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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븐 Mar 16. 2022

스토리보드를 만들며 생각한 것들

우선 오늘은 '일' 이야기를 하기 전에  무라카미 하루키를 말하지 않을 수가 없다.

왜? 스토리보드를 만들면서 내내 그가 떠올랐기에. 정말 엉뚱하기 짝이 없지만 어쩔 도리가 없다. 그게 나란 인간이니까.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에서 하루키는 말한다. '리기에 대해 정직하게 쓴다는 것은 나라는 인간에 대해서 정직하게 쓰는 일이기도 했다' 고. 그에 빗대어 나도 감히 말해보고 싶어 졌던 것일지 모른다. 업계 용어를 비롯해 실무 각양각색 모두 처음 접하는 중인 내가, 이 업계의 이 행위에 대해서 느낀 바를 정직하게 쓴다는 것. 그것은 하루키도 말했듯 현재의 일과 나라는 인간에 대해서 정직하게 고백하는 일임을. 물론 하루키에 비하자면 째비도 안될 단상이겠지만. 



요즘 소규모 프로젝트에 투입되어 일을 배우듯 움직이는 중이다. 

주어진 요구사항 문서를 잠시 보았을 때 느껴지는 규모로 따지자면 예전 회사에서 약식 K/O 후 데드라인까지 각 수행부서별 재빠른 미션 클리어가 필요한 규모의 프로젝트로 추정. 왠지 즐겁고 신난다. 무엇보다 노동하는 작업자로서 이렇게 즐겁고 신선한 감정을 느껴도 되나 싶을 정도다. 이전 커리어 대비 현재는 하는 일이 확연히 달라졌지만 이게 나로서는 적성해 맞는 모양인지 아니면 아직 '뭣도 몰라서' 그러는 건지 모르겠지만. (후자겠지 싶다) 하여튼 스스로도 일에 초집중 몰입하다 보니 어느새 아이들 하원에 맞춰 퇴근하는 일터의 일상이 생경스러우나 뿌듯하다는 것. 나태주 시인님의 말처럼 '시 쓰지 않으면 죽을 것 같아서 쓴다' 는 비장함은 솔직히 자신 없지만...  아직까지 '재밌다, 궁금하다, 더 알고 싶다'라는 이 감정이 현재 나에게 유효하고 큰 무기가 되어 줄 것이라는 느낌이다. '업'에서 이런 감정을 느낀다는 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하기에.



나태주 선생님의 강고한 기개와 비장함은 따라가지 못하겠지만..




궁극적으로 스토리보드를 만들어야 했다. 

물론 그것을 위한 사전 작업은 필요했다. 우선 RFP를 분석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B2B 과제는 결국 상대 클라이언트의 요구사항을 명확히 이해하는 게 첫 출발점이다. 그러나 이 업계가 예전 회사 대비 나로서는 신선했던 건 나의 '고객의 고객'을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기 때문이겠으니. 내가 기획하는 서비스가 도달하는 라스트 마일 고객은 결국 '사용자'라는 것. 그런 사용자를 처음부터 끝까지 생각해야 하는 일. UX. 사용자 경험. 그리고 그들을 생각하며 '기획'을 한다는 것. 어쩌면 '인간'을 분석해서 그들의 사용 여정을 확실히 고민하고 활용의 최적화를 열심히 강구하며 결국 '사랑'을 받기 위해 애쓰는 일 같아서. (사업자에게 사랑이란 구매전환일까 싶지만 :) ) 



덧) 물론 그런 애씀이 오직 사용성만 고려한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라는 것도 안다. 엄밀히 따지자면 서비스는 '사업'을 하기 위함이라면. 그 서비스를 활용하는 궁극적인 목표가 '이익창출' 이라는 점에 포커스를 두며 결국 마케팅적 시선도 어느정도 장착한 상태에서의 디자인적 접근을 하면 좋을 것이라는 것. 

예컨대 사용자 퍼널 분석이라든지, 유저 리텐션 전략을 고민한다든지... 기획자나 디자이너지만 얼추 마케팅까지 두루두루 알고 업에 접해서 '생각' 하려 하는 어프로치는 여러모로 좋을 것 같다는 게 사견이다. (아니다..결국 궁금한 건 못 베기는 개인 성향 탓으로;;) 




설계 전엔 분석이 필요하다. 

