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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븐 Mar 07. 2019

멀고도 가까운 마음만 남긴 채  

나를 좀 더 아끼는 시간...을 갖기로 한다

우리의 삶을 만들어 가는 것들은 아주 희미하고, 예측할 수 없다.

때문에 우리는 가까스로 탄생한다.


- 리베카 솔닛 -




미래의 '나'를 미리 알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당장 내일.. 일어날 일들을, 물론 어느 정도의 예상은 할 수 있을 모른다. 일상은 그렇게 드라마틱하게 변하지 않기에. 그렇지만 완벽히 단언하지도 못할 것이다. 미래라는 시간에 펼쳐지 시간들과 그로 인해 마주하는 감정으로 인해 나라는 사람이  어떻게 변할지는, 그 누구도, 나 조차도 확실히 알 수는 없을 테니까.



나는 때때로 그 '내일'을 예측하려 애쓰며 사는 유형이라는 걸

어제, 전화 한 통을 받고는 잠시 (...가 아니라 생각 외로 꽤 오래) 흔들렸던 나를 발견하곤, 깨달았다. 다시 말하자면 즉, 나는 '바라는 내일'을 상상하는 데 '나'를 소비하는 사람이라는 뜻인데, 바라는 무언가에 닿기 위한 애씀들에 보통 에너지를 소비하곤 한다. 소비는 때로는 투자, 때로는 감정 낭비, 때로는 무의미한 소비에 그치고 만다. 그리고 어제는... 그러니까 내가 요 며칠 동안 벌인 일들에 대한 '대가'를 치르기 시작한 날이었다.



사내공모에 지원했었다.

떨어질 걸 각오했다. 아니 사실 각오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 직관이, 본능이, 마음이 끌리는 대로 각오랄 것 없는, 나로서는 아주 자연스러운 지원이었다. 원했으니까... 앞뒤 재지 않고 마음이 바랐으니까. 편한 보직을 놔두고 굳이 남들 보기에 불구덩이(?)에 뛰어들려는 이 막무가내 용기는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것인지, 소위 '까일 것'을 알면서도 그럼에도 지원했었다. 덜 후회하려 애쓰는 나의 바락 이었을테다. 서류에 패스되고 (크게 어렵지 않은 단계였기에) 면접을 보는 내내 예상치 못하게 오래 화기애애했기에, 아주 작은 기대와 희망을 품었다. 어리석은 기대심이 생겼다.



그 기대심은 결국 '어리석음'으로 그치고 말았다.

예상은 했지만... 역시 예상 대로의 대답을 듣게 되었을 때 마치 '경단녀'의 심정이 이해 가는 수준의.... 뭐랄까 표현하기 힘든 수치심마저도 들었다. (도대체 왜 이런 감정이 들었는지는 여전히 정확히 알 수 없다만) 인사담당자의 '불합격' 통보와 그 사업부의 최고 인사권자의 결정을 사실 예측했음에도...'기대'라는 감정이 이기길 바랐었다. 역시 기대가 크면 실망이 큰 법이다. 정말이지 나는 주저함이 없다. 감추는 법도 서툴다. 좀 더 감춰야 됐었나 보다. 스스로에게. 그랬다면 아예 지원이라는 것을 하지 않았을 텐데.



납득할 수 없는 이유를 스스로 나열해 보는 시간을 가졌다.

아이 둘 있는 엄마라서, 소위 그들이 바라보는 대로 '기가 센 여자' 직원이라서, 혹은 정시 퇴근이 잦아서?그 가려진 이유들 대신 그저 내가 그곳에서 견디지 못할 것 같다는 지레 예측하고 판단하는 그들의 평가에. 나는 그 무엇 하나 유연히 수용하지 못했다. 사실 그러고 싶지도 않았다. 마지막까지 나를 대하는 그들의 태도가 내심 나이스하지 못했다고 느꼈기에...


- 보통 떨어질 거 각오하고 지원하는데, 스스로 인정할 건 해야죠.

-... 덕분에 자기반성하는 시간이 된 건 감사합니다만, 인정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 고맙다는 말에 진심은 안 느껴지네요.

-... 네. 사실은 분노합니다. 말씀하신 적합자라는 기준 지금 명확히 알리지 않으시니까요. 인정 못합니다.

