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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븐 Oct 09. 2019

모든 여성들의 구원이고 싶었던, 한 여자 이야기

'이이효재'.... 고맙습니다.  

새로운 길은 흔히 새로운 사람과의 만남에서 시작된다. 


- 이이효재 - 





딸은 어미를 닮아간다...

한때, 나는 이 고루한 문장을 외면하고 싶었다. 내가 점점 그녀를 닮아가는 것 같다는 것을, 일상 속 크고 작은 것들을 대하는 태도 속에서 선명한 발견으로 '나'에게 다가왔었던 때... 그랬다. 나는 엄마가 싫었지만 한편으론 '대단' 해서 넘을 수 없는 '인간상' 같았으니까. 




억척스러움이 당연한 삶의 해시태그였던 나의 모친은 스물한 살에 나를 낳았다. 

낳지 않을 권리는 주어지지 않았다. 나는 안다. 그것이, 그 환경이, 여전히도 이어지는 그 선택의 역설은 동시대에도 계속되니까. 속도위반 결혼, 엄마는 그 후 일을 하는 여성 노동자로, 아내와 엄마로 20대와 30대, 그리고 마흔의 시절을 지내고 이젠 무보수 '양육노동' 을 함께 지내주시고 계신다. 생활력이 강하고 경제관념이 뚜렷했던, 사람을 대하는 개인 소신이 분명한, '쉽지 않은 여자' 였겠다만 반대로 절대 쉽게 자신의 발언을 '시댁'에게는 표하지 않았던 '며느리'이고 '아내'였던... 나와 남동생. 슬하 2인의 자식 포함 늘 4인 가족의 화평을 챙기는 게 자신의 삶이라고 믿고 사는, 맥주를 좋아했던.... 이제는 쉽게 맥주조차 마시지 못하는 고장 나고 쇠약한 몸을 끌어안고 사는... 나에게는 '여자'라는 개인, '친애하는 나의 당신'이었지만. 



내 평생 당신을 향한 이야기는, 오디오북으로도 모자랄 것만 같습니다.. 나의 친애하는 당신... 여자, 엄마, 당신이라는 한 사람...



 '이이효재'는 어쩌면 그녀의 '어머니'를 닮았을지도 모른다고, 감히... 생각했다. 

주어진 복에 감사할 줄 아는 큰 그릇의 사람, 반대로 개인의 성취와 성장'만'을 고집하지 않고 '타인' - 특히 여성 - 을 살뜰히 챙기고 관찰하고 그 안에서 무언가 '도울' 일이 없는지를 끊임없이 연구하고 고민하고 움직이고 행동했던 강한 시대의 신여성.... 그녀가 그렇게 자랄 수 있었던 건 어쩌면 그녀 주위의 보이지 않은 또 다른 '그녀들' 이 있었기 때문이리라. 



이이효재, 박정희, 다산초당, 2019.09.09. p. 312




말이 없고 무엇이든 허투루 넘기지 않고 유심히 관찰하고 생각하는 것이 효재의 타고난 성격이었다. 

(중략) 


여성들이 둘러앉아 자유롭게 자신의 의견을 말하고 서로를 설득하며 합의를 이끌어내는 모습은 참으로 아름다웠다. 효재는 그런 어머니의 모습이 자랑스러웠다. 훗날 민주적인 방식으로 여성들을 이끌며 여성 운동을 펼쳤던 이이효재의 리더십은 바로 여기에부터 시작되었으리라. 


청송댁, 구례 아주머니, 함안댁 등이 이이효재의 기억 속에 아직도 또렷이 남아 있는 이들이다. 빚 대신 소실로 팔려간 여성, 남편의 외도로 인해 쫓겨난 여성, 시댁의 학대를 견디지 못해 집을 나온 여성 등 가부장제의 피해자들이었다. 


효재의 어머니는 고모 이애시와 달리 아들 낳기를 간절히 원하는 유교적인 사고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했지만, 교회를 찾아오는 불우한 여성들에게는 새로운 삶의 길을 열어주는 안내자 역할을 적극적으로 수행했다. 




평생 결혼하지 않고 공부하는 삶. 여성들의 '인권'을 위해 철저히 개인의 모든 시간을 끌어다 바치는 생.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 교육이라는 문명의 '혜택'을 받고 자랐던 그녀라서 가능한 삶이었을까? 아니. 절대 아닐 것이다. 혜택을 받는 이들 중 그 혜택을 자신이 이웃들 대신해서 받은 미안하고 고마운 '빚'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흔치 않으니까. 



