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면 성장 에세이] 내가 믿었던 거짓말들
나가 봐. 세상은 전쟁이야! 그렇게 어수룩하면 다 뺏겨!
1950년, 한국 전쟁이 발발하던 해에 태어난 아빠는 내가 철이 들 무렵부터 자꾸 이런 말을 했다. 아빠는 내가 어디 가서 남에게 뭘 양보하거나 조금이라도 손해 보는 짓을 해도 저 말을 했고, 동네 무법자 아이들에게 뭔가를 뺏기거나 맞고 들어오는 날에도, 내가 야무지게 챙겨야 할걸 챙기지 못하고 잊어버리는 날에도 저 말을 했다.
종종 멍 때리며 백일몽에 잠겨 들기 일쑤인 데다, 혼자 생각에 빠져들면 사람이 불러도 잘 알아듣지 못하는 나를 아빠는 답답해했고, 세상이 얼마나 험한지 인간들이 얼마나 영악한 도둑놈들인지 바짝 정신 차리지 않으면 큰 일 난다고 끊임없이 경고했다.
아빠가 바라는 이상적 성격을 나는 잘 알고 있었다. 싹싹하고 붙임성 좋아 누구의 마음도 쉽게 열고 기회를 거머쥐는 사람, 눈치 빠르고 손 빨라 자기 앞가림 척척하며 절대 손해보지 않는 야무진 사람. 아침 일찍 세상보다 먼저 하루를 시작하는 포부 있고 근면 성실한 사람.
아빠는 20대 중반에 직원 500명이 넘는 회사를 차려낸, 성공적인 스타트업 창업가, 자수성가형 CEO였다. 아빠는 매일 아침 일찍 등산을 할 정도로 자기 관리에 투철했으며, 세상 무서울 거 없는 대범하고 건장하고 강건한 사람이었다. 자기 사람들을 키워 검은돈 유통망을 만들고자, 자기 사람이 될 수 없는 기업인들을 파멸시키는데 능했던 제5 공화국 수장의 입김에 마지막까지 버티던 회사가 공중분해 될 때까지, 아빠는 남다른 포부와 재능, 비상한 사업수완으로 사업을 계속 키워갔다.
가슴속 야망을 실현하는 일에는 탁월한 사업가였지만, 20대 중반의 아빠는 자신의 아내를 아끼고 돌볼 줄 아는 사람은 아니었다. 친정 엄마도 일찍 돌아가시고 없고, 따뜻하게 챙겨주는 자상한 구석이라곤 눈을 씻고 봐도 없는 시어머니와 남편의 불호령 나날들 속에서, 스물을 갓 넘은 엄마는 영양실조 빈혈 상태의 가녀린 몸으로 나와 동생을 낳았다. 우리 둘 다 몹시 작고 약하게 태어나, 기본 체력도 약하고, 아침에 일어나는 것도 힘들어하는 아빠와 많이 다른 성향의 아이들이었다. 우리는 아빠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자식 그림에 전혀 들어맞지 않았다. 아빠의 한숨 소리, 못마땅한 표정에서 순간순간 드러나는 실망감을 발견하지 않기는 어려웠으므로, 우리는 둘 다 아빠가 만족할 수 있는 자식들이 아니란 걸 스스로 충분히 느끼고 잘 알고 있었다.
학교에 들어간 내가 공부를 꽤 잘한다는 걸 발견한 아빠는 거기에 온 희망을 걸기 시작했다.
네가 우리 집안의 희망이다.
어릴 땐, 남자인 동생에게 큰 기대를 걸고 아들을 우선으로 대접했으나, 확연히 차이나는 등수를 보이는 성적표 앞에서 아빠는 베팅할 경주마를 과감히 바꾸었다. 아빠는 내가 모르는 수학 문제 하나 옆에 앉아 설명해 주는 일 없으면서도, 내가 받아오는 성적표가 마치 마권의 가치를 결정하는 경주 결과표인양 신경을 곤두세우고 검토했다.
이게 너의 최선이야? 더 잘할 수 있어, 없어?
아빠는 내 성적표가 주식 차트라도 되는 것처럼, 내 등수 한 등에, 내 점수 1점에 감정이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것 같았다.
나는 갈수록 우리 집안을 위해 집 밖 전쟁터에서 싸우는 인간 병기가 되어갔던 것 같다. 미국에서 5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들어간 학교에서 박사를 하다 실험실을 박차고 떠났던 그 순간까지, 나는 무너진 집안을 다시 일으키고 아버지의 자랑스러운 명예가 되어주기 위해서, 아버지가 무참히 패배한 세상과의 전쟁을 내가 대신 싸워 이겨주기 위해서, 언젠가 아버지가 사업을 다시 세우고 그 옛날의 영광을 회복할 자본이 되어주기 위해 살았던 것 같다.
이런 생각으로 무장된 나의 내면세계는 고백하기 부끄러울 만큼 엉망진창이었다. 학교에서 전교 석차 등수를 발표하면, 나보다 등수가 낮게 나온 친구들을 보며 내가 이겨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고, 공부를 절대 잘 해낼 조건을 갖추지 못한 사회적 약자들을 보며 바닥을 깔아주는 사람이 있는 것에 속으로 안도감을 느꼈다. 겉으로 아무리 친절한 척 착한 척을 했어도, 내 속은 이렇게 남들이 나보다 못하기만을, 내가 이기기만을 바라는 인간성 바닥의 냉혈한이었다.
어릴 때는 내 가치관이 잘못되었다는 걸 자각도 못하다가, 미국에서 공부하고, 직장 다니고 결혼하고 여러 다양한 사람들과 어울리는 속에서, 내가 뭔가 굉장히 잘못된 사람이란 걸 자각하기 시작했다. 갈수록 삶이 뭔가 엉망진창 수렁에 빠져드는 것만 같았다.
