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미니멀리스트의 사생활
무엇이 중요한지 몰랐던
오랫동안 나에게 쇼핑은 감정의 표현이었다. 불안감, 공포감, 조급함, 소외감, 시기심, 과시욕... 물건의 무게에 무거운 감정의 무게까지 더해져 내가 샀던 많은 물건들은 사놓고 풀어 보기가 꺼려질 만큼 무거웠다. 물건에서 무겁게 가라앉은 기운이 스며 나오는 걸 느낄 때마다 내 마음도 축축 처졌다.
아이를 낳고 나서 그런 감정 쇼핑이 더 심해지는 것을 느꼈다. 옆집 아이는 이런 장난감을 가지고 있던데 두뇌 발달에 좋을까, 이게 요즘 아이들이 다 하는 액티비티인 것 같은데, 내 아이가 이것만큼은 뛰어나게 잘했으면 좋겠어... 자식 미래가 세상 중요한 만큼 곱절로 증폭된 무거운 감정들이 더 큰 구매로 이어졌다. 온라인 쇼핑몰들을 전전하며 비교적 좋은 값에 물건을 사들일 수 있는 방법, 굿딜, 핫딜, 쿠폰을 찾는데, 좋은 가격의 레슨 프로그램을 찾는데 하루에 몇 시간씩 쓰곤 했었다.
내가 샀던 대부분의 아이를 위한 용품과 서비스는 간절한 부모의 마음을 상대로 상술을 펼치는 장사치들이 그럴듯하게 포장해 비싼 값에 팔아먹는 플라스틱 조각, 빛 좋은 개살구에 지나지 않았다. 괜히 아이만 들들 볶고, 나는 나대로 시간 낭비 감정 낭비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 소중한 아이의 시간, 내 젊음의 시간들을 그렇게 써버린 게 지금도 생각하면 속이 쓰리다. 차라리 아이와 맛있는 거 해 먹고, 신나게 놀기나 할걸! 웹서핑하느라 전전하던 시간에 책 한 권 더 읽고, 글 한 줄 더 썼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슬기로운 쇼핑생활
어느 날부터 나는 감았던 눈을 떴다. 외부 기준이 불러일으키는 감정에 휘둘려 전전긍긍 살아가는 내 모습이 선명히 시야에 들어왔다. 내 인생을 사는 게 아니라, 발에도 안 맞는 남의 신을 신고 남의 인생을 살려고 아등바등하는 내 꼴이라니. 쇼핑에 담긴 남의 생각과 기준을 비워내 보았다. 내 마음을 무겁게 누르던 감정들이 남의 시선과 함께 확 뽑혀 나갔다.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꼭 필요한 게 아니라는 깨달음이 번쩍 들었다. 뭣이 중헌디.
정말 필요한 쇼핑만 하면서, 쇼핑에 쓰는 시간이 엄청나게 줄었다. 가뭄에 콩 나듯이 하는 쇼핑을 굳이 온라인으로 급하게 할 필요도 없어졌다. 쇼핑할 일이 있으면 밖에 나가 햇볕 쬘 구실로 삼자라고 쇼핑과 나들이를 묶은 후부터, 나는 온라인 쇼핑을 끊고, 필요한 건 무조건 나가서 우리 동네 가게에서 구매하기를 실천하며 살아가고 있다. 미국에서 오프라인 쇼핑은 훨씬 고민이 적다. 한 매장과 다른 매장 간 거리가 상당해서, 이 가게 저 가게 다 둘러보고 품질과 가격을 비교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 내가 필요한 물건인지, 괜찮은 품질인지, 내 기준에 적당한 가격인지 정도만 잠시 고민하고 신속히 결정할 수 있다.
나의 식재료 쇼핑은 운동과 묶여있다. 매일 운동 겸, 걸어가서 그날 먹을 찬거리를 사 온다. 매일 장을 본다는 게 누군가에겐 엄청난 비효율로 생각될 수 있겠지만, 여기엔 몇 가지 장점이 있다. 냉장고에 음식을 쌓아 둘 이유가 없으니, 냉장고 공간을 여유롭게 쓸 수 있고, 매일 신선한 음식을 먹을 수 있고, 유산소 걷기 운동을 따로 계획하지 않아도 된다는 장점이 있다.
아이 발달이나 교육과 관련한 쇼핑에 있어서도 나는 남을 보지 않기로 했다. 결국 내 아이를 가장 오래 많이 관찰하고 잘 아는 사람은 나다. 부모가 아이에게 가장 좋은 선생님이고 조언자다. 무럭무럭 자라는 아이의 삶에 좋은 멘토 역할을 지속적으로 할 수 있기 위해 부모 자신이 끊임없이 배우고 성장하는 일이 필요할 뿐이다. 아이에게 필요한 것도, 아이에게 해 주어야 할 것도, 아이와 내가 협력해서 충분히 잘 판단하고 공급할 수 있다는 사실을 믿기로 했다.
나답게 즐겁게 아름답게
나는 더 이상 무거운 감정에 짓눌리지도 휘둘리지도 않는다. 만약 어떤 감정이 거세게 회오리치며 내 마음을 침입하는 일이 있다면, 나는 우선 그 감정을 일으킨 생각이 진짜 나를 위한 생각이 맞는지부터 확인할 것이다. 수많은 경험으로, 그 회오리는 주로 누군가 아무렇게나 던진 말, 아직 남아 있는 외부 기준 잔재가 일으키는 지나가는 돌풍일 뿐임을 확인했다.
시시때때로 거센 비바람이 휘몰아치기도 하지만, 나는 내 삶이라는 배 위에서 키를 잡고 균형감 있게 잘 조종해 나가고 있다. 세상살이라는 변덕스러운 물살을 피할 도리는 없지만, 모든 과정에 내가 중심을 잘 잡고 서 있는 한, 나다운 방향으로 일관되게 나아가는 한, 나는 헤쳐나갈 수 있을 것이다. 아무도 걸어간 적 없는 나만의 길을, 나답게 즐겁게 아름답게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대문 이미지 출처: Pixabay (by dandelion_te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