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면 성장 에세이] 내가 믿었던 거짓말들
로코의 원조로 알려진, 제인오스틴의 유명한 19세기 소설 <오만과 편견>에 나오는 모든 해프닝은, 딸만 있는 변호사 아버지가 사망 시 재산을 딸들에게 물려줄 수 없고 여성이 재산을 소유할 수 없는 사회 제도로 인해, 딸들이 각자도생 하는 방책으로 주변 남자들 중 가장 괜찮은 남자 하나를 내 재산으로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벌어지는 이야기다. 최대한 내가 만날 수 있는 가장 부유한 집안의 남자에게 걸맞은 상대가 되기 위해 교육을 받고, 무도회에 다니며, 악기와 사교춤도 익히고, 책 읽고 교양 지식도 쌓아야 한다. 단, 남자를 앞지를 정도로 공부를 과도하게 해서는 안되며, 너무 적극적으로 나서거나, 성질 고집을 부리거나 눈치 없이 행동해서도 예의에 어긋난다. 시종일관 예법에 맞게 상냥하게 우아하게 행동해야 해야, 높은 점수를 받고 청혼을 받을 가능성이 커진다.
조선시대는 말할 것도 없고, 최근까지 한국 사회도 이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2005년 호주제가 폐지되기 전까지, 명백히 한국의 법률은 가부장 문화를 옹호하고, 남자의 권리를 우선시하고 여성의 사회 진출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며, 각종 불합리한 성차별 상황을 대놓고 지지하는 사회였다. 여자들은 평생 아버지 남편 혹은 아들이라는 호주에게 종속되어야 하는 존재였고, 사회가 정한 여성의 길 울타리를 벗어나고자 할 때, 억울한 피해와 견뎌야 하는 사회적 편견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이런 사회가 오래 지속되었던 만큼 아들 하나는 낳고 봐야 하는 남아선호사상도 보편적 통념으로 사람들의 뇌리에 각인되어 내려왔다. 나의 할머니 세대 - 20세기 초반생 - 까지만 해도 남자가 그중에서도 장손이 귀하다고 다른 사람들과 몹시 차별하는 태도가 몸에 배어있던 것을 나는 선명히 기억한다. 할머니는 여자는 죄가 많다고, 부정하다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시며, 남녀 옷 빨래도 함께 못하게 하시고, 남녀 겸상도 되도록 피하게 하셨다. 독실한 불교신자였던 할머니는, 죄 많은 존재가 벌을 받아 여자로 태어나는 것이라고 생각하시는 것 같았고, 실제로 여성으로서의 삶을 몹시 고통스러워하시는 것 같았다.
할머니와 그런 문화 속에서 큰 아빠와 그 형제들이 이루는 대가족 가정에서, 나는 그들이 몹시 소중히 여기는 아들의 누나로 태어났다. 사람들이 나에게 바라는 건 동생을 잘 돌보는 배려심 많은 누나 역할이었다.
문제는 내가 그들이 원하는 그림에 도무지 끼워 맞춰지지 않는, 차별에 극렬히 상처받는 아이였다는 것이다. 나는 쉽게 상처받았고, 깊이 상처받았다. 동생과 나는 1년 6개월 정도밖에 나이 차가 나지 않는다. 동생이 태어나고서부터 나는 여자 옷을 입지 않으려 했다고 한다. 어린 시절 사진을 보면, 죄다 남자아이 옷을 입고 있다. 집안에 결혼식 행사가 있어 예쁜 공주 드레스 선물을 받은 적이 있었는데, 그 옷을 입고 학교가라고 강요받았던 날, 나는 학교에 가서 하루 종일 엎드려 있었던 기억이 있다. 여성성을 강조하는 모든 것들이 수치스러웠고, 여자 아이들의 자연스러운 관심사와 취미들을 나는 편안한 마음으로 좋아할 수 없었다.
머리를 짧게 자르고 걸음걸이까지 남자 같았던 청소년기의 나는 남학생으로 오해받는 것이 기뻤고, 급기야는 여학교 학생들의 팬레터를 받고 '인기남' 행세를 하기에 이르렀다.
"너처럼 생긴 남자 친구를 사귀고 싶어"
"넌 눈빛이 남자 같아."
여학교를 다니던 내가 늘 듣던 말이었다.
"그놈 참 깎아놓은 알밤처럼 잘 생겼다. 성공할 상이야."
"형, 이거 형이 만든 거야?"
아파트 엘리베이터 안에서 할아버지나 꼬마에게 듣던 말이었다.
나는 급기야, 남자들이 하는 공부와 직업을 선택해야 한다는 강박으로 뭘 공부하게 될지도 정확히 모르면서 공대에 진학했고, 대학, 대학원, 공학 연구원으로 일하던 직장생활 내내 여자 혼자 남자들 틈에 끼어있는 소수자 생활을 감내하며 살았다.
문제는 남자처럼 행세하려 노력할수록 내가 남자보다 키도 작고 몸도 약하다는 사실을 더욱 의식하게 된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남자들과의 차이를 줄이기 위해, 키를 조금이라도 늘려보자고 매일 스트레치를 하고 운동을 하고 강해지려고 애를 썼다. 그 생활은 내 속의 여성을 거부하며 동시에 나를 될 수 없는 이상으로 몰아붙이며 사는 전쟁이었다. 고통스럽고 암울했다.
