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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븐 Sep 26. 2019

결혼만큼 중요한, '이별'의 시간

우리 이만 헤어져요 

결혼 전 생활을 유지하며, 결혼 후 삶도 지켜내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다. 


- 우리 이만 헤어져요 - 





이혼 변호사의 '이혼' 이야기를 접하고 나니 예전 초라하고 부끄러운 기억이 다시 나를 찾아오고 만다. 

'성격 차이'라는 애매한 단어를 목덜미가 너덜너덜한 아이 토 냄새가 나는 티셔츠 자락에 기어코 흐르는 눈물을 닦아가며 종이에 적어 내렸던 나의 한때... 서류 접수까지는 '미처' 하지 '않았던' 그때의 내가 지금의 나를 보면 귀신이 곡할 노릇으로 '변했다'라고 할 테다. 



신생아 다둥이 육아기의 극심한 정서적 공감대의 고갈을 배우자로부터 느꼈던 한때가 있었다. 

물리적인 신체를 사용해서 서로 때리지만 않았을 뿐, 우리는 서로를 향한 묵시적 폭력을 행사하고 있었으리라. 갖은 감정과 언어폭력의 시간들을. 돌이켜 냉정히 생각해보면 나도 그리 잘한 것만은 아니었지만 반대로 그만큼의... 뭐라 표현이 쉽지 않은 바닥까지 치닫는 정서적 갈등의 정점이었던 시기. 시월드의 여전한 잔존, 아니 더하면 더했을 '그'의 주변 '시' 사람들로 인한 스트레스까지도. 나는 그때 은연중에 깨달았다. '좋은 사람' 과도 얼마든지 '이별' 할 수 있다는 것을. 남들은 모를 그 좋은 사람의 '가족'으로 사는 삶이란 또 다른 보이지 않는 '세계'라는 것을. 이 모든 게 '결혼'이라는 제도 안에 들어가서 내가 새롭게 깨달은 것들... 일지도 모른다. 



우리 이만 헤어져요, 최유나 글, 김현원 그림, RHK, 2019.08.21. p. 348



책은 시종일관 '이혼'이라는 사건을 둘러싼 우리들의 보이고 또 보이지 않았던 '일상'을 담담히 그려낸다. 

외도와 폭력을 밥 먹듯 일삼으며 배우자를 '시녀 '부리면서도 죄의식 1도 없는 사람, 자신의 가족만 가족으로 치부하고 시댁 사람들을 '개무시' 해 버리는 사람, 경제권을 '빼앗긴' 채 존중받는 부부간 공감대가 전혀 형성되지 못한 채 소위 돈 벌어오는 기계로만 취급해 버리기 일쑤인 사람, 서로의 배려와 존중함 없이 일상이 막말이며 언어폭력과 비아냥의 태도가 일쑤인 사람, 처음 맞이하는 양육의 극한 현실 때문에 서로 사랑했던 감정이 '미움'이라는 감정으로 변모해 안타깝게 이혼이라는 결정을 해버리고 마는 젊은 부부의 현실.



둘이 되기로 생각한 마음은, 하나가 되려고도 변한다.. 살다 보면 결국 정답은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저 선택일 뿐



그 외 숱한 '부부'로 맺어진 그들만이 알 수 있을 가정 내 벌어지는 사건 사고들. 

그러나 대부분의 이혼 사유 중 가장 흔하고 또 처참한 현실은 각 배우자를 향한 갖은 '폭력' 행사에도 '아이'를 위해 오랜 시간 참고 살아온 분들이라는 사실이란다. 비극적인 팩트다. 이런 모든 이야기들을 담고 있는 책이지만 웬일인지 웹툰.... 의 힘이라 그럴까. 텍스트로만 표현해 둔다면 그리 웃으면서는 절대 읽히지 않을 이야기조차도 뭐랄까, 신참내기 이혼 변호사의 '직장' 생활 고군 분투기라든지, 의뢰인을 대하는 그녀의 자세, 일의 측면, 개인의 고민 등등의 것까지 적절한 배합으로 잘 묘사되어 있어서 (더군다나 그림과 함께!) 삽시간의 몰입도를 안겨 주었지만. 




현실은 드라마와 많이 다르다. 변호사 초창기, 이 많은 사건과 의뢰인 들을 어떻게 다 감당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는 상황에서 드라마 속 변호사의 모습을 기대하는 많은 의리인들 때문에 벅차고 힘든 적이 많았다. 시도 때도 없이 전화가 왔고 전화를 받았다. 핸드폰에는 부재중 수십 통이 찍혀 있고 사무실에 들어오면 전화 달라는 포스트잇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인생에서 그 무엇보다 중요한 일을, 결혼도 안 해본 나에게 (이혼 사건을) 맡기기 싫다는 말씀. 나는 잘할 자신이 있었지만 그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기에, 한번 밑도 맡겨보시라는 말조차 할 수 없었다. 결혼을 안 해본 게 세상 억울했던 그때, 나는 그저 다른 변호사들보다 한 번이라도 더 듣고 한 번이라도 더 생각해서 사건을 승소로 이끌어야지 하고 다짐할 수밖에 없었다. 




어쩐지.. 읽고 나서의 '뒷맛'이랄까, 책 이후의 시간은 언제나 질문만이 찾아온다. 

그이와의 쓸쓸하고도 씁쓸한 옛 기억을 떠올리자니 더더욱 그러했었다. 나는 그에게 어떤 배우자였을까, 그이라고 해서 '그만두고' 싶었던 적이 없었던 건 아닐 거라며.... 어설픈 후회와 변명 섞인 미안함과 마주하는 나를 결국 발견하고 만다. 나는 그에게 여전히 '좋은 사람, 좋은 여자'로 남아 있을까라는 혼자만의 욕심 어린 생각조차도. 



