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퀴가 있는 삶 ep. 17 (by 코리하 라이브)
열 일곱 번째 이야기: 지하철을 편애하는 1인
글: 코하
갓 스물.
세상에 처음 나왔을 때 가장 힘든 것 중에 하나가 대중교통수단이었습니다.
물론 바퀴가 삶을 살게 되었던 그 이전부터 가장 힘든 것이긴 했지만, 학교와 집이 가까워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할 일이 거의 없었던 중학교 시절과 고등학교에서 자퇴를 하고 히키코모리에 가까울 정도로 사회와 격리된(스스로를 격리한) 삶을 살았던 성인 이전 시절과는 달리 어찌어찌 세상에 나와야겠다는 각오를 가지고 세상에 처음 나와서 매일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해야 하는 상황은 분명 다른 것이었으니까요.
그땐 어떤 특정 교통수단이 편하고 불편하고, 좋고 싫고, 쉽고 어렵고가 없었어요. 모두 불편했고, 모두 어렵고 싫었죠. 그나마 탈만한 것이 (당시에는 전동휠체어가 아니라 수동휠체어를 타고 다녔기에 가능했지만) 택시였지만, 택시는 아시다시피 비용 문제로 지속적으로 이용가능한 대중교통수단은 아니니까요.
당시엔 지하철도 버스도 다 불편했습니다. 버스는 장애인 편의시설이라는 것이 거의 전무했던 시절이고, 지하철엔 휠체어용 리프트가 시범 도입하던 시기였지만, 휠체어 리프트라는 물건이 전 역에 모두 설치된 것도 아니고 너무 느리고 위험하기도 해서 이걸 타라고 만든건지 모르겠다는 평이 자자하던 시절이었습니다.
바퀴가 있는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 이용하기에..
버스는 타인의 도움을 받아야하는 구간이 아주 짧다는(계단 3~4칸 정도) 것이 가장 큰 장점이었죠.. 하지만 도움을 받아야 하는 구간이 버스를 타고 내리는 구간이었기에 버스를 정류장에 오래 세워둘 수 없는 상황에서 버스를 타고 내리는 난이도는 오히려 높았고, 도로 사정이나 버스의 속도 등에 크게 반응을 하는 버스의 특성 상 내부에서 안정적으로 휠체어나 유아차 같은 것을 고정하고 이용하기에 무리가 있기도 했습니다.
지하철은 버스와는 반대로 타인의 도움을 받아야하는 구간이 엄청나게 길다는(3~5층 단위) 것이 가장 큰 단점이었습니다. 대신 도움을 받아야하는 구간이 지하철을 타고 내리는 것과는 관계가 없는 구간이었기에 지하철을 타고 내리는 난이도 자체는 낮은 편에 속했고, 정해진 라인을 정해진 속도로 안정적인 운행을 하는 지하철의 특성 상 내부에서 안정적으로 휠체어나 유아차 같은 것을 고정하고 이용하기에도 큰 무리가 없는 편이었습니다.
두 교통수단은 사실상 둘 다 바퀴가 있는 삶을 살면서 이용하기엔 어려움이 큰 대중교통수단이었습니다. 각자의 장단점은 명확했지만 도찐개찐이라는 느낌이었을 뿐이죠.
다만 확실한 차별점이라면 사기업들이 운영하는 버스는 유료에 할인이 없었고, 공기업이 운영하는 지하철은 장애등급에 따라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는 것 뿐(이라고 말하기엔 너무 큰 차이지만)이었습니다.
그리고 20년은 넘고 30년은 조금 안되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동안 지하철엔 거의 끊이지 않고 장애인 관련 이슈들이 있었어요. 리프트 추락 사고에 관한 이슈들이 있었고, 엘리베이터나 에스컬레이터 설치에 대한 이슈들이 있었으며, 장애인 이동권과 접근성에 관한 다양한 이슈들이 지속적으로 있어왔습니다. 그리고 그 이슈들 만큼 지속적으로 변화했고 좋아졌습니다.
지하철에 그런 다양한 이슈가 있는 동안 버스엔 휠체어 장애인이 버스를 이용할 수 있냐 없냐같은 근원적 문제나 수십~수백억의 예산을 투입한 저상버스를 왜 휠체어가 이용할 수 없느냐에 대한 이슈정도가 드물게 나왔을 뿐이에요. 그리고 아직도 여전히 20~30년 전처럼 버스를 왜 장애인이 탈 수 없느냐에 대해 논의가 이뤄지고 있을 뿐이죠.
그 결과 현재에 이르러 지하철은 세계에 내놔도 부끄럽지 않을 정도로 바퀴에 대한 대비가 잘 된 대중교통수단으로 꼽히지만 버스의 경우엔 세월이 무색하게 바퀴에 대한 대비 면에선 큰 변화가 없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바퀴가 있는 삶에겐 불친절한 대중교통수단으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결국 이 차이를 만들어 낸 것은 단순히 시간만은 아닐 겁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고, 개선의 목소리를 내고, 아이디어를 모으고, 그렇게 조금씩 변해온 것이 시간에 축적되어 이 차이가 난 거겠죠.
그렇다면 버스도 지하철처럼 휠체어를 탄 장애인들에게 무료로 이용하게 하란 말이냐? 라는 질문이 나올 수 있을 거 같습니다.
하지만 그건 아니에요.
이 이야기의 시작이던 20~30년 전에는 바퀴가 있는 삶을 사는 사람들에겐 어이없을 정도로 두 교통수단의 이용난이도가 높았습니다. 그래서 장애인에 대해 지하철 무료라는 게 최소한의 유인책은 됐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 최소한의 유인책에 덕에 지속적인 이용을 했던 장애인분들에 의해 시설들이 조금씩 변화된 것일 겁니다.
그리고 이제 그 시설은 장애인을 비롯하여 노인, 아이, 유아차, 임산부 등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편하게 이용할 수 있는 시설이 되었습니다. 이 정도만 되어도 (제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한 사람의 장애인으로서 비장애인들과 똑같이 교통비를 내고 이용하더라도 전혀 불만이 없습니다.
그러나 지금에와 버스가 무료로 탈 수 있게 한다고 해서 극적으로 많은 장애인들이 이용할 거라고 보지 않습니다. 그리고 다양한 현실적인 문제들로 인해 사기업인 버스회사들 입장에서도 장애인들이 더 많이 이용하길 원할거라는 생각을 하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버스는 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장애인을 태우느냐 마느냐의 접근법이 아니라, 이 땅에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편리한 운송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느냐 아니냐의 차원에서 말이죠.
제가 참 좋아해마지 않는 지하철처럼.. 언젠가는 버스도 그에 못지 않게 좋아하는 교통수단이 될 수 있길 바랍니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의 현실을 지탱하며 목적지로 향하고 있을 그 커다란 바퀴들에게 그 운행이, 조금 더 시간이 지난 미래엔 조금 더 다양한 사람들에게 조금 더 친절한 운행이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