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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리 Jan 23. 2021

다름을 다름으로 인정하는 것

[영화 리뷰] 도리를 찾아서

 


'남다르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남다르다'라는 말은 '보통 사람들보다 유난히 다르다'는 것을 뜻한다. '다르다'의 다른 말은 '같지 않다'이며, 반댓말은 '같다'이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가 '같음'과 '다름'을 대하는 태도는 과연 어떨까?


그 애는 어렸을 때부터 남달랐어.


가령 어떤 사람을 두고 위와 같은 말을 한다고 생각해보자. 여기서 말하는 '남다르다'는 '특출나다'의 다른 말로 쓰였을 확률이 높다. 이 문장의 뒤에는 "그 애는 공부며 운동이며 뭐 못하는 게 없었지." 같은 말이 이어지리라. 혹은 포털 사이트에 '남다른' 이라는 말을 검색해보라. 그것은 대개 '평균 이상' 혹은 '잘남'이라는 의미로 쓰였을 것이다.


다시 말해, 우리는 소위 말하는 '보통', 혹은 '평균 이상'의 대상에 한하여 '남다르다'라는 말을 다소 남발한다. 우리 사회는 많은 사람들의 '같음'을 보통, 평균으로 규정하고, 그것을 말미암아 우리의 기준에 부합하는 '남다름'만을 선호한다. 그래서 '남다르다'라는 술어의 주어가 될 수 있는 대상은 무척 한정적이다.


노인, 어린이, 장애인 등 사회 취약계층을 생각해보라. 혹은 '일반적이지 않은' 취미를 가진 '괴짜'들이나, 그 밖에 우리 사회의 '다수'가 되지 못한 많은 사람들을 떠올려보라. 대중은 그들에게 쉽게 '남다름'의 칭호를 부여하지 않는다. 많은 경우 이들은 그저 '남'이다. 그들의 개성은 독특한 것이 아니라 이상하고 저급한 것으로 치부된다. 그로써 그들은 '다른' 존재가 아니라 '틀린' 존재가 된다.


영화 <도리를 찾아서>는 우리 사회에서 쉽게 간과되곤 하는, 다른 차원에서 '남다른' 자들의 이야기다.




도리를 찾아서


주인공 도리는 단기 기억상실증을 앓고 있고, 니모는 한쪽 지느러미 왜소증을 앓고 있다. 도리의 친구 행크는 바다에 대한 트라우마를 안고 있고, 고래상어 데스티니는 심각한 근시로 고생하며, 그들의 벨루가 친구 베일리는 본인이 초음파 소통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또 그들의 또다른 우루우루 조력자인 베키, 끊임없이 바위를 탐내는(그래서 다른 물개 플루크 등이 끊임없이 경계하는) 물개도 '보통' 물고기가 보기에는 '제 정신이 아니다'.



이러한 이들의 모습은 우리 인간 사회에 분명히 존재하지만 눈에 보이지는 않는 소수자들을 연상케한다. 많은 경우 이들은 놀림거리, 골칫덩이, 제대로 되지 못한 존재로 취급되고, 다수의, 다수를 위한, 다수에 의해서만 굴러나는 사회의 '아웃사이더'로 전락한다.


<도리를 찾아서>의 위대한 점은 바로 여기에 있다. 이런 아웃사이더들이 위와 같은 아픔에도 불구하고 위대한 여정을 해내고 말았으니까. 아주 작은 물고기가 두번씩이나 바다를 횡단하고, 지상을 넘나들고 하늘을 날았다. 이를 어찌 위대하지 않다고 할 수 있으랴.



물론 이런 '남다른' 이들을 주인공으로 한 서사는 숱하게 많다. 그럼에도 이 영화가 특별하게 느껴지는 까닭은 이 영화 속에서 약자를 바라보는 인물들의 따뜻한 시선 때문이 아닐까 한다. 


비슷한 소재를 다루고 있는 다른 예로, 인기있는 디즈니 영화 시리즈 중 라이온킹3의 사례를 살펴보자.

