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면 성장 에세이] 내가 믿었던 거짓말들
친한 선배 중에 교회에서 모임 리더를 맡아 열심히 봉사하는 언니가 있다. 이 언니는 만나거나 통화할 때마다 매주 집을 열어 열 가족 이상이 되는 사람들을 초대해 먹이고 대접하는 게 얼마나 힘든 줄 아냐며, 어린아이들까지 미친 듯이 뛰어놀고 가면 집이 가구가 얼마나 망가지는 줄 아냐며 푸념을 늘어놓는다. 한 차례 모임이 휘몰아치고 다녀가면, 손님을 치르며 받은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두 부부가 한 집씩 괘씸한 점을 헐뜯다가 밤새기 일쑤라는 말까지 듣다가, 나는 너무 답답하고 안타까워서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만하고 좀 쉬면 안 돼요? 신앙생활도 좋지만, 너무 일을 많이 하고 지친 것 같아요."
그러자 언니는 그럴 수 없다며, 자신이 이렇게 사람들을 곁에 두고 섬기는 일이 꼭 필요하며, 지금까지 투자한 게 아까워서라도 여기서 발을 뺄 수 없다고 했다. 자세히 이야기를 들어보니, 언니에겐 일종의 공포감 불안감이 있었다. 아이가 자라 결혼할 때 결혼식장에, 혹은 장례식장에, 혹은 자기 가족이 변고를 당할 때 와 주는 사람 아무도 없을까 봐 그게 너무 두려워서, 여러 사람들을 곁에 오래오래 두는 길을 찾고 찾다가 교회에서 리더를 맡아 계속 모임을 유지하고 매주 밥 먹여 대접하기로 했다는 거였다.
이 언니만 결혼식 장례식을 위해 노력과 시간을 희생하는 것이 아니었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필요한 날 달려와 줄 너른 인맥 네트워크를 유지하기 위해 발로 뛰며 노력하고 있다는 게 살아갈수록 점점 더 많이 눈에 보였다. 종교인은 종교인 대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매주 모이려고 노력하고, 비종교인은 비종교인대로 정기적인 술자리 밥자리에, 각종 모임에 엄청난 시간을 할애하며 살아가고 있는 걸 쉽게 목격할 수 있었다.
"인간관계 내려놓고 좀 쉬고 자신에게 집중하는 시간 가지면 안 돼?"
내가 물으면 대답은 모두 한 곳으로 향했다. 내가 힘들 때 곁에 사람이 없을까 봐, 결혼식 장례식에 와 주는 친구 하나 없을까 봐, 그래서 인생 잘못 산 사람처럼 보일까 봐 불안하다는 말로 일괄 수렴되었다.
나이를 먹어 가며 수차례 결혼식과 장례식을 다니면서, 사람들이 왜 그렇게까지 힘들게 노력을 하는지 알 것 같았다. 확실히 결혼식장 장례식장에 오는 사람들은 식장 규모와 모이는 사람들을 둘러보고 평가를 했다. 모인 사람들이 엄청난 인사들이 많이 모일 수록, 충성스러워 보일수록, 인생 잘 살았네 어쩌네 칭찬이랍시고 하는 것이었다. 그런 말을 반복적으로 듣다 보니, 사람들 앞에서 인생 잘 산 사람으로 보이려면, 최대한 많은 사람들을 인맥으로 끌어모으며 살아야 하는구나, 최대한 위로 올라가서 널리 사람을 모을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 낼 수 있어야 하는구나 싶었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이게 진짜 가치일까. 정말 평생에 걸쳐 이 만큼의 시간과 정성을 바칠 가치가 있는 가치일까.
