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4세기, 그러니까 약 350년 남짓의 플라톤 시대. 그는 '국가'에서 강조했다. '타인에게 조언을 구하는 과정의 중요성'에 대해서. 맞다. 지극히 맞는 말이다. 우리는 타인과 뗄 수 없는 존재다. 내가 아닌 상대로 하여금 무언가를 구한다. 갈망한다. 열망하고 지지하며 반대로 비난하고 공격하기도 한다. 그렇게 끊임없이 우리는 타자와 연결되어 있다. 왜냐면 인간은 혼자 살아갈 수 없으니까. 말하자면 나는 너에게 영향을 받는 존재. 너의 좋음을 부러워하고 너의 효율을 시기하며 나도 그렇게 너의 좋음을 따라가고자 하는 것. 어쩌면 사르트르가 말한 '타인은 지옥이다'라는 그 명문은 그래서 나온 말이 아닐까. 각각의 인간은 놀라울 만큼 복잡한 존재로 욕망과 탐욕과 동시에 공감을 구하는 존재라는 것.
인간은 갈망한다. 보다 쉽고 편하며 아름다울 것을. 생존을 위한 의식주가 해결되면 그 욕망은 더욱 거세진다. 시각적으로 보이는 '이미지'와 '광고'와 '방송'과 같은 모든 연결 매체들은 그래서 더욱 강력한 힘을 지닌다. 게다가 자본주의는 그것들의 촉매제 역할을 한다. 복잡한 내면을 지닌 인간으로 하여금 더 열망하고 더 갈구하게 만든다. 더 기능적이고 효율적으로.
가끔 생각하게 된다. 사용성과 기능과 이익과 효율을 추구하기에 바빠서 본질적인 '인간'을 향한 철학과 사유 없는 기획과 디자인의 탄생물들이 자칫 우리 인간을 은밀하게 해칠 수 있는 것은 아닌지. 디자인과 기획의 힘은 강해서 교묘하게 인간을 움직이게 만드니까. 돈이 있는 이들에게 보다 나은 편익을 제공하기 위한 BM은 그래서 탄생하고 마는 것처럼. 선착순 줄서기라는 규칙은 어느새 무용해지고 비싼 입장권을 사면 놀이공원에서 줄을 서지 않아도 되는 '새치기'가 자연적인 현상이 되고 마는 것처럼.
그러나 어쩔 수 없다. 자본주의 영리 기업의 목적은 '돈'이고 그것이 튼튼해져야 그다음의 '공공선' 도 도모할 힘이 생긴다는 걸 모르지 않는다. 그리하여 다만 염두하며 일을 하려 노력할 뿐이다. 나와 같을 수 없는 타인은 삶에서는 지옥과 같은 존재일 수 있지만 최소한 디자인과 기획을 한다는 것에서는 그런 타인의 목적과 사용성을 확실히 생각해야 한다는 것.
어쩌다 보니 디자인 업계에서 일을 하며 UX라는 것을 틈틈이 공부하고 익혀나갈수록 참 매력적인 영역이긴 하나 동시에 어떻게 디자인을 기획하느냐에 따라서 그것이 사용하는 사용자 (인간)에게 무기가 될 수도 해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문득 들고 만다. 1990년도에 직업으로서의 UX를 처음 언급했다던 이 업계의 시조새와도 같이 느껴지는 도널드 노먼은 사과 회사에 (AAPL) 합류하면서 처음으로 그의 직업을 사용자 경험 설계자(User Experience Architect)로 정의했다지.
그는 사용자 경험을 디자인된 인터페이스의 한 화면에만 국한하지 않았다. 사용자가 제품 및 서비스를 통해 얻는 일반적이고 총체적인 경험의 전반으로 개념을 확장했다. 그리하여 이 업계에 전통적으로 자주 접할 수 있는 기초 지식인, 난제를 해결하기 위한 디자인 방법론인 디자인 싱킹 (Ruichard Buchanan)이나 페르소나 (Angus Jenkinsosn)와 같은 특정 타깃 그룹을 대표하기 위해 만들어진 가상의 캐릭터 구축. IDEO의 철도 관련 프로젝트 중 처음 제시됐다던 고객 여정 지도 (Customer Journey Mapping)과 같은 것들을 고려하는 건 이젠 너무 당연하고 필수적인 요소가 되었다. 그리고 시대가 최첨단화되며 소비자가 추구하는 욕망도 다각적이고 복잡해질수록 어느새 경험 경제 (Pine Junior, James H. Gilmore)가 되어 버린 사회 속에서, 영리를 위해 열렬히 고객에게 가치 있는 경험을 선사하기 위해 디자인을 활용하기 시작한 기업들. 왜? 결국 이 시대는 사용자의 경험 자체가 하나의 상품이 되며 그것이 쉽게 말해 머니 타이즈* 가 되고 '돈 줄' 이 되니까.
