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면 성장 에세이] 내가 믿었던 거짓말들
한 때는 허먼 멜빌의 <모비딕> 소설을 읽으며 충분히 죽음을 각오했다고 생각했다. 저 먼바다 한가운데서 고래밥 상어밥이 될 운명을 수긍하고 오히려 그런 죽음을 더 나은 존재로 상승하는 출세 기회로 여기며 포경선에 올라타는 주인공 청년 이스마엘의 선택을 보면서, 나도 죽음 따위 두려워하지 않고 이 위험한 세상에 배를 띄우는 인생 여정에 과감히 도전하겠다 생각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때의 포부는 다 어디 가고, 정말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40대 시간마저 손가락 사이로 다 빠져나가고 50 문턱에 이른 나는, 마침내 갱년기 노화가 시작되는 걸 피부로 느끼며, 그 뒤에 이어지는 죽음이라는 숙명이 한층 더 가까이 다가와 있는 서늘한 감각에 흠칫거리고 있다.
길거리에 나가서 가끔 마주치는 고령의 노인들이 눈에 더 잘 띄기 시작하고, 어린 시절 본 적이 있는 증조할머니, 할아버지 심하게 쭈글쭈글하고 꼬부라진 모습이 떠오르기도 한다. 사람 말을 잘 알아듣지도 못하고, 듬성듬성 남아 있는 이빨 사이로 제대로 된 말소리마저 다 새 나가 소통이 불가능해 보이던 멍하니 앉아만 있던 노인들. 그 모습으로 달려가고 있는 중이라는 현실 자각에 정신이 아득해진다.
내 마음에 일어나고 있는 노화 죽음에 대한 불안과 공포를 인정하고 마주하기는 쉽지 않았다. 할 수만 있다면 어릴 때처럼, 나는 평생 늙지도 죽지도 않을 사람처럼 살아가고 싶었다. 막상 눈이 점점 침침해지고, 몸 여기저기서 경보를 울리는 노화 허리케인이 지나가는 흔적을 느끼기 시작하면서, 나는 너무 원망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태어나서, 학업, 취직, 결혼, 출산, 자녀 양육에 정신없이 푸른 청년기를 다 보내 버린 뒤 남아 있는 것이 노화와 죽음이라니! 인생 열차 마지막 두 칸에 드디어 진입한 기분이 너무너무 쓰고 떨떠름했다. 시간을 되돌릴 수도 없고, 굳이 되돌려 반복하고 싶은 구간도 없지만, 그저 인생이 너무나 허무하고, 허무하게 지나가버린 젊음을 뒤로한 가슴이 꼭 잡아 탔어야 할 열차를 영영 놓쳐버린 것처럼 점점 원망스럽고 막막해져 오는 것이다.
늙으면 죽어야지
우리 할머니는 이 말을 달고 사셨다. 늘 죽음을 기다리고 있다는 듯, 자식하고 관계에서 조금만 맘 상한 일만 있어도 이 말이 튀어나왔고, 내내 이 말을 버릇처럼 듣고 자란 나의 내면에는 '노인이란 늙어 죽기를 기다리는 사람들'이라는 이미지가 각인되었다. 그 이미지 안에서 노인이란 자식에게 부담만 주는 잉여 인간, 관계도 소통도 불가능한 죽음의 강에 휩쓸려 떠내려가고 있는 곧 끝이 예정된 사람들, 더 이상 존재 가치를 잃은 사람들이었다.
노인에 대한 그 이미지가 나의 노화 현상을 부끄러워 숨기게 만들고 터놓고 소통할 수 없게 만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이대로 가다간 스스로 은둔과 고립을 선택하겠다는 자각이 들었다. 내 머릿속 사고방식에 분명 문제가 있다는, 거대한 거짓말 한 마리가 들어 있는 게 틀림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물론 세상 누구라도 나이 들고 늙어가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많은 사람들이 맨 정신으로 견디는 인생살이를 힘들어한다. 그래서 술담배에 의존하고 급기야는 약물에 취하기도 하면서 최대한 사는 낙 한 두 가지를 짜내 보려고 모두 애써 버둥거린다. 인생이 왜 이렇게 힘든 고행처럼 프로그램되어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이걸 이렇게 잘 버티고 살아가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 일단 박수를 보내고 싶다.
세상은 젊고 아름답고 생기 발랄한 존재에게 큰 가치를 부여하고 환호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티브이를 보고 있으면 사람이 활짝 피는 20대 30대의 시간이 최고인 것만 같이 느껴진다. 하지만 실은 20대 청년 아름다움의 가치와 90대 노인 아름다움의 가치가 동등하지 않을까. 물질주의에 찌든 세상이 돈이 되지 않는 것의 아름다움, 90대 노인의 아름다움을 알아보지 못할 뿐이지, 우리가 볼 수 없다고 해서 아름다움이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 않을까. 나이가 많든 적든, 돈을 많이 벌 수 있든 없든, 사람의 존재 가치는 동등한 거 아닐까.