- 그런 식으로 나오면 기준을 알리기도 쉽지 않을 것 같은데..

- 그런 식이 어떤 식인 가요.

- 회의 들어가 봐야 하니 아무튼 끊을게요.

-....



핸드폰을 잡고 있던 손은 어느새 떨림이 멈추지 않았다.

마음속으론 소리쳤다. '실패할 걸 미리 예견하면서 지원해야 하냐고. 나는 단지 내 가능성에 투자하고 싶었다고. 또한 '인정'이라는 건 어떤 기준이 명확할 때 할 수 있는 것이라고 보는데 언제나 간접 화법 구사하는 당신들에게 '직타' 날리는 나는 인정하는 게 쉽지 않은 캐릭터라 그거 하나만큼은 정말 미안하다고...





미소를 완벽하게 잃어버린 날이 되고 말았다.  

웃지 않고 지나가게 되는 날이 있는데, 어제가 그랬고 이 감정은 당분간 쉬이 없어지지 않을 듯싶다. 세상에서 가장 쓸모없는 인간이란 감사할 줄 모르는 인간인데, 나는 그럼에도 나를 면접 봤었던 두 명에게 감사하고자 애썼다. 그러나 한 명은 묵묵함, 한 명은 함부로 나를 판단하고 있었다. 그래서 커다란 분노감은 쉬이 잠들지 않는... 듯 싶다.



멈추지 않는 생각에 잠시 사무실에 턱 하고 앉아있다가 어느새 눈에 눈물이 맺혔다.

나는 나를 안전하게 만들 권리를 생각해내려 했으나 도무지 방법을 찾아내지 못한 채 감정은 여러 곳에서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내면에서 이차적 재난이 일어나지 않도록, 그럼에도 나는 나를 안전하려 애썼다. 그리 하여... 하루를 나름 지켜 낸 이후 지금. 나는. 그 시간을 흘려보내고 있다.



타인도 나와 같은 분량의 고통을 겪었거나 겪고 있다는 걸

믿어보려 한다. 비록 그 두 명이, 아니 다시 말하자면 최종적으로 나는 '아웃'이라고 결정한 남초 사업부의 의사결정의 객관적인 기준을 내가 이해하려 하지 않은 것은 아닐지...라고. 가끔은 끔찍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는 조직의 어떤 파워게임들 조차도... 어쩌면 내가 모르는 무언가가 담겨 있는 건 아닐까 하는.



통보를 하는 입장의 그녀도, 면접 잘 봤다고 웃으며 응원해줬지만 결국 다른 이를 택한 그 실무 팀장님도.

결국 나보다는 덜 아플 거라고 함부로 판단했기에, 어제의 나는 약간의 수치심과 약간의 자격지심과 또 약간의 억울함과 또 약간의 슬픔을 마음에 품었던 것은 아닐지. 스스로 반성해 보는 시간이.. 여전히 흐르고 있다.



그리고 이 시간의 흐름에서 나는 여전히 나 다운 어리석은 꿈을 품어본다.

이 시간들, 경험들. 쌓이고 쌓여서 더 커다란 어떤 걸 내게 배달해주는 건 아닐까 하는.. 타인이 나와 같은 성분일 수 없으며, 우리는 어쩌면 각자의 고통과 각자의 존엄함을 가지고 있는 객체 들일뿐이라고. 그러니... 나는 괜찮다고. 내가 못나서 그런 게 아니라. 충분히 잘하고 있지만 단지 타이밍이 좋지 않았을 뿐이라고....



I was sad, but I get it.

나의 솔직함을 잠시 탓해봤던 어제 오늘이지만, 그래도 스스로에게만큼은 투명해지고 싶은, 직관을 따르는 용기어린 마음을...나는 아직 포기하고 싶지 않은 걸까. 아직은.. 그렇게 살아야 덜 후회될 것 같아서. 어쩌면 이런 경험들은 새로운 나를 탄생시키게 만드는 도화선이 되어주는 걸지도 모른다고, 그렇게 애써...애써 나를 다독이며 시간을 흘려 보낸다.



어딘가로 가닿고 싶은, 어떤 멀고도 가까운 마음만이 지금도 흘러 넘친다..



햇볕을 기다리며, 그렇게 내맡기는 것처럼.... 다시 흘러가면 그만일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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