I think I'm so screwed up.
내가 내 문제를 확실히 자각했던 날, 가장 친하게 지내던 미국인 동료에게 내가 했던 말이다. 스스로의 인격에 대한 자각으로 자존감은 바닥으로 떨어지고, 더 이상 그럴듯한 겉포장만 가지고 버티며 행복하게 살아갈 수는 없겠다는 자각이 짙게 담긴 표현이었다.
나는 상담을 받기 시작했고, 원가족과 관계에 문제가 크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상담사는 내가 스스로 아픈 내면 아이를 돌봐주고 제대로 양육해 주어야 한다고 했다. 그때부터 나는 스스로를 돌보는데 집중하기 시작했고, 인생을 걸고 싸울 의미를 잃은 모든 전쟁 같은 일을 떠났다. 이후, 나는 와르르 다 무너진 폐허 상태에서 다시 하나하나 벽돌을 쌓아가는 느낌으로 지금까지 내 내면을, 삶을 다시 똑바로 세우려, 다시 태어나려 노력하며 살아왔다.
생각해 보면, 나는 고등학교 때부터 이상 증상을 보이고 있었다. 나는 고등학교 시절 내내 등수가 조금이라도 떨어지면 집에 와서 죽고 싶다는 말을 했었다. 주변 어른들은 그저 내가 승부욕, 공부 욕심이 강해서 그런 걸로만 생각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나는 내내 자살 충동과 싸우고 있었던 것이다. 다만 그 시기에 워낙 자살하는 고등학생들이 많았고, 고등학생이 자살 충동을 느끼는 게 있을 수 있는 평범한 일 같았으므로, 나 자신도 그 충동에 문제가 있다는 생각을 전혀 못하고 견뎠고, 다행히 최악의 상태가 되기 전에 고등학교 생활이 끝나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뿐이었다.
삶이 바닥을 치고 상담을 시작했던 이후, 나에게 깊이 주입된 거짓말들, 내 문제 가치관의 바탕을 이루는 거짓 메시지들을 내 삶에서 하나하나 걷어내는 시간이 수년에 걸쳐 이어졌다. 시야를 가리던 뿌연 먼지는 점점 가라앉고, 맑은 눈을 점차 회복해 나갔다. 세상은 전쟁터가 아니었고. 등수 서열은 진짜 가치가 아니었다. 모든 사람이 각자의 개성과 다양한 경험, 독특한 지능 스펙트럼을 가진 소중하고 귀한 존재였고, 모두가 함께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세상이었다. 사람은 사랑할 대상이지 이용하거나 이겨 먹을 대상이 결코 아니었다.
성적 서열 학벌 서열이란 게 결코 사람의 가치를 판단할 근거가 아니었다. 내가 꼭 이겨야 살아남는 세상이 아니었고, 미친 경쟁을 끝없이 부추기는 자본주의 물질주의 사회 풍조에, 나까지 함께 미쳐 놀아날 필요는 없는 것이었다. 가만히 흙탕물이 다 가라앉기를 기다리고 살펴보니, 내 삶에만 집중하며 나의 길을 조용히 걸어갈 선택지가 선명히 나타났다. 나와 타인을 사랑과 선으로 귀하게 대하며, 나답게 즐겁게 살아가면 되는 나만의 길이 찬란한 햇살아래 환히 드러났다.
나는 타인에 대한 시선을 어느 정도 바로잡고 회복하고서야 글을 쓰기 시작할 수 있었다. 그전까진, 소설가가 꿈이면서도, 내 안의 엉망진창이 드러날까 두려워, 감히 펜을 들 수 없었다. 세상을 향한 내 시선이 차갑고 잔혹하단 걸, 내 내면이 보여줄 게 못된다는 걸, 마음속 깊이 나 자신은 알고 있었던 게 틀림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나는 괜찮다고, 어느 정도 학벌도 쌓았고 직업도 괜찮고, 아빠는 나를 존경한다고 말하는 수준에 왔으니, 괜찮은 삶이라고 스스로를 억누르고 속이며 살아갔고, 도저히 견디지 못하고 무너지기까지 꾸역꾸역 버텼던 것이었다.
시작부터 잘못된 거짓말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 줄 모르고 맹목적으로 쌓아가던 교만한 바벨탑은 무너졌지만, 누군가 결과 중심적 시선으로 보기에 나는 망해서 별 볼 일 없게 되었지만, 나는 내면을 회복했고, 이제 글을 쓸 수 있게 되었다. 이것으로 나는 충분하고, 충분히 행복하다.
전쟁 같던 시간을 헤치고 나온 경험 덕분에, 나에게는 자본주의 사회가 몰아가는 어떤 경쟁이나 등수에도 태연할 수 있는 내공이 쌓여있으므로, 남이 매기는 어떤 점수나 평가도 나를 막을 수도 주눅 들게 할 수도 없다. 눈에 보이는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니라는 걸 잘 알게 되었고, 부추기는 경쟁 이면에 도사리는 장삿속을 꿰뚫어 볼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진짜 중요한 가치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언제나 우리 곁에서 순수하고 맑은 눈이 발견해 주기만을 기다리며, 우리 삶을 응원하고 있다. 온갖 거짓말로 지친 눈을 씻고, 진짜 중요한 가치를 보는 소신을 가지고 살아가면 된다. 나만의 글을 쓰고, 나다운 일을 하며 나아가면 될 뿐이다.
나는 아버지의 장례식에서 이렇게 마지막 인사를 했다.
아빠, 이제 전쟁은 끝났어요. 따뜻하고 평화로운 세상에서, 평안하고 만족하시기를 빕니다. 이제 편히 쉬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