모두가 신 앞에 동등한 존재 가치를 가진다는 진리 명제가 또 한 번 내 안의 거짓말을 떼내는 수술을 하고 치료하기 시작했다. 현재 처한 조건에 상관없이 모든 존재가 같은 가치를 가지고, 각자 독보적인 아름다움이 있을 거라고 마음을 바꿔 먹고부터, 노년기의 인간이 얼마나 아름다운가를 점점 발견하기 시작했다. 눈에 보이는 아름다움이 다 사라지고, 자랑할 거 하나 없는 연약한 몸으로 꿋꿋이 오늘도 일어나 당당히 밖으로 나가 오늘 주어진 삶을 영위하는 강인함, 어떤 이유로도 절망의 덫에 걸리지 않고 죽음이 부르는 그 순간까지 삶을 받아들이고 살아가는 인내심, 나는 노인들이, 특히 고령의 노인들이 너무나 큰 아름다움을 가진 존재라고 인정할 수밖에 없음을 깨달았다.
이렇게 생각이 바뀌면서, 나는 눈에 보이지 않는 인생의 아름다움을 점점 더 많이 볼 수 있게 될 거라는 자신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지금 당장은 시각적 수준에 머무르는 외부 기준에 흔들거려도, 단계단계 내 모습 변화를 수용하고 마음이 편해질 거라는 믿음이 생겼다. 나의 삶 전체, 인생의 숙명을 받아들이고 담대하게 평정심을 유지할 능력이 나에게 주어질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말기로 했다. 지금의 나는 내 현재 삶의 가치, 그 아름다움을 보기만 하면 되는 거 아닐까. 내일이 되면 내일의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게 될 거라 믿으며 나아가면 되지 않을까. 점점 더 남의 시선은 덜 중요해지고, 그만큼 자신을 더욱 사랑할 수 있게 될 거라는 포부를 품어도 되지 않을까.
나이를 더 먹을수록 자신으로 당당한 강인한 내면의 아름다움은 더 커져 갈 것이다. 그렇게 죽는 날까지 나는 나 자신이라는 소중한 가치에 대해 남이 아닌 내가 인정하는 사랑스러운 아름다움을 느끼며 살아가게 될 것이다. 그러니 미리 미래의 나를 외부 기준을 끌고 와 판단하고 진단해선 안된다. 감히 생명 가치를 함부로 결정해선 안된다. 그저 그날그날의 나 자신을 사랑하는데만, 사랑의 마음을 키우는 데만 충실해야 한다.
생각해 보면 오늘의 나는, 나의 삶은 참 아름답다. 오늘 하루를 위해 현명한 결정을 하고, 내일 다가올 새로운 오늘을 위해 더 개선할 부분이 없는지 성찰을 한다. 나는 항상 나 자신과 주변을 돌아보고 좋은 가치를 만들어 가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다. 힘든 인생이지만 더 힘내서 기쁜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는 건강하고 바람직한 길을 끈질기게 모색하는 사람이고, 내가 찾아낸 모든 것을 필요로 하는 세상 사람들과 나누려는 넓은 마음을 가진 사람이다. 나는 현명하고 따뜻한 사람이고, 이 세상을 더욱 살만한 가치가 있는 멋진 곳으로 만들어 가는데 도움이 되는 사람이 분명하다. 모든 걸 다 완성하고 이룬 사람은 결코 아닐지라도, 내가 원하는 그 방향으로 열심히 걸어가고 있는 사람인 건 확실하다. (오글거리지만, 나 자신을 다독이고 응원해 주기 위해 썼습니다. 이 글을 읽는 독자님도 오늘 자신의 아름다움을 하나하나 열거해 보시기 바랍니다.)
나의 외모가 좀 더 늙어간다 해도, 신체 기능이 점점 더 떨어진다 해도, 내 존재 가치, 내면 가치는 여전히 변함없이 아름답게 빛날 거라고 믿는다. 그래서 나에게 당부한다. '노화'라는 자연스러운 현상에 낙심하지 말기를! 노화나 죽음, 결국 사라짐으로도 막을 수 없는 삶의 가치가 있기에 우리가 태어났음을 믿기를! 또한 아이들도 그런 가치를 가지고 태어난 귀한 존재들이란 걸 믿어 주고, 미리 세상 기준으로 평가 내리지 말기를! 자신의 삶을 기쁘게 여기고 자랑스러워할 줄 알기를! 죽는 순간까지 누가 뭐래도 나 자신을 힘껏 소리 높여 응원해 주기를! 자신과 주변을 사랑하고 위하는데 최선을 다 하기를! 하루하루 커져가는 자신과 세상을 품는 사랑의 능력을 기대하며 설레며 살아가기를!
마침내, 나는 나의 내면에 새겨져 있던 "늙으면 죽어야지"를 깨끗이 지워내고, 다시 새로운 말을 새겼다.
늙어도 똑같이 사랑스럽고 아름답고 소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