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면 성장 에세이] 내가 믿었던 거짓말들
나는 내내 아빠에게서 받은 영향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엄마는 내 인생에 쿠션 같고 보험 같은 존재로 있어 주었으면 했다. 이해하기 어렵고 받아들이기 힘든 아빠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해야 하는 만큼, 엄마는 생각할 필요조차 없는 언제나 맘 놓고 다가갈 수 있는 깨끗한 성역이어야 했다. 아빠에 대해 긍정적이고 자상한 아버지의 모습을 그릴 수 없는 만큼, 엄마는 갑절로 좋은 사람이어야 했다. 그렇게 나는 엄마를 '좋은 엄마' 종합세트 안에 잘 포장하고 묶어 놓고자 했다.
좋은 엄마'라도' 필요한 나에게, 엄마는 실망시키지 않았다. 어릴 때부터 '부처님 가운데 토막'이라는 별명을 얻었을 만큼, 엄마는 자비롭고 이타적인 성품이라고 모두가 입모아 칭찬한다. 엄마는 실제로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필요할 때 가장 먼저 떠올리는 사람, 다 주어도 아깝지 않은 받은 은혜를 보답하고 싶은 일생의 은인이다. 특히 엄마는 누군가 힘든 사람이 있으면 전심으로 희생 봉사하며, 정성으로 밥을 해서 먹이고 돌보는 일에 타고난 능력자, 전문화된 봉사자다. 스님이 보면, 절밥 해주는 보살로 모시고 싶고, 목사님이 보면 같이 오지 선교를 떠나고 싶은, 사랑으로 사람을 섬기는 자리에 동반하고 싶은 살신성인의 대명사다.
엄마는 자식을 포함한 모든 사람에게 주기만 하다가 가고 싶은 사람이다. 사망 시 엄마의 온몸을 병원 의학 연구를 위해 기증하기로 신청을 해 두었으며, 자녀들이 장례절차로 번거롭지 않도록 장례를 생략하라는 유언 작성까지 다 마친 분이다. 어버이날 생일날 당신은 충분히 가졌다며 당신을 위한 모든 종류의 선물 받기를 거절하고, 베푸는 데만 열심인 분이다.
엄마는 좋은 사람이라는 지정석에 내내 두고 잊어버려도 될 만한 사람이었다. 문제는 그럴수록 더 이상의 관심이 없어졌고, 내 관심이 희미해질수록, 내 삶 속 엄마의 존재도 그 힘이 점점 희미해져 갔다. 어느 순간부터는 엄마가 나와 별 관련이 없는 듯이 느껴지기도 했다. 때론 내가 할머니와 아빠의 영향을 심하게 받는 동안 항상 한 발 뒤에 물러나 있었던 건 아닌지, 내가 방치되었던 건 아닌지 의심이 들기도 했다. 그런 의심의 폭풍 속에서 엄마를 '좋은 엄마' 자리에 묶어 놓으려면, 엄마에게 '좋은 엄마'에 더해 '피해자' 옷을 입혀야 했다. 엄마가 새끼도 보호할 수 없고 아무것도 할 수 없이 꽁꽁 묶여 고통받은 피해자였던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내 뇌리 속 기억파편들이 이리저리 조합하여 모자이크 그림을 만들어냈다. 그 정도면 엄마는 힘없는 피해자였던 증거로 충분했다. '좋은 엄마이면서 힘없는 피해자' 그 정도면 내가 아버지만 원망하는데 집중할 수 있는 근거로 충분했다.
아빠가 돌아가시고 나서야 엄마의 힘이 제대로 보이기 시작했다. 엄마는 내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여자였던 것이 하나하나 드러났다. 엄마의 한 마디, 표정 하나로 내가 세상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옳고 그름의 기준을 세워왔음을 깨달았다.
문제는, 엄마가 스스로를 부정하고, 참고, 남을 위해 희생하는 정도가 보통의 수준을 넘어선다는 점이었다. 나로서는 결코 넘을 수 없는 높다란 벽이었다. 나는 항상 그 벽 그림자에 가려, 그 벽을 넘어서지 못하는 스스로에 대해 좋은 인성을 가지지 못한 존재는 아닌지 의심해 왔던 것 같다. 엄마의 벽을 넘지 못하는 것을 아빠의 피를 물려받은 탓으로, 아빠를 닮아 그런 것으로 여기면서 말이다.