분석에 시간은 많이 주어지지 않는다. 물론 일이란 사실 그렇기도 하다. 시간과 리소스의 '충분함'을 바라면 사실 실망한다. 충분하다고 해서 결과가 비례적으로 나오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그 두 가지가 늘 충분하지 않은 상태에서 무언가를 그럼에도 만들어낸다는 것. 오히려 거기에 더 후한 점수를 매기며 최대한의 '효율성'을 생각하며 일을 하면 좀 더 뿌듯해지기도 하다. 최소한 나도  '일' 앞에서만큼은. '가성비'와 '가심비'를 탁월하게 내고 싶은 욕심쟁이다. 물론 정량적으로 부족한 시간 탓을 할 때도 있다. 바로 '애정' 이 깊은 프로젝트/일 앞에서다. 정말이지 생각하고 고민할 시간이 좀 더 있더라면 하는 아쉬움은 바로 '사랑'의 영역에서야말로 유효한 것이라 생각하기에. 사랑하니까 '더' 잘하고 싶은 그런 마음이랄까. 



분명히 이해하기. 모르면 알고 넘어가기 

이 업계에서 한 달 적응하며 느낀 것은 어떤 플랫폼이나 서비스를 '만들어' 낼 때는 앞단에 서비스 콘셉트와 목적. 사용자의 가치를 보다 명확히 정의하고 이해하고 아는 상태에서 이를 바탕으로 '기획'이라는 일머리를 굴려야 한다는 것이다. 설계 전 보다 명확한 이해를 바탕으로 분석하고. 그 분석을 토대로 기획을 한다. 그것이 핵심으로 느껴진다. 하다 보니 느껴지는 건 물론 분석도 그 범위가 넓다는 것이다. 사용자 분석, 데이터 분석, 그 분석을 위한 How to  도 각양각색. 규모가 큰 회사라면 그 '분석' 에도 공을 들일 것이고 소규모에서는 '일당백'의 느낌으로. (그리고 원래 일당백이 일은 더 빨리 하드 하게 배운다. 물론 결국 일꾼 태도 나름이지만...) 여하튼 그 과정을 거쳐 보다 기획 실무적으론 정보구조설계 (IA)라든지 화면/시나리오 설계 라든지 그런 구상들을 실제 페이퍼로 쓰든 툴을 쓰든 프로토타이핑을 거쳐 보다 정교하게 각 화면 페이지에 상세한 디스크립션이 녹아진 스토리보드를 만든다. 하여튼 뭐 하나 연결되지 않은 것들이 없다. 




전체 흐름 (Flow) 을 파악하려면 결국 여러 다양한 시나리오를 고려하게 된다...


@벤처스퀘어 참조. 이런 느낌의 다양한 스토리보드 양식이 존재 



스토리보드를 그리면서도 자꾸 하루키가 떠오른 건 엉뚱하지만 '사용자' 프라이어리티 1순위였기에. 

내가 기획해야 하는 서비스의 타깃 유저는 65세 이상 시니어와 13세 미만 아동이었다. 키즈 시장과 실버시장을 알아야 했다. 속으로 유레카를 외쳤다. 평소 아주 관심 있게 지켜보고 내 생활 반경 속에서 늘 고심하게 되는 시장이어서. 사적인 애정과 관심, 그 분야의 흥미도가 '일'의 영역에서 교차점이 발생하면 업무 퍼포먼스 게이지도 유난히 상승되는 것 같다. 특히 나 같은 인간에겐 더더욱. 현재 애들 돌보며 양가 부모님들 챙기며 일을 하는 나는 자연스럽게  '페르소나 분석'을 하게 되더라. 우리 아이가 나중에 사용한다면. 내가 할머니가 돼서 사용한다면. 우리 시어머니는 이걸 사용하실까? 뭐 이런 식으로 그들을 떠올리며 데이터에 접근한다. 각종 통계자료나 뉴스 아티클들을 어프로치 하며 그렇게 머릿속으로 구상을 서서히 떠올린다. 어떤 레이블로 어떤 형태로 어떤 디자인 페이지를 통해 사용자 경험을 보다 좋게 만들 수 있을지. 



스토리보드를 만들여 생각난 것들. 그건 결국 '사람'이었다. 

