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 이득, 인복이라는 의심스러운 가치

[내면 성장 에세이] 내가 믿었던 거짓말들

by 하트온

학창 시절 내 세상엔 '인간은 이윤을 추구하는 존재'라는 목표가 학교에도 집에도 내내 급훈처럼 가훈처럼 내 눈앞에 붙어 있는 것 같았다. 대한민국이라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윤을 만들지 못하는 삶은 쓸모없는 존재라고 하는 것 같았고,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해도 이득을 보는 쪽을 선택할 줄 알아야 한다는 생각이 도저히 무시할 수 없는 강박처럼 순간순간 거센 외압으로 나를 눌렀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린 마음이 찾아낸 이득은 유치하기 짝이 없는 것들이었다. 내 책을 사는 대신 친구 책을 빌려 보면 이득이었고, 내 돈 대신 친구 돈으로 산 과자를 나눠먹으면 이득인 것 같았다. 공부한 시간보다 시험결과가 좋아도 이득이었고, 운 좋게 내가 할 일을 남이 하게 만들고, 힘든 책임을 피해가도 이득이었다.


이 유치한 이득 추구의 삶은 직장생활을 시작하고 결혼을 하고도 이어졌다. 남편이 집안일을 많이 할수록 이득이고, 내 조건보다 남편 조건이 좋아도 이득, 결혼에서 내가 받은 것이 더 많으면 이득처럼 느껴졌다. 아이를 키우면서도 다를 바 없었다. 남의 집 애들보다 내 아이가 잘하는 게 더 많으면 이득이고, 더 인물 좋고 인기 많으면 이득이 되는 거였다. 보다 싸게 사기 위해 '굳딜'에 목매는 것도, 마트, 시장에서 조금이라도 더 싼 값에 좋은 물건 사려고 눈에 불을 켜고 살피는 것도, 모두 이득 보려고 정신을 곤두세우고 사는 거였다.


어느 날, 두 살 배기 어린아이를 키우는 지인이 다급한 목소리로 연락을 해왔다. 급한 업무를 봐야 하는데, 아이가 아파서 어린이집에 보낼 수 없어 발을 동동 구르며 이집저집 도와줄 사람을 찾아보는 중이었다. 그날따라 내 스케줄이 여유가 있었고, 평소 가깝게 지내던 집 사정이기도 해서, 아픈 아이를 내가 돌봐주겠다고 했다. 열이 나는 아이에게 해열제를 먹여 가며, 계속 열을 재고 물을 먹이고, 열이 떨어지나 싶으면 죽과 과일퓌레를 먹여가며 아이를 하루 종일 정성으로 돌봤다.


저녁이 되어 내 몸이 으슬으슬 한기 들고 열감이 느껴지기 시작할 때쯤, 아이 엄마가 볼 일을 보고 와서, 아이를 픽업해 가며 말했다.

저는 참 인복이 많은 사람이에요. 항상 이렇게 위기 상황에 도와주는 사람이 생겨요.


이 말이 내 마음에 남았다. 그리고 이런 의문이 떠올랐다. '그럼 나는?' 그 길로 나는 3일을 앓아누웠는데, 그 3일 동안 내내 떠올라 내 마음을 괴롭히던 생각은, 저 사람이 이득을 본 만큼, 내가 큰 손해를 보았다는 생각이었다. 저 사람이 인복 많은 사람인만큼, 나는 인복이 지지리 없구나 싶고, 저 사람은 내가 나서지 않았어도 도와주는 사람이 많은데, 내가 스스로 내 귀한 시간과 노력과 건강을 내주고 호구짓을 자청했구나 자괴감이 밀려왔다.


이 일이 '인복'이라는 말을 다시 점검해 보게 만들었다. 결국 인복이란 건, 남이 희생하고 내가 이득을 보는 일이 거듭되는 패턴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듭되는 이득만 챙겨가는 사람은 인복이 많은 사람, 그런 이득을 보지 못하는 사람이나, 시간과 노력을 희생하며 타인을 거듭 챙겨주기만 하는 사람은 인복이 없는 사람이란 결론을 내리게 만드는 전통적 사고가 뭔가 이상하고 불쾌했다. 인복을 자랑하고 원하고 부러워하는 마음 뒤에 있는 사고 바탕이 나는 의심스러워졌다.


