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무게에 관한 통찰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책을 읽는 중입니다 - 24 겨울
이 책에는 주요 커플인 토마시와 테레자, 주변 커플인 사비나와 프란츠 두 쌍의 커플이 등장한다.
토마시와 테레자는 육체적 관계와 정신적 사랑에 관한 가치관을 두고 대립한다.
사비나와 프란츠는 키치에 관한 가치관을 두고 대립한다.
토마시는 스위스 망명이라는 편한 삶 대신 소련에게 점령당한 체코로 다시 돌아와 직업을 잃고, 감시를 당하면서도 테레자와 함께하는 삶을 선택할만큼 그녀를 사랑한다.
동시에 토마시는 그가 에로틱한 우정이라 정의한 다양한 여자들과의 육체적 관계를 포기하지 못한다.
그는 여자를 정복하는 것으로 명예심이 높아지는 사람은 아니다.
다만 그는 아무도 보지 못한 인간 내면의 깊은 곳에 숨겨져 있는 순수한 자아를 만나는 쾌감을 좋아하고, 그 방법으로 섹스를 선택한다.
하지만 토마시가 사랑하는 테레자는 육체와 영혼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토마시의 에로틱한 우정 행각은 그녀를 불안하게 하고 추락의 욕구를 생산한다.
결국 테레자도 딱 한 번 다른 남자와 육체적 관계를 갖는다.
그녀는 그 관계에서 사랑과는 다른 해방감을 동반한 쾌감을 느낀다.
하지만 해방감의 순간은 짧았고, 그 이상의 불안감과 죄책감이 그녀를 사로잡는다.
사비나는 토마시의 베스트 프렌드이자 에로틱한 우정의 대상이었다.
화가인 그녀는 토마시의 에로틱한 우정을 가장 잘 이해하고 동의하는 사람이다.
사비나는 토마시가 키치와는 정반대라서 사랑한다고 말한다.
사비나가 말하는 키치는 거짓된 이념, 그럴싸하게 포장된 신념이다.
토마시와 헤어진 후 만난 프란츠에게 사비나는 토마시와 했었던 에로틱한 우정을 원한다.
하지만 프란츠는 사비나를 신성한 여인으로 포장하여 우상화한다.
토마시와 테레자는 평생을 함께 한다.
헤어짐의 순간도 있었지만, 두 사람은 결국 함께하는 것을 선택한다.
사비나와 프란츠의 관계는 오래가지 못한다.
사비나는 프란츠와의 관계를 가볍게 흘려보낸다.
하지만 프란츠는 사비나를 위해 캄보디아 내전 현장으로 봉사를 떠나고 그곳에서 황당한 죽음을 맞이한다.
가벼움과 무거움이 끝없이 교차하는 네 사람의 삶
등장인물들 삶이 가벼움과 무거움을 끝임없이 오가며 변주하는 걸 보는 것이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이다.
시골에서 한 두 시간 잠시 만난 의사와 웨이트리스는 평생의 동반자가 된다.
반키치를 예술적 신념으로 표현하는 화가는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그녀의 화폭을 찢어야 한다는 걸 안다.
정치적 신념을 행동하기 위해 캄보디아로 간 과학자는 길거리 사소한 시비에 휘말려 죽음을 맞이한다.
이것은 작가의 분명한 의도 아래 벌어진 이야기이자, 작가의 의도에서 완벽히 벗어난 이야기이다.
인생이란 원하는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것이야말로 인생의 진리이며 이는 소설 속 등장인물이라고 해서 피할 수 없다.
키치 안에 키치 안에 키치 안에 키치
인간은 키치한 존재이다.
왜냐하면 나의 다양한 자아들은 키치라는 이름의 어떤 믿음, 희망으로부터 태어나기 때문이다.
러시아 인형처럼 하나의 키치를 벗으면 그 안에 또 다른 키치가 있다.
어떤 것이 거짓된 믿음과 희망이고 어떤 것이 진실된 믿음과 희망인지 그 경계는 모호하다.
사람들은 각자 이끌리는 편에 서서 자신의 믿음과 희망이 진실이라고 소리를 높이지만, 반대편에서 보면 그 믿음과 희망은 거짓이다.
이 책은 처음과 마지막에 니체를 등장시킨다.
나는 작가가 생각하는 가장 키치하지 않은 인물이 니체가 아닐까 생각한다.
순수한 존재로 가기 위해 키치의 옷을 하나씩 벗었던 니체는 엄청난 두려움 속에 미쳐간다.
두려움은 현재 시제와 연결되어 있고, 이를 벗어나게 하는 건 희망이라는 미래 시제이다.
예술은 키치로부터 시작한다.
예술가는 세상의 무수한 키치 속에서 영감을 얻고, 그것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표현한다.
그래서 예술가는 어쩔 수 없이 키치를 알아차리는 단계를 거친다.
너무 시끄러운 고독에서 프로그레수스 아드 오리기넴(progressus ad originem)과 레그레수스 아드 푸투룸(regressus ad futurum), 근원으로의 전진과 미래로의 후퇴가 이 단계를 표현한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
그것이 예술가의 번뇌이다.
죽음의 가벼움과 무거움
토마시와 테레자는 어느 날 그들이 몰고 다니던 트럭 밑에 깔려 함께 죽는다.
토마시의 아들 시몽은 공산주의자인 어머니의 시선에서 벗어나기 위해 혁명을 실천한 위대한 아버지 토마시의 시선 속에서 계속 살아가길 원하며 토마시가 죽은 뒤 사비나에게 편지를 쓴다.
프란츠는 세계 평화에 이바지하기 위해 간 캄보디아에서 동네 청년들과 사소한 시비가 붙어 돌에 맞아 죽는다.
프란츠의 장례식은 그의 법적 아내 마리클로드의 진정한 결혼식이었고, 모든 고통에 대한 보상이었다.
사비나는 책이 끝날때까지 살아 있지만, 그녀가 죽은 후 한줌 재가 되어 자연 속에 뿌려지길 원하고 그렇게 되었을 것이다.
그녀의 죽음은 누구에게 어떤 의미가 부여되어 기억될지 궁금하다.
죽음의 순간은 가벼웠지만, 그것에 의미를 부여하고 기억하는 살아 있는 사람들에 의해 죽음은 무거워졌다.
그것의 정점에 토마시와 테레자가 함께 한 세월만큼 그들 곁을 지킨 반려견 카레닌의 죽음이 있다.
토마시와 테레자의 죽음은 뜬금 없는 순간 여백에 한 두 문장으로 툭 던져진 갑작스러운 죽음의 모습이었다.
프란츠는 결기에 차서 행진하다 예상치 못한 장소, 예상치 못한 사람들에 의해 우스꽝스럽기까지 한 죽음의 모습을 보여준다.
반면 카레닌의 죽음은 토마시와 테레자가 카레시의 존재에 대해 가지고 있는 사랑과 카레시를 직접 안락한 죽음으로 이끌어야 하는 책임감의 무거움만큼 이 책의 마지막 장 전체를 할애하여 경건한 분위기 속에서 이루어진다.
하지만 카레닌의 안락사가 끝나고 그를 정원에 미리 표시해 놓은 장소에 묻는 절차가 모두 끝나자 토마시와 테라자는 일상으로 돌아온다.
책의 마지막은 토마시와 테레자는 마을 사람들과 호텔로 가서 술을 마시고 춤을 추며 가벼운 한 때를 보내는 것으로 마무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