친구들 사이에서나 직장에서 좋은 사람으로 평가받는 사람이 가정에서 너무나 큰 문제들을 일으키는 것도 많이 보았고, 형사 범죄를 저지르고도 배우자에게 큰 지지를 받는 사람도 더러 보았다 그렇다 보니 어떤 사람과 결혼해야 하느냐는 질문에 아직 이렇다 할 답을 찾지는 못했다. 



어떤 꽃으로 계속 존재할 것인가는 '나'만 알 뿐...



이 시간에도 끊임없는 가족 간 폭행으로 인한 이혼 사건이 수십 건이란다. 

생각해보면 사회의 사건 사고들의 대형 뉴스들을 미디어 속에서 접하다 보면 그리 놀랄 일도 아니겠지만, 반대로 생각해보자면 이처럼 끔찍한 비극도 없겠다.  '가족'이라는 틀 안에서 만난 관계 속에서 일어나는 경미하고도 거대한 숱한 사건 사고들은 여전히 우리로 하여금 '이상한 정상 가족'이라는 범위에 있게 하지 않던가. 



그리하여 우리는 운명 공동체라고도 칭하는 그 '가족'을 상대로 

서로를 얼마나 할퀴어내 상처 어린 시간을 주고받고 있는 걸까.... 불현듯 찾아오는 '공포'에 대해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그 어떤 힘도 통하지 않는 무기력함이 삶을 삼키고 말았을 때의 그 처참함은 어떨까. 때로 이 세계가 참 역설적이게도 처참한 활극의 난무하는 와중에 고요한 일상을 '가족' 이기 때문에 억지로 유지하는 각 역할 기능을 부여받은 배우들이 많은 연극 무대인 것만도 같은 건, 나만의 착각인 걸까... (너무 깊게 생각하나. 하아..)   




나는 나 자신의 태도에 매우 경악했다. 합리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이 상황에서 변호사를 업으로 하는 나는 그저 '잘못했어요 살려주세요'라는 말만 내뱉고 있었다. 두 손은 고장이라도 난 듯 자동으로 그 사람을 향해 빌고 있었고, 너무 무서워 눈물조차 나지 않았다. 


언어를 전공하고 법을 공부한 내가 언어와 법이 전혀 통하지 않는 상황을 경험하는 순간이었다. 이후 가정 폭력 사건을 다룰 때면 분노뿐 아니라 공포에 대해서도 공감할 수 있었다. 물론 그날 내게 실제로 물리력이 행사된 건 아니었지만, 그것이 어떠한 종류의 공포인지는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았다. 




마냥 '가족'에게 희생'만' 하고 자기 권리를 모르고 살았던 이들의 용기 어린 첫 만남. 

그 현장에서 고군분투하는 변호사의 이야기를 가만 지켜보고 있노라니, 적잖은 애달픔과 분노가 여전히 치밀어 오르는 걸 겨우 막아내기도 해 본다. 합의는커녕 돈 못 준다면서 내 돈으로 집에서 퍼질러 있으면서 한 것도 없다는 식의 적반하장 피고 남편 이야기, 두 부부의 어쩔 수 없는 이별에 최고 피해자는 다름 아닌 '아이' 일지도 모름에, 부모라는 역할은 정말이지 극한 직업이나 다를 바 없다는 저자의 말에 나는 고개를 한 번 더 끄덕이며 애써 마음을 달래볼뿐이다.  




이혼은 부부의 이별이지, 아이와의 이별이 아니다. (중략) 극한 직업이다. 낳아서 먹이고 입히고 키우고 결혼까지 시켜도 부모라는 직업은 더 주지 못하면 죄인처럼 느끼는 이 세상 모든 부모들. 


참을 만큼 참았으니 자유로워지고 싶다던 할머니의 삶이 정처 없고 고됐으리라. 결국 어머니의 삶을 고스란히 지켜본 장성한 아들이 고사리 같았던 그 손으로 어머니를 종착역에 모셔다 드렸다. 


우리는 모두 이전 세대에 빚을 지고 있다. 요즘 젊은 세대들 대부분은 상상도 못 할 심각한 폭행, 상습적 외도 등을 모두 자식의 안위를 위해 견디고 덮고 그냥 살아오신 분들이 실제로 이렇게나 많음을 나는 변호사가 되고 나서야 알았다. 



살다가 만나게 되는.... 고요함을 깨우는 파동 같은 시간들.



만남에도 예의가 필요하겠지만, 이별에는 더 큰 예의가 필요한 법일 테니까. 

타이밍 좋게 '사랑'으로 연결된 관계가 부부의 연을 맺고 살다가도, 때로 교통사고처럼... '이혼'이라는 결정을 생각하고 행하여 끝맺음을 이루기까지, 첨예한 관계 속 고단한 그 시간이 부디 두 사람에게 상흔으로만 남겨지지 않기를. 그 언젠가의 내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번 더'라는 생각으로 끝끝내 그를 놓지 않았던 것에 지금은 많이 감사하고 있다는 이 마음의 앞 시간들은.... 끝없는 인내와 용기가 필요했다는 것을. 그리하여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조금 더 당연한 것이 절대 당연하지 않다는, 고마움과 미안함이 잔존한다면... 다시 용기를 내는 것도, 혹은 이별을 하는 것도, 그 어떤 선택도 나쁜 길은 아니리라. 



그 선택 또한 나의 '삶'의 일부일 테니까. 



그래도 시간은 흐르고, 시간이 쌓여서 상처는 아물고 다시 새로운 기억도 태어날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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