인간이 이윤 추구하려고 태어난 거 맞아? 꼭 이득 봐야 해? 인복을 바라는 거 결국 내 이득을 위해 남을 이용하겠다는 거 아냐?

전 사회가 같이 믿는 전통문화 사고 속 거짓말은 정말 파내기 힘든 거대한 바위덩어리와 같은 것이다. 나는 작정하고 열심히 몸을 키운 후, 날을 잡았고, 대망의 작업날에 '이윤', '이득', '인복'이 세 바위 덩이를 끙끙대며 파내 버렸다. 이 암석 덩이들을 파내 버리고 보니, 메마른 돌산 같았던 나의 내면은 사실 자유와 여유의 시냇물이 졸졸 흐르는 꽤 운치 있고 아름다운 땅이었다.


그제야, 내가 그 '이득 봐야'한다는 생각에 얼마나 묶여서 노예생활을 한 것인지, 얼마나 많은 시간 낭비를 한 것인지 실감이 났다.


나 이윤 추구하려고 태어난 거 아니야! 이득 안 봐도 돼. 가끔 손해 봐도 괜찮아! 인복 같은 거 없어도 잘 살아!

이렇게 외치니 속이 시원해졌다.


이득이 없어도 내 마음에 드는 걸 사고, 내가 하고 싶은 걸 하고, 모든 나의 선택을 존중하기로 했다. 이득이 된다고 굳딜을 찾아다니지 않고, 이 가격 저 가격 비교하지 않으니, 시간이 놀라우리만치 절약되어 더 중요한 일에 쓸 시간이 풍성하게 확보되었고, 여기저기 다니면서 기웃대다 필요치 않은 물건에 현혹될 기회가 없어지니, 정말 꼭 필요한 것만 사게 되어, 낭비가 훨씬 줄었다. 운동과 쇼핑을 한 세트로 묶어, 몇 시간씩 가만히 컴퓨터 앞에 앉아 있게 만드는 온라인 쇼핑을 버리고, 나가서 몸을 움직여야 하는 오프라인 쇼핑만 하니, 생활 습관도 더없이 건강해졌다.


여러 가지 선택 상황에서 이득이 되는지 아닌지 따지는 태도를 버리니, 오히려 맑은 눈으로 내가 원하는 것을 직시할 수 있었다. 오늘 당장 눈앞의 이윤이 없으면 할 마음을 내기 힘들었던, 장거리 경주가 필요한 일을 위해 꾸준한 노력을 해 나갈 수 있었고, 다른 사람보다 내가 먼저 조금 더 노력해도 일희일비하며 억울해하거나 속상해하지 않을 만큼 마음에 큰 여유 공간이 생겼다. 다른 사람이 보는 이득과 내가 보는 이득을 비교 계산하는 마음마저 깨끗이 지우고 나니, 나는 진심으로 내 삶이 잘 되기를 바라는 만큼, 타인의 잘됨을 응원하고 지지해 주며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


특히 인복을 바라는 마음을 버리고 나는 훨씬 더 기분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충분히 이득보지 못할 때마다, 남이 나보다 더 큰 이득을 손쉽게 취하는 걸 볼 때마다, 챙겨주는 사람들에 둘러싸여 온정을 풍성히 누리며 살아가는 인기인을 볼 때마다, 난 왜 저 사람만큼 인복이 없나 서러웠었다. 그런 마음이 치밀 때마다 밀려오던 폭풍을 부르는 음울한 잿빛 먹구름이 사라지니, 나의 내면 날씨가 밝고 화창한 '맑음' 상태를 유지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인간에게 돈은 꼭 필요하지만, 눈앞의 이윤 이득에만 연연하는 조바심은 필요치 않다. 내 주변 사람들에게서 감사할 점을 찾고 인복으로 여기는 마음은 아름답지만, 인복을 바라는 욕심, 없다고 서러워하는 질투, 남이 인복이 되어주는 걸 당연하게 여기는 '응석'은 아름답지 않다. 모두가 믿고 그렇다고 알고 있는 무엇일지라도, 내 마음에 고통을 주고, 내면을 거칠고 협소하게 만드는 암석 덩이라면, 온 힘 다해 파내 버려야 한다. 그런 뒤에야, 나의 내면이 젖과 꿀이 흐르는 풍성하고 여유 있고 아름다운 땅을 회복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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