내가 아는 사람. 내 주변 사람. 혹은 내가 모르지만 앞으로 '사용자' 로서 언제나 인지해두고 그들을 배려하고 그들의 행동 패턴과 라이프스타일을 고려해야 하는 '사람' 말이다. 결국 이 UX 디자인이라는 것은 '사람' 이 어떤 시스템, 제품, 서비스를 직·간접적으로 이용하면서 느끼고 생각하게 되는 그들의 총체적 경험으로 보이는 것이다. 그것은 결국 단순히 기능이나 절차상의 만족뿐만 아니라 우리가, 사람이, 내 옆 사람과 나라는 인간이 지각하고 인지 가능한 모든 면에서 참여하고 사용하고 관찰하고 서로 간 상호 교감을 통해서 알 수 있는 모든 가치 있는 경험을 말한다는 것.... 내가 아직까지 잘 이해하고 있다면 이 UX라는 것은 확실히 인간을 위한 아름다움의 책무를 지녀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모든 서비스가 다 아름다울 순 없다. 

솔직히 소비자/사용자/고객 입장에서 정말 형편없는 서비스를 경험한 적이 적지 않았다. 이 나이(?)가 되며 다채로운 경험 자산이 쌓이다 보니 하여튼 나라는 인간이 총체적으로 느낀 그 '사용자 경험'들만 떠올려도 '이건 아니지' 싶은 것들이 있더라. 어쩌다 보니 이 업계에서 이 일을 하면서 그 시간들을 가끔 떠올린다. 그리고 스스로 다짐하게 되는 것들이 생긴다. 최소한 '악의 평범성' 이 묻어나는 후진 서비스나 기획은 만들지 말기를.  (분명 그 서비스 기획자는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을 알 리가 없겠지 싶다. 알고도 '가난은 정신병이다'는 레이블을 자막 처리하면서 그런 서비스로 현 젊은 층들이나 자본주의의 화력을 악용하진 않겠지.....) 사람을 사람답게, 우리의 현생이 보다 기분 좋고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서비스이기를. 거기에 더해 디자이너의 철학이 담겨있다면. 그 철학적 메시지가 인간의 행동 패턴을 보다 이타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좋은 변화'를 유도하기를. 





사용자가 요구하는 정보와 기능이 무엇인지 확인하는 것

사실 스토리보드를 만들 때 그 목적성을 잃지 않으려 애썼다. 그리고 아래와 같이 나름 이 업에 와서 내가 기획이라는 걸 할 때 이렇게 했으면 좋겠다 싶어서 스스로 만든 일종의 행동강령들을 떠올리며 페이지 안에서 의미를 담아내 보고 싶었다. 



사용자가 원하는 방식으로

사용자가 실수하거나 혼동스럽지 않게.

장애 유무를 떠나서 '동등' 한 수준의 정보와 기능이 담겨 있는지. 

콘셉트와 목적이 잘 담겨 있는지. (의미가 상실되면 의미가 없어지니까) 



비록 단순히 몇 페이지의 디스크립션과 앱 페이지를 그리는 레벨이었으나. 나는 어찌 된 영문인지 '하루키'를 떠올리며 그가 한 말도 떠올리며 최선을 다해보고 싶었다. 비록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아이디어가 먹히지 않아서 (대차게 까여서 ㅋ) 아주 조금 속상했지만 반대로 이렇게 새롭게 알아가는 게 많은 일터라, 공부해서 남 줄 수 있는 업이라. 무언가 그래서 더 즐겁고 여전히 감사하다. 



다시 하루키로 되돌아가 보자. 그는 말했다. '늦깎이이긴 하지만 소설가로서의 본격적인 출발점에 섰던 것이다'라고.  (p.77.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中) 그리고 '묘비명 같은 것이 있다고 하면, 그 문구를 내가 선택하는 게 가능하다면 이렇게 써넣고 싶다' 했다. 적어도 끝까지 걷지는 않았다. (p.258-259)라고. 



그에 기대 나도 감히 이렇게 말해보고 싶어 진다. 

비록 늦깎이이긴 하지만 디자이너로서, 기획자로서 본격적인 출발점에 있는 나는. 적어도 끝까지 기억하겠다. 사용자를. 사람을. 그 사람다움을 잃지 않고 기억하겠다고. 이제는 일터에서 사람이 무엇보다 소중하다는 것을 나는 것만 같기에. 그것이 지난 13년간 이전 직장에서 배운 소중한 경험 자산이었고 지금 자산을 바탕으로 다시 새롭게 커리어를 이어가는 중이다... 다시 아이가 된 것처럼. 한 걸음 한 걸음. 천천히. 그러나 성장판이 모두 열려 있는 딱 그 정도의 뜨거운 기세로. 




그리고 바란다면 아이들에게 더 좋은 세상으로 각인되는, 그런 서비스. 그런 디자인. 그런 기획이길. 현재의 소신과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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