려와서 감당이 안될 때가 있다. 가족이 어려운 것은, 서로 너무 가까이 있다 보니 작은 일에 더 크게 실망하고 화를 내게 될 가능성이 많고, 편한 만큼 서로에 대해 잘 알아갈 노력을 하지 않고 함부로 대하다가 지속적인 상처를 주게 되기 쉽다. 모든 면에서 너무 안 맞는 사람끼리 부부로 혹은 부모 자식으로 매일같이 붙어지내야 하는 고통, 학대와 폭력이 난무하는 역기능 가정생활을 견뎌야 하는 고통은 지옥 그 자체일 수 있다. 가족 또한 단점이 느껴지지 않는 거리로 멀어져서 가족을 여전히 사랑하고 돌볼 수 있다. 사실 가족이란 멀리서 볼 수록 더 애틋해지는 법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집에서 엄마를 잔소리꾼으로만 느끼던 아들이 군대에 가서 엄마가 해주던 정성스러운 집밥을 떠올리며 엄마에게 감사한 마음이 북받쳐 올라 진심으로 고맙고 사랑한다고 편지를 쓰게 된다. 물리적 거리 덕분에 아들이 마침내 엄마라는 존재의 단점을 작게 보고 장점을 크게 볼 수 있는 지점에 이른 것이다.
내 힘으로 거리 조절을 할 수 없는 어려운 관계
물리적 거리, 만남 횟수를 조절할 수 있는 관계는 비교적 쉬운 관계다. 피할 도리 없이 매일 붙어 있어야 하는 힘든 가족, 직장 상사 및 동료가 가장 큰 난제다. 물리적 거리 조절이 힘들다면, 정서적 거리 조절에 더 신경을 써야 한다. 의존하고 있는 관계라면, 일단 그 의존에서 빠져나와야 한다. 그 사람이 없어도 내 삶을 독립적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준비를 해야 한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떠날 준비, 떠나서 행복해질 준비를 할 수 있도록 스스로를 도와야 한다. 가능한 관심을 두지 않고 내 일에 집중하는 노력도 필요하다. 매일 같이 붙어 있지 않게 스케줄을 조절하는 방법도 있다. 함께 사는 가족도 조금은 거리를 두고, 각자의 생활을 존중해야 한다. 약자라도 강요하지 말고 억압하지 않아야 하며, 내가 낳은 자식 나를 낳은 부모라도 내 맘 내 가치관과 같을 거라 기대하지 말아야 한다. 최대한 각자의 라이프 스타일과 성향을 존중하고 지지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내 라이프 스타일이 굳건히 서 있고, 내가 내 성향을 지지해 주고 나를 믿어주고 잘 돌봐 주는 일이다. 스스로를 잘 책임지고 도울 줄 아는 독립적이고 강한 어른이 될수록, 어떤 상황에 처해도 좋은 관계를 잘 맺고 어려운 관계를 잘 헤쳐나갈 가능성이 더 커진다.
때론, 자꾸 코앞에 들이대는 상대의 치명적인 단점을 보지 않기 위한 공격적인 전략이 필요할 때도 있다. 가령 약속 시간을 지키지 않아 나에게 큰 스트레스를 주는 단점을 가진 사람이라면, 밖에서 만나는 약속을 잡기보다, 내가 특정 시간에 그 사람을 방문하겠다고 하면 된다. 부정적인 말, 다른 사람 험담으로 내 힘을 빼는 단점을 가진 사람이라면 내가 미리 대화 주제와 방향, 만나는 장소 분위기가 긍정적인 기운이 가득하도록 계획하고 리더십을 발휘해 볼 수 있다. 물론 신경 안 쓰게 편하게 만들어 주는 상대가 좋고, 더 많이 함께 있고 싶다. 하지만 어쩌면 우리의 역량을 키우고 발전하게 하는 것은, 어느 정도 어려운 단점으로 도전을 주는 사람들 일지 모른다. 인간관계 난관을 돌파하려는 노력 덕분에 우리의 그릇이 커지고 성장하는지 모른다.
나는 진심으로 바란다. 내가 매일 만나고 싶은 장점 가득한 사람뿐 아니라, 가능한 거리를 벌여야 장점이 보이는 사람까지도 감사한 마음으로 장점을 크게 보는 시선을 지켜낼 수 있기를. 그래서 다양한 거리에 서 있는 주변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기를, 그리하여 좋은 관계가 주는 평화와 내 마음의 행복을 지켜나갈 수 있기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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