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프로젝트 헤일메리> 리뷰
*** 스포일러에 유의해 주세요.
아주 거칠게 비유하자면, 이 영화는 우주 차원의 오디세이다. 오디세우스와 그레이스의 차이점이 있다면, 오디세우스는 물리적인 고향을 찾았지만, 그레이스가 마침내 찾은 고향은 마음의 고향이라는 점일까? 나고 자란, 익숙한 환경은 아니지만 어쩐지 평온한 곳. 친절과 낭만이 홀대받지 않고, 누군가와 기꺼이 등을 맞댈 수 있는, 그가 정말로 '선택한' 땅. 나는 어쩐지 그레이스의 기나긴 여정이 이러한 심상적인 고향으로 향하는 과정처럼 느껴진다.
태양 먹는 미생물, 아스트로 파지의 영향으로 항성들이 죽어가고, 항성으로 말미암아 살던 지구도 곧 종말을 앞두고 있다. (지구의 종말인가? 그보다는 인류, 혹은 일반적인 유기체의 종말이라고 보는 것이 옳겠다.)
서로 협조하고 살면 삼십 년은 버틸 거라는데, 우리 인간들에게 협력이란 너무나 꿈 같은 단어이고, 그런 고로 데드라인은 십여 년으로 바짝 당겨진다.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그들을 구할 '헤일 메리'. 우주 반대편에서 유일하게 아스트로 파지의 영향에서 자유로운 행성 타우 세티 E로 가,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야만 한다. 그러나 현재 기술론 돌아올 만큼의 연료를 얻을 수 없고, 그 말인 즉, 타우세티로 향하는 우주선은 되돌아 올 수 없다. 그 안에 탄 비행사도 마찬가지다. 귀환은 요원하고, 그들은 남은 생을 우주에서 끝마쳐야 한다.
그레이스는 자신의 아이디어를 증명하고, 지구를 구하는 일에도 일조하고 싶지만, 확정된 죽음으로 나아갈 자신은 없다. 동료들과는 달리 대단한 사명감도 없고, 그저 평범한 물리 교사, 학계에서 인정 받지 못하는 괴짜인 자기가 그런 영웅이 될 수 있을 것 같지도 않다. 겁도 난다.
그러나 선택은 그의 몫이 아니다. 그를 기용한 에바 스트라트는 그를 처음 만났을 때처럼 '겁쟁이' 그레이스를 하늘로 쏘아 보낸다. 물론 그레이스의 동의는 구하지 않고서.
그레이스는 미지의 세계에서, 확정된 죽음을 끌어안고, 스스로가 누구인지 얼마쯤 잊어버리고 나서야 나아갈 길을 찾는다. 나는 어쩐지 그를 움직이게 한 동력이 지구와 온 인류를 구한다는 사명감 뿐만 아니라, 새로운 물질, 생물을 관측하고, 그것으로 말미암아 어떤 해결책을 고안해내고, 그것을 마침내 실행하는, 과학자를 가슴뛰게 하는 그 모든 과정에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를 이해하고 공감하는 친구를 만났다는 것이다.
그가 타우세티에서 만난 에리디언 로키는 지구인과는 전혀 다르다. 서식 환경과 몸의 구성 성분이 그렇고, 언어와 문화가 그렇고, 그밖의 많은 것이 그럴 것이다. 그런 미지의 존재에게 선뜻 손을 내민다는 것은 아주 두려운 일이다. 그런데 로키는 그걸 해냈다. 그런 낙천성은 에리디언의 특성일까? 그것은 알 수 없지만, 확실한 것은 그것은 '다른 것'을 잘못되고, 이단적인 것으로 단정하던 수 많은 인간 동포들에게서는 드물게 엿보이는 특징이라는 사실이다. 우리 인간도 연민과 애정, 친절과 배려가 있지만 우리는 때때로 우리 집단이 아닌 것에 박하고, 우리 상식이 아닌 것을 몰상식하다 비난하곤 한다. 완전히 다른 세계에서 온 로키는 그러한 경계를 뛰어 넘고, 그레이스에게 기꺼이 '최초의 첩촉 first contact'을 시도한다. 그리고 천성이 다정한 그레이스(이름도 grace 잖아)는 그것을 받아 들인다. 오랜 고립과 고독이 그들의 장벽을 낮춘 것일지도 모른다.
그레이스와 로키의 우정은 각별하다. 서로의 언어를 배우고, 죽을 위험을 무릅쓰고 기꺼이 서로의 공간과 기술을 공유한다. 아주 대담하고, 용감하게. 이 뛰어난 과학자와 엔지니어는 뛰어난 협업자이자, 두 문명 간의 최초의 교류자이고, 서로를 고립으로부터 건져 올린 친구이자, 서로를 위해 죽음을 무릅쓸 수 있는 동지다.
결과적으로 둘은 지구와 에리드를 모두 구할 열쇠를 얻는다. 그레이스는 로키를 구하는 과정에서 고향으로 돌아갈 기회를 잃고 말지만, 로키를 비롯한 에리디언 과학자들의 호의와 도움으로 지구로 돌아갈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그러나 누구도 그에게 그것을 강요하지 않는다. 그것은 오직 그의 선택에 달려 있다. 로키는 얼마든지 그를 기다려 줄 것이다. 그레이스는 그저 선택하면 된다. 그의 마음이 향하는 곳을.
마션과 컨텍트 (arrival), 인터스텔라가 생각나는 영화다. 메시지는 여전히 희망적이지만, 마션보다는 인간들이 각박하고, 컨텍트보다는 외계 지적 생물 간의 소통 과정이 좀 간소화되어 있다. 인터스텔라는 좀 더 개인적이고 운명적인 메시지를 던진다면, 그레이스는 어떤 선의와 친절, 우정의 힘을 보여주는 것 같다.
영화를 보고 나니, 나는 내가 돌아갈 곳은 어디일지에 대해 생각한다. 사람과 사람 아닌 생물 간의 교감과 구원에 대해서도 떠올리게 된다. 때때로 사람은 사람 아닌 다른 생물에게서 위안을 얻기도 하지 않나.
그렇다고 해서 이 영화가 인류 자신을 경멸하기만 하냐고 하면, 마냥 그런 것은 아니다. 인류는 그레이스를 비롯한 많은 사람을 실망시키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치열하게, 각자의 대의와 목적을 위해 살아나간다. 에바도, 야오 선장도, 일류키나도, 각자의 희생을 감수하며 최선을 다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주인공 그레이스와 같이 개인의 자율과 고민의 과정이 묵인, 무시된다는 것이 문제이기는 하지만.
영화 속의 이러한 양상은 우리 집단과 개인의 최선을 위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느냐에 대해서도 물음을 안겨 준다. 삶이란 건 마냥 즐겁지만은 않은 것이며, 절망은 아스트로파지처럼 우리를 좀먹는다. 고립과 고독 역시 마찬가지다. 그러나 그런 중에 내리쬐는 선의는 눈부시다. 그것은 때때로 죽음에서 사람을 건져 올리고, 길 잃은 자에게 이정표를 준다. 나는 그런 대상을 만날 수 있을까? 나는 그런 존재가 될 수 있을까? 그런 생각들이 자꾸만 들게 하는 영화다. 난 이런 영화가 참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