자신이 진  '빚'을 '빛'으로 갚으려는 사람은 더더욱 소수다. 

그리고 우리의 시대엔, 나의 앞 시대엔, 나라는 '여자'가 동시대를 살아가기 한참 전부터, 이 소수의 한 여성이 계셨다는 것을... 나는 왜 이제야 알았단 말인가. 책을 읽는 내내 부끄러워졌던 건, 철저히 '개인'의 삶만을 위해 여전히도 살고 있는 듯한 지극히 나약하고 이기적인 '나'의 모습이 그녀의 이야기 속에 투사되어 스며들면서... 어쩔 수 없이 미안하고 또 고마운, 자기반성의 시간을 가질 수밖에 없었기 때문.. 이겠다. 




그 당시 대부분의 여학생들에게 대학 교육은 사회 활동을 위한 지식의 습득과 준비가 아니라, 결혼을 위한 준비 과정이었다. 그러니 그런 학생들 앞에서 미국 사회학의 이론을 떠들어대는 것은 헛고생이라는 회의도 생겼다. (중략) 


어떤 이론과 사상을 가지고 가르쳐야 학생들에게 우리 사회 발전에 대해 스스로 생각하거나 고민하게 할 수 있을지 스스로 해답을 찾아야만 했다. 


고등 교육을 받은 도시 여성들에게 여성 운동이 취미 활동 차원에 그치지 않고, 더 나아가 모든 여성이 평등권을 자각하고 개인으로서의 자아실현을 위한 지성을 개발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역할을 하라고 요구했다. 그 방안으로 스터디 활동이나 자녀 양육에서 여성들을 해방시킬 탁아소 설치 등을 제안하기도 했는데 (1969. 2. 5, 매일경제) 


당시만 해도 여성들을 위한 강좌나 탁아소 설치 등은 혁신적 주장이었다. 



쉽게 가지 않은 길을, 감히 가려했던 당신의 이야기가... 오늘 내 마음을 파고듭니다




읽는 시간이 이처럼 아프게 저린 적은 실로 오랜만...이다. 

대학의 교수로 학생들에게 '인간의 권리'를 가르치고 참정권, 교육권을 넘어, 현시대에는 '호주제 폐지, 위안부 할머니들의 한'을 풀려 뜨겁고도 치열한 시간을 보냈던 한 여자.... '이이효재'라는, 시대의 살아있는 여성 서사는 다시 나로 하여금 그 어떤 생생한 분노와, 여러 매스 미디어로부터 익히 알고 있었던 만행과 참상을 다시 불러일으켜 심연 속 어떤 비릿함을 자극하게 만들.. 었다. '아이 캔 스피크'와 '귀향'을 끝까지 볼 수 '없어서' 자리를 박차고 나왔던 '나' 여서 그랬던 걸지도 모를 일이다.....




5명의 경찰과 군인이 들이닥쳐서 가족들이 보는 앞에서 날 강제로 끌고 갔어요. 30여 명의 처녀들과 함께 어딘지도 모르는 곳으로 끌려갔어요. 


도착한 곳은 조그만 다다미방이 연결된 곳이었는데, 아무런 설명도 없이 한 명씩 들어가라는 거요. 한 처녀가 저항하고 도망을 가니 바로 우리들이 보는 앞에서 붙잡아 죽이더니 유방을 도려내고 배를 갈라 창자를 꺼내 이리저리 흔들어댔어요. 


너무나도 무서웠지만 그 생활이 어찌나 끔찍했던지 도망을 치려다 결국 붙잡혔어요. 그놈들이 날 거꾸로 매달더니 인두로 지져댔어요.  (중략) 


모두 속임수라는 것은 꿈에도 몰랐어. 일본 공장에 가서 일하면 돈도 벌고, 아버지도 나올 수 있다 해서 기쁜 마음으로 자원했지. 그런데 일본, 대만, 싱가포르를 거쳐 인도네시아의 전쟁터까지 끌려가서 하루 평균 수십 명의 일본 놈들에게 짓밟히게 될 줄 상상이라도 했겠느냐고? 반항하면 담뱃불로 지지고, 강제로 마약 주사를 놓고.... 하늘나라에선 위안부 악몽을 더 이상 꾸고 싶지 않아. 


