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읽기로 넓어지는 세상
글을 읽는 중입니다 - 24 겨울
'예술을 한다.'라는 건 창작 과정에 참여하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
창작의 결과물을 보고, 듣고, 읽고 그리고 그것에서부터 느낀 것을 나의 언어로 쓰고, 다른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는 것도 예술을 하는 과정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처음부터 이런 생각을 한 건 아니다.
24년 한 해 동안 도서관 독서 토론회에 참여하면서 차곡차곡 쌓은 생각이다.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시공간 속에 존재하는 책 속 사람들과 나의 가치관, 경험들이 연결되고 같은 책을 읽은 사람들의 가치관, 경험들과도 연결되며 확장하는 과정은 짜릿했다.
평범한 인생으로 독서 토론을 할 때 였다.
주인공이 철도역을 정원처럼 아름답게 가꾸고, 전쟁으로 그것이 파괴되는 것에 좌절하며 철도에 가졌던 애정이 사그라드는 모습을 보고 주말농장 경험이 떠올랐다.
열 평 남짓한 임대한 남의 땅이건만, 손수 땅을 갈아 엎고, 때에 맞는 씨앗을 심고, 물과 비료를 주며 키우다보니 그 땅에서 난 채소들은 모두 특별하고 귀하게만 보였다.
벌레라면 십리 밖으로 도망가는 내가 작은 텃밭을 침범한 벌레들을 얼마나 단호하게 처단했는지 모른다고 말하자 비슷한 경험이 있는 분들이 웃음을 터트리며 공감했다.
그러자 묵묵히 그 모습을 지켜보던 한 분이 철도원으로 은퇴한 남편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운행 하는 동안 화장실도 가지 못하고, 밥도 제 때 먹지 못하고 도시락만 싸들고 다녔지만 막상 제대로 된 대우를 받아본 적 없는 남편의 모습이 책을 읽는 내내 떠올라 가슴 아팠다고 하셨다.
자연스럽게 기차가 제 시간에 출발하고 도착할 수 있도록 사람들을 안전하게 수송하기 위해 종종거리며 기차에 올라타는 제복 입은 철도원의 모습과 텃밭을 뛰어다니며 채소에서 벌레들을 떼어내던 내 모습이 겹쳐졌다.
책이 아니었다면 결코 연결지어볼 수 없었을 것이고, 쉽게 이야기를 꺼내지 못했을 것이다.
주말농장을 하는 내내 뭐 그렇게까지 돈도 안 되는 일에 열심이냐는 소리를 들으며 어느 순간부터 주말농장 이야기를 주변에 하지 않았다.
동시에 그런 나도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는 운행하는 분들이 돈 받고 하는 일이니 불편함 없이 안전하게 나를 수송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요즘은 그분들에게 타고 내릴때마다 부끄러움을 이겨내며 인사라도 전하게 되었다.
벌레들을 떼어내던 내 마음과 그분들의 마음이 다르지 않음을 알았기에 가능한 일이다.
물론 이런 아름다운 감정만 느끼지는 않았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토마시의 에로틱한 우정은 나의 도덕선을 넘어서는 행동이기에 이해보다는 반감이 먼저 생겨났다.
하지만 타인의 깊은 곳에 있는 실재 자아를 확인하는 즐거움이라는 토마시의 이유를 아는 순간 반감은 섬뜩함이 되어 나에게 돌아왔다.
글을 읽고 쓰는 나의 이유와 토마시의 에로틱한 우정의 이유가 다르다 할 수 있을까?
글을 읽고 쓰는 건 사회적으로 권장하는 행동이고 에로틱한 우정은 사회적으로 비난하는 행동이라는 차이점이 있지만, 두 행동을 일으킨 생각은 다르지 않다.
그것을 깨닫는 순간, 그리고 토마시가 책 속에만 존재하는 인물이었기에 나는 그를 받아들일 수 있었다.
토론회 때 밀란 쿤데라가 바람둥이였을 거라는 말이 농담처럼 나왔고 모두가 즐거워 했다.
하지만 우리는 모두 알고 있었다.
그런 자아를 선택하지 않았을 뿐, 없다고 치부하고 외면할 뿐, 내 안에도 그런 자아가 있다는 것을.
결코 외부에 '나의 자아'라는 깃발을 들려서 공개하고 싶지 않을 뿐이다.
밀란 쿤데라에게도 토마시는 그런 자아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작가이기에 그 자아를 외면할 수 없었을 것이다.
토마시라는 인물은 작가가 스스로의 키치를 벗어버리기로 용기낸 결과물이 아닐까?
그 용기가 향하는 곳에 있는 메시지는 사랑이라는 것은 육체에 얽매여 있지 않은 타인을 이해하기 위한 인간의 가장 고귀한 감정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또 다른 키치의 모습일 수 있음을 알면서도 책을 찢지 않고 내기로 결심한 밀란쿤데라의 용기에 감사할 따름이다.
너무 시끄러운 고독은 독서토론회 책은 아니었다.
그래서 한탸가 독서토론회에 멤버로 함께 했다면 어땠을 지 상상해 보았다.
그때도 그는 너무 시끄럽다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그 시끄럽다 생각하는 감정은 고독이 아니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