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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내 브런치북을 읽고 우셨다.

엄마, 울지 마세요.


얼마 전, 운이 좋게 한 번에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 주위에 도전했다가 실패한 사람도 있고 몇 번의 시도 끝에 작가가 된 사람도 있어서, 내 특별할 것 없는 이야기 소재에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막 작가가 되었다는 메일을 받았을 때,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었는데 접수 기일이 채 일주일도 남아있지 않았다.


기한도 얼마 남지 않았고, 써둔 글도 없어서 처음에는 아예 생각조차 하지 않았었다. 견물생심일까. 작가가 되고 나니 무모하지만 한번 도전해 보고 싶어졌다. 그래서 3일 만에 프로젝트 접수 최소 글인 10개를(실제로는 11개 작성) 썼고 하나의 책으로 엮어 프로젝트에 접수했다.


회사 일이 바빠 절대적으로 시간이 부족하긴 했지만, 신기하게도 막상 쓰기 시작하니 막힘없이 술술 써졌다.


어찌되었든 브런치북을 엮은 후 가장 친한 친구들과 회사 후배 몇 명에게 공유했다.  나는, 나의 베스트프랜드이자 소울메이트인 엄마에게 내 이야기를 가장 먼저 보여드리고 싶었다. 하지만 마음 아파하실 것이 눈에 선해 망설일 수 밖에 없었다.



며칠의 고민. 

힘든 일은 이미 지나간 과거일 뿐이고 지금은 너무나도 잘 지내고 있으니, 나의 내면을 담은 브런치북을 보여 드리는 것이 좋겠다 결론을 내렸고, 카카오톡으로 브런치북을 보내 드렸다.

딱 한 가지 '절대 울지 마'라는 당부와 함께



엄마, 읽고 절대 울지 마.
다 지난 일이고
엄마도 알다시피
나 정말 잘 살고 있잖아.



엄마는 바로 읽어 보겠다고 하시고는 며칠 동안 연락이 없으셨다. 거의 매일 통화하다시피 하기 때문에  침묵이 정상적인 상황은 아니다.


그러고 며칠 후 저녁에야 엄마는 전화를 했다. 처음 몇십 분의 통화는 빙빙 이야기가 도는 것 같았다. 엄마는 한참 만에야 하고 싶은 이야기를, 참은 숨을 뱉어 내듯 하셨다.


"나는, 내가 우리 딸 많이 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는 것 같다. 미안하다.

너 힘든 줄은 알았지만

이렇게 많이 힘든 줄 몰랐고 혼자만 멀리 두어 미안하다..."


엄마의 목소리는... 촉촉해졌다.



사랑하는 엄마와 담양 메타세콰이아 가로수길 / 죽녹원


그 통화 며칠 뒤 엄마가 오셨고, 둘이서 하는 가을여행이 시작되었다.

원래도 이 즈음에 둘이서 여행을 다녔기 때문에 표면적으로는 특별할 것 없는 듯 일상처럼 보였다. 하지만 이번이 조금은 더 가깝, 조금은 더 마음이 저릿한 것을, 서로 말은 하지 않아도 느낄 수 있었다.


평소와는 다른 이야기를 했다.

일상이 아닌 좀 더 마음속 이야기.

내 이야기보다는 엄마의 이야기.

엄마의 유년시절 이야기,

엄마와 외할아버지의 이야기.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

그리고 또 한명의 외할머니 이야기..


'엄마' 이야기가 아니라 '한 사람'의 이야기,

'한 여자'의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소중한 이야기.

언젠가 내 브런치 북에 담길 이야기들.



내가 브런치북에 내 이야기를 적어가듯,
엄마는 나에게
엄마의 이야기를 적어 내려간 것이다.




언젠가 엄마는 내게,

"내 딸이지만, 나는 네가 어렵다."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


지금 어른이 되고 생각해보면, 나라도 나 같은 딸이 있다면 어려울 것 같다. 살갑거나 애교가 있는 것도 아니고, 세상 까탈스럽고 예민하고. 기분은 오락가락, 체력은 바닥, 때로는 피 한방울 안 날 것 같은 원리원칙주의자이지만 때로는 충동적이라 종잡을 수가 없다. (이건 사람들이 눈치채지 못해서이지, 내 나름의 기준은 있다. 참고로 나는 INTP다.)


엄마는

아마도 지금도 이 글을 읽고 계시겠지.

그리고 울고 계실지도..






엄마,


힘든 일은 다 지나갔어요.

힘든 일이 힘든 일로 매듭지어진 것이 아니라

더 성장하고 더 성숙해지는 밑거름이 되어 주었어요.

그래서 그 일련의 일들에 지금은 감사하고 있어요.


제가 힘들 때

혼자 두지 않으셨고

언제나 응원해주고 함께 해 주셨어요.

마음 아파하지 마세요.


나의 베프, 나의 소울메이트

엄마,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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