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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리 Dec 27. 2021

'완벽한 가정'이란 실제하는가?

<노웨어 스페셜> 시사회 감상

* 이 글은 씨네랩으로부터 초청 받아 참석한 영화 <노웨어 스페셜>의 시사회 관람 후기입니다.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으니, 이에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21세기는 아직도 '정상 가족'의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정상 가족'이란 중산층 이상의 이성애자 부부와 그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들로 구성된 가족을 한다. 우리는 숱한 매체들에서 그린듯한 4인 가족에 대한 묘사를 접하곤 하지만, 이것이 급변하는 인간 사회와, 그만큼 다양해지는 가족의 형태를 반영한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21세기의 인간들은 여전히 '정상 가족'이 아닌 가족들에게 배타적이며, 그것은 비단 한국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안고 가야할 불운이자 과제이다.


영화 <노웨어 스페셜>에서는 이러한 '정상 가족'의 범주에 들지 못한 두 남자의 이야기를 그린다. 하나의 이름은 존이고, 다른 하나는 그의 네 살짜리 아들인 마이클이다. 이들의 형편은 그리 좋아 보이지 않는다. 아빠는 프리랜서 창문 청소부에 러시아에서 온 엄마는 일찍이 도망가 자취를 감추었으니, 홀로 남은 아이가 무슨 수로 스스로를 돌볼 수 있었을까. 설상 가상으로 존은 병으로 몸이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아이의 유일한 보호자인 존이 할 수 있는 일은 아이를 위해 새 가족을 선물하는 것뿐이다. 


그리하여 존과 마이클의 여정은 시작된다. 가장 부유한 인텔리 가정에서부터 주머니 사정은 넉넉치 않지만 형제가 많아 복작거리는 가정, 그리고 홀로 아이를 기르고 싶노라 이야기한 여인까지, 그들은 수없이 많은 가족들을 대면하지만 하나 뿐인 소중한 아들을 보내려고 하니 어느 곳 하나 눈에 차는 곳이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존 역시 어릴 적에 위탁 가정을 전전하며 눈칫밥을 먹으며 살았던 과거가 있었으므로, 그의 사랑하는 아들이 자신의 전철을 밟기를 바라지 않았던 것이다. 존은 고뇌한다. 어떤 것이 가장 마이클을 위한 선택일지에 대하여. 그는 아이에게 결핍을 안겨주고 싶지 않았다. 이미 아이는 아버지와의 이별이 예고되어 있으므로.


작품 속에서 나타난 다양한 부모들의 모습은 저마다의 특색이 있다. 어떤 부부는 비록 부유하지만 아이의 개성을 신경 쓰기보다는 자신의 야심에 맞추어 기르고자 하고, 또 다른 부부는 사랑이라는 이름 하에 지나치게 많은 아이들을 수집하는 것처럼 보인다. 또 한 부부는 아이를 낳고 싶지만 어쩔 수 없이 아이를 입양한다는 뉘앙스를 풍기는가 하면, 또 다른 부부는 마치 꼭두각시 인형 혹은 애완동물처럼 아이를 제 입맛에 맞추어 기르려는 것 같다. 결국 존이 고른 것은 소위 '정상 가족'이라고 불리는 일련의 이성애자 부부가 아니라, 진실로 아이를 사랑하고 그가 원하는 바에 맞출 준비가 된 (예비)한부모 여성이었다.


이것이 시사하는 바는 명확하다. 우리가 그토록 고수해왔던 '정상 가족'의 판타지는 허상일 뿐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평범한' 부모 아래 '평범한' 형제자매 속에서 자라나는 것이야말로 인간이 가장 건강하고 행복하게 자라날 수 있는 방법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지만, 유복하고 영리한 아버지와 어머니가 있다고 한들 그것이 아이의 행복을 담보하는 것은 아니다. 또한 많은 형제자매가 있는 것이 아이의 생활을 윤택하게 한다고도 볼 수 없다. 우리는 경험적으로, 그러한 이성애자 남녀로 구성된 부부 아래에서 자라난 아이들이 반드시 행복하고 풍족한 삶을 누리지는 않는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지 않은가? 중요한 것은 가족의 형태가 아니라 가족을 대하는 태도에 있다. 아이가 정말로 행복하기 위해서는 부모가 아이가 원하고 그에게 필요한 것을 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존은 좋은 아버지였다. 비록 환경은 유복하지 못했고, 아이는 언제나 바쁘고 아픈 아버지로 인해 충분한 관심을 받지 못한 것처럼 보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이클은 누군가를 깊이 사랑하는 법을 알고 있었다. 그것은 존으로부터 배운 것이었다. 존과 마이클에게 유일한 비극이 있다면 그것은 그 둘이 남들보다 이른 이별을 겪어야 한다는 것이지 않을까? 그러나 그것 역시 영원한 비극은 아니리라. 존은 언제나 마이클의 주변에서 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것이므로.



영화는 진솔하지만 솔직하게 현대 사회의 아픈 면을 꼬집고, 무엇이 행복한 가정을 만드는가에 대해 주목한다. 마이클과 이별하는 존은 지극히 현실적으로 아들과의 이별을 준비하고, 그 과정이 너무나 덤덤해서 도리어 가슴 아프다. 그러나 우리는 때때로 이런 슬픔을 마주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새로 자라날 행복을 위해 새 길을 닦는 일이기 때문이다. 존이 마이클을 위해 새로운 시작을 선물하려고 한 것처럼, 우리도 무언가 새로운 시작으로의 길로 나아가는 것은 어떨까? 하나의 온전한 부부에 집착하지 말고, 어떤 경제적 풍요와 빈곤에 눈길 주지 말고, 그것이 우리를, 인간을 어떻게 행복하게 하는가에 대해 고민해 보는 것이다. 당신은 가장 특별하지 않다고 생각한 곳에서 특별함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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