머니 타이즈 : 서비스를 수익 창출 사업으로 변화시키는 것
안다. 업종은 달라도 기업들이 너도 나도 노리는 건 바로 그것이라는 것. ‘취향’과 '경험' 그리고 그것을 보다 확실하게 잘 사용할 수 있게 만들 수 있는 강력한 도구인 '디자인'. 그래서 디자인은 타자를 향해야 한다. 사용자라는 타자를. 그들이 작은 성취감을 느끼고 어떤 서비스에 열광하게 만들고 계속 경험하고 싶어서 딥 다이브 하게 되는 그 '여정'을 선물하게 만드는 것. 그리서 어쩌면 기획력은 하나의 질문에서부터 출발할지 모른다. '타자'. 그들이 원하는 게 도대체 뭐지? 그리고 그들에게 '보이는' 것에 맞춰 디자인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쉽게 말해 TV면 TV 핸드폰이면 핸드폰, 태블릿이면 태블릿, 워치면 워치.... (디자인이 빠지지 않은 기기는 없다....! )
최근 작은 규모의 프로젝트에 투입되어 직/간접적으로 바라보면서 묘하게 느끼는 게 있다. 대상이 B2B 든 B2C 든 (클라이언트든 라스트 마일의 엔드유저를 고려하든) 결국 이쪽 일을 시작한 이상 우리는, 나는, '타자'의 만족도를 극대화하기 위한 일머리를 굴려야 한다... 좀 추상적이고 나이브하지만 한편 거시적으로 말하자면 아마도 이렇게.
전체적으로 서비스 사용과 이해에 '어렵지 않다'는 인상이면 좋음 (편의성)
온보딩 하며 명확한 영향력을 선언할 수 있어야 하며 (서비스 가치, 미션, 목적)
모객 유치에서 나아가 사용자와 '공감' 이 형성된 팬층의 VOC를 잘 듣고 (모객, 고객)
피드백에 민감히 반응하며 지속적으로 AARRR* 등을 적극 인지/개선할 것 (성장, 미래 동력)
Acquisition(획득)
Activation(활동, 활성화)
Retention(유지, 리텐션)
Revenue(매출)
Referral(추천)
쉽지 않은 일이다.... (뭐 일이라는 것이 사실 뭐 하나 쉬운 게 어디 있었냐 싶다만) 디자인과 기획. 물론 그래서 매력적일지도 모르겠다. 결국 타자의 사용성을 계속 생각하고 고민하면서 일을 한다는 건 결국 나와 같은 '인간'을 연구하는 것만 같아서. 요즘은 그래서 '공부'에 딥 다이브 하는 중이다. 출근해서 현업 하고 틈틈이 계속해서 양파처럼 까도 까도 또 나오는 새로운 용어들과 (아아.......) 지식들과 각종 기사들을 읽어가면서. 나 원 참 내 생에 구글의 머티리얼 디자인(Material Design)과 애플의 휴먼 인터페이스 가이드라인(Human Interface Guidelines)에서 용어가 달라서 헷갈릴 수 있는 것들이 존재한다는 것조차 조금씩 보이는 정도면, 말 다했지 싶다.... (그래서 한번 더 정리하고 넘어가는 용어정리 2탄, 꺼진 불도 다시보자 정신으로;)
일하다 막히면 찾아보며 공부하다 다시 일하다 멍 때리다 과자 하나 먹고 다시 일하다가 문득 사르트르가 생각났고 그러다가 세네카의 이 말로 어설픈 글의 마무리를 지어 볼 뿐이다.
공부가 당신을 위로해 줄 것이며, 즐겁게 해 줄 것이다.
공부가 마음속에 자리 잡는다면 슬픔과 근심, 혼란스러운 시름의 고통이 침입하는 일도 없을 것이다.
공부야말로 가장 안전한 보호막이다.
- 세네카, '철학자의 위로' 中 -
사적으로는 별로 재미없었던 그 서비스와 그 웹과 그 앱이, 현재 어떤 타자들 집단에서 열광하고 선호하고 자주 사용하고 지갑마저 연다는 건 분명 이유가 있지 싶으니까. 그리하여 내게 지옥인 타자들이었음에도 일단 이 업계에 발 담기 시작한 이상, 이제 나는 내가 아닌 그들을 향한다. 공부하고 알아가고 실제 어떻게 만족시키고 새로운 무언가 혹은 좀 더 매력적인 개선을 만들 수 있을지 혼자 땅굴 파듯 상상하고 그리면서. 가끔 그러다 지칠 땐 철학자들에게 위로를 받으면서도....
요즘 뚫어지게 쳐다보는 (노려보는;) 중인, 이쪽 세계 지식의 숲... 내 사유의 본질적 원천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