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토리 리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토리 Sep 29. 2022

그럼에도 폐허에는 싹이 움튼다

<우리의 심장박동은 폭발하는 별들을 통해 연결되어 있다> 리뷰

* 이 글은 씨네랩으로부터 초청받아 참석한 리뷰입니다.

* 스포일러가 있으니 관람하지 않으신 분은 읽으실 때 주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영화리뷰


<우리의 심장박동은 폭발하는 별들을 통해 연결되어 있다>

All of Our Heartbeats are Connected Through Exploding Stars

감독: 제니퍼 레인스포드 Jennifer Rainsford


시놉시스:

2011년 3월 11일에 역사상 가장 큰 지진이 일본을 강타했다. 30분 후 검은 쓰나미가 해안을 덮쳐 차와 집, 사람들을 바닷속으로 내몰았다. 영화를 통해 우리는 잃어버린 아내를 찾으려 100번도 넘게 다이빙하는 남자, 실종된 남편에게 아직도 편지를 쓰는 사치코, 쓰나미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토코를 만난다. 이들은 바다 건너 하와이 카호올라웨섬에서 쓰나미의 잔재를 청소하기 위해 모인 자원봉사자들과 연결된다.




리뷰


우리는 이따금 지나칠 정도로 우리가 사는 세상에 대해 무지하다. 가령 그토록 많은 재해가 시시각각 벌어지고 있고, 우리는 그것이 인간에 의한 각종 환경 오염과, 그로 인한 기후 위기에 기인한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 사실을 모른 척 외면하거나, 우리의 일상과는 별개의 일로 생각하곤 한다. 이는 대단한 오만이자 착각인데, 그 까닭은, 실상 우리가 사는 우주는 어떤 것도 서로 완전히 독립적으로 존재하거나 생겨나지는 않기 때문이다. 영화 <우리의 심장박동은 폭발하는 별들을 통해 연결되어 있다>은 우리 중 많은 수가 미처 알지 못했거나 직시하지 않았던 해양 오염과 그것이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을, 철학적인 메시지를 담아 탁월하게 그려낸 독특한 다큐멘터리 영화이다. 



1.     파도가 휩쓸고 지난 자리

영화는 2011년 3월 11일, 대지진과 쓰나미로 인해 사랑하는 이를 잃은 사람들의 이야기로 막이 오른다. 아내 잃은 남편은 죽은 아내의 유해를 찾기 위해 다이빙을 시작했고, 어머니 잃은 딸은 트라우마로 인해 스스로를 가두었다. 남편 잃은 부인은 남편의 몫까지 살아가고는 있지만, ‘매일이 이어질수록 더 외로워’진다. 

압도적인 재앙에 의해 소중한 것을 빼앗긴 사람들은 이른바 ‘상심 증후군’에 시달린다. 심리적인 충격으로 인한 트라우마는 기억을 관장하는 해마와 감정을 관장하는 편도체를 수축시켰는데, 이 중 편도체의 경우 대재해 이후 1년이 지난 후에도 회복되지 못했다. 다시 말해, 기억의 일부에 영구적인 흉터가 남게 되는 것이다.



2.     재앙은 해류를 타고 흐른다


쓰나미의 재앙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거대한 파도는 일본을 휩쓴 후 막대한 양의 쓰레기가 바다로 흘러 나왔고, 그것들이 모여 거대한 쓰레기 섬을 형성한 것이다. 2011년 말, 하와이 북부에는 날마다 밀려드는 쓰레기로 고통을 겪고 있고, 거대한 그물 따위가 서로 뒤엉켜 만들어진 ‘유령 그물’은 상어, 돌고래, 물고기들 따위의 ‘죽음의 섬’이 되어 그들의 삶을 위협한다. 이것들이 부서지면서 나오는 미세 플라스틱은 플랑크톤의 먹이가 되고, 그 플랑크톤은 생선이 먹고, 그것은 결국 다시 인간의 밥상에 오른다.

놀라운 사실은, 사실 쓰나미 역시 인간의 산업화에 기인한 것이라는 사실이다. 물론 자연 재해가 발생하는 것은 지구의 자연스러운 매커니즘이지만, 인간이 지난 250년 간 석탄과 석유로 말미암아 공장을 가동한 결과,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는 상승했고, 이러한 이산화탄소의 1/3은 소위 지구의 ‘다른 쪽 폐’ 역할을 하는 바다로 흘러 들어갔다. 바다는 점차 따뜻해졌고, 빙하는 녹고, 해수면은 상승했으며, 그로 인해 바닷물이 ‘넘치는’ 빈도가 잦아지게 된 것이다. 



3.     그럼에도 폐허에는 싹이 움트고

그러나 영화의 목적은 관객을 단순히 겁주고 윽박지르는 것에 있지는 않아 보인다. 카메라는 플랑크톤들의 가장 미시의 세계에서부터, 우주의 탄생에서부터 시작된 가장 거시적인 이야기까지, 그리고 그 세계의 일부로서의 인간의 삶을 비춘다. 감독은 특유의 조근조근하고 명확한 내레이션으로 말미암아, 죽음이 그 자체로 머물러 있지 않으며, 또 다른 시작의 밑거름이 되노라 이야기한다. ‘유령 어망’ 위에 거북손이 자리를 움트고, 쓰나미가 지난 자리에 ‘1000개의 거품’이라는 풀이 자라나듯이, 거대한 초신성이 폭발한 후 그에서 파생된 원자들이 새로운 별들의 바탕이 되듯이 말이다. 이것들은 쓰나미를 통해 아픔을 겪은 사람들이, 서로 의지하며 삶을 살아나가는 모습들과 자연스럽게 오버랩된다. 

그렇다, ‘우리의 심장박동은 폭발하는 별들을 통해 연결되어 있다’!


제니퍼 레인스포드 감독

영화는 마냥 희망을 노래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비참한 절망론을 부르짖지도 않는다. 차분히 세계가 돌아가는 매커니즘을 관조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는 것들을 보여주며 관객들이 저마다 영화가 던지는 단서들을 짜맞출 수 있게끔 넛지nudge한다. 또한 독특한 시각적 상상력이 인상적이기도 한데, 이는 감독이 시각 예술에 상당한 조예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 우주적인 메시지를 한번 접해보는 것은 어떨까? 우리의 일상에 신선한 충격을 안겨줄 것이다.


2022.09.25(일) 10:30 메가박스 백석점 8관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기간 : 09월 22일 - 09월 29일


매거진의 이전글 <스칼렛>, 마법 같은 기적을 불러 일으키는 색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