정서운 할머니가 2004년 2월 26일 숨을 거두며 남긴 유언이었다. 


할머니는 4년 동안의 끔찍한 성 노예 생활 중 아비 모르는 아이를 둘이나 낳아야 했다. 출산 후 사흘이 지나면 다시 군인들을 상대해야 하는 지옥 같은 삶이었다. 이이효재는 그 생생한 분노를 안고 미국으로 갔다. 모르쇠로 일관하는 일본 정부에 압력을 넣기 위해서는 국제 여성 운동이나 유엔 인권위원회를 통해 국제 여론을 고조시켜야 한다고 판단했다. 




위안을 줄 수 있는 관계로 자신의 '성'을 상납시키길 강요받는 행위가 과거뿐이겠는가... 지금도 이어지는 폭력은 그래서 드러나야 한다. 역설적이지만 보여야 없어진다... 반드시.



어떤 감정의 시작을 가만 들여다보면, 애초에 그것이 어디 서부 터였는지조차 알 수 없게 되고 말 때가 있다. 

요즘 '나'라는 개인의 서사는 '외부'에서 보면 희극이나, '내면'에서는 얕고 깊음을 주고받은 비극의 연속을 이어 나가보고 있는 중이다. 그리 평탄하지도, 온순하지도, 평화롭지도 못하다는 걸 스스로에게만큼은 검열 없이 철저히 들켜버리고 마니까. 



헌데 이 한 권의 책을, 이제는 희소한 개인의 휴가가 주어진 공휴일 아침, 거실에서 읽어 내려가면서.. 

스스로 낮 뜨거운 반성을 할 수밖에 없었던 건, 내가 너무 '나만' 생각하고 살았던 걸까 싶었기 때문.... 이겠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에 감사할 줄 모르는 또 다른 이면의 '나'를 발견했기에... 앞서 모든 여성들의 구원이고 싶었던 이 한 여성 선배의 이야기는 나로 하여금 어떤 뜨거움과 미안함, 한없는 애틋함과 어떤 고마움으로 다가오고... 만다. 




호주제 폐지는 입법부, 강금실 법무부 장관을 중심으로 한 행정부, 민변과 여성 단체 등의 시민단체와 민관이 힘을 합쳐 이루어낸 쾌거였다. 호주제가 사라지면서 가족원은 호주라는 중심에 속한 수동적 객체가 아니라, 구성원 각자가 주체가 되었다. 남녀를 떠나 법적으로 개개인의 권리가 확대되고 평등해졌다.


하늘의 뜻을 살피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씀에 따라서 이웃과 함께 살려고 무던히 애썼다. 그 과정에서 혼인도 하지 않고 내 아이를 낳지 않았어도 나에게는 수많은 딸들과 손자들이 생겼다. 그들로부터 충분한 사랑과 보살핌을 받으며 혈연이라는 것이 얼마나 부질없는 인간의 욕심인지를 체험하고 있다. 그러나 얼마나 나의 삶이 복된 것이던가.  




이 시대엔 다양한 '가족' 이 형성될 수 있다는 걸, 아직도 '외면' 하는 이들이 많은 것 같다. 

비혼이나 딩크를 여전히 '특별' 하게 생각하는 말 센스 없는 관계 속 말투들, '사랑'과 '생명'이라고 하는 인간이 추구해야 할 존엄하고 당연한 가치가, 아주 단편적으로 남자와 여자라는 '이성애적 사랑'과 핸디캡이 없이 태어난 '호사'를 누리며 태어났어도 그것을 고마워할 줄 모른 채, '일반인'으로 구분 지어 비장애인들에게 더 큰 호사를 안겨 주는 역설적인 사회 시스템들과 '장애'를 가진 이들을 여전히도 방관하여 '내 알 바 아니다'라는 식의 세상 속 차가운 시선들... 




이웃사촌 가족, 장애인이나 노약자들의 공동체 가족, 모자 가족, 동성애 가족 등 다양한 형태의 가족이 가능할 것이다. 그렇다면 혈연과 혼인으로 이루어지는 가족이라는 개념도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이이효재의 생각이었다. 


