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의 본질을 보여주는 너무 시끄러운 고독

책을 읽는 중입니다 - 24 겨울

by 서하

주인공 나, 한탸는 삼십오 년 째 폐지 압축일을 하고 있는 늙은 남성이다.

그는 매일 폐지들이 쏟아내리고, 그 폐지들을 압축하는 기계가 쉴새 없이 돌아가는 지하실을 자신만의 작업장으로 가꾸어왔다.

책을 사랑하는 그는 책을 파괴하는 일로 생을 이어나가지만, 그 행위를 책의 파괴가 아닌 책의 재탄생으로 승화시킨다.

물론 그 모습이 관리자인 소장의 눈에는 책에 한 눈 팔며 게으름이나 피우는 바보같은 짓거리일 뿐이지만 말이다.

그는 온종일 지하로 쏟아내려오는 폐지더미들을 압축기가 파괴하는 소리와 지하실 생쥐들이 삶을 이어가는 소리 속에서 산다.

그가 온종일 교류하는 사람이라고는 폐지 처리장의 소장, 퇴근길 들리는 맥주집 점원, 잡지를 구하러 지하실을 방문하는 철학 교수, 폐지를 팔러 오는 집시 여인들, 지하의 중앙난방 제어실과 하수구에서 일하는 노동자같이 스쳐가는 사람들 뿐이다.

그에게도 어머니와 외삼촌이라는 가족이 있었지만 한 명씩 생을 마감하였고, 그가 뒷처리를 했다.

그에게도 두 번의 사랑이 있었다.

젊은 시절 첫사랑이었던 만챠와 중장년 때 우연히 동거한 어린 집시 여인.

하지만 그가 두 여인과 함께 보낸 시간은 몇 개월 정도로 짧았다.

그는 폐지를 압축하는 동안 적당히 술에 취한 채 마음에 드는 책을 읽고, (복제화라 할지라도) 예술품들을 감상하며 그 속에서 만난 많은 인물들, 철학자들, 예술가들의 환상을 보며 그만의 시끄러운 고독을 즐기며 살아간다.

그에게 남은 꿈이 있다면 역무원이었던 그의 외삼촌이 그의 열차와 함께 은퇴했듯이, 그의 압축기와 함께 은퇴하는 것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부브니에서 엄청난 크기의 수압 압축기를 본 그는 곧 새로운 압축기와 젊은 노동자들이 늙은 그와 그의 오래된 압축기를 사라지게 할 거라는 걸 직감한다.

그날부터 그의 시끄러운 고독은 끝이 난다.

그는 사회가 그에게 요구하는 종이를 파괴하는 역할에 미친듯이 매달려 보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그는 새로운 기계와 젊은 노동자처럼 개인의 효율적인 이익만 쫓으며 책의 파괴자로 살아갈 수 없었다.

결국 그는 그의 압축기 속에 사랑하던 책들과 함께 들어가 스스로 압축기 버튼을 눌러 생을 마감한다.


고독의 진짜 모습

처음에 제목을 접했을 때는 새로운 표현이라고 생각했다.

고독이라고 하면 주변이 고요한 가운데 쓸쓸히 혼자 있는 누군가의 형상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하지만 그것은 고독한 사람을 관찰하는 입장에서 외면적인 모습을 바라봤을 때의 느낌이었다.

혼자 방 안에 우두커니 앉아 있는 상상을 해보자.

그때 나는 혼자이면서 혼자가 아니다.

내 머릿 속에 수 많은 자아들과 그 자아들이 몰고 온 여러 생각들이 쉴 새 없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사라진다.

그러니 고독의 진짜 모습은 지나친 시끄러움인 것이다.


고독한 인간의 독서

그가 폐지 수거장에 버려진 책들 중 선택한 책들은 대부분 철학서이다.

예수, 노자, 칸트, 니체, 쇼펜하우어, 헤겔 등등이 술취한 그의 환상 속에서 돌아다닌다.

그는 첫사랑 만차의 초대로 그녀 집을 방문한 날 스스로에게 고백한다.

그는 책에서 쉴새없이 표징을 구했으나 하늘로부터 단 한 줄의 메시지도 받지 못하고, 오히려 책들이 단합해 그에게 맞섰노라고.

그가 고독 속에서 책을 읽었듯이 나 역시 인생의 길을 잃었을 때, 소중한 무언가를 잃었을 때같이 가장 고독한 순간 책을 찾았다.

인간이란 무엇인지, 나란 존재는 무엇인지에 대한 답을 찾길 바라면서 말이다.

그 답은 찾지 못하고, 책들은 나에게 맞서며 또 다른 질문을 내어주었다.

그나마 다음 행선지는 어디로 가야하는 지 알려주니 책은 친절하다.

그래서 그도 그 행선지를 따라가며 집안 가득 책을 수집했는지도 모른다.

