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의 빙벽을 녹이는 봄기운

[글쓰기 에세이] 글을 낳고 기르며 살아갑니다

by 하트온

나에게 찾아왔던 작가 블록 (Writer's Block)


'작가 블록'은 말 그대로 작가의 창작의 길을 가로막는 높다란'벽'이다. 그 벽에 가로막혀 본 작가들이라면, 그 벽이 얼마나 높고 두터우며, 그 벽에 가려진 시간과 공간은 얼마나 어두운지, 그 어둠 속에서 느끼는 절망감은 얼마나 지독한 악몽인지, 그 괴물 같은 압력에 글을 한 줄도 더 이어갈 수 없는 고통이 얼마나 비참한지를 충분히 경험했을 것이다.


나도 2015년에서 2016년으로 넘어가는 즈음부터 2019년 말 2020년 초에 이르기까지 4여 년간 '작가 블록' 상태에 빠져 글을 쓸 수 없었던 경험을 가지고 있다. 글을 멈춘 적은 없으나, 글이 나아가지 않는 고통. 끝없이 소설 첫 몇 페이지를 써 보아도, 스토리로 이어지지 않는 답답함이 그 시간을 한 치 앞도 못 보게 하는 뿌연 안개처럼 가득 메우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런 증세를 겪은 것은 내가 나 자신에게 바라는 욕심이 너무 많아서였다. 아직 자신의 필력은 충분히 탄탄하지 않은데, 스스로에게 요구하는 수준이 너무 높았고, 매일 하루 종일 앉아 글만 쓰고 싶어 하는 '하이퍼그라피아' 같은 상태로 너무 오랜 시간을 보내고 나는 지쳐버린 것이었다. 내공이 큰 작가들이 쓴 소설을 읽으면 속이 쓰라렸고, 그 쓰라림은 곧장 내 글에 대한 혐오로 이어졌다.


나는 내 길을 가로막는 이 어둡고 차가운 벽을 내 글에 바라는 '완벽주의'를 완전히 버리고서야 치워낼 수 있었다. 브런치 스토리에 글을 쓰기 시작했던 자체가, 나에게는 글쓰기를 처음부터 걸음마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의미였고, 글 1000개 정도를 쓸 때까지 나는 나 자신에게 자유롭게 뭐든 써 보라고 권하며, 더 이상의 무엇을 아무것도 바라지 말고 마음껏 연습만 해보자고 결심했었다. 그렇게 지난 3여 년간, 하루하루 끝없이 글을 쓰며 내 안의 벽을 허물고 여기까지 나아올 수 있었다. 그 사이 글은 800여 편이 쌓였고, 브런치북은 묶었다가 풀어버린 책까지 합치면 30권 이상을 완성하였다.



스티븐 킹이 제안한 작가 블록 극복방안


스티븐 킹의 <유혹하는 글쓰기(On Writing)>를 읽으면서, 킹 작가도 내가 경험한 '작가 블록' - 사실 스티븐 킹의 책을 읽기 전까지 나는 이 용어를 알지 못했으므로, 한동안 내가 겪은 현상을 '글럼프'라 불렀다 - 을 겪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는 자신의 책에 그 창작의 고통을 스스로 극복해 낸 비결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꾸준한 글쓰기: 스티븐 킹은 꾸준한 글쓰기가 작가 블록을 극복하는 핵심이라고 강조한다. 매일 정해진 시간을 글쓰기에 할애하면서, 글쓰기가 습관이 되도록 만들어야 한다 주장한다. 강하게 뿌리 박힌 습관이 어떤 정신적 감정적 장애도 이겨낼 수 있음을 그는 긴 집필 과정 동안 몸소 체험하였다. 그는 작가 블록이 오더라도 계속해서 글을 쓰는 것이 중요하며, 글쓰기 습관을 유지하면 분명 극복할 수 있다고 조언한다.
읽기: 스티븐 킹은 독서와 글쓰기는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무엇을 읽느냐가 작가에게 영향을 미친다고 설명한다. 좋은 책은 작가에게 영감을 주고, 열정과 희망을 다시 살아나게 할 수도 있고, 난관을 극복하는 방법을 제시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간결하게 쓰기: 스티븐 킹은 불필요한 어휘와 묘사를 피하고 간결하게 쓰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내가 원하는 만큼 아름답고 멋진 문장을 쓸 수 없다고 괴로워하기보다. 필요한 정보만을 제공하는 간결한 문체를 고수하는 방식으로도 오히려 독자의 호기심과 상상력을 더 자극하는 충분히 좋은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이다.
수정하고 다듬기: 스티븐 킹은 초고를 쓰고 나서 거듭 다시 쓰면서 작품을 완성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작가들이 주로 초고를 쓰기 시작하면서 작가 블록을 경험하는 것이기 때문에, '초고는 어차피 쓰레기다'라고 마음먹고 그냥 마음껏 아무 말이나 뱉어내듯 글을 써내려 간 후, 그 초안을 여러 차례 다듬는 것이 작가가 어떤 난관도 헤쳐내는 역량 향상에 도움이 된다고 설명한다.