나는 엄마의 표정에 무척 예민하게 반응하는 편이다. 엄마가 화를 내거나 감정을 표 나게 드러내는 사람이 아니어서, 나는 엄마의 미세한 표정 변화, 온도의 차이로 내가 엄마 마음에 들게 행동한 것인지 아닌지를 가늠하려 해 왔기 때문이다. 엄마는 개인적 감정을 드러내고 싶지 않은 사람인만큼, 너무 예민하게 감정을 살피는 딸을 감당하기 힘들어했다. 사랑한다고 하는데도 계속 의심하고 '엄마 사실은 나 싫어하지? 아빠 닮아서 싫지?'라고 묻는 딸 때문에 무척 당황하는 듯했다. 자신을 힘들게 하는 남편 닮은 딸을 엄마가 결코 사랑할 수 없으리라는 그런 지레짐작 구덩이를 스스로 파고 들어가 홀로 웅크린 채 서러워하고 있었다. 아빠를 닮은 딸을 엄마만 사랑할 수 없는 게 아니라, 세상 모두가 사랑할 수 없으리라는 한줄기 서늘한 감정이 내 내면 깊은 곳에 이미 똬리를 제대로 틀고 있었다. 내가 무슨 말이나 행동을 해서 엄마의 표정에 가끔 동생이나 어린 사촌동생들이 불러오는 즐거운 빛 밝은 빛을 본 적이 없어 나는 더욱 초조했다.
엄마는 나에게 좋은 사람, 좋은 인성의 표본이자, 나를 휘두르는 외부적 기준, 보편적 상식이 되어버렸던 것 같다. 그것을 기준으로 삼는 만큼, 나는 언제나 좋은 사람이 되기엔 많이 모자란 사람의 자리에 스스로를 묶어놓아야 했다.
좋은 사람이 되고 싶은 내 안의 욕구는 너무나 강했다. 좋은 사람이 되고 싶은 욕구가 강한 만큼, 나는 언제나 다시 기준의 중심인 엄마를 보아야 했고, 엄마는 여전히 내가 넘을 수 없는 한계로 다가왔다. 그 정도 이타적이지 않으면, 그 정도 스스로를 참고 죽이지 않으면, 좋은 사람은 될 수 없는 거라고 내 무의식이 나를 밀치고 억압하고 있었다.
아무리 깨닫고 성장하고 변해도 '너는 안돼! 너는 감당 못해!'라고 내 발목을 잡는 딜레마 속에 갇히곤 했다. 빠져나올 수 없는 수렁에서 나를 잡아 끄는 감정들은 다양했다. 엄마를 세상을 만족시킬 수 있는 사람이 되지 못하는 자괴감, 죄책감, 자기혐오, 분노, 엄마가 칭찬하는 사람들, 엄마 얼굴에 웃음을 주는 사람들에 대한 질투, 결핍감,... 그렇게나 다양한 종류의 부정적인 감정에 내 정서는 매몰되어 갔다.
엄마와 얼굴을 마주할 때마다 느껴지던 감정의 자극들. 엄마와 마주하기만 하면 이상하게 자꾸 화가 나는데, 그걸 표현하면 더 나쁜 인간이 될 것 같으니 꾹 참고 피하며 견디는 날들이 많았다. 늙어가시는 엄마에게 잘해드리기만 하자고 마음을 먹고 또다시 먹어도, 꾹 눌러 쌓여온 감정들이 뾰족한 비수가 되어 튀어나오곤 하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엄마도 내 안에 엄마를 향한 무언가 날카로운 칼날이 있음을 느끼시니, 어떻게든 멀리 헤어져, 이 아이의 마음을 편히 해줄 수 있을까를 궁리하시는 것 같았다. 엄마에게 그런 생각을 하게 하는 게 또 죄책감이 들어 내 마음은 이래도 힘들고 저래도 힘든 상황에 처했다. 어딜 향해 가도 누가 파 놓은 깊은 함정에 자꾸 빠지는 악몽을 꾸고 있는 것만 같았다.
엄마의 존재가 내게 주는 자극이, 내가 느끼는 모든 감정이, 내 감정이 엄마에게 미치는 영향이 이젠 그냥 두어선 안될 것 같은 느낌이 들 만큼 커졌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대수술을 시작하는 마음으로, 어떤 거짓말이 도사리고 있는지 내 안을 깊이 파헤치기 시작했다.