평범한 그와 고독한 그

평범한 인간과 고독한 인간은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

평범한 인생의 그와 너무 시끄러운 고독의 그를 비교해 보면서 조금 힌트를 얻을 수 있었다.

평범한 인생의 그는 스스로를 다양한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중심에 두고 이야기 하며, 사회가 그에게 요구하는 역할에 충실히 따른다.

반면 시끄러운 고독의 그는 단골 맥주집 점원에게도 자기의 지저분하고 냄새나는 겉모습이 무시당하지 않을까 신경 쓰고, 소장의 잔소리에 바짝 몸을 낮추며 굽신거리는 관계 속 약자이다.

하지만 그는 사회가 그에게 요구하는 역할보다 스스로가 찾은 삶의 의미에 집중한다.

다른 사람의 눈에 그것이 바보같아 보일지라도 그것이 그를 살아 숨쉬게 하는 원동력이다.

재미있는 것은 평범한 인생의 그는 젊은 시절에 스스로가 찾은 삶의 의미인 시쓰기에 몰두했었고,

반면 너무 시끄러운 고독의 그는 젊은 시절에 가족과 사회가 그에게 요구하는 성실하고 사회성 좋은 모습으로 살았다는 것이다.

둘은 평범과 고독으로 나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모두 같은 사람이다.


경건한 죽음의 모습들

책에는 총 세 번의 죽음이 나온다.

첫번째는 주인공 어머니의 죽음이다.

그는 엄마가 죽었을 때 내 안의 모든 것이 울었지만 막상 내게는 흘릴 눈물이 남아 있지 않았다고 묘사한다.

그리고 화장터에서 한줄기 가느다란 연기가 하늘로 피어오르는 모습을 보며 엄마가 어여쁜 모습으로 하늘로 오르고 있다고 묘사한다.

사람에게서 남는 건 성냥 한 갑을 만들 만큼의 인과, 사형수 한 명을 목매달 못 정도 되는 철이 전부라는 칼 샌드버그의 시구를 떠올리면서.

그리고 그는 외삼촌에게 유골함을 들고 왔고, 외삼촌은 장롱 위에 유골함을 올려두었다가 어느 화창한 여름날 무밭에서 김을 매다가 누이가 무라면 사족을 못 썼다는 것을 기억하고 재를 무밭에 뿌린다.

나중에 그 재 속에서 자란 무를 그와 외삼촌은 맛있게 먹는다.

두번째는 주인공 외삼촌의 죽음이다.

외삼촌은 그가 은퇴하면서 집 정원에 마련한 선로 변경 초소에서 뇌졸증으로 돌연사한다.

휴가철이었기에 친구들이 모두 없는 사이 그의 시신은 7월 폭염 속에서 보름이나 방치되었다.

파리와 구더기가 들끓고, 과하게 숙성한 까망베르 치즈처럼 리놀륨 바닥에 녹아내린 외삼촌 시체를 삽과 흙손으로 긁어내 수습한 건 그였다.

그리고 아름다운 종이 꾸러미를 만들때처럼 외삼촌의 시체를 공들여 치장하여 관뚜껑을 닫는다.

마지막은 주인공 자신의 죽음이다.

뜻하지 않게 책을 통해 교양을 쌓은 그는 스스로를 행복이라는 불행을 짊어진 사람이라 말한다.

프로그레수스 아드 오리기넴(progressus ad originem)과 레그레수스 아드 푸투룸(regressus ad futurum),

근원으로의 전진과 미래로의 후퇴가 충분히 가능하다는 걸 깨닫기 시작한 그는 자신을 하나의 아름다운 꾸러미로 만든다.

그 순간 그는 사랑했던 집시 여자와 다시 만나 잊고 있었든 그녀의 이름을 떠올린다.

일론카, 빛.

작년에 갑작스럽게 어머니를 떠나보낸 지인이 어머니 죽음 앞에서 울지 않는 자신을 자책했었다.

하지만 내 눈에 그녀는 충분히 울고 있었다.

꼭 눈물이 몸 밖으로 흘러야만 슬픈 것은 아니다.

때로는 내 안의 모든 것이 우느라 몸 밖으로 흐를 눈물이 없을 수도 있고,

때로는 내 안의 모든 것이 얼어붙어 죽음을 인식하지 못할 때도 있다.

죽음을 애도하는 방법도 죽음을 맞이하는 방법도 정해진 규칙은 없다.

단 하나 있어야 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예의이다.


작가 보후밀 흐라발은 너무 시끄러운 고독을 두고 그가 쓴 책들 가운데 가장 사랑하는 책이라고 고백했다.

그가 세상에 온 건 너무 시끄러운 고독을 쓰기 위해서였다고.

나 역시 고백컨데 너무 시끄러운 고독은 체코 삼부작 중 내가 가장 사랑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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