수천 년 동안 지속되어온 남성 중심 문화가 쉽게 뿌리 뽑히고 완벽하게 사라지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장벽을 제거한 것만으로도 엄청난 진전이었다. 이이효재는 이를 시작으로 혈연이나 결혼만이 중심이 아닌 이웃, 자연과 더불어 사는 인간적인 공동체를 향한 열린 가족, 평등 가족이 실현되기를 희망했다. 



왜 우리는..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 서로의 감정과 생각만을 중시하여 단편만을 바라보며 사는 걸까... 그게 인간 본성의 법칙이라 하더라도... 말이다.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생각과 시선을 확장시켜 세계를 바라보는 시간이 이처럼 겹겹이 쌓일수록. 

나는... 여전히 '개인'을 사랑하는 보편적이면서도 지극히 이기적인 '대중'이라는 인간의 삶을 살면서도 때로는 말이다... 정말이지 '사회' , '커뮤니티',  '공동체'  '아이들'과 '인권' 그리고 '죽음'과  '여성'이라는.... 이런 키워드를...'양육자'가 된 이후에 마음에 어렴풋하게나마 담은 채 일상을 지내다 보면,  너무나도 고통스럽고 지저분하고 역설적인 사회적 시스템과 결국 '자본주의' 논리 하에 '돈' 이 '사람' 보다 우선시 되고 마는 여전히도 폭력적인 숱한 행태를.... 관찰하게 된다. 



그리하여 이렇게 '뜨거운 분노'가 가끔 솟구쳐 나오고 마는 걸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가 행했던, 첫 '여성 대통령'이라고 칭송해 마지않았던, 정말이지 비겁하고 어리석은 '선택'을 했던 '대중'이었던 '우리'는... 소수의 투명하고, 진실된 목소리를 외면한 대가를 얼마나 많이 치러왔던가. 대통령 탄핵, 세월호... 더 거론하기조차 쉽지 않은 대중의 오류와 권력의 휘둘림으로 인해 흐르는 시대적 사건 사고들... '이이효재' 만이 통곡했던 건 아니었을 테다. 나는 한때 단 한 번의 '기권'을 행사했었던 그 해를... 기억하니까. 또한... 여자라고 '다 같은 여자'는 '절대' 아니라는 것을........ 지금의 나는 더욱더 뼈저리게... 잘... 깨닫게 되는 시간을 통과하는 중이니까... 




박근혜는 1970년대 여성들이 억울하게 일터에서 쫓겨나 거리에서 울부짖을 때는 유신의 공주, 어머니가 죽은 뒤로는 퍼스트레이디였다. 가족법 개정, 성폭력과 가정 폭력 방지법을 외칠 때 그녀는 어디에 있었던가? 15년 동안 국회의원을 하면서도 여성을 위한 노력은 손톱만큼도 보이지 않았다. 


1970년대부터 30년 넘체 여성차별에 맞서 싸워온 여성들은 분노했다. '여성 대통령'의 의미가 훼손되는 현실을 참을 수 없었다. 이이효재, 조화순, 박영숙, 윤정옥, 김복동, 김원옥 등의 원로 여성 운동가들과 100여 명의 여성들은 준비된 여성 대통령' 론을 조목조목 반박하는 성명서를 발표하며 유사 상품에 속지 말라고 외쳤다. 


헌법을 부정한 유신 정권에 대해 침묵하고 퍼스트레이디로 유신 정권에 기여한 것에 대한 뉘우침과 사과가 전혀 없는 박근혜가 대통령이 된다는 것은 염려를 넘어 공포를 불러올 지경이었다. (중략) 


이런 모든 염려와 반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박근혜가 대통령으로 당선되고 말았다. 이이효재는 지난 수십 년의 역사가 거꾸로 돌아가는 듯한 충격에 빠졌다. 그는 통곡을 주체할 수 없었다. 사흘 내내 아무것도 먹지 않고 울기만 했다.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도 그렇게 통곡하지는 않았던 이이효재였다. 



이제는 희소한, 혼자 남겨지는 시간들이 주어지면... 과거를 반성하고 오늘을 현존해서 미래를 상상하곤 한다. 할 수 있는 최선이 그것... 뿐이라.



젠더를 바꾸고 싶은 마음은 없다. 다시 태어날 생각도 하지 않는다.  

다만, 이제 '여성'으로 살면서 내가 겪은 작고 큰 불편함 들을 비롯하여, 남녀 구분 없이 그저 '사회' 속 속절없이 답답한 여타 '폭력'들에 노출되고 또 노출되며 살아갈수록... 지금의 내가 '여성' 이자 '엄마'로, '아내' 이자 '여자'로 살며 단 하나의 숨구멍이 있다면.... 지금과도 같은, 이런 시간일 것이라고. 