지금은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지혜로워 보이던 낯선 누군가가, 남성적인 차림을 하고 공대 남자들 틈에 섞여있던 나에게 이런 말을 하고 지나갔다.
자신을 잃어버리지 마세요. 당신의 여성 정체성을 잃지 마세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내가 남자가 되어야 한다고 믿어왔던 어떤 생각에 구멍이 뚫리는 느낌이 들었다. 강박에 사로잡혀 껍데기가 씌워져 있던 내 눈에서 무언가 떨어져 나가 다시 눈이 맑아진 느낌이 들었다.
내 마음에 지금까지 꼭꼭 닫아 잠가두었던 문 하나를 열었다. 나는 내가 가지고 있는 여성으로서의 욕구를 그때 처음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나는 입고 싶은 옷을 입고 하고 싶은 것을 할 자유를 스스로에게 주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나는 내가 내 있는 모습 그대로를 인정하고 수용하고 자랑스럽게 여기는 길로 나아가기 시작했고, 지금의 나는 공학을 하고 있지 않으며, 아이 둘을 낳은 엄마가 되어, 자유롭게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으며, 나를 어떤 분류로도 제한하거나 규정하지 않으며 - 생물학적으로 여성임을 인정하는 바탕 위에서 - 내 고유한 본성을 사랑스럽게 여기고 있다.
나는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 선명히 내가 지나온 길이 보인다. 인생 초반의 나는 조상 대대로 내려온 '남자가 더 중요한 존재'라는 거짓말 관념에 억눌렸던 것이었으며, 그 관념 속에서 차별받지 않을 길을 찾아 발버둥 쳤던 것이었으며, 어느 순간 그 거짓말에서 자유로워지는 기회를 얻어 그 거짓말을 버릴 수 있었던 것이었다.
그 거짓말을 계속 믿고 사람 차별을 일삼으며 살아가는 사람들과 함께 살아갈 수 없어, 나는 원가족과 내 사이를 분리했던 것이었으며, 성차별을 피 터지게 겪어 보았기에 어떤 종류의 차별도 내 삶에 허용하지 않는 평등주의자가 된 것이다. 평등주의자인 나는 '아들이 더 중요하다'는 말도 거부하지만, '딸이 더 좋다'라는 말에도 현혹되지 않는다. 특정 인간이 다른 인간보다 더 낫다고 생각하기 시작하는 순간, 그것은 각종 인간 차별에 정당성을 부여한다. 아들이든 딸이든 한 종류의 인간이 보다 더 나을 수 있다고 믿는 순간, 그 잣대는 각종 영역에서 당연하다는 듯 사람 서열 매기기로 이어지게 된다.
모든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로우며 그 존엄과 권리에 있어 동등하다.
나는 세계 인권 선언의 이 첫 조항을 항상 마음에 새기고 또 새긴다. 나는 모든 사람이 신 앞에 동등하고 법 앞에 동등하다고 믿고 살아간다. 이 믿음이 나를 자유롭고 기쁘게 하기 때문에 나는 내가 믿는 이것이 '진리'라고 생각한다. 내가 거짓과 진리를 나누는 기준은 바로 이것이다; 거짓은 사람을 옭아 매고 점점 더 괴롭고 망하는 길로 이끌고, 진리는 사람을 행복하게 자유롭게 하고 건강한 성장으로 이끈다고 생각한다. 차별은 나에게 고통을 주는 거짓이지만, 평등은 내 아픔을 치유하고 어루만져 주는 진리다.
다만, 내 안에 상처 입은 어린 자아가 남존여비사상의 억압에 찌들어 있기 때문에, 내 마음 안에 거짓이 쉽게 다시 들어와 자리를 잡는 경향이 있다. 다시 말해, 나라는 사람은 차별이 주는 아픔 앞에서, 평등이라는 소신을 쉽게 잃어버리고 속수무책으로 절망하고 괴로워할 가능성이 있다는 말이다.
매일같이 쌓이는 먼지를 훔치고 쓸어내야 집을 깨끗이 유지할 수 있는 것처럼, 내 안에 쉽게 내려앉는 거짓말먼지를 항상 비워내고, 내면을 진리로 무장하고 지켜내야만 한다. 내 안을 거듭 진리로 채우고 또 채우는 마음으로, 나는 모든 인간에게 부여된 동등한 존엄성을 새기고 또 새기며 살아간다. 나도 당신과 동등한 존엄성을 부여받고 태어났으며, 나도 당신만큼 소중하고 귀중한 사람이라고. 당신이 나를 어떻게 평가하고 판단 분류하는지에 상관없이 나는 이 세상 모든 것에 대해 당신과 같은 만큼의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자꾸 주눅 들어 위축되려는 마음을 일으켜 너도 마음껏 원하는 대로 자유롭게 훨훨 날아다니며 하고 싶은 거 다 할 수 있는 존재라고 매일 부지런히 용기를 북돋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