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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리 Oct 10. 2023

[BIFF 데일리] 대학살은 왜 기억되어야 하는가?

영화 <그날의 딸들>, 부산국제영화제 기획기사

이 글은 씨네랩에서 초대 받아 작성한 영화 리뷰입니다.

* 스포일러 주의

감독: 고훈

출연진: 양경인, 파치스

시놉시스: 제주 4.3 사건의 구술 작가인 양경인과 르완다 출신 한국 유학생 파치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제주 4.3 사건과 르완다 제노사이드 사건에서 살아남은 이들의 딸이라는 것. 이런 두 사람이 한국과 르완다를 오가며 '그날'이 남긴 상흔과 그 아픔을 딛고 나아가는 이들의 이야기를 보고 듣는다.




1. 비극은 지척에 있다


전쟁과 학살 소식으로 온 세상이 떠들썩한 요즘이다. 몇 천 명, 몇 만 명이 넘게 사람이 죽었다는데, 그 숫자가 너무나 거대해서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기까지 한다. 우리 중 많은 수(특히 2-30대의 젊은 세대)는 아마도 그들에게 동정과 연민의 시선을 보낼 수는 있되 그 참혹함에 온전히 공감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분단 국가에 살고 있기는 하지만 우리는 그럭저럭 평화로운 시기를 살고 있지 않나.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참혹함을 직접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에 우리는 순진하게도 미디어를 통해 들려오는 끔찍한 소식들을 '어느 머나 먼 딴 나라 이야기' 정도로 받아들일지도 모르겠다. 다소 거친 귀납적 도출일 수도 있지만, 적어도 필자와 그 주변 사람들의 경우에는 그랬다.


그러나 쉽게들 착각하는 바와는 다르게, 이러한 학살의 비극은 우리와 그다지 동떨어져 있지 않다. 우리가 그럭저럭 누리는 평화의 이면에는 수많은 죽임과 죽음이 있어 왔다. 가장 대표적인 예로 매카시즘(반공 열풍)의 광기에 인해(좀 더 깊고 우울한 배경이 있지만 이에 대해서는 이곳에서 다루지 않겠다.) 2~3만여 명이 살해당한 제주 4.3 사건을 들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인이 다른 한국인들을 무참히 살해한 이 사건은 충분히 경계되고 기억되어야 마땅할 것인데, 4.3이라고 하면 '아 그런 일이 있었지'라고 생각하기는 해도 정작 사건의 발단과 경위, 결과의 끔찍함에 대해서는 아는 사람이 별로 없다. 4.3 희생자 추념일이 국가 기념일로 지정되고, 한국 역사 교과서에서 그 진상을 명확히 묘사하기 시작한 것이 겨우 2014년의 일이었으니 놀라운 일도 아니다.


부끄럽게도 필자는 대학에 들어가고 나서야 제주에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학살의 끔찍한 상흔은 그것을 부정하고 싶어하는 이들에 의해 오래도록 묵인되었다. 이토록 가까운 학살의 추억을! 우리는 그래서인지 때때로 이것을 기억하고 되새겨야만 하는 이유조차 모르기도 한다.


영화 <그날의 딸들>은 제주와 르완다의 학살을 경험한 피해자의 입과 그 딸들의 시선을 통해 우리가 이러한 인류사의 어두운 이면을 잊지 말아야 하는 이유와 그것을 통해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바에 대해 풀어 나간다.


2. 그날의 딸들

영화는 제주 4.3 사건 구술 작가인 양경인 씨와 르완다 출신 대학생인 파치스의 만남으로 시작된다. 두 사람은 국적도 세대도 다르지만 대학살의 피해자의 딸이라는 점에서 동질적이다. 각자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제주 4.3 사건과 르완다 제노사이드는 놀라울 정도로 닮아 있다. 누군가의 정치적인 야욕과 선동에 의해 민간인이 잔혹하게 살해되었고 그것이 오래도록 묵인되었으며 그로 인해 살아남은 사람이 평생토록 상처를 안고 살아가야 했다는 점에서 그렇다.


제주에서는 '속슴허'라는 말이 있다. 조용히 하라는 뜻인데, 4월 3일부터 시작된 '그날'에 대해 조금이라도 이야기하다가는 잡혀갈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또 제주에는 이름을 특이하게 짓는 관습이 있는데, 이는 행여나 잘못 불려나갔다가 억울하게 죽임을 당하는 일을 막기 위함이다. 제주에는 비슷한 시기에 온 마을이 제사를 지낸다. 제주 인구의 열 중 하나가 '그 사건'으로 인해 희생되어서다. 제주도의 활주로 아래에는 숱한 죽음이 있었고, 천지연 폭포의 밑바닥에는 스러져간 억울한 영혼들이 가라앉아 있다.

르완다에서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모두 있는 집이 드물다. 거대한 '인종 말살'의 과정에서 100만 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생을 다했기 때문이다. 구원과 가르침의 장이어야 할 성당과 학교는 살육의 장이 되었고, 학살의 생존자들은 그곳을 지날 때마다 끔찍한 기억에 몸서리친다. 서로 죽고 죽이던 투치족과 후투족이 공식적으로 '화해'한 지는 29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민족이나 과거를 묻는 일은 금기시된다.


사건이 발생한 지 몇 십 년이 흘렀지만 학살의 흔적은 아직도 생생하다.



3. 학살의 상흔을 치유하는 법

그렇다면 우리는 이 아픔을 어떻게 이겨낼 수 있을까? 양경인 작가의 말을 빌리자면, 그것은 "가해자의 진심어린 사과와, 그를 통한 피해자들의 용서"로 말미암아 가능해진다.


제주 4.3 사건은 양경인 작가를 비롯한 진상 규명을 위해 애쓴 수 많은 사람들의 노력을 통해 '실제'하게 되었다. 정부는 마침내 국가 권력의 과오로 인해 수 많은 제주도민이 희생되었음을 인정하고 사과했으며, 피해자와 유가족들은 비로소 마음 놓고 아픔에 대해 논할 수 있었다.


르완다는 국가 차원에서 투치족과 후투 족의 화해를 주도했다. 그들은 교육과 캠페인을 통해 '사과와 용서의 필요'를 설파했다. 후치족에게 남편과 아이들을 잃은 여인은 가족을 살해한 이웃을 용서했다. 분노와 원망에 사로잡혀서는 남은 아이를 키울 수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녀의 이웃이자 원수인 남자가 스스로의 잘못을 인정하고 그녀에게 진심어린 사과를 했다. 진심 어린 사과와 용서를 통해 가해자와 피해자는 모두 마음의 평안을 얻었다.



4. 비극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

영화를 다 보고 나면 우리가 비극을 기억해야만 하는 이유는 한층 선명해진다.

그것은 사람을 살게 하기 위해서다. 가해자와 희생자가 참상의 트라우마 혹은 죄악감의 감옥으로부터 벗어나 나아가게 하기 위함이다. 참상의 당사자가 아니라도 마찬가지다. 1947년 4월 3일에 벌어진 대학살은 그로부터 47년 후인 1994년 4월 7일에 비슷한 방식으로 재현되었다. 이러한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우리는 기억해야만 한다. '그날'의 처참함을, '그날'의 아픔이 어떻게 이어져 내려오는지를, 그것이 오늘날에 어떤 방식으로 잔존해 있는지를. 우리가 '그날'을 끝 없이 경계하고 되새겼을 때, 우리는 비로소 그 비극으로부터 온전히 자유로울 수 있을 것이므로.





[상영 일정]

[부산국제영화제 10.4~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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