내 안을 깊이 파헤치는 일은, 칼로 배를 가르고 손을 쑥 집어넣어 몸이 감당할 수 없이 부담스럽게 자란 혹 덩이를 찾아내 떼어내기 위해 파헤치는 행위만큼이나 거북하고 고통스럽다. 그래도 처음이 아니라 할 만한 일이다. 이 작업이 끝나야 깨끗이 낫고 시원해질 것을 안다.
내 뱃속을 열고 갈라 보니, '좋은 엄마', '좋은 사람'이라는 내가 처음 시작한 거짓말 두 덩이가 징그럽게 자라나 있었다. 혹덩이들을 떼 내자, 엄마는 그냥 보통 사람일 뿐인데, 내가 그 형상을 이리저리 내가 원하는 이상형으로 억지 변형시켜 왔다는 자각이 잇따랐다. 어떤 무엇에 대해서도 평등주의자인 내가, 엄마의 인격과 성격을 모든 것 우위에 놓고 있었던 건 내 실수였다. 누가 누구보다 더 좋고 나쁜 기준을 세워 나를 고통 속으로 몰아넣은 것은 내 잘못이었다.
더 '나쁜' 아빠가 파 낸 빈 구멍을 보완하기 위해 엄마를 더 '좋은' 사람으로 몰아 팽창시켰던 내 방어기제를 이제 부수고 뜯어낼 때가 왔다. 내 엄마는 그냥 자신만의 개성을 가진 한 사람일 뿐, 좋은 사람의 표본도 기준도 아니다. 엄마는 엄마대로 성격의 장단점이 있고 나는 나대로 장단점이 있다. 엄마와 나 사이에는 세대차이와 문화 차이도 크다. 엄마는 엄마가 옳은 방향으로 나는 내가 옳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을 뿐이다. 엄마의 성에 차야 엄마의 마음에 들어야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다. 엄마는 엄마의 기호와 가치관이 있고 나는 내가 추구하는 기호와 가치관이 따로 있다. 엄마와 성격이 맞지 않아도, 의견이 달라도 괜찮다. 다르면 다른 대로 편한 만큼 적당한 거리를 두고 지내면 된다.
엄마와 떨어지고 사이가 벌어지는 걸 두려워할 필요도 없다. 모든 면에서 엄마에 대한 의존을 거두면 된다. 모든 면에서 잘 맞는 찰떡궁합일 필요도 없다. 엄마가 나를 가장 사랑해 주고 위해주어야 할 사람이라고 꼭 붙들고 끌어안고 있던 애착심을 버리면 된다.
엄마를 만족시키려는 눈치 보는 내 마음, 비위 맞추는 인생을 완전히 내려놓고, 내 속마음까지 깨끗이 자유로워져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럴 수 있기 위해, 내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자식을 끝까지 위하고 사랑하고 헌신해야 하는 '좋은 엄마' 자리에서 엄마를 풀어드리는 일이 아닐까. 그녀에게서 씌워 놓았던 '좋은 사람이라는 이름의 올가미'부터 거두어야 하지 않을까. 내 죄책감을 씻기 위한 억지 효도, 내 욕심이 만드는 지나친 관심을 받아야 하는 자리에서 해방시켜 드려야 하지 않을까. 그녀가 더 이상 날 가장 사랑하는 내 엄마로서 존재하지 않아도 된다는 자유부터 드려야, 나도 완전히 자유로워질 수 있을 거라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그래야 내가 자초한 이 거짓말의 고통에서 내가 온전히 해방될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더 이상 엄마의 어린 딸로 존재하는 일을 더 이상 그만하겠다고 결심한다. 내 삶의 책임은 내가, 엄마 삶의 책임은 엄마 자신이 지도록 하련다. 우린 모두 스스로를 책임질 수 있는 강한 성인이니까. 나는 그녀를 사랑하는 또 한 사람의 주변인이 될 뿐, 그녀가 필요한 순간에 도움을 구할 수 있는 진정한 친구가 될 뿐, 죄책감이라는 내 손의 때를 자꾸 그녀에게 닦는 것을 그만하겠다. 좋은 사람이라는 허상을 쫓으며 나도 엄마도 고통스러운 기준으로 우리 자신을 묶고 조이는 일을 그만하련다. 모든 감정의 군더더기를 다 청소하고, 순수한 사랑의 감정으로만 다가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