글을 쓰는 시간 말이다. 

그러하기에 책 한 권을 읽어도, 어떤 서사는 깊이 있게 다가오고 어떤 이야기는 그저  '팔리는 글' 에만 치중하여 POP와 입소문으로 만들어진 가짜 단행본으로만 비친다. 또한.... 나로 인해 진짜 '작가'로 인정되는 이들은... 개인이 아닌 '사회'와 '타인'을 외면하지 않은 이들. 그런 글쓰기를 하는 사람들... 그런 분들이 진짜 작가인 것만 같고. 그리하여.. 나 또한, 정말이지 속절없이 부족하고 또 평생을 부족해서 메꾸기에 급급한 비루하고 남루한, 팔리지 않은 글쓰기를, 나 살자고 쓰는 글을 여전히 지속할지도 모를 일이지만...



주어진 역할 속  '구성원' 으로서의 최선의 길을 걷게 된 나는... 쓰는 지금 이 시간. 바라고 또 바랐다. 

편집된 팩트를 재구성시켜 누군가를 툭 하고 건드려... 결국  자각시키고 마는, 섬세하고 예리한 감정을 선물하는 '진짜 작가'가 되고 싶다고. 그러니 진짜 되어 보자고... 여전히도 내가 시대를 외면하지 않은, 팔리지 않은 글을 쓰는 소설가들을 사랑하는 것처럼. 같은 지식 단행본이어도 화려한 미사로 자신만을 드려내기 급급한 글쓰기가 아닌 (이런 말을 잘도 하는 내가 부끄럽다만...) 서툰 진정성을 가진.... 그런 글쓰기를 행하는, 식탁 테이블 라이터의 삶을 계속 살아내 보자고.... 



상업출판 속, 버려지는 이야기들 중에는, 실로 보석 같은 서사들도 여전히 존재하니.. 더 잘... 읽고 발견하고 다시 쓰고 싶다...



마지막 페이지의 이 단락 덕분에, 나는 공휴일의 햇빛 찬란히 들어오는 거실에서, 다시금 울고 말았다. 

혼자 남겨진 시간은 아직도 '눈물' 이 친구로 곁에 자리한다. 그렇지만... 오늘의 눈물은 괜찮은 농도로 흘렀다. 그녀의 목소리가 나에게 다가와 '안아주었고' 그리하여 나는 '안겼기에'.... 솟구치는 애달픔과 동시에 뜨거운 용기를 불러일으켜 준 이 문장들을.... 언젠가 너희들과 함께 읽으면 참 좋겠다 싶었던 건.... 내가 바라는, '인간' 이 '인간'을 대하는 최선과 최고의 위로와 용기의 목소리로 들렸기 때문이다. 내가 바랐던 목소리. 그리하여 반대로 듣고자 한다면 내가 먼저 들려주는 사람이 되어 보자는 또 다른 내면의 목소리... 를. 



'자유'와 '사랑' 이 너희들 최고의 가치가 되기를 바라기에. 

'훈민정음... 너희들의 스물, 그리고 서른이 지난 시간에도 이 문장을 꼭 같이... 말해보고 싶다. 

그때도 우리들이 '함께 '한다면... 부디 그러리라고...




내가 살아왔던 시대와는 달리 오늘날에는 배우고 들을 수 있는 수많은 선택이 존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래에 대한 불안의 수치는 갈수록 더 높아지는 듯하다. 


사고에서 더 자유로워지고 선택을 즐기며 살아나가길 권한다. 


자신을 사랑하며 그 사랑으로 내가 속해 있는 공동체에 뿌리를 내리면서도 

인류의 한 구성원으로서 품위 있는 삶을 영위해나갔으면 한다.  


2016년 10월, 이이효재 구술, 박정희 정리. 




언젠가... 읽고 마음을 기록한, 이 시간들을 책으로 엮고 싶다는 상상을..'한글날',  '훈민정음'을 그리워하며, 바라고 바랐다...




#그녀가 여성들의 빛이 되어 준 것처럼, 미약한 누군가도 빛이 돼주고 싶다는 상상을 해봤다. 

#우선 스스로 나부터 구원하리라고... 끝내 생각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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