글이 되던 안되던 계속 썼다는 점과, 문체를 간결하게 쓰는 방식을 시도하고, 초안에 큰 기대를 버렸다는 것이 나와 스티븐 작가가 '벽'을 극복한 방식의 공통점이라면, 스티븐 작가가 취한 다른 점은 그는 더 적극적으로 도움이 될 좋은 책을 찾아 읽고, 수정하고 다듬기의 힘을 확신하고 나아갔다는 점이다.


나는 당시, 활동하고 있던 북클럽에서 지정하는 책만 겨우 읽었을 뿐, 나를 위한 독서를 적극적으로 하지 않았으며, 또한 100편 넘게 작성했던 소설 시작 부분들을 다시는 읽지 않고 버렸다. 보기만 해도 졸리고 재미없게 느껴지는 글을 도저히 다시 보기가 힘들었다.


반면, 스티븐 킹 작가는 그러한 초안들을 버리지 않고 다시 거듭 들여다보며 만족할 때까지 고쳐나갔고, 그러한 노력의 결과로 수많은 베스트셀러 작품을 쉼 없이 써낼 수 있었다.



빙벽을 녹이는 봄기운


나는 이 모든 극복 방안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이든 적어도 괜찮다'고, '너의 생각 감정 어떤 조각도 끄집어내어 쓸 가치가 있다'고 스스로에게 자유를 허락해 주고 격려해 주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글쓰기를 중단하지 않고 아무 글이나 아무 생각 없이 써 나가다 보면, 그 거대한 악마의 벽에 균열이 일어나기 시작하고, 그 균열의 틈으로 다시 비쳐드는 햇살처럼 새로운 아이디어가 다시 찾아오고 글쓰기에 자신감이 생겨난다고 생각한다.


스티븐 킹은 아마도 자신에게 필요한 책을 찾아 독서하는 과정을 통해, 나보다 훨씬 빠른 시간 안에 자신에게 자유를 허락하고 내면 작가를 격려하는 메시지를 주고 난관을 극복했으리라. 다른 사람의 글을 읽으며 자극과 영감을 받으면 받는 대로, 내 안에 감정이 마음대로 흐르면 흐르는 대로, 자유롭게 글을 흘리고, 흘러내린 글은 나중에 고치고 다듬으면 된다고 그는 보다 여유롭게 생각할 수 있었을 것이다.


창작을 방해하는 작가블록이라는 '벽'이, 매서운 겨울바람에 내가 낳아 기르는 글이 긴장과 피로로 얼어붙어버리는 현상이라면, 내 안의 작가를 마음껏 뛰어놀게 하는 자유로운 마음, 작가의 어떤 감정과 생각도 쓸 가치가 있음을 믿는 마음, 글은 차차 다듬어 가면 된다고 생각하는 여유로운 마음은 그 '빙벽'을 녹이는 따뜻한 봄기운이다. 작가의 길을 걸으며 힘을 키우고 싶은 사람 모두, 내 안의 작가가 쓰는 글이 얼어붙지 않게, 항상 따뜻하고 말랑한 상태로 유지하도록 봄기운 가득한 환경을 만들어 줄 수 있어야 한다. 작가가 자유롭게 무엇에 관해서건 마음껏 글을 쓰도록 격려하고, 어떤 모습의 초안에도 실망하지 않도록 함께 다듬어 나가자고 끊임없이 다독여 줄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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