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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리 Oct 07. 2023

[BIFF 데일리] 울란바토르에도 개는 짖는다.

영화 <바람의 도시>, 부산국제영화제 기획기사

포스터

감독: 퓨레브-오기어 카비주

출연진: 테르겔볼드 에르겐(제役), 노민-에르덴 아리운뱜바(마랄라役)

시놉시스: 동네에서 이름난 무당인 17세 몽골 소년 '제', 부모님이 시키는대로, 이웃이 바라는대로 군말 없이 살아오던 그가 매력적인 소녀 '마랄라'를 만남으로써 스스로의 모습을 찾아나가기 시작한다. 무당 소년의 사랑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모든 것이 빠르게 변해만 가는 울란바토르의 청년들의 사정과 사유, 고민을 발견하고 이해하게 된다.






살다 보면 아주 낯선 세계를 탐험하고 싶을 때가 있다. 지구 반대편의 아마존이라든가, 저 멀리 몽골 초원의 이야기라든가. 그곳의 삶은 무언가 아주 각별하고 이질적일 것이라고 상상하면서. 그러나 막상 그 세계를 들여다보면 그 곳의 특별함 외에도 아주 평범하고 보편적인 무언가를 발견하게 되는데, 바로 그 순간, 사유자는 그 세계와 얼마쯤 연결된다. 일종의 공감대가 형성되는 것이니까. 우리는 그러한 경험을 통해 환상에만 머무르던 '그곳'을 현실로 끌어온다. 우리의 세계는 그만큼 확장된다. 아주 보물 같은 순간들이다. 그리고 이러한 순간을 가져다 주는 다양한 매개 중 하나는 단연코 영화일 것이다.


거창하게 말했지만, 쉽게 말해 한국에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세계를 알고 싶어서 이 영화를 택했다는 소리다. 필자는 한국어 교사 일을 하면서 다양한 외국인 학생들을 만난다. 특히 최근에는 몽골 학생들을 많이 만났다. 문제는 내가 몽골을 잘 모른다는 점이었다. 한국어 교사로서는 아주 부끄럽고 민망한 사실이지만, 내가 몽골에 대해 아는 것이라고는 징기스칸과 게르(몽골식 천막 집), 말, 초원 따위의 단편적인 유목민의 이미지 뿐이었다. 그나마 내가 만나 본 몽골 학생들로 말미암아 몽골 사람들이 아주 유쾌하고 예의 바르며 한국과 비슷한 정서를 공유한다는 것을 알기는 했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부산 국제 영화제에서 <바람의 도시>를 보게 된 것은 대단한 행운이었다. 전통과 현대를 연결하는 17세 무당 소년에 대한 이야기는 몽골의 과거와 현재를 간접적으로 경험하기에 안성맞춤이었으니 말이다.

오늘은 몽골, 울란바토르를 사는 '제'의 이야기를 좀 소개해 볼까 한다. 몽골 인구의 절반이 살고, 아파트와 게르가 공존하는 새로운 세계와, 그 속의 평범하면서도 특별한 소년의 이야기를.



1. 사랑은 말 잘 듣던 무당도 변하게 한다

무당 일을 하는 것을 제외하면 지극히 평범한 17세 소년인 '제'. 마을의 영적 안내자이자 상담자 역할을 도맡아 하는 그는 소위 '말 잘 듣는 모범생'이다. 숫기 없고 소심해서 말수도 적은 그는 가족과 이웃의 애정과 기대에 부응하려고만 했지, 자신의 의견이나 욕망을 적극적으로 내비친 적이 없다. 무당이라는 직업도 있겠다, 어른들이 예뻐하기도 하겠다, 이대로 잘 졸업하기만 하면 될 것만 같다.

그러나 운명은 얄궂고, 아이는 자라는 법. 마랄라로 말미암아 소년의 세계에는 파문이 일기 시작한다.


