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아 양육서] 전문가 도움 없이 하는 자기 마음 치유법
현주의 문제
현주에게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았다. 감정을 어떻게 들여다보고 해결하고 나아가야 하는지. 아무도 그 모범을 보여주지 않았다. '아빠'라는 이름의 어린아이는 만만한 가족에게 마구 응석과 성질을 부리며 살아가는 사람이었고, 다 큰 성인 남자의 응석을 보고 겁에 질린 '엄마'라는 이름의 소녀는 공포 속에서 길을 잃고 혼돈에 빠진 아이였다. 모두가 어린 아이고 모두가 미성숙할 뿐, 현주의 세상에 현주에게 제대로 감정을 다루는 법을 가르쳐 준 어른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모두가 마음은 무시하고, 겉으로 보이는 부분만 가리고 포장하고 신경 쓰라 가르쳤다. 부모가 해주는 밥을 먹고 몸이 자랐고, 학교 교육을 받으며 다방면에 지식을 고루 갖춘 어른이 되었으나, 내면은 제대로 양육받지 못했고, 전혀 자라지 못했다.
오래 묵은 감정이 켜켜이 쌓인 퇴적암 절벽으로 둘러싸인 깊은 협곡 같은 현주의 내면은 길을 잃기 쉬운 무시무시한 곳이 되었다. 협곡 바닥엔, 암석으로 굳어지지 못하고 여전히 뜨거운 감정들이 뒤범벅되어 부글부글 끓고 있다. 마음 바닥을 이루는 그 감정 뒤범벅은 결코 그대로 협곡 바닥에 가둬두고 잊어버릴 대상이 아니다. 이 감정 마그마는 지금 성인이 된 현주의 현실 문제들에까지 수시로 끓어올라 복잡하고 어렵게 만든다. 현주의 내면세계를 휘젓고 다니며, 천재지변을 일으켜 그녀의 감정 기후체계를 불안정하게 만든다. 그것이 일으키는 화산 폭발, 지진, 해일, 폭풍이 할퀴고 지나간 자리마다, 말할 수 없이 피폐해진 내면이 괴로워 죽겠다고 아우성이다.
현주는 지금 너무 고통스럽다. 단시간에 자신의 마음을 낫게 해 줄 수술이라도 있다면, 당장 수술대에 누워 모든 걸 맡기고 싶은 심정이다. 자신의 마음을 스스로 들여다보는 용기를 내야 한다는 걸 안다. 하지만, 감정이 얽혀있는 정도가 그녀가 살아온 역사만큼이나 꼬여도 너무 꼬여있고, 그 복잡한 것을 들여다보지 못하게 가로막는 스스로가 세운 방해물, 방어기제가 너무 많다. 가만히 있어도 마음이 아프고 수치스럽고 화가 나고 고통스러운데, 그걸 살펴보려 하면 더 아프고 더 수치스럽고 더 화가 나고 더 고통스럽다.
감정을 다루지 못하는 아기
감정을 다루는 일에 있어, 현주는 아기와 같은 상태다. 스스로를 위해서 아무것도 못하는 아기. 혼자 자신을 키울 능력이 도무지 없는 아기.
갓 태어난 아기를 떠올려 보라. 신체 기본은 다 갖추고 있지만, 아직 어른들이 가진 모든 것을 다 갖추고 있진 않다. 아직 너무 작고, 걸어 다닐 수도 없고, 그 작은 손으로 물건을 제대로 쥘 수도 없다. 아직 이가 나지 않고 소화 기관이 다 발달하지 않았으니 모유나 모유를 흉내 낸 인공 분유 외엔 다른 고형 음식을 소화할 수도 없다. 아기는 따뜻한 엄마 품에 안겨 극진한 정성으로 돌보는 양육을 받아야 한다. 양육자에게 전적으로 의지해야만 한다. 그래야 살 수 있고, 더 건강하게 자라날 수 있다.
현주에겐 양육자가 필요하다. 아무도 양육해 준 적이 없어 엉망진창 문제아가 된 내면세계를 다시 청소하고 정리하고 세우는 방법은, 제대로 된 양육을 처음부터 다시 차근차근 받는 길 밖에 없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아기를 키우듯 아기에게 하나하나 가르치듯 인내와 끈기로 현주를 양육하는 방법 밖에 없다.