내 가족 친척 안에서 몇 번의 장례 경험을 가지면서, 장례식은 산 사람이 죽은 사람의 죽음을 긍정적인 스토리로 만들어 내는 공동 작업이라는 것을, 깨끗이 잘 헤어지기 위한 예식임을 깨달았다. 살아있는 사람들의 내면 건강과 행복을 위해 몹시도 중요한 과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생 잘 살았다", 혹은 "망자의 삶이 내게 꼭 필요한 영향이었다"라는 긍정 스토리는 인생을 살다 가는 당사자와 그 가족들이 완성해야 하는 숙제다. 그 숙제를 직접 자신의 생각을 키우고 마음을 넓혀 성장하는 방식으로 하지 않고, 그저 사람만 수십 수백 명 끌어와 앉혀 놓고, "인생 잘 살았다" 남의 입에서 나오는 한 마디를 따내기 위해 노력하는 건, 너무 가짜 아닐까. 그런 중요한 순간까지 남 입맛에 맞추는 위선과 과시로 오염시켜야 할까. 내 가족이 당한 슬픔에 집중해야 할 그 시간에 남 시선 판단 신경 쓰고 계산하느라 바쁜 게 정상일까.
결혼식도 마찬가지다. 남남이던 사람이 서로 만나 가족이 되어 평생 함께 살아가기로 세상에 선포하는 그날은, 부모로서 할 일은 진정한 성인으로 독립하여 새 가정을 꾸리는 자녀들의 성장을 응원하고, 서로의 가족을 따뜻하게 맞고 좋은 관계를 시작하는 데 집중해야 하는 날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날부터 서로에게 하객 수부터 시작해서 '내가 더 잘 나가. 내 인생이 더 잘났어.' 과시와 대결로 시작하니, 결혼한 남녀가 한마음으로 단단한 관계를 맺고 사랑을 완성해 가는데 집중하기보다, 누가 무엇을 더 주고받았는지 손익 계산부터 시작하며 새로 시작한 부부관계를 양가를 비교하고 서로를 비교 평가하는 끝없는 지옥 수렁으로 만들게 되는 게 아닐까.
평생 연락 한 번 없던 사람들이 결혼식을 앞두고, 상을 당하고서야 뜬금없이 연락한다고 불편해하는 사람들을 종종 본다. 이렇게 서로에게 불쾌감을 주면서까지 사람을 끌어모으기 위해 뻔뻔해져야 하는 게 맞을까. 인생 잘 살았다 가짜 평가를 주고받기 위해, 억지 연기 위선을 상부상조해야만 하는 걸까.
모두가 자신이 완성해야 할 숙제의 책임을, 남에게 위임하려 애쓰는 건 아닐까. 최대한 많은 사람들을 모아 모두가 손뼉 쳐 주는 장면을 만들어 내기만 하면, 나는 아무것도 안 해도 '번듯하게 보이며' 넘어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무책임한 태도 아닐까.
모여든 사람들 수를 보고 인생의 가치를 평가하는 관습 문화가, 눈에 보이는 규모만으로 평가하는 습관이, 우리 모두를 내면 성장, 의미 있는 과정을 싹 무시하고, 보여주는 삶에만 심히 치중하게 만든다는 생각이 든다. 이 보여주기식 삶이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비교 평가에 시달리는 고통을 주고, 최대한 많은 사람들을 내 편으로 끌어다 놓으려는 어장 관리에 귀한 인생 시간을 낭비하게 만든다.
인생에 그토록 중요한 결혼식과 장례식만이라도, 그 식을 통해 이루어야 하는 숙제를 나 스스로 하면 어떨까. 보기 좋은 결과보다 의미 있는 과정에 집중하면 어떨까. 진심으로 축하해 줄 수 있는 사람들과 함께 진심으로 울고 웃는 의미 있는 예식을 나답게 개성 있게 만들어 보면 어떨까. 신랑신부와 하객이 함께 부부가 된다는 의미를 깨닫고 성장하는 시간을 만들어 가면 어떨까. 평가하는 남의 시선은 없고 유족과 위로자만 있는 장례 문화를 만들면 어떨까. 소수의 사람이 모인 작인 결혼식. 장례식이라도, 잘 살았네 못 살았네 함부로 평가하기보다, 따뜻한 진심을 다해 응원하고 돕고 지지하는 우리 사회가 되면 어떨까. 우리 모두가 겉모습만으로 잘 산 인생, 못 산 인생 판단하는 '흑백 논리'를 버리고, 각각 다양하게 아름다운 영향력을 가지는 삶으로 존중하고 긍정하는 태도를 배우고 익히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