 티몬과 품바는 문제나 일삼고 냄새나 풍기는 골칫덩이로 여겨진다. 그들은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 그들이 사실은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아니라 '가치있는 인물'임을 증명하고 나서야 가족과 사회로부터 비로소 인정받는다. '약자를 주인공으로 한 서사'의 대부분이 대체로 이러하다. 즉, 대다수의 이야기에서 마이너리티에 해당하는 주인공들은 그들이 속한 사회에 자신의 가치를 검증하고나서야 비로소 사회에 받아들여지게 된다.



그러나 <도리를 찾아서>의 인물들은 다르다. 

주인공들이 만나는 숱한 엑스트라 해양생물만 보아도 그렇다. 도리들을 바라보는 그들의 시선은 다정하고 따뜻하다. 많은 경우, 그들은 기꺼이 도움의 손길을 내민다.

길 잃은 어린 도리를 돕고자 했던 녹색 물고기 부부, 성인 도리가 아쿠아리움을 빠져나갈 때 '파이프를 따라 가라'고 일러줬던 해초 깎는 게 부부를 떠올려 보라. 도리를 찾아 나선 말린 부자에게 기꺼이 등을 내어주었던 바다거북 크루크네 무리와 길 잃은 도리가 탈출할 수 있게 온 힘을 다해 도왔던 아쿠아리움의 해양생물들도!


그들은 도리네가 특출나서 도운 것이 아니다. 그저 그렇게 할 수 있기 때문에, 그렇게 해야 했기에 도왔다. 


말린의 태도도 마찬가지다. 그는 우리가 '보통'이라고 감히 규정하는 인물의 전형인 것처럼 보인다. 다소 소심하고 경계심많은 그는 언제나 걱정스러워하고 곤란해한다. 도리의 기억상실증에 곧잘 신경질도 내고, 심지어는 실언도 하고 만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잘못을 금세 뉘우치며, 도리가 부모님을 찾게 도와주는 가장 큰 조력자이자, 동반자가 되어준다.


이는 도리의 부모님도 그렇다. 그의 부모님은 도리의 단기 기억 상실증을 걱정하지만, 그럼에도 아이 앞에서 밝은 모습을 유지하며 아이가 밝게 살아갈 수 있도록 이끌어준다. 그들은 아이를 바꾸는 대신 아이가 길을 잃었을 때 집을 찾아올 수 있도록 조개 길을 만든다.


이처럼 영화는 분명한 메시지를 전한다.


장애는 숨겨야 되는 것이 아니다. 

남들과 다르다는 것은 결코 숨겨야 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또하나의 개성이다.


도리와 친구들은 도리/기억을 찾아나서는 일련의 여정을 통해 성장한다.

 타인과 자신의 '남다름'을 찾아나가면서. 누군가를 기꺼이 위하는 과정 속에서.




도리의 방식!

초반의 도리는 혼자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캐릭터처럼 그려진다. 그녀에겐 말린이 필요해 보였고, 그래서 말린은 최대한 그녀를 '자신의 눈이 닿는 곳'에 두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그것이 도리를 진정 위하는 일이 아니었음은 극이 전개되면서 차츰 밝혀진다.


극의 후반으로 갈수록 도리는 스스로 부모님을 찾아가고, 말린을 구하고, 행크를 설득한다. 

의도했든 아니든 간에, 수백마리의 물고기들을 바다로 돌려보낸 것 역시 그녀였다!


그리고 그들은 집으로 돌아와, 이렇게 말한다.



"네가 해냈어."

"그래, 내가 해냈어!"



이 무모하고도 용감한 해양생물들은 그래야할만한 이유가 있었고, 그래서 이 대단한 모험을 했다.

누구도 그것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그것은 틀린 것이 아니고 다른 것이므로.





한번 생각해보자. 


나는 나의 '다름'을 틀린 것으로 규정하지는 않았는가?

타인의 '다름'에 대해서는 어떠했는가?

나는 다른 이들을 위해 기꺼이 등을 내어주고 '조개길'을 만들 수 있는가?


아직 그러지 못했다고 해도 괜찮다.

우리는 언제든 우리 자신과 우리 이웃을 찾아나설 수 있다.


자, 도리와 친구들처럼 기꺼이 지느러미, 아니 손을 내밀어 보자. 그들의 남다름을 찾아보자.

당신이 보내는 따뜻한 시선은 한 마리의 나비가 되어 누군가의 폭풍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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