누가 현주라는 내면 아기를 품고 양육을 해 줄까. 현주를 아끼고 사랑하는 남자 친구 민석이 있었지만, 알고 보니 민석도 겉으로만 잘 자랐지, 그의 내면은 현주와 마찬가지로 제대로 양육받은 적 없는 어린아이 상태였다. 자신의 위태로운 협곡을 보여주기 싫으니, 속 이야기는 하지 않고, 언제나 자신이 잘하는 것, 잘되고 있는 겉모습, 매끈하게 발라놓은 겉포장에 관해서만 이야기하였다. 서로가 눈에 보이지 않는 부분들은 최대한 숨기고 삶의 극히 일부분만 보여주었다. 서로의 앞마당 입구만 보는 그런 피상적인 관계만을 맺으며, 그런 관계로 충분하다고 자신을 속이고 사는 일에 둘 다 징그럽게 능숙했다.
부모도 할 수 없고, 사랑하는 사람도 해 줄 수 없었던 일을 과연 이 세상 누가 해줄 수 있을까? 정신과 의사? 상담사? 수십 명 내담자를 관리해야 하는 의사나 상담사는 한꺼번에 수십 명 고아들을 돌보는 보육원 보모 선생님 같은 존재지, 결코 한 아기에게 품을 다 내주는 '엄마'는 될 수 없다. 게다가 부모 생활비까지 감당하고 있는 현주의 월급으론 의사나 상담사를 만나는 비용 부담은 마음을 짓누르는 또 하나의 고통이 될 뿐이다.
현주라는 아기를 양육하는 일, 그녀에게 온전한 엄마 품, 부담 없이 안길 수 있는 따뜻함이 되어주는 일을 누가 해 줄 수 있을까.
감정을 품어 줄 수 있는 엄마가 태어나야 한다
오직 현주 자신만이 할 수 있다. 현주의 감정에 엄마 품이 되어 주어야 하는 이는 바로 다름 아닌 현주 자신이다.
감정 문제에 있어 아기 상태인, 자신의 내면 아이를 품어줄 어른 하나를 스스로 만들어 내야 한다. 곧 30 생일이 가까운 성인인 현주에겐 그럴 능력이 있다.
현주뿐 아니라 어떤 성인에게도, 아기 하나 품고 키울 '엄마 자아'가 하나씩 다 있다. 여자 남자 할 것 없이 인간 모두에게 다 있는 능력이다. 나는 아닌 것 같다고, 자신이 철없는 어린아이 같다고만 느껴진다면, 지금까지 한 번도 누군가를 돌보는 책임을 맡은 적이 없어, 아직 성인 자아가 삶에 적극 출현할 기회가 없었고, 근육을 키운 적이 없어 엄마 자아가 힘이 없는 상태일 뿐이다. 존재하지 않는 것이 결코 아니다.
내 안에 분명히 존재하는 성숙한 엄마 자아를 찾아 이끌어, 에너지를 듬뿍 공급하고 힘을 키워 내라. 자신 안의 어머니를 살려내라. 아무리 힘이 없었던 성인 자아라도, 키워야 할 자식이 생기는 순간 아이를 위해 큰 희생을 하는 위대한 어머니 아버지로 변신하는 예를 주변에서 수없이 보았다. 우리 모두에게는 그런 저력이 있다. 아이 하나가 불러오는 모성의 저력! 우리 모두에겐 다 '누군가를 돌봐 줄 수 있는 엄마 자아'가 분명히 있다!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결심해야 할 뿐이다. 나에게 잘 키워야 할 아이 하나가 있다고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마음이 필요하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분명 존재하는 아기를 초음파 검사 심장소리를 통해 발견하고 인정하듯, 눈에 보이지 않지만 내 마음을 끝없이 두드리고 살려달라 도움을 구하는 이 어린 자아를 발견하고 인정해야 한다. 이 간절한 아이, 건강하게 자라 건강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성인이 되고 싶은 아이를 내가 맡아 키워주기로 마음먹어야 한다.
이 일을 하기 위해 대단한 무엇이 필요한 건 아니다. 아기 하나 품을 정도의 넉넉하고 따뜻한 가슴만 있으면 된다. 아기 하나 수시로 들여다보고 배가 고픈지 졸린지 기저귀가 젖었는지 챙길 마음의 여유만 있으면 된다. 아기 하나 책임질 수 있는 강인함과 인내심은 아기를 맡아 키우기 시작하면 점점 자라 가게 될 것이다. '나'라는 아이 하나를 키워내면서, 내 안의 어른 자아가 세상 그 누구보다 강하고 지혜롭게 성장하는 걸 보게 될 것이다.
현주의 결심
현주는 결심했다. 자신의 양육자를 스스로 태어나게 하기로. 현재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는 것 같고, 자신도 없지만, 시도해 보기로 했다. 스스로를 돌보는 엄마가 되어 보기로 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자신도 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나아가 보기로 했다.
현주가 가는 길을 함께 따라가 보자. 현주 엄마가 현주 아이를 양육하는 길을 따라가며 하나하나 '자아 양육 요령'을 배워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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