병약하지만 당돌한 소녀 마랄라는 삽시간에 제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순박한 소년은 곧잘 잔망스러운 소녀에게 빠지는 법이니까 그것은 이상한 일도 아니다.) 심장병으로 오래 고생한 마랄라는 제를 반항적인 일탈의 세계로 이끈다. 마랄라와 어울리며 제는 새로운 영역에 발을 들인다. 백화점을 구경하고 사랑하는 여자애와 밤을 보내는가 하면, 미성년자면서 클럽에 나가 춤을 추거나 그렇게나 착실히 따르던 부모님의 말에 말대꾸도 한다. 그는 '변했다'. 선악과를 맛 본 아담이 그러했듯이.



2. 특별한 소년의 평범한 성장통

소년은 자란다. 그리고 모든 자라는 것들은 성장통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조상신에게 쏠리던 관심을 다른 곳에 쏟느라 학교 생활은 엉망이 되고 '그분'은 오시지 않는다. 이제야 진정한 '나'를 찾은거 같기도 했는데 도리어 내가 누구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갈피를 잡기 어렵다. 방황의 시기가 닥친 것이다.

상술한 마랄라와 제의 일탈은 언뜻 비행과 타락으로 여겨질 수 있겠지만, 글쎄, 그렇게 따진다면 온 세상의 사춘기 청소년들을 모두 타락했다고 말해야 할테니 그렇게 속단하지는 말자. 아담이 선악과를 먹고서 세상의 이치를 깨달은 것처럼 이 소년 역시 다른 세계를 알게 된 것일 뿐이다. 게르와 전통, 순종과 계승의 세계에서, 아파트와 현대, 반항과 혁신의 세계로.


비록 너무 늦은 사춘기를 맞이하면서 방황과 고뇌로 고생하기는 하지만, 제와 마랄라는 각자의 방식으로 그것을 이겨낸다. 으레 사춘기라는 관문을 거친 사람들이 그러했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듯이.


겨울은 지나가고, 울란바토르의 어린 무당은 이제 남이 바라는 대로가 아니라 진심어린 위로와 공감을 전하는 법을 안다. 그는 여전히 젊고 어리지만 지난 겨울의 그 자신보다는 한층 어른이다.


3. 울란바토르에도 개는 짖는다

영화는 제라는 이름의 무당 소년을 통해 울란바토르의 다양한 얼굴들을 보여준다. 울란바토르는 게르와 아파트, 신앙과 불신, 자연과 자본, 전통과 현대가 공존한다. 세계적인 유행(?)처럼 소년과 청년들은 공동체가 아니라 개인의 삶과 자유를 갈망하지만 현실은 마냥 녹록치 않고, 그들은 목줄에 메인 개처럼 순종을 강요받는다. 그러나 봄이 기어코 오는 것처럼 변화의 바람 역시 기어코 불어 닥친다. 어른들이 제 아무리 '짖지 말라'고 해도, 개들은 어쨌든 짖는다(* 몽골에서는 '닥쳐'라는 말을 '그만 짖어'라고 표현한다고 한다. 재미있지 않은가?). 개는 으레 짖는 법이고, 신세대는 으레 꼰대들에게 반항하니 말이다. 꼰대와 요즘 것들이 갈등을 빚는 우리들에게도 결코 낯선 이야기가 아니다.


제는 17세 소년이면서 무당이 됨으로써 이러한 양면적인 세계의 중재자가 된다. 그가 그러한 인물이기 때문에 앞서 말한 울란바토르의 여러 모습들과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갈등과 고민을 극적으로 관찰할 수 있다. 영화 <바람의 도시>는 이런 점에서 아주 탁월하다. 그러한 중재자(두 세계를 잇는 매개자) 역시도 신성과 본성 사이에서 고뇌한다는 역설 또한 흥미로운 부분 중 하나다.





몽골 영화는 정말이지 처음이었는데, 첫 몽골 영화 관람이 아주 성공적이어서 무척 만족스럽다. 이 영화 한 편만 보고서 몽골을 안다고 말하기는 어렵겠지만, 적어도 입문 내지는 개론은 맛 본 셈이니까 나름대로는 새로운 세계로 지평을 넓힌 것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색다르면서도 우리와 참 닮은 나라, 몽골. 여러분도 한번 울란바토르로 떠나보는 건 어떨까? 우리의 반항적인 시기를 추억하면서.



[상영 일정]


[부산국제영화제 10.4~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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